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라데우스 후계 전쟁 (13)>
사실 위저드 킬러라는 건 세간에선 빛 좋은 개살구 정도로 여겨지는 게 사실이었다.
그들에게 드는 돈과 정성에 비해, 그 사용처는 매우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보통 위저드 킬러 하나를 육성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은, 일반적인 마탑에서 5레벨의 마법사를 육성하는 것과 비슷한 비용이 든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었다.
일반적으로 5레벨의 마법사를 육성하기 위해선 최소 10년 단위 이상의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년 단위로 어지간한 중규모 마을 하나의 세수가 통째로 들어갈 정도의 돈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어찌저찌 잘 키운 위저드 킬러들이 마법사를 쉽게 암살할 수 있느냐?
답은 ‘힘들다’였다.
일단 마법사는 기본적으로 은둔형이다.
전투마법사를 주력으로 키우는 라데우스가 특이한 것일 뿐, 사실 어지간한 마법사들은 자기 영역 밖으로 나오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그렇다고 뭔가 일이 있어 밖으로 나온다고 해도, 대부분은 용병이나 자유 기사 등을 고용해 일신의 안전을 강화하지, 홀몸으로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았다.
아무리 위저드 킬러가 암살 기술을 익혔다고 해도 전문 살수는 아니다.
즉, 정면으로는 어지간한 기사급 하나를 뚫기 힘든 것이 현실이었고, 운이 좋아 기사의 보호를 뚫고 마력장을 상쇄한다면 당연히 상대 마법사는 위저드 킬러가 자신을 암살하러 왔다는 것을 눈치채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렇게 되면 마법사는 마도구니 아티펙트니 하는 몸을 지킬 방법을 동원하며, 그렇게 흘러가면 암살은 높은 확률로 실패하곤 한다.
그렇기에 위저드 킬러라는 직업은 차라리 암살 길드의 특급 암살자를 고용하는 편이 훨씬 싸게 먹힌다는 인식이 박힌, 마법사가 될 재능들을 되레 썩혀 버리는 쓰레기 같은 직업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세간의 인식일 뿐이지.
그런 상황에서, 위저드 킬러에 관심을 가진 라데우스의 직계 하나가 나타났다.
―우리 라데우스 가문이 위저드 킬러들의 육성을 금지하고 있는 이유가 뭔지 알아? 그놈들의 존재 자체가, 라데우스의 마법사들에겐 카운터가 되기 때문이야.
―애초에 놈들의 인식을 쓰레기로 만든 것도 라데우스 가문이야. 괜히 그 인식이 변했다간 가문은 큰 피해를 보게 되니까.
그 직계는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에게 주어진 자원과 명성을 이용하여 위저드 킬러들을 대량으로 육성하였다.
―물론 고작 한두 명 키워낸다고 쓸 만해질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아. 하지만, 열 명, 백 명은 어떨까?
마하 직속 위저드 킬러 집단, 바리아.
마하가 그들을 육성하면서 설정한 최초의 타겟은 단 한 명이었다.
―조건만 맞는다면, 가주조차도 암살할 수 있어.
마하가 바리아에게 주입한 위저드 킬러 특유의 스킬은 총 세 가지였다.
하나는 기본적인 마력장의 상쇄.
마법사라면 늘 주위에 두르고 있는 마력장을 봉인함으로써 멀쩡한 마법사를 병신으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의 절대 법칙 중 하나가 바로 등가교환의 법칙.
상대의 마력장을 봉인하면 자신들의 마력 역시 사용할 수 없었다.
서로의 마력이 봉인된다면 두 번째로 익혀야 할 것은 바로 전투기술.
어지간한 기사단이 호위하고 있더라도, 그것을 뚫어낼 수 있는 육체적인 능력을 단련시켰다.
아이러니하게도, 마하가 그들에게 제시한 것은 네르하가 추구하는 방향성과 얼추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 * *
네르하의 주먹질이 그대로 1호를 직격했다.
퍼억!
네르하의 일격에 1호의 신형이 그대로 저 멀리 나가떨어졌다.
“호오?”
하지만 네르하는 평소와는 손맛이 꽤 다르다는 것을 대번에 알아차렸다.
‘이걸 흘려?’
아무리 마법이 섞이지 않았다고 해도 마나로 강화된 주먹이다.
어지간한 고수가 아닌 이상에야 흘리는 건 꿈도 꾸지 못할 터.
그런데도 1호는 네르하의 일격을 불안전하게나마 받아내었다.
