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233화 (233/237)

233화

<라데우스 후계 전쟁 (12)>

―후후후, 그 마하라는 여인은 참으로 업이 깊더구나. 대공이란 늙은 인간은 내가 속삭인 말이 함정일지 아닐지를 고민하지도 않더군.

‘겉으로 그렇게 표현했다 해도, 뒤로는 어느 정도 조사를 해봤을 거다.’

―하지만 이렇게 나왔다는 건 당연히 이러는 쪽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 판단해서가 아닌가?

‘뭐, 그건 그렇겠지.’

뭐가 됐든 르브론 대공이 이쪽을 지원해준다면 대환영이다.

마하는 아마 자기 발밑에서부터 진흙 속에 잠식되고 있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겠지.

‘그래서, 최근 마족들의 동향은 어떻지?’

―흠, 한마디로 말하자면 개판이라고 할 수 있지.

‘개판이라고?’

마족들은 케프렌의 가주를 죽이고, 마하의 병대에 큰 타격을 입혔다.

전공을 따지면 당연히 분위기가 좋을 수밖에 없을 텐데도, 아스타로스는 개판이라고 표현한 것이었다.

―현재 마족은 두 파벌로 찢긴 상태다. 마천회 역시 마찬가지지.

‘……계속 말해봐.’

―본래 마천회의 원래 목적은 수마왕 레비아탄을 지원하여 자신들의 활동 영역을 늘리고자 했느니라.

케프렌이 가주가 교체될 정도의 큰 타격을 입고, 라데우스 역시 후계 전쟁을 맞이해 외부 활동이 대부분 끊긴 상태다.

마천회의 목적은 아주 훌륭하게 달성된 셈이었다.

‘그래서?’

―문제는 마족 측에 초마인… 정확히는 아렌 루 케프렌이 합류하면서 생겨났다.

드래곤들의 도움을 받아 마왕 예루리의 봉인을 통째로 들고 온 아렌의 존재는, 마족들에겐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는 불가사의한 존재였다.

―아렌 루 케프렌은 마신 네르반의 봉인 해제를 천명하며 마족들에게 협조를 요청했지.

‘아렌의 마지막 행선지가 대수림이라는 건 들었어. 그렇다면 그 협조 요청은 받아들여진 것 아닌가?’

―그래. 레비아탄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스윽!

아스타로스의 그림자가 어느 한 방향을 가리켰다.

―‘서쪽의 마왕’이 반발했다.

‘서쪽의 마왕이라면?’

‘마왕, 베엘. 마천회의 실질적인 지배자다.’

정확히는 마천회에 속한 마계 백작들 중 일부가 베엘의 휘하라는 점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마천회 역시 두 갈래로 쪼개졌지. 지금 두 세력 간에는 거의 전면전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하다.

‘개판이군.’

―더 개판인 게 뭔지 아는가 주인님?

‘여기서 더 개판이 될 건더기가 있어?’

―마왕 예루리가 네르반의 봉인을 풀 것을 거부했다는 점이다.

‘…….’

진짜 개판이군.

그나저나, 예루리는 네르반에게 충성을 맹세한 몸이 아니었던가?

그 쬐끄만 닭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너도 네르반 님의 목을 노리냐고 노발대발했던 것 같았는데?

‘아니지. 봉인 해제를 거부한 것으로는 충성인지 배신인지를 알 수 없어. 예루리 역시 베엘과 비슷한 의견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천마 아렌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봉인이 막 풀려 불안정한 네르반을 소멸시키는 것. 게다가 주변엔 드래곤들까지 있으니 예루리로서는 그들에게 딴생각이 있을 거라 충분히 생각할 수 있을 거다.

‘만약 그들이 타협을 이룰 가능성은?’

―당장은 없다고 봐도 좋아. 되려 타협보단 전쟁이 날 확률이 더 높다고 봐. 이미 베엘 휘하의 마계 백작 하나가 예루리의 봉인을 빼돌리려다 당했다고 들었다.

‘뭐?’

그 정도면 정말로 마족들 사이에 내전이 일어나도 이상할 게 없다.

힘의 균형은 당연히 아렌 쪽에게 쏠렸다고는 해도 쉽사리 정면 대결을 펼칠 정도로 상대 역시 약하진 않으니까.

―적어도 1~2년 정도는 시간이 있을 거라는 게 이 몸의 견해이니라.

‘그거 다행이군.’

