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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229화 (229/237)

229화

<라데우스 후계 전쟁 (8)>

네르하는 갑자기 튀어나온 청년을 바라보았다.

짧은 단발에 약간의 세월이 느껴지는 인상.

분명 의심 없는 바스텔 로저 라데우스였다.

“형님께서 이곳엔 어떻게?”

바스텔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너희가 싸우기 전부터 지켜보고 있었어.”

네르하의 눈가가 살짝 찌푸려졌다. 이 일련의 상황을 자신도 모르게 지켜보고 있었다는 건가?

“미네르바, 라고 했던가? 나름 나쁘지 않은 수준이라지만 그래도 이 도시 내에서 장로들의 정보망을 넘어설 순 없다.”

“쩝, 그건 어쩔 수 없겠군요.”

“하하, 네가 가주가 된다면 입장은 뒤바뀌겠지.”

네르하가 가주가 된다면 가주 직속의 정보집단인 미네르바는 외부지원국 못지않은 거대한 엘리트 집단이 될 거다.

“제가 루드빅 형님을 죽일 거라 생각하셨군요.”

“실제로 내가 내버려 뒀다면 실행했겠지?”

“…….”

정곡이 찔린 네르하는 침묵했다.

존속살해는 라데우스가 절대적으로 금하고 있는 대죄.

하지만 먼저 시비를 건 것은 루드빅이었고, 영역과 수하들까지 동원해 치려고 한 이상 네르하는 정당방위를 주장할 수 있었다.

‘뭐, 굳이 죽일 필요는 없겠지.’

뱀파이어의 힘을 끌어온 게 들통난 이상 루드빅은 더 이상 후계 경쟁에서 탈락한 거나 다름없다.

개인의 힘이 아무리 강해도, 이런 걸 보고 힘을 빌려줄 장로는 없을 테니까.

“그래서, 감상은 어떻습니까?”

“으음…….”

바스텔은 미묘하게 말끝을 흐렸다.

“글쎄? 조금 애매한데.”

“하긴, 제가 잘했다기보단 루드빅 형님의 전략이 좀 그랬으니.”

“아니,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니야.”

바스텔은 고개를 내저었다.

“루드빅은 마법사답게 준비를 잘했다. 자신의 역량 이상의 힘을 손에 넣었고, 자신의 공방에 적이 오도록 유도했지. 사실 거기까지 온 시점에서 마법사는 절반 정도는 승리를 거머쥔 것이나 다름없다.”

결국 루드빅은 대전략을 잘 짰지만, 네르하가 워낙 예상치 못한 대응을 해서 허무하게 패배한 셈이었다.

갑작스럽게 손에 넣은 힘에, 능숙한 숙련도까지 바라는 건 네르하의 과욕이었다.

“루드빅의 멘탈이 흔들리지 않았다면 조금 더 괜찮은 승부를 봤을지도 모르지.”

“형님은, 루드빅 형님이 간 길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네르하는 바스텔이라면 자신의 말에 동의해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도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겠지.”

“…….”

“아니, 대부분의 마법사들에게 루드빅의 방식에 대해 묻는다면, 솔직히 90% 이상이 ‘옳다’라고 대답할 거다.”

그런 면에서 사실 네르하는 마음가짐에서 순수한 마법사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네르하. 사실 너나 내가 목표로 하는 건, 사실 마법의 극의와는 좀 다른 방향이란다.”

네르하는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사실 네르하가 추구하는 건 무(武)의 극의.

마법이란 어디까지나 그 극의를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마법의 극의’라는 것은 사실 네르하로선 정확히 어떤 방향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세상 모든 것은 결국 한 줄기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그걸 고려하면 루드빅 형님의 행위는 되려 길게 돌아가는 짓이나 다름없다고 봅니다만.”

“마지막 줄기라…….”

바스텔이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역시 우리 동생은 그릇이 참 크구나.”

“…….”

네르하는 그 얼굴을 보고 차마 마주 웃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저 웃음은 루드빅이 ‘오만하다’고 비난한 것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내 생각에, 그 마지막 줄기라는 건 인류 역사상 단 한 명도 이르지 못한 최후의 단계겠지?”

“아마도, 그렇겠죠.”

“설사 인간으로 신의 자리에 오른다 해도, 나는 네가 말하는 그 줄기의 마지막에는 이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

“너무나 머나먼 저편의 일이지.”

즉, 바스텔은 루드빅의 이번 행동이 돌아가는 건지, 지름길을 파고든 건지 인간의 시선으론 감히 확신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네르하는 그것을 보고는 생각했다.

