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가 깡패임-1화 (2/53)

제 1화

징역 10년? 오히려 좋아.

0.

웨에엥-

세상을 가득 채운 빗소리를 뚫고 사이렌 소리가 바늘처럼 찔러 들어왔다.

나 같은 깡패새끼들한텐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듣는 순간 반사적으로 자리를 떠야 하는 거지같은 소리지만 오늘은 도망치지 않아도 된다.

“되게 빠르네. 신고하기도 전에 미리 와있었던 것처럼.”

왜냐면 저 경찰차 내가 부른 거니까.

“곧 있으면 도착할 테니······. 슬슬 빠질 타이밍입니다.”

가까워지는 사이렌 소리, 아무리 길이 복잡한 항구 깊숙한 곳이라도 머지않아 이곳에 당도할 터.

슬슬 빠져나가지 않으면 위험할 것이기에 나는 고개를 돌려 내 유일한 아군을 바라보았다.

“가세요 형님. 나머진 제게 맡기고.”

믿던 부하에게 등을 찔려도, 미친 칼잡이한테 배때기를 쑤셔져도 항상 호탕하게 웃던 형님이지만 오늘만큼은 얼굴에서 미소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형님은 사모님께 바가지를 긁힐 때보다도 더 일그러진 얼굴로 나를 보며 아직까지도 망설임 가득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진혁아. 역시 이건 아니다. 차라리 내가······.”

“형님.”

대신 잡혀가겠다.

말을 다 듣지 않아도 무슨 말을 할지는 뻔히 알았기에, 나는 형님의 말을 끊었다.

평소 같았으면 ‘형님이 말씀하시는데 요 버르장머리 없는 새끼가!’하며 달려 들었겠지만 오늘은 그러지 못했다.

“안 되는 거 알잖아요.”

지금 이 상황과 내가 짊어져야할 책임은 이 항구에 들어오기 전······ 그래, 형님과 내가 처음으로 만난 그날부터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이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나는······.”

분명 오늘 같은 날이 오면 내가 책임지는 걸로 약속을 했음에도 형님은 마지막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형님이 절대 외면할 수 없는, 그리 쓰고 싶지 않았던 마지막 패를 사용하기로 했다.

“형님, 아가씨 비 맞잖아요. 날도 추운데 감기 걸려요.”

“진혁아······.”

형님의 얼굴로부터 시선을 살짝 내리면 보이는, 품속에 안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리 아가씨.

강제로 투약당한 수면제 때문이라지만 이 시끄러운 곳에서 저렇게나 편하게 자고 있는 걸 보니 정말 혼자서만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쌔액. 쌔액.

자면서 내는 숨소리조차도 예쁜 아가씨의 모습에 무심코 머리를 쓰다듬으려다가 문득 내 손이 피범벅이라는 걸 깨달았다.

“······하핫.”

그 덕분에 몇 번이고 되새겼던 현실을 떠올렸다. 나는 아가씨를 만져선 안 된다.

그래도 한 번쯤은 쓰다듬어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내 손은 오래 전부터 피범벅이고, 아가씨는 피 같은 게 묻어선 안 되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미 반쯤 나간 손을 갈무리하고 이젠 아주 눈물이 짜여서 나올 정도로 얼굴이 찌푸려진 형님을 보며 쐐기를 박았다.

“열일곱이면 아직 많이 어려요 형님. 아빠가 필요할 나이입니다.”

“별이······ 나보다 너를 더 좋아하는 거 너도 잘 알잖냐.”

그래도 어떻게든 나를 붙잡으려하는 형님의 말에 나는 쓴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친한 오빠는 얼마든 대신할 수 있어도 아빠는 대신할 수 없잖아요.”

“······제길.”

그제서야 내 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는지 형님은 고개를 떨궜다.

웨에에에에에엥!!!

그 직후 임박해오는 이별의 시간, 빗길을 달리는 수십 개의 바퀴 소리는 끝이 머지않았음을 알려왔다.

여기서 더 꾸물댔다간 형님도 아가씨도 이 추악한 사건에 연루될 터, 나는 눈물을 주륵주륵 흘려대는 형님과 세상 편안하게 잠든 아가씨를 향해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형님, 이제 가볼게요. 제가 들어가 있는 동안 형님은 반드시 성공하셔야합니다. 아시죠?”

