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라데우스 후계 전쟁 (14)>
“어, 어떻게, 배신을…….”
1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파파팟!
그대로 반대쪽 어깨와 양 허벅지에, 세 발의 화살이 추가로 박힌 탓이었다.
“큭! 크륵!”
고통과 함께 사지의 피가 역류하려던 찰나 몸에 박힌 화살에서 뜬금없이 전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파지지지직!
“크아아악!”
그 외마디 비명을 끝으로, 1호는 정신을 잃고 그대로 언덕 밑으로 굴러떨어졌다.
네르하는 셀로미엔의 일수를 보고는 적잖이 감탄했다.
‘중원으로 가면 궁신(弓神)이란 별명은 손쉽게 따내겠군.’
그야말로 기술을 절정으로 연마하지 못하면 보여줄 수 없는 정교한 솜씨였다.
무엇보다 셀로미엔의 손에는 화살이 없었다. 즉, 1호에게 적중한 화살 모두가 마나로 이루어진 기살(氣虄)이라는 것.
설사, 놈이 첫 일격을 피했다 하더라도 셀로미엔은 그대로 방향을 틀어 원하는 부위에 화살을 꽂아버렸을 거다.
“배, 배신이다!”
“1호가 쓰러졌다!”
“엘프 년이 배신했다!”
셀로미엔의 배신행위는 빠르게 위저드 킬러들에게 알려졌다.
개중 마력장 상쇄에 참가한 한 복면인이 주변을 향해 외쳤다.
“지금부터 나 2호가 대신해서 명령을 내리겠다! 3조는 저놈들의 마력장을 없애버… 컥!”
2호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었다.
목이 관통당한 인간은 말을 할 수 없었으니까.
즉사한 2호의 시체를 바라보며 셀로미엔이 말했다.
“생존자는 한 명만 있으면 충분하겠죠?”
네르하가 어깨를 으쓱했다.
“음, 가능하면 최대한 많이 살려갔으면 좋겠군요. 증거는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노력해보죠.”
마하가 야심차게 준비한 위저드 킬러들은 내부의 배신자 하나로 인해 그렇게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 * *
착!
어느새 네르하의 옆으로 푸른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여인, 클로이아가 사뿐히 내려앉았다.
“음, 생각보다 쉽게 끝났네요?”
전장에는 셀로미엔을 필두로, 네르하의 수하들이 일방적으로 적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아직 50명이 넘는 인원이 남아있는 만큼 지휘계통을 통일시킬 수 있다면 저항할 방법이 있었겠지만…….
“컥!”
누군가가 병력의 수습을 시도하려고 하면, 셀로미엔이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그 누군가를 침묵시켰다.
그런 셀로미엔을 따라, 수하들은 사정없이 놈들을 몰아붙였다.
특히 수하들 중 두드러지는 활약을 하는 이가 있었으니.
“수, 숨을 쉴 수가!”
“다, 다리가 마비됐…….”
뿌연 연기가 위저드 킬러들을 지나칠 때마다, 그들은 어디 한 곳이 망가져 전투력을 상실하고 있었다.
“저건… 독인가요?”
“그래, 연금술사 이즈넨 가문의 비전이지.”
그 독을 한동안 유심히 관찰한 클로이아가 결론을 내렸다.
“마법독이군요. 생각보다 위력이, 상당한데요?”
“맞아. 저건 체질과도 관련이 있는 거라 마력장에 큰 구애가 없어지지.”
소니아 이즈넨의 현 상태는 일종의 독인(毒人)과도 같았다.
물론 사천당가나 마교의 독인들과는 다르게 독공 자체에 모든 걸 쏟아 부운 게 아니라 위력은 많이 떨어지지만.
“위저드 킬러를 확실하게 카운터치는 방법 중 하나라는 건 틀림 없지.”
아직 가문에 7레벨의 술사가 없어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지만, 만약 소니아가 7레벨에 이른다면 독에 한해선 당가 놈들조차 눌러 버릴 잠재성이 있었다.
“추격자가 있었을 텐데 어떻게 했어?”
“어떻게 하긴요, 죄다 죽였죠.”
클로이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리 위저드 킬러가 마력장을 상쇄한다고는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기습 이전에 상당한 사전 준비가 필요한 일이었다.
1차 기습이 실패로 돌아간 순간부터, 그들은 그저 마력만 높을 뿐 정작 마법은 사용하지 못하는 멍청한 암살자 집단이 될 뿐이었다.
“한 열 명 정도만 살려두면 될 것 같네요. 그 이상은 옮기기도 힘들 테니.”
“그러는 게 좋겠군.”
네르하는 그 말에 동의했다.
그 정도 생존자면 충분히 마하를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었다.