‘아무리 비슷해도, 마법사와 무인은 본질적으로 지향점이 다르구나.’

아니, 무인과 마법사가 아니라, 자신과 타인의 시선인가?

네르하는 혼란을 느꼈다.

오래전에 해결했다고 생각한 자기모순이, 다시금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심마(心魔)로 발전했을 자기모순은, 네르하의 강철 같은 이성에 의해 빠르게 제압당했다.

‘내가 옳다.’

오만하다 비난해도 상관없었다.

네르하는 이미 한 번 그 끝을 잠깐이나마 느끼고, 손에 닿았다.

선지자로서, 네르하는 자신 있게 루드빅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었다.

바스텔이 루드빅의 신형을 어깨에 메고는 말했다.

“루드빅은 내가 데려가겠다.”

“몸을 원래대로 돌려놓을 생각입니까?”

“루드빅의 마법을 존중한다면 그냥 두는 게 낫겠지만, 이대로 두면 수명이 극단적으로 짧아질 거다.”

보통 진조라 하면 수백 년의 세월을 사는 드래곤과 맞먹는 수명의 소유자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제대로 된 진조의 이야기일 뿐, 진조의 능력만을 발현한 루드빅에겐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였다.

이대로 둔다면 몇 년도 지나지 않아 육체가 붕괴해 버릴 터.

“육체를 원래대로 돌리는 데만 몇 년은 족히 쏟아부어야 할 거다. 그때쯤이면 가문의 후계자는 확정되고도 남겠지.”

차라리 수하들이 건재했다면 괜찮았겠지만, 그들 중 상당수가 세이라에게 허무하게 잡아먹혔다.

“한 가지 충고를 해 주마.”

“겸허히 듣겠습니다.”

“일단, 솔직히 장로들이 이렇게까지 내게 모일 줄은 나도 몰랐다.”

“…….”

바스텔을 바라보는 네르하의 눈이 상당히 무례했다.

바스텔은 헛기침을 하며 그 시선에서 살짝 고개를 돌렸다.

“남은 직계들을 최대한 끌어모아라. 그게 이번 계승 전쟁에서 네가 승리할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떨어뜨리라는 게 아닌 끌어모으라는 것.

즉, 그 리스크 이상의 메리트가 존재한다는 소리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어쨌든 그 충고를 무시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이 상태로 바스텔과 그 세력에 싸움을 걸어봤자 죽도 밥도 되지 않을 테니까.

‘다음은, 바멜인가?’

* * *

루드빅 라데우스가 탈락한 사실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라데우스 후계들에게 알려졌다.

“젠장, 설마하니 루드빅 형님을 먼저 노렸을 줄이야.”

바멜 라데우스는 이를 악물며 분통을 터트렸다.

바로 근처에 있던 바멜의 생모, 유리아 라데우스가 엄지손톱을 깨물었다.

“바멜, 이대로라면 승산이 없습니다.”

“하필이면 그 둘이 전쟁을 포기할 줄은…….”

바로 엊그저께, 레티안이 직접 바멜에게 찾아와 후계 전쟁 사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네르하에게 붙는다고도 전했다.

“그 낙오자 놈에게 붙어 버리다니. 정신이 제대로 나간 게 분명합니다!”

“…….”

유리아는 바멜의 볼멘소리에 어두운 표정으로 침묵했다.

다만, 사실 그녀의 내심은 두 사람의 이탈에 그다지 반발하지 않았다.

어미의 의리로 끝까지 바멜을 지탱해주고는 있었지만, 솔직히 유리아는 바멜의 승산을 그다지 높게 보고 있지 않았다.

바스텔, 마하, 루드빅, 아르바.

하나하나가 막강하기 그지없는 라데우스의 후계들.

자신이 낳은 자녀들이 모두 힘을 합쳐야 저들 중 하나를 상대하는 데 그칠 뿐.

‘차라리 잘 됐어. 시엘 대부인과 경쟁하는 건 애당초 불가능했으니까. 차라리 네르하에게 힘을 몰아줘서 차세대 장로 자리를 확정적으로 차지할 수 있다면야…….’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시엘 대부인은 타협이나 협상같은 건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거다.

저 네 명 중 한 명이 왕위를 잇는 순간, 죽거나 추방되거나 둘 중 하나의 결말만이 있을 뿐.

‘바멜을 중심으로 로젤리아 년의 세력을 흡수한다면 시엘과 타협의 여지가 있었겠지만 그건 이미 날아갔으니…….’

워낙 생각이 깊었던 탓일까.

