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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230화 (230/237)

230화

<라데우스 후계 전쟁 (9)>

“어떻게 그걸 확신합니까? 아니, 그 전에 네르하를 제거한다는 말은 암살을 꾀한다는 말이 아닙니까?”

“그렇지.”

“누님은 라데우스 가문으로서의 긍지도 없습니까?!”

“긍지? 웃기지 마.”

마하가 냉소를 보였다.

“라데우스 가문이 정정당당하게 경쟁해서 이 자리까지 온 것으로 보이나? 가문의 역사는 피와 살육의 역사야.”

“역사를 피와 살육으로 썼다 해도 지금의 라데우스는 반석 위에 올라와 있습니다. 더 이상 그런 짓은 할 필요도, 해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바멜, 바멜, 바멜.”

마하가 뭔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바멜의 이마를 검지로 꾹 눌렀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거냐, 아니면 위선자 행세를 하는 거냐?”

“뭐라고요? 정녕 해보자는…….”

“아무것도 없었던 네르하에게 수작질을 건 장본인이, 바로 네 녀석이라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았니?”

“……!”

순간, 바멜의 눈동자에 경악이 담겼다.

“5레벨에 해당하는 봉인진. 원래라면 네르하는 그 안에서 굶어 죽어야 정상이었어. 그걸 노린 장본인이 네 녀석이라는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인데, 지금 내 앞에서 감히 정의로운 척을 하고 있어?”

한순간이었다.

바멜의 표정이 싸늘하게 가라앉은 것은.

표정과 같이, 바멜의 입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떻게 아셨죠?”

마하가 실소하며 답했다.

“어떻게 알긴? 네르하가 바스텔을 따라 한답시고 폐관 수련이다 뭐다 하며 틀어박혔을 때, 그 입구를 지키던 놈이 고작 수습 집사인 것에서부터 눈치챘지. 아무리 버러지라도 라데우스 직계가 수련하는 건데 보안이 그렇게 허술할 리가 없잖니?”

당시 수습 집사 사미르를 배치한 건 저택의 집사장인 게드였지만, 그 게드를 매수한 게 바로 다름 아닌 바멜이었다.

“위선의 가면은 네 평판에 어느 정도 좋은 영향을 주겠지만, 때와 장소 정도는 가렸으면 좋겠구나.”

“하, 나름 주의를 기울였다고 생각했는데.”

바멜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나름 신경 써서 만든 정의의 가면이 벗겨지고, 바멜이란 인간의 본질이 드러났다.

미소를 걷어낸 바멜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네르하를 어떻게 암살할 생각인데? 정말 말도 안 되지만, 네르하의 현재 실력은 8레벨급이라고 보는 게 타당해.”

“이제야 대화를 할 생각이 들었구나.”

마하가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북방에서 서리일족의 전 족장인 엘로이아에게 기습을 당해 마지막 결전에는 참가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클로이아와 함께 마왕을 잡았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루드빅 형님도 네르하에게 당했고, 아르바 형님도 네르하에게 당했지. 솔직히 마하 누님도 일대일로는 놈을 이길 수 없을 거야.”

“그야 그렇겠지. 과거의 네르하를 겹쳐 보다 머리가 날아가는 우는 범하지 않아. 지금 그 녀석은 우리가 예전에 알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녀석이야.”

시간여행이라도 하고 왔나, 라며 마하가 툴툴거렸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집단 대 집단의 싸움이지.”

딱!

마하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바멜은 주변을 감싸는 무수한 인기척이 갑자기 나타났다는 걸 느꼈다.

“어, 어떻게?”

바멜은 물론 유리아까지 경악했다.

이곳은 바멜의 본거지나 마찬가지인 곳이다.

당연히 고위계 마법 결계는 물론 물리적인 방어시설로 점철되어 있었고, 그 방어력은 세계 최강급의 암살집단조차 막아낼 수 있는 것이었다.

“차라리 한두 명이라면 이해를 하겠는데…….”

이렇게 수십 명이나 방비를 뚫고 들어온다? 정말 장로라고 해도 암살이 가능하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게다가 이들의 특징은 이것만이 아니지.”

마하가 다시 한번 손가락을 튕겼다.

“허억!”

바멜이 기함을 내질렀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양 주먹을 쥐락펴락했다.

‘감각이, 봉인됐어?’

봉인된 감각은 다른 무엇도 아닌 마법사에겐 목숨보다도 중요한 ‘마나’를 느끼는 감각.