애초에 라데우스 본가에는 사이코메트리 계열 능력자도 있으니 이 자리를 보존하는 것만으로도 물증은 충분하지만 말이다.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믿었던 아군이 배신당하고 비장의 수마저 무력화된 이상, 마하 공녀가 앞으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요.”
“…….”
“지금 상황에서 가장 위험한 건 계승전을 포기하고 자신의 남은 세력을 바스텔 공자 측에 넘겨버리는 거죠.”
“아니, 그러진 않을 거야.”
네르하는 고개를 내저었다. 바멜이라면 모를까, 마하는 이 정도로 야심을 꺾을 여인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녀는 가주가 되거나 죽거나, 최소 그 정도의 각오는 하고 계승전에 나왔을 것이다.
“물론 벌써부터 사방을 막아 버리면 본격적인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자폭할 가능성은 있지. 적어도 남은 두 달 동안, 마하가 딴생각을 못 하게 숨통 정도는 틔워줘야겠지.”
“저놈들을 이용해 바로 마하를 탈락시키지 않을 건가요? 마하 휘하의 마법사들은 분명 대단한 정예일 텐데요? 그들을 거둘 수 있다면…….”
“그렇겠지. 하지만 그놈들에게 충성심을 기대하긴 힘들 거야.”
수준이 높아 다른 선택지가 많을 텐데도 마하에게 변함없이 충성하는 놈들.
그들 대부분은 네르하와 수하들 이상으로 끈끈한 유대감을 보이는 놈들이 많을 거다.
“그런 놈들은 되려 독이 든 성배가 되겠지.”
“아, 확실히.”
“마하 본인이 이쪽에 붙지 않는 이상 그놈들은 그냥 버리는 패야.”
네르하는 기지개를 쭉 켰다. 그런 네르하를 향해 클로이아가 의아함을 표했다.
“그럼 어떻게 하시려구요? 남은 두 달 동안 제국 유람을 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잖아요?”
“물론, 수련해야지.”
“……수련?”
클로이아의 표정이 괴상하게 변했다.
“던전 탐사라도 하시게요? 하지만 이 근처에 알려진 던전 같은 건 없는데?”
“허수공간에 들어갈 거야. 거기서 육체를 완성하겠어.”
“아 허수 공간? 거기 들어가서 몸을 단련하… 아니 미친 뭐라구요?!”
클로리아가 꽥 소리를 내질렀다. 그녀 역시 고위 마법사인 만큼 허수 공간이 어떤 곳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미쳤어요?”
“난 지극히 정상이야.”
“……옛부터 내려오는 마법사들의 격언이 있죠. 어떤 이유가 있든 허수 공간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마라.”
“신조차도 그곳에선 생사를 장담할 수 없으니.”
다음 말은 네르하의 입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물어요?!”
“바꿔 말하면, 그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면 신을 넘어설 정도로 강해질 수 있다는 뜻이지.”
“세상에.”
저런 참신한 해석이라니!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자살 방법을 저렇게 해석하는 것도 능력이다, 진짜!
클로이아는 밀려오는 현기증에 이마를 짚었다.
아무리 네르하가 마왕을 잡았다곤 해도 허수 공간은 다른 차원의 얘기다.
그곳은 원초의 혼돈이 집약된 곳. 창조신으로부터 이 세상에 개입을 거부당한 태고의 외신들이 똬리를 튼 곳이 바로 허수 차원이란 곳이다!
“설마, 일부러 밖으로 나온 이유 중 하나가 혹시?”
“정답.”
“……내가 미쳐.”
역사상 허수 차원에 손을 대 좋은 결말을 맞이한 마법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마족과의 계약이 세상에 해를 끼치는 일이라면, 허수 차원에 있는 외신과의 접촉은 세상 자체를 오염시키는 일이었다.
당연히 라데우스 측에서는 외신과의 접촉을 엄중하게 금하고 있으며, 허수 차원의 인위적인 개방 역시 수백 년 전부터 금기로 지정하고 있었다.
“사실 그렇게 위험한 건 아니야. 그리고 딱히 걸릴 일도 없고.”
일반적으로 라데우스가 금기로 지정한 것은 외신의 혼을 이 세계로 끌고 오는 일이다.
이 세계가 외신의 혼을 버틸 수 있는 용량이 있는 게 아니라서, 소환을 시도한 그 순간 대륙의 모든 드래곤들과 고위급 존재들은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허수 차원을 자유자재로 여닫을 수 있는 건 사실상 공간 계열에서 8레벨 이상을 이룬 대마법사들뿐인데, 그런 존재가 대놓고 숨어다니면 아무리 라데우스라고 해도 어쩔 수 없지.”
