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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237화 (237/237)

237화

<카르안 라데우스 (2)>

―드. 디. 어. 왔. 구. 나.

흠칫!

네르하조차 한순간 어깨를 들썩거릴 만큼, 흉흉하고 사악한 살기.

본능이, 경종을 울린다.

‘뭐지?’

카르안 라데우스의 말에 의하면, 이곳은 분명 안전지대라고 했다. 그리고 네르하 역시 주변에 별다른 기척을 느끼지 못하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맞아버릴 줄이야.

―어서. 와라. 나의. 후손. 아.

“……하.”

네르하는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저 후손이란 말에서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설마 카르안 라데우스 본인이 이런 곳에 처박혀 있었을 줄이야.”

그리고 곧이어 저 멀리서 빼빼마른 노인이 벌거벗은 채로 나타났다.

‘돌겠군. 그냥 튈까?’

원래라면 그냥 대화를 시도해 봤겠지만, 이곳은 본래 차원도 아닌 허수 공간. 변수가 무궁무진하게 많은 곳이다.

‘일단은 지켜본다. 설사 적대한다 해도 도망갈 틈 정도는 만들 수 있어.’

자신도 혼돈을 사용할 수 없다면 모를까, 같은 조건이라면 상대가 설사 자신보다 강하더라도 죽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바로 전투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최소한의 정보 정도는 얻을 수 있겠지.’

네르하는 차분히 카르안 라데우스가 이쪽으로 오는 걸 기다렸다.

거리를 보면 수십 킬로미터는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그는 분명 공간 계열을 사용할 줄 아는 마법사.

그런 자에게 거리란 그다지 제약이 되지 않을 터.

―도망. 가. 지. 않는. 구나.

아니나 다를까, 저 멀리 떨어져 있던 카르안 라데우스의 신형이 어느새 네르하의 눈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기괴하군.’

네르하는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카르안 라데우스의 몰골을 살폈다.

눈은 흰자 부분까지 짙은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다.

라데우스 혈족들이 발현하는 스타 플래티넘의 기운은 어디에도 없었고, 이곳 허수 세계에 만연한 혼돈의 탁한 힘을 전신에 뿌려대고 있었다.

―낄! 낄! 낄! 낄!

“정신이 완전히 나갔군.”

네르하는 순간 대화를 택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할 뻔했다.

―아니. 나. 는. 제정. 신. 이란. 다.

“일단 그 거지 같은 목소리부터 어떻게 하는 게 어때? 듣기가 참 괴롭군.”

―오! 오! 그렇. 구나! 생각을. 하지. 못했. 어!

스윽!

카르안 라데우스가 손을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혼돈들이 그대로 카르안 라데우스에게 몰려와 의복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네르하는 그 모습을 보곤 경악했다.

‘물질 창조!’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저건 9레벨의 3요소 중 하나인 창조에 해당하는 능력이 분명했다.

딱히 영역을 쓴 기색이 없었는데도 저렇게 가볍게 물질을 만들어낸 걸 보면.

‘9레벨!’

믿기지 않지만 카르안 라데우스는 9레벨에 도달한 강자임이 분명했다.

“어떠하냐? 이러면 좀 편하게 들리느냐?”

움직이는 시체와도 같았던 카르안 라데우스의 몸이, 어느새 그나마 인간답다고 말해줄 정도로 모습을 회복했다.

그래도 피골이 상접한 겉모습과 불길한 눈자위는 전혀 변하지 않았지만.

“네가 여기 있다는 건, 아카이브에 남긴 내 술식을 얻었다는 거겠지?”

“그렇다면?”

“크, 크흐흐! 킥킥! 낄낄낄낄!”

갑자기 카르안 라데우스는 미친 듯이 웃어재끼기 시작했다.

아무리 발성이 정상으로 돌아왔어도 정신이 이상한 건 마찬가지인 듯싶었다.

“드디어, 드디어 내 혈족이 이 자리까지 당도했구나.”

그는 마치 변태처럼 네르하의 육체를 훑었다.

“그것도, 아주 최상급의 육체로군. 이건 정말 기대하지도 않았던 수확이야.”

“뭔가 기분이 더럽군.”

네르하가 막 기운을 일으키려던 찰나였다.

“흐흐흐, 괜찮겠느냐? 여기서 힘을 잘못 일으켰다간 곧바로 외신들의 눈에 걸려버릴 것이다.”

“…….”