이곳에 오기 전 형님과 나눴던, 그 전까진 한 번도 한 적 없는 꿈 이야기의 연장선.

분명 부담이 될 마지막 인사에 형님은 눈물콧물로 엉망이 된 얼굴을 한 채 우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 고생하는 동안 진짜 개같이 성공해서. 네 꿈····· 내가 꼭 이룰 수 있게 최선을 다하마.”

“믿을게요. 언제나처럼.”

그 말을 끝으로 나와 형님은 반대 방향으로 갈라졌다.

나는 항구의 주황색 등에 밝혀진 밝은 대로변을 향해. 형님은 빛이 닿지 않는 어두운 샛길을 향해.

드디어 끝인가. 깡패 강진혁의 삶도.

젊은 혈기에 취해 뭣도 모르고 들어온 피와 주먹의 세계.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응당 지켜야하는 사회의 규율을 전부 무시하고, 그저 싸움질 좀 한다고 주먹으로 원하는 바를 이루려던 철부지의 이야기는 오늘로서 막을 내린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어? 선배님 저기 사람이······.”

“야 이 병신아! 누가 봐도 용의자잖냐! 빨리 달려가서 제압해!”

“네, 넷!”

경찰차에서 내린 두 형사가 나를 발견하고 한차례 호들갑을 떨더니, 두 눈에 가득 적의를 담은 채 달려왔다.

끼이이이이이이익!

그와 동시에 두 사람을 뒤따라온 십수 대의 경찰차가 빗길에 세워졌고, 난생 처음 보는 공권력의 무리를 보며 나는 얌전히 손목을 내밀었다.

“어, 어어? 선배님, 순순히 손을 내미시는데요?”

“그, 그러네? 아니 왜······. 아이씨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중요한 용의자다. 빨리 수갑부터 걸어!”

“그치만 반항도 안 하시고 이렇게 손목을 내미셨는데.”

“손목을 왜 내밀었겠냐! 지은 죄가 있으니까 내밀었을 거 아니야! 물론 네 말마따나 반항을 안 하긴 했지만, 우리는 오늘 이 항구에 있는 모든 사람을 체포하러 온 거다. 그러니까 빨리 수갑 채우고 고지해!”

“아, 네넵. 그······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흐핫.”

반항 없이 순순히 손목을 내밀자 벌어진 짧은 코미디와 어정쩡한 미란다원칙 고지에 헛웃음을 흘리며,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진짜 엄청나게 쏟아지네.”

“예, 예?”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하늘에선 그 어떤 얼룩도 씻겨 내릴 수 있을 것처럼 비가 쏟아져 내렸다.

“빗줄기가요. 정말 억세네요.”

“······아, 네. 초봄인데 이렇게 비가 내리니 또 얼마간은 엄청 추울 것 같네요.”

“야 새끼야! 너는 뭔 용의자랑 수다를 떨고 있어! 고지 끝났으면 빨리 끌고 가서 차에 태워!”

“흐익?! 네, 네 알겠습니다!”

절대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핏자국까지도 지워버릴 수 있을 정도로 억세게, 하늘이 비를 퍼부었다.

“그럼 고지도 끝났으니까······ 가, 가실까요?”

“아······ 예. 갑시다.”

다시 고개를 내린 나는 여전히 어벙벙한 경찰의 안내에 따라 경찰차로 발걸음을 옮겼다.

※※※

징역 10년.

살인미수를 저질렀다는 판결 하에 내려진, 내가 짊어져야할 세월의 책임.

처음 판결이 내려졌을 때 참관했던 형님은 노발대발을 하며 ‘깡패가 깡패를 팬 건데 그게 어떻게 살인미수가 되냐!’며 난동을 부리다 퇴장 당했고, 나는 이 판결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10년이면 나 같은 삼류 깡패새끼 하나 세상에서 잊히는데 충분한 시간이고, 나는 세상이 나를 잊어주길 바랐으니까.

“근데 이걸 살인미수로 10년을 때려버리네. 좀 신기하긴 하다.”

어디선가 나라는 존재를 묻으려고 하는 의도가 훤히 보이긴 하지만, 나도 마침 오래 살기를 원했기에 별 다른 의문은 갖지 않았다.

복수심이나 억울함 같은 건 억울하고 화날 때나 생기는 법인데 오래 살길 원한 내겐 징역 10년이라는 판결은 오히려 좋았으니까 말이다.