“큭!”
1호는 쌍코피가 흘러나오는 자기 콧잔등을 어루만졌다.
상대를 너무 만만히 봤던 탓일까. 워낙 완벽하게 함정에 몰아넣었기에 방심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1호를 향해 네르하가 물었다.
“조금 궁금하군. 왜 너희밖에 없지?”
“그건 무슨 소리냐?”
“너희들, 고작 20명이 전부가 아니잖나?”
“……!”
“나머지 80명은 어디 있지?”
이쪽의 숫자를 정확히 꿰고 있는 네르하의 모습에, 일호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걸 어떻게 알았지?”
“어떻게 알았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지. 진짜 중요한 건 내가 아는 마하 누님이라면 나를 죽이려는 데 전력을 아끼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는다는 점이야.”
네르하가 손가락으로 일호를 가리켰다.
“밑천 아끼지 말고 전부 꺼내. 괜히 아끼다가 말아먹지 말고.”
일호는 순간 머뭇거렸다.
사실 이미 동원한 20명으로 충분히 상대의 마력장을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되려 고작 6명 남짓한 상대의 숫자를 고려하면 무려 20명이나 동원했다는 것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원래 20명으로 놈들의 마력을 묶고 20명씩 투입해 차륜전으로 갈 생각이었는데…….’
네르하가 100명이란 숫자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면 분명 그리했을 것이다.
일호는 고민했다.
‘한 번에 모두를 투입해 승부를 보는가? 아니면 처음 예상대로 차륜전을 펼치는가?’
일호는 상대를 절대 경시하지 않았다.
상대는 북방의 영웅이라 불릴 정도의 신진 마법사. 더군다나 마법 외에 육체 능력 역시 어마어마하다는 정보는 이미 입수한 상태다.
‘분명 숨기고 있는 게 있다. 천천히 깎아나간다.’
결심을 한 일호가 손을 올렸다.
“3조, 4조 앞으로 나서라.”
그 말이 끝나자마자, 이십여 명의 인기척이 새롭게 드러났다.
‘쯧!’
네르하는 속으로 혀를 찼다. 도발에 넘어가 한 번에 달려들었으면 꽤나 편했을 텐데, 확실히 마하가 비장의 수로 숨기고 있던 패이니 만큼 그들의 지휘관 역시 만만치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외부의 마나가 좀처럼 움직이질 않는다.
마력장의 제한. 이건 북방에서 보았던 비슈나르의 권능과 닮아 있었지만, 그때와는 달리 이건 권능이 아닌 순수한 힘겨루기라는 단순한 메커니즘에 속했다.
‘선수를 당하기 전에 움직였다면 충분히 방지할 수 있었는데, 그러면 놈들을 전부 잡아내진 못하겠지.’
네르하가 주변을 돌아보며 외쳤다.
“전원 뭉쳐!”
“네, 주군!”
역시나 마력이 봉인된 만큼 네르하의 수하들은 기본적인 강화 능력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배커, 바스톤, 알페온. 너흰 네이하와 소니아를 지켜라.”
“네!”
“소니아는 사전에 정한 대로. 그리고 네이하.”
“네, 네. 오라버니.”
“정신 똑바로 차려라.”
“……네!”
네이하는 굳이 따라올 필요가 없는데도 실전 경험을 쌓겠다는 핑계를 대며 어거지로 네르하를 따라왔다.
뭐, 정말 위험했다면 억지로라도 떨구었을 테지만, 이곳은 마하의 의도를 사전에 파악하고 설치한 ‘준비된 사냥터’였으니…….
어느 정도 때가 되었다 싶은 네르하가, 1호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 뭔가 이상하지 않나?”
1호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여기서 괜히 상대의 페이스에 말려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아까와 같은 실수는 다시는 사양이었다.
하지만, 네르하의 이어진 한마디는 1호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너희 말이야. 우리 총인원이 몇 명인지는 사전에 파악해두지 않았나?”
“무슨 소리냐?”
“나와 수하들이 처음 베리타스를 나올 때의 인원은 6명. 이후 소니아가 들어와서 7명이 되었지.”
“……!!”
저 말대로였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인원은 6명. 원래 있어야 할 인원은 7명.
처음의 숫자가 맞아 방심하고 있었는데.
1호의 눈이 빠르게 네르하의 일행을 살폈다.
‘없다.’
가장 주의해야 할 ‘특기 전력’이, 지금 이곳에 없다!
