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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226화 (226/237)

226화

<라데우스 후계 전쟁 (5)>

막대한 음마력이 베리타스에서 치솟아오른다.

당연한 말이지만, 8레벨의 영역에 준하는 거대마법이 발현되자 라데우스 본가 측에선 난리가 났다.

베리타스의 대소사를 관리하는 라데우스 내부관리국.

내부관리국은 때아닌 루드빅의 폭주를 감지하고는 적잖은 혼란에 빠져있었다.

“위치 정확히 확인해!”

“13구역 개발제한지역에 있는 ‘카르안의 성’입니다!”

“거긴 또 왜?! 아무것도 없는 곳이잖아!”

“하, 하지만 루드빅 공자의 마력이 감지되던 곳이었습니다. 이전 그분의 안가로 판단하고, 시엘 대부인의 동의하에 관리 외 구역으로 놓은 곳이었습니다만…….”

“젠장, 무슨 마력 시험이라도 하다가 폭주한 건가?”

최소 8레벨급이 내부에서 터지면 구역 한두 개 날아가는 걸로는 끝나지 않는다.

기기를 다급히 만지작거리며 상황을 파악하던 부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폭주…는 아닌 것 같습니다. 터진 마력의 양은 분명 8레벨급인데, 마력 패턴이 바깥으로 전이하지 않고 규칙성 있게 순환하고 있습니다.”

“뭐야, 그럼. 8레벨급 마력이 온전히 통제되고 있다는 거냐?”

“이, 일단 관측상으로는 그렇습니다.”

내부관리국 지역관리부 부장, 가델 프리온은 이 상황이 일컫는 하나의 단어를 멍하니 내뱉었다.

“심상 각인 영역?”

대마법사의 증거. 모든 마법사들의 꿈.

하지만 대륙 전체를 통틀어서 영역을 사용할 수 있는 8레벨의 마법사들은, 비공식을 통틀어서 열을 넘지 못한다.

‘내가 알고 있는 분들의 영역과 비교해도, 일치하는 게 없다.’

특히나 저 음침하고 어두운 음마력으로 이루어진 영역을 다루는 존재는 그가 알기로는 대륙에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때, 가델의 귀에 중년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실례하겠네.”

“시엘 대부인?”

어째서 여기에? 가델의 표정에 혼란이 깃들었다.

‘일이 터진 만큼 이곳에 와도 이상할 게 없긴 한데, 이건 너무 빠른데?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나다니?’

뭐가 됐든 상대는 라데우스의 2인자였다.

부서의 모든 마법사들이 시엘을 향해 예의를 표했다.

“대부인을 뵙습니다.”

“대부인을 뵙습니다!”

“그래.”

시엘은 담담하게 그들의 인사를 받았다. 그리고 곧바로 가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가델 부장.”

“예, 대부인.”

“이제 어떻게 대응할 생각인가?”

“……?”

가델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뭘 어떻게 대응하긴? 정석적으로 대응해야지.

“베라티스 내부에서 허가되지 않은 6레벨 이상의 마법 발현은 중죄입니다. 특1급 비상 경계령을 내리고 전투 마법사단을 파견. 해당 원흉을 붙잡고 처리부서로 넘겨야 하겠지요.”

아무리 항마 설계를 통해 건물 자체의 마법 방어력을 높였다 해도, 6레벨 정도의 광역 마법이면 건물 하나를 박살 내기엔 충분한 위력이다.

하물며 지금 발현된 마력 수준은 7레벨도 아닌 8레벨.

자칫 잘못하면 주도 방위에 치명타를 입을 수 있었다.

“음, 그렇군.”

시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렇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마법사단을 파견하는 건 잠시 지연해주지 않겠나?”

“그건, 무슨 뜻으로 말씀하시는 겁니까?”

가델이 시엘에 대한 경계를 끌어올렸다.

아무리 대부인에 라데우스의 2인자라지만, 가델이 속한 내부관리국은 외부지원국과 함께 가주 직속에 해당하는 곳.

시엘이 가주 대행을 수행하고 있지 않는 이상, 설사 2인자라 하더라도 부당한 명령을 들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시엘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을 내뱉었다.

“지금 벌어지는 상황은 후계 전쟁의 일환이기 때문이라네.”