“나조차도 그들에게 걸리면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못할 정도이거늘. 아직 생물체의 한계도 넘지 못한 네놈이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상대 역시 목표가 명확해 보이는데도 대화를 시도한 점이 의아했는데, 여기선 함부로 힘을 써선 안 되는 것처럼 보였다.

네르하가 입을 열었다.

“원하는 게 뭐지?”

일단은 타협이 가능한지 시도를 해 보았으나…….

“너의 육체!”

카르안 라데우스는 가볍게 네르하의 기대를 배신해 버렸다.

“현세로 돌아갈 수 있는 생생히 살아 있는 라데우스 혈족의 육체! 나는 너의 몸을 원한다!”

“이거, 완전 미친놈이었군.”

네르하의 주먹이 기습적으로 카르안의 복부를 강타했다.

펑!

그 일격에 카르안의 몸이 그대로 수십 미터 이상 나가떨어졌다.

그러나.

‘……손맛이 좀?’

네르하는 마치 두툼한 고무를 두드린 것 같은 기묘한 손맛에 인상을 찌푸렸다.

단단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른 것도 아닌데 묘하게 타격을 준 느낌이 없다.

카르안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시금 다가왔다.

“큭큭큭, 지금 이 몸은 원래의 육체가 아닌 혼돈으로 재구성한 것. 타격 따위로 이 몸을 해치는 건 설사 행성을 부수는 수준이라 해도 불가능하지.”

“과연, 원래 몸을 잃었다는 건가?”

네르하는 눈살을 찌푸렸다.

“네놈은 이곳에서 육체를 수련했다고 들었는데, 정작 육체를 잃어버리다니 아이러니하군.”

“오, 제법 많은 걸 알고 있군. 페레스가 알려주었나?”

카르안은 그 말에 뭔가 지나치게 기뻐했다.

“푸흐흐, 그렇군. 네놈이 이곳에 온 목적은 처음의 나와 같구나. 시간이 아무리 지난다 해도 나 말고 이런 미친놈이 또 나올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기분이 더러운데?”

아무리 그래도 저 미친 늙은이와 같은 급으로 취급된다니!

“네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이곳의 차원 압력을 견뎌낼 수 있다면 그야말로 인간이란 종의 한계를 탈피한 최고의 육체를 제련할 수 있으니까!”

용암에 빠져도 그냥 헤엄쳐서 나올 수 있고, 어지간한 오러 블레이드는 가볍게 튕겨낼 수 있는 강도와 탄력을 얻게 된다.

“여기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다면 말이지.”

“살아남을지 못 할지는 해봐야 알겠지.”

뿌득! 뿌드득!

네르하의 전신 근육과 뼈가 몸부림친다.

“이거 정말 대단하군. 허수 공간에서 제대로 활동할 수 있다는 건 이미 어느 정도 완성에 가깝다는 뜻일 텐데.”

“선조님을 때리는 건 좀 마음이 그렇지만, 내 몸을 노리는 변태 새끼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키히히히히! 그래! 그 정도 패기는 있어야지!”

화악!

회색빛 혼돈이 카르안을 중심으로 퍼져 나온다.

“어디 한번 가볍게 실력을 볼까?”

저 힘의 크기만으로도 8레벨은 가볍게 넘는 것 같다.

“힘을 사용하면 외신에게 걸린다고 하지 않았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카르안이 이죽거렸다.

“이곳 허수 공간의 혼돈은 다르지. 타차원의 이질적인 힘이라면 모를까, 이곳의 혼돈을 사용한다 해서 그들이 관심이나 가질 것 같더냐?”

허수 공간은 결코 허(虛) 차원이 아니다. 이질적이라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생명체가 살아 있는 곳.

그런데.

‘뭔가, 콕 찝어 말할 순 없지만, 저게 다가 아니야.’

지금껏 수없이 겪어봤던 거짓말쟁이의 냄새가 난다.

카르안 라데우스는 분명 자신에게 무언가를 속이고 있었다.

다만, 그와는 별개로.

‘저 공격, 맞아도 별 타격이 없을 것 같은데?’

마치 거대한 망토처럼 이쪽을 뒤엎으려 다가오는 혼돈의 그물.

어떠한 공격이든 육체나 본능 둘 중 하나가 반응해야 하는데, 저것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내 감각조차 속일 정도로 위험하거나, 아니면 정말 아무런 타격이 없거나.’

원래라면 무조건 전자를 상정하고 움직여야 했지만, 네르하는 어째서인지 후자 쪽에 강렬한 느낌이 오는 걸 자각했다.

‘어디.’

네르하가 가볍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카르안이 날린 혼돈의 막을 실제 천을 걷듯이 가볍게 걷어 버렸다.