아스타로스가 가져온 소식은 상당히 고무적이었다. 1~2년이면 후계 경쟁은 진작 끝나 있을 것이고, 케프렌 역시 피해를 어느 정도 갈무리하고 다시 일어날 수 있을 시간이다.

‘좋아, 계속해서 수고해줘.’

―후후후, 최근 마천회에서 내 입지가 늘어나고 있으니 정보를 얻는 것 정도는 쉬울 거다.

처음에야 박쥐 취급받았지, 어느 정도 힘을 낼 수 있는 아스타로스의 존재는 마천회에서도 상당히 귀중한 전력이었다.

편이 갈린 이상 양측에서 진형에 합류해달라는 제안이 와도 이상할 게 없었다.

―아, 한가지 주인님에게 제안할 게 있다만.

‘제안? 뭐지?’

―현재 그대와 나는 주종관계가 맺혀 있지. 그리고 그대는 마기를 다룰 줄 알아.

‘그래서?’

―그 말인즉, 그대도 마계 영역을 사용할 수 있다는 소리다.

네르하가 의외라는 듯 눈을 치켜떴다.

워낙 놀라움의 정도가 크다 보니 전음이 아니라 실제로 입 밖으로 말을 내뱉을 뻔했다.

‘마계 영역이라고?’

―후후, 꽤나 흥미가 돋나 보구나.

‘당연하지.’

―정확히 말하면 나 아스타로스의 마계 영역을 대리로 발현할 수 있다는 소리다. 그리고 그 영역 안에선 주인님 당신의 역량에 따라 마계로 돌아간 내 수하들도 얼마든지 소환이 가능하지.

‘괜찮은데?’

당연한 말이지만 빌려오는 힘인 만큼 주력기로써 쓸 수는 없다.

그러나 네르하가 사용할 수 있는 전략이 한 가지 더 늘었다는 것과, 의외의 찌르기로선 상당히 괜찮은 수라는 점이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무엇인가, 주인님?

‘네 마계 영역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건, 이자카르의 마계 영역도 구현이 가능하단 소린가?’

―이놈이!? 아무리 그래도 내 영역에까지 손을 뻗느냐!

당연히 이자카르가 반발하고 나섰지만 네르하는 요지부동이었다.

솔직히, 아스타로스보다는 마왕급에 가까운 이자카르의 마계 영역이 훨씬 강력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네르하의 기대는 이윽고 이어진 아스타로스의 말에 무참히 깨졌다.

―지금으로선 불가능할 것이다.

‘어째서?’

―일단 이자카르의 존재 자체가 이 몸과는 달리 온전한 상태가 아니라는 게 첫째 이유이고…….

‘둘째는?’

―이자카르가 아티펙트의 형태로 주인님에게 종속되어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주인님과 이자카르는 정식적인 주종관계의 형태가 아니다. 조금 비틀려진 계약 관계에 가깝지. 물론 주인님이 절대적인 갑이긴 하지만 말이야.

확실히.

지금은 카스카엘의 장갑으로 누르고 있지만, 네르하는 보물전 내에서 인공정령 페레스가 경고했던 것을 아직 잊지 않고 있었다.

―이자카르의 마계 영역을 사용하고 싶다면, 놈의 심상 세계로 쳐들어가 놈을 굴복시켜, 정식으로 주종관계를 맺어야 한다.

‘흐음.’

―당연한 말이지만 패배한다면 현재의 압도적인 주도권이 역전될 가능성이 매우 커. 더군다나 심상 세계에서의 이자카르는 파편이 아닌 전성기의 힘을 온전히 낼 수 있겠지. 적어도 지금 시도할 일은 아니야.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시도해 볼 일이기도 했다. 언제까지 이놈의 폭탄을 끌어안고 갈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때, 이자카르가 말했다.

―흥, 이 몸의 마계 영역을 사용하고 싶다면 그 격을 증명해라, 애송이.

‘의외로 거부감이 없군?’

―네놈이 그 초마인 놈을 꺾으려면 최소한 내 본체를 이길 정도는 되어야 한다. 내가 보기엔 그놈은 너를 상대로 전혀 전력을 다하지 않았어.

‘…….’

의외로 이자카르는 핵심을 찔렀다.

아스타로스가 입가를 가리며 웃었다.

―위대한 마계의 마룡께서 일개 인간에게 정이 들었는가?

―닥쳐라, 창녀. 애초에 이렇게 유도할 생각으로 말을 꺼낸 것이 아니더냐?

―후후후, 글쎄?

