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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224화 (224/237)

224화

<라데우스 후계 전쟁 (3)>

강하다? 압도적이다?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한동안 네르하를 관찰하던 네이하가, 이윽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 아름다움.’

네르하의 모습에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외모에 대한 평가가 아니었다. 마나의 운용, 마력의 제어, 상대에 대응하는 움직임까지.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돌아가며 이치에 거스르지 않는다.

“잘 지켜보는 게 좋을 거다.”

“……네.”

“마법사들은 절대로 관객을 들이지 않는다. 그 이유를 알고 있나?”

“자신의 정보가 밖으로 퍼져서 좋을 게 없으니까요.”

“그래, 잘 알고 있구나.”

중원에서는 흔히 절기(絶技)를 본 자는 살려두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이건 마법사의 세계에서도 흔히 통용되는 말이기도 했다.

사실 마족과의 전쟁이 특이한 케이스였을 뿐, 대부분의 전투 마법사는 자신의 비전을 목격한 외부자는 가능한 모조리 죽여버리곤 했다.

즉, 합법적인 관람이 가능한 이 전투는, 아직 경지에 이르지 못한 네이하에겐 보물상자나 마찬가지였다.

‘아아.’

마력과 마력이 허공에서 얽힌다. 날카로운 검은 공세가 네르하에게 쏟아졌지만, 네르하는 가볍게 그 공세를 흘리고 막아내고 받아쳤다.

네이하는 멍하니 네르하의 움직임을 눈에 넣었다.

친남매라서 그런 걸까?

네르하가 각성한 고유 계통은 네이하의 고유 계통과도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었다.

그렇기에 다른 이들보다도 더욱더 도움이 되었다.

‘아, 저렇게 하는 거구나.’

상대의 대응 수준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걸 압도적으로 찍어누르는 모습은 네이하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비록 지팡이를 들고 제자리에서 영창하는 스테레오 타입과는 많이 다른 움직이었지만, 네이하의 눈엔 저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 아아!”

어느새, 네이하의 전신에 은은한 황금빛이 돌기 시작했다.

마법사의 기연, 정신 각성이었다.

“아, 아니?”

네슬렉은 당황했다.

싸움을 보고 배우는 게 있다면 좋겠다는 투로 말하긴 했는데, 말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정신 각성에 들어가는가?

원래라면 네이하의 성장을 누구보다 기뻐해야 할 로젤리아조차 황당하다는 시선으로 네이하를 바라보았다.

아직 네이하에 대한 기대를 접은 건 아니었지만, 네르하가 워낙 갑자기 우수해지다 보니 네이하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어질 수밖에 없었다.

로젤리아는 이걸 좋아해야 할지 너무 늦었다고 생각해야 할지, 복잡하기 그지없는 눈으로 네이하의 각성을 바라보았다.

* * *

루드빅의 주변에 거대한 어둠이 드리워졌다.

정확히는 루드빅의 주변에서 마치 검은 타르처럼 진득한 무언가가 흘러나와 대지를 뒤덮었다.

‘처음 폭발은 저 검은 것을 소환하는 사전 마법인가?’

츠츠! 츠츠츠!

그 검은 영역에서 검고 기다란 붕대들이 하나둘씩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8레벨의 영역과 비슷한 현상이었지만, 대마법사의 영역을 자주 접해본 네르하는 대번에 그 차이점을 알아차렸다.

‘영역과 비슷하지만 영역은 아니야. 완전히 자기 의지로 다루는 게 아니라 인공지능처럼 몇몇 명령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설정해놓은 건가?’

상대를 옭아매고 속박하는 그림자. 은밀함을 좋아하는 루드빅의 취향이 묻어나오는 술식이었다.

저 그림자는 어둠에 숨어 사는 한 ‘종족’의 고유 능력이었다.

‘뱀파이어들의 종족 특징을 술식화 하다니. 저 녀석도 나름 천재의 부류군.’

하긴 라데우스 혈족 중 재능있지 않은 자는 없다.

뭐, 과거의 ‘네르하’를 제외한다면.

대번에 싸울 준비를 마친 루드빅이 네르하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나보고 네놈 따위의 밑으로 들어가라고?”

“문제가 있습니까?”

“당연하지. 사자가 개의 밑으로 들어가는 걸 보았느냐?”

네르하는 실소했다.

“누가 누구보고 사자라는 건지…….”