사실상 주도 베리타스에서 대놓고 일을 벌이는 게 아니면 네르하로서도 발각될 일은 없는 것이었다.
“잘나셨어요.”
허수 차원 개방 주문이 라데우스의 선조가 개발한 것. 그리고 그 허수 차원 내부의 공간이 검증된 안전지대라는 것을 듣고 나서야 클로이아는 흥분을 가라앉혔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괜찮을까? 아카이브에 저장된 술식이라고 해도 그 안정성이 완벽하게 입증된 건 아닐 텐데…….’
설사 임페리얼 아카이브에 저장된 술식이라 해도, 해당 마법사의 권위 때문에 인정을 받은 것일 뿐 다각적인 검증이 되지 않은 것들이 수두룩했다.
까놓고 본인이 아무리 잘 다루어도, 그 술식을 타인이 온전히 다룰 수 있다고는 확신할 수가 없다.
‘하필이면 그 카르안 라데우스라는 것도 마음에 걸려.’
클로이아는 카르안 라데우스의 실패 논문을 보관하던 비고의 관리자였다. 관리자 시절, 클로이아는 해당 비고의 논문을 모두 읽어 보았고, 당연히 카르안 라데우스가 어떠한 실험을 했는지, 어떠한 방향성을 가지고 실험을 벌였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는 라데우스의 기록상으론 실종자로 처리된 자…….’
그렇다고 지금부터 술식에 대한 안정성을 검증하는 것도 무리가 있는 게, 8레벨 수준의 술식에 대한 안정성을 검증하려면 년 단위의 시간으로도 부족했다.
하물며 ‘공간 계열’은 더더욱!
“…….”
그녀의 수심 어린 얼굴을 본 네르하가 그녀의 머리로 손을 뻗었다.
“걱정하지 마, 클로이아.”
스윽스윽!
네르하의 손길이 그녀의 푸른 머리카락을 살포시 헤집었다.
“무, 무슨 걱정을 했다고!”
클로이아는 역정을 내며 네르하의 손을 뿌리쳤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엔 감출 수 없는 붉은 기운이 나타나 있었다.
“아무튼! 일단 상황이 대충 끝난 것 같으니 수습부터 하자고요!”
“클클, 알았어.”
클로이아와 잡담을 나누는 사이, 상황은 거의 막바지로 치달은 상태였다.
그나마 정신을 차린 생존자는 약 10여 명.
이미 증인으로 세울 녀석들은 전부 기절시켜놨기에 굳이 살려둘 필요도 없었다.
“네, 네르하! 라데우스!”
“마하님의 적!”
남은 이들은 제대로 마력장을 펼칠 여력도 되지 않았다.
전원 소니아의 마법독에 제압된 탓이었다.
‘암살자 교육을 받았으니 어느 정도 독에 내성이 있을 텐데, 마법독이라는 건 참 무섭군.’
사실상 전설상의 무형지독과도 맥이 상통하는 녀석이었다.
뭐, 마법독에 대한 특징과 대응 방법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나머지는 깔끔하게 처리해. 네이하 너는 이리 오고.”
“네, 주군!”
“아, 알았어요. 오라버니.”
굳이 사람 모가지 날리는 걸 아직 어린 네이하에게 끝까지 보여주는 건 좀 그랬다.
이미 네이하 역시 피를 보며 전투 경험을 쌓은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자, 마하가 어떻게 나오는지 한번 볼까?’
* * *
위저드 킬러 집단 ‘바리아’의 소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마하의 귀에 들어갔다.
“저, 전멸? 지금 전멸이라고 했나?”
“소, 송구합니다, 공녀.”
“대체, 뭘 어떻게 해야 전멸을 할 수 있는 거얏!”
마하는 격분했다.
그들을 키워내는 데 들인 비용은 어지간한 국가의 1년 치 예산에 필적했다.
거기에 공식적으로 키울 순 없어 비밀리에 자금을 움직여야 하니, 마하가 지금껏 들인 수고와 고생은 단순한 수치로 계산할 수 없을 만큼 막대했다.
그런데 그것이, 단 한번에 날아갔다.
“세, 셀로미엔 그 망할 년이, 배신했습니다.”
“……!”
“지금 그년은 네르하 라데우스와 함께 행동하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애, 애초부터 계획적으로 공녀에게 접근한 것은 아닌지…….”
털썩!
마하는 그대로 쇼파에 주저앉았다.
셀로미엔에게 먼저 손을 내민 것은 바로 마하 본인이었다.
아무리 뒤통수를 맞았다곤 해도, 이 사실은 변하진 않았다.
마하는 형언할 수 없는 자괴감에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아악! 네르하! 반드시 죽여버리겠다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