“아니 역시 10년은 너무 긴가? 7년 정도면 다 잊어주지 않을까?”

항소를 포기하고 판결을 받아들였기에 이제 와서 미련을 가져봤자 형량이 바뀌진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 미련이 남기는 남아서 굉장히 쓸데없는 잡생각을 하던 와중.

“아으 거 미안합니다. 갑자기 신호가 오는 바람에.”

화장실에 갔던 인계형사가 다시 돌아왔고 그가 내 몸을 묶은 포승줄을 잡는 것으로 나는 머릿속 잡념을 지워냈다.

“아뇨. 괜찮습니다.”

“허허, 그럼 당연히 괜찮겠죠. 내가 화장실에 있던 시간만큼 당신들은 교도소에 늦게 들어가는 거니까.”

“하하. 그건 그러네요.”

마지막 실없는 농담을 끝으로, 나는 인계형사의 인계에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 옮기려고 했다.

“참나, 항소도 안 하는 건 뭐야 대체. 어차피 해봤자 안 될 걸 알아서 그냥 포기한 건가?”

등 뒤에서 굉장히 재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진.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건 내 사건을 담당한, 내게 징역10년을 구형한 내 사건의 담당검사. 이름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기억할 필요가 없어서 기억을 하지 않은 거지만.

“아닌데. 해봤자 안 될 걸 아는 놈이 그런 짓을 저지르진 않았을 테고······.”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며, 담당검사는 터벅터벅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재수 없는 안경을 쓴 재수 없는 얼굴을 내게 향하며, 뭔가 석연치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꼬리 자르기? 든든한 뒷배라도 있는 거냐? 아닌데. 조사했을 때는 그런 거 없었단 말이지. 뒷배도 없고, 동료도 없고, 동기도 없는 놈이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참 이해가 되질 않아 이해가. 그래서 왔어. 왜 그랬냐 너?”

왜 그랬냐고 물으면 대답할 말은 많았지만, 얼굴이랑 목소리랑 표정이랑 아무튼 눈앞의 담당검사의 모든 게 재수가 없어서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 대답 안 하시겠다? 하긴 뭐 초범에 살인미수로 10년 받은 새끼한테 뭘 물어봤자 원하는 답을 얻는 건 무리긴 해. 인생이 좆같아서 아무 말도 하기 싫을 테니까. 그것도 지 인생 각 잡고 조져놓은 담당검사한테는 더더욱. 그치?”

나는 10년 받아서 오히려 좋다. 하지만 굳이 그 사실을 말할 이유 또한 없다.

징역 세게 받은 걸 오히려 좋아하는 미친놈이라고 낙인 찍혀서 검사 기억에 나라는 존재가 남게 되면, 나중에 출소하고 새 인생을 살 때 애로사항이 꽃필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고, 검사는 가소롭다는 듯 헛웃음을 뱉으며 말했다.

“그래, 이해한다. 인생 조진 새끼한테 궁금한 거 물어보는 내가 미친놈이지. 나는 윗분들이 시킨 대로 주동자 인생 조져놨으니 목표는 달성했고······ 보니까 말썽도 안 부리는 것 같고. 그래, 됐다. 가라 가. 형사님? 죄수들 인계 잘 부탁드립니다?”

“아······ 네, 넵.”

그 말을 끝으로 담당검사는 뭔가 흑막이 있다는 듯한 냄새를 풀풀 풍기며 등을 돌리고 떠났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참 할 일 없다. 검사라는 양반이.

내 판결에 수작을 부린 흑막이 있든 없든, 나는 내게 주어진 징역살이가 마음에 들었기에 그쪽에 관해선 그냥 신경을 끄기로 했다.

그래, 깜빵에서 자기계발 뭐할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바쁜데 흑막 같은 이상한 거에 신경 쓸 시간은 더더욱 없지.

내가 할 건 출소했을 때, 깡패 짓을 하는 동안 마음속에만 담아두었던 내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뿐. 다른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쓸 여유 따윈 없다.

그렇게 방금 전까지 재수 없는 말과 얼굴을 했던 검사는 머릿속에서 지운 채, 나는 10년 뒤의 내 모습을 그리며 굳게 다짐했다.

출소하면······ 반드시 최고의 아이돌 매니저가 될 거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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