유리아는 아들인 바멜이 자신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눈치채지 못했다.

‘어머님은, 이미 포기하셨구나.’

바멜은 이를 악물었다.

솔직히 상황이 기울었다는 걸, 자신도 인정하고 싶진 않았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자신의 뒤를 받쳐주던 방계 파벌은 물론이고, 연합해야 할 두 자매마저 넘어가 버렸다.

‘이대로라면 안 돼! 무언가, 무언가 대책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대책이 생각나지 않는다.

사방이 꽉 막힌 듯 답답함이 느껴졌다.

그때였다.

바깥에서 시녀가 두려움에 젖은 얼굴로 조심스레 방문을 두드렸다.

“마, 마하 공녀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뭐? 마하라고?!”

저 남쪽에 있을 마하가 어떻게 그사이에 여기까지 왔는가?

그 의문을 풀기도 전에 마하가 방문을 열고 멋대로 안으로 들어왔다.

“마하 공녀! 이 무슨 무례인가요!”

“아, 이거 미안하군요, 2부인. 바멜에게 용무가 있어 조금 조급하게 굴었답니다.”

마하는 전혀 미안하지 않은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바멜은 느닷없는 마하의 등장에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사가 다망하신 누님께서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어쩌긴? 바스텔과 네르하가 미쳐 날뛰는 상황에서 비어있는 전력을 확보하러 온 거지.”

“누님이, 저를 말입니까?”

어느새 바멜의 입가엔 비웃음이 걸려 있었다.

마하의 고고함과 오만함은 그 누구보다 바멜이 잘 알았다. 그녀는 자신과 그 이하의 형제자매들에겐 경쟁자 취급조차 해주지 않는 오만한 여인이었다.

그런 그녀가 자신에게 손을 벌리기 위해 찾아왔다는 것이, 바멜에겐 헛웃음이 나올만한 일이었다.

“상황이 궁한데 안 될 게 뭐가 있어?”

“레티안과 세티안이 네르하에게 갔음에도 굴하지 않은 저입니다. 제가 받아들이리라 보십니까?”

“……뭐야, 두 년이 벌써 네르하에게 붙었어?”

마하의 얼굴이 굳어졌다.

루드빅의 이탈이야 워낙 넓게 소문이 퍼졌다고는 해도, 레티안과 세티안의 이반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바멜을 먼저 설득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두 년 역시 한꺼번에 손에 넣을 계획이었는데.

마하는 남쪽에만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주도의 최신정보가 갱신되는 것이 느려졌다고 속으로 투덜거렸다.

“하, 어쩔 수 없지. 너라도 얻어야겠군.”

“전 이미 답을 드렸습니다만?”

“풋, 허세 부리지 마, 바멜. 이대로 있으면 코끼리들에게 밟혀 지나가는 개미꼴이 되는 건 확정적일 텐데?”

“아무리 누님이라도, 절 모욕하신다면 참지 않겠습니다.”

바멜은 천천히 전의를 일으켰다.

물론 아직 6레벨인 자신의 실력으로 7레벨에 진입한 마하를 이기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하지만 바멜은 아무것도 없더라도 남은 자존심마저 잃고 싶진 않았다.

“바, 바멜!”

유리아가 불안한 표정으로 그만하라는 시선을 보냈다.

“호오, 진심으로 해보자는 건가?”

“못할 것도 없지요.”

“흐음, 이대로 밟아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마하는 바멜의 얼굴에서 마지막 오기와 자존심을 느꼈다. 이걸 즈려밟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일 테지만, 정말로 그랬다간 바멜을 손에 넣는 건 그야말로 물 건너가는 거나 다름없었다.

지금 아쉬운 쪽은 바멜이 아니라 마하였다.

“쯧, 싸우는 건 그만두지. 괜히 감정 상하게 하고 싶진 않아.”

“돌아가 주십시오.”

“아, 그래. 하지만 제안 정도는 들어보는 게 어때? 그 정도는 쉽잖아?”

“그래요, 바멜. 마하 공녀가 들고 온 제안이 무엇인지, 들어서 손해볼 건 없습니다.”

유리아가 은근히 바멜을 재촉했다. 친모의 말까지 무시할 수 없었던 바멜이 이를 갈며 물었다.

“……말씀하시죠.”

“간단해. 수석장로 직위를 주지. 네르하가 제거되면 나와 힘을 합쳐 바스텔을 상대하면 되는 일이야. 어때, 쉽지?”

“수석 장로? 아니, 그 전에 네르하가 제거된다고 하셨습니까?”

“그래. 네르하는 제거될 거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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