“……!”

라데우스의 후계 전쟁은 전시를 제외한 모든 상황에 우선한다.

아직 공식적인 룰이 발표되진 않았지만, 전쟁 자체를 공표한 상황에서 물밑에서 다툼이 일어나도 이상할 건 없었다.

당장 오전만 해도 네르하 라데우스와 레티안 라데우스가 혈전을 벌이지 않았던가?

“저 정도의 마력이라면 폭주했을 경우 인근 전체가 날아갈 수 있습니다. 저희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물론 그래야지.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저 안에서 일어날 싸움에 대한 개입을 자제해 달라는 말이지, 마력 폭주를 막지 말라는 건 아닐세.”

그 정도는 뭐…….

잠시 생각에 잠기던 가델이 시엘에게 물었다.

“저 안에 있는 건, 루드빅 공자와, 네르하 공자입니까?”

“아마도 그럴 것일세.”

“으음!”

그렇다면 굳이 시엘의 뜻을 거슬러 가면서 저기에 끼어들 필요는 없다.

“전투 마법사단을 파견하여 인근 지역을 봉쇄하고 주민들에 대한 대피령을 내리겠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네.”

시엘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가델이 바쁘게 움직이자, 가만히 있던 시엘이 혼잣말을 읊조렸다.

“……이게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시엘은 알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루드빅이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사법(邪法)에 몰두하고 있었다는 걸.

그것이 아슬아슬하게 허용될 수 있는 수준이기에 허락하고 있었지만, 원래라면 육체를 이종족으로 개조하는 그런 행위는 라데우스라는 이름값을 먹칠하는 추잡한 짓거리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시엘은 말리지 않았다.

그녀는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긍정하는 자였기에.

그렇기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바스텔에게 향해 있는 와중에도 루드빅에게 시선을 줄 수 있었지만.

만약 실패한다면, 그녀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루드빅을 버릴 것이다.

‘그러니, 꼭 성공하려무나.’

시엘은 진심으로 루드빅의 건승을 빌었다.

* * *

루드빅 라데우스.

사실 그는 가주 자리에 대한 열망이 그다지 없는 인간이었다.

첫째인 바스텔이 워낙 우수했던 탓에, 그리고 그 밑의 마하가 열정적으로 경쟁하고 있던 탓에, 셋째로 태어난 루드빅은 자연히 그들과 경쟁한다기보단 속된 말로 팝콘을 뜯으며 구경하는 쪽에 가까웠다.

되려 시엘 소생의 막내인 아르바가 야망을 불태우는 게 이상할 정도로, 바스텔의 독주와 마하의 추격은 이미 그 자체로 후계 경쟁의 구도를 완성했다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뭐, 바스텔 형님이라면 나중에 장로 자리라도 하나 주겠지.’

피로 피를 씻는 라데우스 후계 경쟁의 역사에서, 바스텔이란 존재는 참으로 불가해한 존재였다.

자기를 죽일 듯이 견제해 오는 마하에게도 별다른 적의를 보이지 않고 노인네처럼 웃으며 받아들인다.

압도적인 재능을 지녔지만, 그는 이상할 정도로 형제들에게 관대했다.

바스텔의 시대가 온다면, 직계 대부분이 몰살당하는 게 당연했던 라데우스의 역사에, 새로운 빛의 역사가 나타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바멜이 태어나고, 레티안 세티안 남매가 태어나고, 네르하가 태어나고, 네이하가 태어났다.

형제자매가 늘어날수록 다른 생각을 품는 이들도 많아졌지만, 그럼에도 바스텔은 그 어떤 외압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더더욱 성장해나갔다.

루드빅은, 그런 바스텔을 동경했다.

바스텔이 만드는 새 시대를 보고 싶었다.

루드빅이 음지에 손을 뻗으려는 생각이 든 것도 이즈음이었다.

이미 양지의 힘은 바스텔이 거의 손에 넣은 상황.

다만 변수가 될법한 음지의 힘은 별다른 절대자가 없는 무주공산이었다.

사실 라데우스의 힘이 절대적인 이곳 베리타스에서 음지라고 해봐야 좀도둑과 잡범들의 무리에 지나지 않았다.

조금만 세력을 키워도 곧바로 내부관리국에서 해충 잡듯이 박멸에 들어갔으니까.