루드빅은 잘 쳐줘야 하이에나급이다. 라데우스의 피를 이어받은 만큼, 나름 재능은 있지만 라데우스라는 거대한 가문의 우두머리가 될 급은 아니었다.

“닥쳐라!”

촤악!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붕대들이 네르하를 덮쳤다.

대번에 전면의 시야가 그림자로 인해 검게 물들었다.

‘술식의 수준은 절대 나쁘지 않다.’

―에너지 볼트!

콰직!

가볍게 날린 견제기였지만 루드빅의 붕대는 그것을 간단히 잘라버리고 네르하에게 달려들었다.

‘살상력이 높군.’

쾅!

도주로를 막으며 날아오는 붕대를 어쩔 수 없이 쳐내자, 손끝으로 묵직한 얼얼함이 느껴진다.

‘이 정도 강도와 날카로움이면, 어지간한 오러 블레이드도 감당할 수 있겠어.’

위력도 위력이지만, 그 빠르기는 어지간한 풍계 마법의 속도를 능가했다.

정면으로 맞붙어도 어지간한 귀급 기사 십여 명은 순식간에 도륙을 내버릴 것이다.

그러나.

네르하는 안타까움에 속으로 혀를 찼다.

‘쓰는 방법이 잘못되었어. 저런 건 정면 승부로 쓸만한 게 아닌데.’

아무리 화려하게 공격해도 술식의 사용자는 기사가 아닌 마법사.

‘내가 루드빅이라면 무조건 도망을 가고, 후에 기습으로 승부를 봤을 거다.’

저건 암살 및 기습에 특화된 술식이다. 이렇게 쉽게 적의 눈앞에, 그것도 대낮에 꺼낼 만한 게 아니었다.

그러나 루드빅은 정직하게 정면 승부를 걸었다.

“이, 이놈이!”

상대를 몇 번 하다보니 대번에 그림자의 궤적이 눈에 익기 시작했다.

패턴의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화려하게 공격 패턴을 바꿔도 궤적 자체가 정직하다 보니, 결국 어디로 향해올지는 눈에 훤히 보였다.

‘어둠을 등에 업고 싸웠다면 몇 배는 더 까다로웠을 거다.’

네르하는 착실하게 루드빅을 압박해나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루드빅의 이마엔 땀방울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2분 안에 제압이 가능할 듯 싶은데…….’

시간을 계산한 네르하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루드빅은 너무 성급하게 싸움을 걸었다. 밑으로 들어오라는 도발에 발끈해 달려드는 건 바멜이나 할법한 짓이었다.

‘근처에 외부지원국은 없다. 아니, 애초에 먼저 싸움을 걸은 건 루드빅이었으니 내게 불리할 것도 없어.’

그때였다.

“……!”

한 차례 그림자를 크게 쏟아낸 루드빅의 신형이 그대로 그림자 안으로 스며드는 게 아닌가?

‘저거, 설마?’

물리력을 무시한 그림자 이동. 루드빅의 기척이 순식간에 멀어지기 시작한다.

잠깐 멈칫한 사이, 루드빅의 기척은 저 멀리 도심 안쪽에 섞여버렸다.

“이런.”

네르하의 표정에 살짝 낭패가 서렸다.

“큭큭큭, 놓쳤구만.”

네슬렉이 은근한 웃음을 지으며 네르하에게 다가왔다.

“한 방 먹었군요.”

“그런 것 치곤 표정이 그리 나쁘지 않은데?”

네르하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렇게 무작정 도망갈 줄은 몰랐지만, 사실 너무 쉬운 것도 좀 그렇죠. 명색이 라데우스의 차남이 상대인데.”

“곤란해졌어. 원한이 생겼으니 철저하게 네 뒤만을 노릴 거다. 음지 놈들은 위협적이진 않아도 끈적하고 귀찮기 그지없지.”

루드빅은 베리타스의 음지에 적지 않은 세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네르하와 네르하의 세력을 노린다면 제법 곤란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네르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 겁니다.”

“어째서 그걸 확신하지?”

“음지에서 활동하는 건 어디까지나 루드빅의 성향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자길 건드리면 모든 걸 걸고 동반 자살하겠다는 놈들처럼 뒤가 없이 굴진 않아요.”

음지 놈들의 특성이 그렇긴 하지만, 그렇다고 루드빅의 성향까지 그런 건 아니다.

썩어도 라데우스의 혈족이고 지배자로서 교육받고 지배자로서 타고났다. 여전히 그는 패권을 노리고 있으며 합리적인 선택을 할 정도의 이성이 남아있을 것이다.