그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

“위저드 킬러!”

“그래.”

마하가 씨익 미소 지었다.

“이 녀석들이 상대라면 네르하는 그냥 일반인이나 다름없지.”

“정말 막 나가시는군요, 누님.”

바멜은 헛웃음을 내지었다.

위저드 킬러. 오로지 타인의 마력장을 무력화시키는 데 특화된 마법 살해자들.

당연한 말이지만 라데우스에서 이들을 육성하는 건 1급 금기에 속했고, 만약 발각당한다면 마하의 후계 자격이 박탈당할 수도 있는 큰 죄였다.

바멜은 생각했다.

위저드 킬러들이 내뿜는 특유의 반(反)마력의 파장은 감지계 고유계통을 각성한 마법사라면 멀리서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종류였다.

그럼에도 발광하며 들이닥쳐야 할 내부관리국이 조용하다는 것은?

“내부관리국에 연줄이 있습니까?”

“어느 정도는. 하지만 주도 내에서 대놓고 쓸 수는 없어. 아무리 그래도 뒷감당이 안 되니까.”

나름 과시용으로 데려온 거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주도 내에서 암살을 꾀할 정도로 미치진 않았다.

“그렇다면?”

“일은 바깥에서 벌어야겠지. 곧 후계 전쟁에 대한 룰이 발표될 거다. 그러면 자의든 타의든 네르하는 바깥을 돌아다닐 수밖에 없어.”

“당연한 말이지만, 혼자 돌아다니진 않을 겁니다. 호위 부대 정도는 당연히 데리고 다닐 거고요.”

위저드 킬러라고는 하지만 집단전에서도 그 힘이 발휘된다면 라데우스가 지금의 성세를 누리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후후후, 다 생각이 있다. 호위 부대와 네르하를 떨어뜨리는 방법이 있지.”

“그런 게 있습니까?”

단순히 빈틈을 치는 게 아닌 확실한 수단이 있다?

짝짝!

마하가 가볍게 손뼉을 치며 바깥을 향해 외쳤다.

“들어와요, 셀로미엔.”

“네, 공녀.”

바깥에서 수행원들과 함께 대기 중이던 셀로미엔이 문을 열고 나타났다.

“……경비대장?”

바멜은 눈을 부릅떴다. 그 역시 차세대 삼마자라는 셀로미엔 엘마이넨을 모를 리가 없었다.

“네르하는 여기 셀로미엔의 초대에 응해 엘븐 포레스트를 방문하게 될 거야.”

“누님, 설마?”

마하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맺혔다.

“그래. 엘븐 포레스트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지. 당연히 수하들과 멀어질 수밖에 없고 숲의 특성상 놈을 고립시키기에도 안성맞춤이지 않겠니?”

엘븐 포레스트라고는 하나 엘프들의 거주지는 그중 극히 일부일 뿐.

엘븐 포레스트는 원래 남방 대수림에 버금가는 몬스터들의 자생지이자 여러 드래곤들의 레어가 위치한 천연의 험지다.

“네르하가 설사 8레벨의 대마법사라 해도, 이번만큼은 죽음을 피하지 못할 거야.”

마하는 깔깔거리며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 * *

며칠이 지나고.

라데우스 본가에서 드디어 후계 전쟁에 대한 본격적인 룰을 발표했다.

“형제들을 끌어모으란 게 이런 뜻이었군.”

주도 베리타스를 제외한 라데우스의 전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 쟁탈전.

정확히는 라데우스의 영역에 존재하는 성, 군사 요새, 자유시 등 주요 거점 총 420개를 지정하여 싸우는 일종의 게임이었다.

“문제는 후계 한 명당 최대로 동원할 수 있는 마법사의 숫자는 100명. 지지하는 장로 한 명당 역시 100명. 잘 해봐야 몇천이라…….”

즉, 총인원 수천 언저리 내에서 싸우는 나름 소규모의 항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전원이 마법사라는 점에서 전장의 스케일마저 절대 소규모일 리는 없겠지만.

“600명인가?”

현재 직계 중 네이하, 레티안, 세티안이 붙어 있었고, 장로는 네슬렉과 여전히 자신을 믿어 주고 있는 지렌까지 포함해서 6명.

“바스텔 형님은 본인을 포함한 장로 9명을 합쳐 1000명에, 마하는 장로 두 명에 더해 바멜을 포섭했으니 총 400명인가?”