아스타로스는 의뭉스럽게 어깨를 으쓱하더니 네르하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딱 봐도 이카자르의 말에 찔려서 도망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 다음에. 다시 좋은 소식을 들고 오겠어, 주인님.

그 말을 끝으로, 아스타로스의 존재감이 사라졌다.

사라진 그녀의 자리를 향해 이자카르가 툴툴거렸다.

―흥, 여전히 방심할 수 없는 계집이다.

‘그건 동의한다만…….’

솔직히 이자카르도 그다지 신용이 가지 않는 건 마찬가지긴 했다.

* * *

아스타로스가 다녀간 뒤에도 제국 전역을 도는 여행은 계속되었다.

네르하는 이번 계승 전쟁에 연루된 귀족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고, 생각보다 많은 이들의 생각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25명이라, 나쁘지 않아.”

바스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만난 귀족들의 수만 백이 넘어가는데, 1/4 정도면 나쁜 게 아닌 겁니까?”

“반대로 생각해야지. 1/4이나 되잖아?”

“맞아, 바스톤. 이 정도면 나름 대단한 수확이야.”

알페온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마하 공녀라면 몰라도, 바스텔 님이라는 든든한 세력에 걸렸는데, 그걸 이탈하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겠지.”

실제로 바스텔의 영역에 걸린 귀족 중 이쪽으로 넘어오기로 결정한 이는 고작 다섯에 불과했다.

“그나저나, 벌써 한 달이 넘었는데 마하 공녀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군요.”

“그러게? 슬슬 기습을 가해도 이상할 게 없는데.”

네르하 일행은 현재 계승 전쟁으로 지정된 구역의 외곽 쪽을 주로 돌고 있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바깥에서부터 시작해 동선을 최소화하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마하에게 어서 손을 써보라는 도발의 의미도 담겨 있었다.

“마하 공녀가 멍청한 게 아닌 이상, 우리가 움직이는 동선이 어떠한지 진작 파악이 끝났을 겁니다.”

“손을 쓴다면 때가 되긴 했죠.”

지도를 살핀 바스톤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다음 목적지인 미투란 요새는 산악지대에 위치한 군사 요새입니다. 이곳을 지나면 엘븐 포레스트가 있는 제국 서부로 빠지게 되고, 그쪽은 치외법권 우릴 노리기엔 더 힘들어질 겁니다.”

“노린다면 흔적 지우기가 용이한 이 근방이 되겠군.”

“그렇긴 한데…….”

네르하가 피식 웃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네르하와 일행이 위치한 장소는 산악지대로 들어가기 전인 울창한 숲 한가운데.

어느 정도 길이 닦여 있긴 하지만 행상인이나 군대를 제외하면 드나들 만한 이들이 없는 곳이었다.

“…….”

그런 길 한복판을 가로막은 십여 명의 복면 괴인들.

“앞만이 아닙니다. 뒤에도 있어요.”

소니아의 말마따나 어느새 뒤쪽에도 앞쪽과 비슷한 숫자의 괴인들이 나타나 퇴로를 막고 있었다.

“네르하 라데우스.”

선두에 선 흑색 괴인 중 하나가, 네르하를 콕 집으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죽어줘야겠다.”

“이거, 암살자의 기본이 안 된 놈이군.”

말 안장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그대로 입을 연놈에게로 달려들었다.

“암살을 업으로 삼는다는 놈이 언제부터 표적에게 하하호호 웃으면서 말을 걸었나?”

“……!”

―블레이즈 피스트!

네르하가 즐겨 쓰는 융합기가 그대로 놈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아니, 날아가려 했다.

팟!

네르하가 날린 불꽃은 놈에게 닿기도 전에 그대로 불씨가 되어 휘날리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네르하는 암살자의 코앞에서 주먹질을 날린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

“크흐흐, 충고 고맙군.”

마하가 사비를 털며 직접 키워낸 위저드 킬러 집단, ‘바리아’.

그 바리아의 수장인 1호는 비릿한 미소와 함께 품속에서 나이프를 번개같이 꺼내 네르하의 심장을 찔렀다.

“그 대가로 네 목을 가져가 주지.”

맹독이 발린 나이프가 네르하의 심장을 관통하려던 찰나.

“정말로 기본도 안 된 놈이로군.”

홱!

이번엔 1호의 칼질이, 공허하게 허공을 갈랐다.

“……?!”

“서로 마법을 못 쓰는 상황이라고, 내가 순순히 당할 정도로 병신인 줄 알았나?”

퍼억!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