“지금 저와 부딪쳤다간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겠죠.”

“그래서 일부러 도발한 거냐?”

“설사 실력으로 꺾더라도 루드빅은 굴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 세력을 모두 드러내 일거에 제압해서 굴복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네르하가 루드빅을 첫 번째 타겟으로 잡은 이유도 이것이다.

음지의 세력은 양지 이상으로 서열화가 심하다.

다른 쪽으로 갈아탈 수 있는 양지와는 달리, 음지는 우두머리가 제압당하면 하부 조직 전체가 그대로 상대에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상황이 아니더라도 루드빅은 안으로 숨어들 테고 조용히 침묵하겠죠. 그리고 적당한 때에 교섭을 해올 겁니다.”

네슬렉은 네르하의 말을 대번에 이해했다.

“문제는 그게 너나 마하, 둘 중 누가 될지 모른다는 거겠군.”

“네, 그래서 루드빅을 가장 먼저 잡아야 합니다.”

딱!

네르하가 손가락을 튕겼다.

“세이라.”

“네, 주인님.”

스스슥!

어느새 네르하의 그림자에서 세이라가 튀어나왔다.

네슬렉이 살짝 언짢은 어조로 말했다.

“그것을 여전히 데리고 있는 거냐?”

과거 네슬렉은 세이라에 대해 그리 좋지 않은 감정을 드러낸 바 있었다.

“베리타스에 있을 땐 계속 데리고 다닙니다. 나름 능력이 있어요.”

정보 조직, 미네르바를 설립하고 2~3년이 지났다.

파격적인 후원과 세력 몰아주기로 미네르바는 라데우스 휘하의 정보조직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성장했다. 거의 장로 휘하의 조직들과 비교해도 전혀 꿇리지 않았다.

“쫓아. 당연한 말이지만 충돌은 절대 피하고.”

나름 실력이 늘었다지만 여전히 세이라는 잘 봐줘도 5레벨의 수준을 넘지 못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하게 실력이 는 것이지만, 루드빅에게 걸리는 순간 반항도 못 하고 찢겨버릴 것이다.

하지만 세이라의 진가는 무력에 있지 않았다.

“루드빅 님의 세력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습니다. 평소 그분과 접촉하고 있는 암흑가들 역시 조사를 끝내뒀고요.”

“호오?”

“그분이 몸을 숨길만 한 안가의 위치는 모두 8곳. 모습이 확인되는 대로 바로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생각보다 더 유능한 모습에 네슬렉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좋아, 빠른 낭보를 바라지.”

“네.”

세이라의 모습이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얼추 상황 정리가 끝나자 네르하의 관심이 다른 쪽으로 돌아갔다.

“그나저나, 네이하 쟤는 왜 저러고 있습니까?”

지금까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저건 딱 봐도 정신 각성 아닌가?

네슬렉이 허탈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네 동생도 재능이 참 출중하더군.”

* * *

정신 각성이 끝난 네이하는 한 꺼풀 벗은 모습으로 눈을 떴다.

그 안에서 느껴지는 마나의 강렬함에 네르하는 황당한 시선을 던졌다.

‘아니, 뭘 했다고 벌써 6레벨을 찍어?’

거대한 사투를 벌인 것도 아니고, 목숨을 건 모험을 한 것도 아니다.

그냥 남의 전투를 살짝 바라본 것만으로도 대번에 벽을 넘어버리다니?!

‘바스텔과 그 재능이 비교될 정도라는 건 절대 허풍이 아니었군.’

이대로라면 리브라에 들어가 졸업할 때쯤이면 7레벨은 무난하게 찍고 나올 것이다.

네이하는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를 보는 눈빛으로 네르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신 각성을 거치면서 뭔가를 느낀 것인지, 어째서인지 네이하는 무언가 벽을 친 것 같은 느낌으로 네르하를 대하고 있었다.

“오라버니.”

네르하를 부르는 담담한 목소리에서 네르하는 무언가 미묘한 불편함을 느꼈다.

그때였다.

“네, 네르하 도련님.”

“무슨 일이지, 사미르?”

네이하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조마조마하던 차에, 사미르가 네르하에게 누군가의 방문을 알렸다.

“……누가 찾아왔다고?”

그런데, 방문자의 지위가 상당히 예사롭지 않았다.

“레, 레티안 공녀님께서 도련님을 찾아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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