하지만 라데우스의 직계가 직접 음지에 손을 뻗자, 원래라면 강경했을 내부관리국도 크게 제재를 하지 못했다.

루드빅은 음지의 힘을 키워 바스텔을 뒷받침하고자 했다.

시엘의 도움도 있어 그건 크게 어렵지 않았고, 모든 일은 순조롭게 진행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어느 날, 바스텔이 폐관 수련을 선언했다.

그 시기는 케프렌에 사절로 갔다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때.

말이 폐관 수련이지, 그야말로 자신이 쌓아온 모든 걸 내팽개치고 그냥 은둔해버린 것이다.

지금에 와서 하는 소리지만, 당시의 루드빅은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조금 정신이 나가 있었다.

대부인인 시엘 또한 그때만큼 당황했던 적이 없었고, 바스텔을 라이벌처럼 여기던 마하 역시 미친 듯이 화를 내었다.

하지만 바스텔이 선언을 깨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몇 년이 지났다.

아주 가끔 바스텔을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쓴웃음을 내지을 뿐 다른 형제들에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바스텔이 칩거하는 기간이 길어지자, 다른 형제자매들이 딴마음을 품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자격도 없을 바멜과 다른 떨거지들까지 가주가 되겠답시고 날뛰는 참극이 벌어졌다.

루드빅은 그 사실이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걸 겉으로 내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자신 역시 야심을 드러내는 척하며, 라데우스의 가주 자리에 도전하고자 하는 모습을 내보였다.

마하가 날뛰고 아르바가 올라오는 와중에서도, 루드빅은 틈틈이 음지의 세력을 성장시키며 바스텔이 돌아오는 날을 기다렸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도중, 루드빅의 뇌리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지금의 나는, 바스텔을 진정으로 넘어설 수 없는가?

지금도 바스텔이 라데우스의 가주 자리에 어울리는 유일한 존재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세력이 쌓이고 자신의 실력이 7레벨을 돌파하자, 지금까지 가슴 깊숙하게 눌러놓았던 라데우스 혈족으로서의 ‘야심’이 고개를 들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그러나 그 호기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고, 어느새 자신은 바스텔을 꺾을 수 있을지에 대한 가능성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폐관 전에도 7레벨에 든 초유의 천재가 바스텔이다.’

마하나 자신이 5, 6레벨에서 간신히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바스텔은 하늘 너머를 뚫고 있었다.

‘은둔하고 있어도 마법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겠지. 어쩌면… 30대의 나이에 8레벨에 들어서는 초유의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아.’

바스텔의 재능을 누구보다 높이 평가하는 루드빅인 만큼, 절대로 그 가능성을 허황하다 치부하지 않았다.

만약 바스텔이 8레벨에 이르러 나온다면, 그에 맞서는 자신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당연히, 나 역시 8레벨에 이르러야겠지.’

하지만 자신은 바스텔이 아니다. 아무리 라데우스 직계 혈족이라지만, 8레벨의 경지는 평생을 투자해도 될까 말까한 지고의 경지.

30년 동안 7개의 단계를 뚫을 수 있다 해도, 다른 30년 동안 그 앞의 하나를 뚫지 못하는 마법사는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

그럼 포기해야 하나?

‘방법은 있다. 비록 편법이지만.’

루드빅이 주목한 건, 바로 마계 귀족들의 고유 권능인 ‘마계 영역’.

정확히는 그 마계 영역이 구현되는 메커니즘을 응용하는 것이었다.

마족들은 분명 차원 압력에 대한 패널티로 8레벨에 해당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종족적인 특성을 이용해 ‘영역’을 아주 간단하게 사용한다.

8레벨의 영역과 마계 영역은 근본적으로 다르나, 심상이 어느 정도 투영된다는 것은 동일.

물론 루드빅은 아르바처럼 자신의 육체를 마족으로 개조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

그가 주목한 건 그 심상을 구현할 수 있는 종족적인 특성을 가진 또 다른 지성체.

라데우스의 법률에 아슬아슬하게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마족들과 비슷한 심상과 영역을 재현할 수 있는 비슷한 메커니즘을 가진 종족.

즉, 천여 년 전 음지의 귀족이라 불린 뱀파이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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