마하는 결국 끝까지 야심을 놓지 않았다. 정보로는 시엘 대부인이 끝까지 마하를 설득했다고는 하는데, 마하는 그것을 거부했다고 한다.

그것도 장로 한 명이 직전에 바스텔 쪽으로 이반했음에도 불구하고!

‘하긴 그 야심이 있으니 그나마 내게 승산이 있는 거겠지.’

자격이 있는 후계들은 본가에서 지정해주는 구역을 할당받는다.

그리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 지역에 존재하는 마나 크리스탈에 자신의 마나를 불어넣으면 탈취로 인정된다.

네르하는 그 룰을 보며 침음을 삼켰다.

‘한 번 탈취당하면 그걸로 끝. 두 번 다시 재탈환이 불가능하다니. 생각할 거리가 많아지는군.’

게다가 병력은 적은데 판이 너무나 넓다.

단순히 도시나 지역 하나를 잡고 벌이는 싸움이 아닌, 거의 제국의 절반을 누벼야 하는 싸움이다.

‘단순히 무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야 지휘 능력과 정치력을 보겠다는 의도가 강하군.’

그렇다고 무력이 필요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전투 한 번에 결판이 날 수도 있겠어.’

까놓고 압도적인 초인이 백 단위로 수하들을 학살한다면 그 시점에서 게임이 끝날 수가 있다.

그리고 바스텔이나 네르하는 그게 가능한 무력을 지니고 있었다.

네르하는 세력 분포도가 나뉜 지도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규모로 따지면 나는 오(吳)나라로군.”

“오?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아, 그런 게 있어.”

네르하는 자신이 헛소리를 했다는 걸 자각하곤 손을 내저었다.

네르하의 진영에 합류한 지렌이 입을 열었다.

“시작은 세 달 뒤. 시간은 나름 넉넉하게 잡았군. 병력을 추릴 기간을 준 건가? 해야 할 일이 많겠어.”

“네. 무엇보다 정예들을 추리는 게 우선이에요, 네르하.”

로젤리아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슬렉 역시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그 말에 동의했다.

“전투지역에서 숫자는 얼추 비슷하게 맞출 수 있더라도 질적인 면에서 밀리면 모든 게 허사지. 카이젤 가주가 짜증 나는 게임을 들고 왔군.”

문제는 이런 병력의 질적인 면에선 네르하는 삼 세력 중 최약체라는 점이었다.

“바스텔 쪽은 전원을 6레벨대로 추려도 이상할 게 없어. 장로만 9명이니까.”

라데우스는 가주가 신과 같이 군림하지만, 실질적인 무력 자체는 장로들이 틀어쥐고 있었다.

지렌만 해도 휘하에 네다섯에 달하는 집단을 지휘하고 있지 않은가?

바스텔이나 마하 쪽에 붙은 장로들 대다수가 지렌에 비해 그다지 꿇리지 않거나 더한 세력을 지닌 자들도 있었다.

반대로 이쪽은 600명을 동원할 수 있지만, 나름 정예를 가지고 있는 건 오직 지렌 한 명뿐.

네슬렉이 앓는 소리를 냈다.

“나름 쓸 만한 놈들을 모아보겠다고 했는데, 여전히 다른 장로들과 비교하면 손색이 있군. 이 부분은 좀 큰일이야.”

네슬렉이 비밀리에 키우고 있던 마법사단이 존재하긴 했다.

하지만 그들을 함부로 꺼냈다간 본가에서 무슨 견제가 들어올지도 모르고, 또한 다른 장로 직속 전투 마법사단과 비교해도 크게 나을 바가 없었다.

“병력 문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째서지? 가장 중요한 문제인데 뭔가 대책이라도 있나?”

지렌의 물음에 네르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곧 훌륭한 세력이 우리 측에 합류할 테니까요.”

“훌륭한 세력……? 아아!”

다른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 나름 관계자(?)인 네슬렉이 그 말뜻을 알아차리곤 반색했다.

“사미르.”

“네, 주군!”

“외출 준비를 해줘. 후계 경쟁이 시작될 때까지 자리를 비울 거야.”

“자, 잠깐?! 이 중요한 시기에 대체 어딜 가려는 거냐!”

모두가 대경해서 네르하를 쳐다보았다.

“목적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수련이고.”

네르하의 오른손에서 검지가 펼쳐졌다.

“또 하나는… 선거 유세, 라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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