“아, 역시 예상대로였군.”

“네놈, 정체가 무엇이냐?”

지금까지 미친놈처럼 웃던 카르안의 얼굴이, 처음으로 딱딱하게 굳어졌다.

“네르하 라데우스. 네놈의 후손이지. 몇 대째인지는 모르겠지만.”

“웃기지 마라! 혼돈이 거슬리지 않는다는 건 네놈이 스타 플래티넘을 완성했다는 소리! 하지만 그게 말이 되느냐? 나조차도 500년이 걸린 일이거늘!”

“……스타 플래티넘을 완성?”

결코 쉽게 넘길 수 없는 떡밥에 네르하의 눈이 가늘어졌다.

“스타 플래티넘을 완성한다는 건 무슨 뜻이지?”

“…….”

“대답해라.”

의아해하는 네르하의 표정을 잠깐 지켜본 카르안이, 허탈하게 어깨를 늘어뜨렸다.

“정말로, 모르는군.”

“알면 이렇게 묻지 않았겠지.”

“말 그대로다. 라데우스의 마나 연공법, 스타 플래티넘을 연성해 9레벨에 이르면, 이곳의 질료인 원초의 혼돈과 비슷한 현상이 되도록 설계되어 있지.”

“……!”

“하지만 네놈은 아무리 봐도 9레벨에 이른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런데도 혼돈의 힘에 아무런 영향이 없단 말이지.”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카르안이 눈을 번뜩였다.

“설마, 네놈도 사도(使徒)인가?”

‘……네놈도?’

그 말을 듣는 순간 네르하는 곧바로 천안을 활성화해 카르안을 관찰했다.

그리고 확실히 보았다.

카르안 라데우스를 둘러싼 거대한 무형의 혼돈.

그 혼돈의 기운이, 어딘가로 쭉 이어져 있다는걸.

‘아주 얇게 이어져 있긴 하지만, 저건 분명 누군가에게 종속되어 있다는 뜻!’

저 실은 아마도 계약과 인과율을 형상한 증거일 것이다.

네르하는 그 순간 대부분의 상황을 파악했다.

화악!

네르하의 전신에 황금빛 기운이 솟아났다.

“거짓말을 쳤군. 여기에서 힘을 끌어올리든 아니든, 외신이 너를 통해 이곳을 주목하고 있었나?”

“호오?”

“통탄할 일이야. 가문의 선조라는 작자가 외신에게 굴복해 종속당해버리다니. 하긴, 그게 아니라면 이때까지 살아 있는 게 불가능하겠지.”

“……네놈.”

정곡을 찔렸는지 카르안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후손인 걸 고려해 고통 없이 자비를 베풀어 주려 했거늘. 정녕 피를 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정신을 차려야 하는 건 네놈이겠지. 나름 그 시대에 선구자로서 나름 존경하고 있었는데…….”

하필 저런 놈일 줄 알았다면 과거의 나를 한 대 후려쳤을 거다.

“흐, 흐흐, 크흐흐흐!”

그때, 갑자기 카르안이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

무언가 힘에 부치는 게 아니라 극도로 흥분한 것에 의한 반작용이었다.

“얼마 전, 초마인이 다시금 활동을 개시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으응?

“네놈의 육체를 얻어 세상에 다시 나갈 수 있다면, 그 빌어먹을 초마인에게 복수할 수 있겠지.”

“……또 그 새끼인가?”

대체 지난 세월 얼마나 깽판을 쳤길래 이곳저곳에 적이 산재해 있는 거냐!

“끼히히히! 얌전히 몸을 내놓아라!”

“네놈 같으면 순순히 몸을 바치겠나?”

팟! 팟! 팟!

카르안의 주위로 이번엔 거대한 혼돈의 광구가 여럿 나타났다.

카르안이 광기에 젖으며 외쳤다.

“혼돈에 너무 오래 동화된 탓에 마법의 힘을 잃었지만, 덕분에 그보다 더 강렬한 힘을 얻을 수 있었지!”

“그게 혼돈이라는 거냐?”

“물론! 그 어떠한 힘이라도 압도하는 태초의 힘! 이것만 있다면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아!”

카르안이 네르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몸을, 나의 신에게 바쳐라!”

카르안 라데우스가 어떻게 이런 꼴에 처해졌는지는 모른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아무래도, 외신이란 놈에게 정신이 잠식된 것 같군.”

네르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두들겨 패서라도 제정신을 좀 차리게 해줘야 할 필요가 있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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