오싹!
1호의 시선이 본능적으로 하늘 위로 향했다.
그리고.
그 시선이 닿는 하늘 위엔, 어느새 백여 자루에 달하는 ‘얼음 창’이 이쪽을 향해 날을 드리우고 있었다.
“전원 피해라아아아!”
비명에 가까운 1호의 명령과 함께, 바깥에서 준비하고 있던 클로이아의 마법이 그대로 위저드 킬러들을 향해 내리꽂혔다.
파파파팟!
푹! 푸욱!
“크아아악!”
“아악!”
“내, 내 팔이!”
비명을 내지르는 자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머리를 관통당해 즉사한 이들이 부지기수였으니까.
“이, 이럴 수가?!”
혼란에 빠진 1호를 향해, 네르하가 비릿한 미소를 보냈다.
“그러니까 말했잖아? 한 번에 덤볐다면 그나마 사정이 좀 나았을 텐데 말이야.”
“까득!”
“40명 중에 한 10명 정도는 살아남은 것 같군. 개중에 외곽에서 마력장을 상쇄하던 놈들은 다 죽었는데 말이야.”
화륵!
네르하의 손에 아주 손쉽게 불꽃이 맺혔다.
“계속 상대할 수 있겠어?”
“……누구냐?”
“응?”
1호가 억하심정을 담아 네르하에게 외쳤다.
“누가 네놈에게 정보를 흘렸지? 분명 우리의 보안은 완벽했다!”
“아, 보안. 물론 완벽했겠지. 마하 혼자서 일을 도모했다면 말이야.”
“……!”
“그런데 그게 아니잖아? 괜히 협력자를 만들어서 스스로 허점을 내보였으니 보안에 구멍이 뚫리는 게 당연하지.”
1호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서, 설마, 바멜 공자인가?”
현재 상황에서 뒤통수를 칠 가능성이 가장 유력한 자. 1호의 생각이 바멜에게 향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글쎄, 어떨까? 세상에 그걸 대놓고 알려주는 바보가 있나?”
“크으윽!”
굴욕에 몸을 떤 1호가 바깥을 향해 외쳤다.
“5조! 클로이아 블루벨벳을 추격해 발을 묶어라! 6조, 7조! 다시 한번 마력 상쇄를 시전해라! 나머지 조는 6조와 7조를 보조해서 다가오는 적을 막아!”
“멍청한 놈. 내가 그걸 가만히 두고볼 것 같냐?”
“네르하 라데우스! 네놈이 우리를 함정에 빠뜨렸다는 건 인정하지. 하지만 우리 역시 비장의 수 정도는 가지고 있다!”
“비장의 수라고?”
“나와 주십시오!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벅!
그 말이 끝나자마자, 1호의 옆에 초록색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늘씬한 미인이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녀의 손에는 딱 봐도 거대해 보이는 장궁이 들려 있었고, 가냘픈 겉모습과는 달리 꽤나 무거워 보이는 하프 플레이트를 걸치고 있다는 점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특징은, 그녀의 귓가가 상당히 길쭉하다는 점이었다.
‘8레벨. 혹은 그곳에 거의 근접한 실력자.’
무엇보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푸른 상쾌함은, 네르하도 익히 느껴본 적이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뵙는 건 처음이겠군요.”
“그렇군.”
“처음 뵙겠습니다. 이번에 엘븐 포레스트의 수호자이자 이종족들의 로드로 새로 취임한 셀로미엔 엘마이넨입니다.”
“네르하 라데우스입니다. 새롭게 오현자의 일원이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별말씀을.”
셀로미엔은 처음 보였던 차가운 인상이 무색해질 정도로 은은하게 웃음을 내지었다.
‘……뭐지?’
그리고 그 웃음을 본 순간, 1호의 가슴 속에 이유 모를 불안감이 섬뜩하게 파고들었다.
셀로미엔이 1호를 곁눈질하며 네르하에게 말했다.
“이자는 제가 당신을 막아주기를 바라고 있는데, 네르하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음.”
잠깐 고민한 네르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한 제압 정도로 부탁드립니다.”
“네, 그러도록 하죠.”
“……?”
분명 두 사람 사이의 대화는 통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뜻으로 통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1호는 그것을 느끼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며 셀로미엔에게서 멀어졌다.
그리고…….
푸욱!
“컥!”
대체 언제 박혔는지 인지하기도 전에, 1호는 어느 순간 자신의 어깨에 화살이 박혔음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