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가 깡패임-2화 (3/53)

제 2화

사회초출(社會初出)

0.

“뭐? 아이돌? 매니저?! 네가?!!”

“네, 제가요. 아니 근데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이에요?”

“그럼 놀라지 안 놀랄 일이냐 이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강진혁이 아이돌 매니저를 하겠다는데?”

“아니······ 아무리 안 어울린다고 해도 꿈을 꾸는 건 자유잖아요.”

“그건 그렇지. 그런데 왜 갑자기 아이돌 매니저?”

“그야 뭐······ 아가씨 덕분이죠.”

“별이? 별이가 왜?”

“아가씨는 이름처럼 반짝반짝 빛나잖아요. 조만간 데뷔도 한다 그러고. 나름 아가씨의 오빠나 다름없는 입장에서 아가씨가 별처럼 빛나는 걸 보니까······.”

“나도 한 번 그 별을 만들어보고 싶다? 그런데 왜 하필 아이돌 매니저냐? 별이를 보고 꿈이 생겼다면, 그냥 별이 매니저해주면 되는 거 아니야?”

“아가씨는 혼자서도 빛날 사람이에요. 별로 따지면 태양 같은 사람이라고요. 그런 아가씨 매니저를 해봤자 제가 뭘 하겠어요? 기껏 해봐야 수발이나 들겠지. 그러니까 아가씨 매니저는 싫어요.”

“······뭐?”

“그리고 아가씨는 그룹 같은 거 절대 못할 성격이잖아요. 솔로가 천직인데······ 아무래도 예쁜 사람 한 명보다는 여러 명의 매니저가 되는 게 좋지 않겠어요? 다다익선, 다구빨······ 그런 진리?”

그래, 쪽수로 밀어붙이면 답 없지.

“암튼 그래서 아이돌 매니저를 해보고 싶어요. 맨날 사람이나 패던 내 손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희망을 만들어 보고 싶어.”

“······.”

“물론 지금은 해야 할 일도 많으니까. 말 그대로 그냥 꿈에 불과하지만요. 그니까 형님. 아직 저는 이 일 안 그만두니까 그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안 봐도······.”

“미친놈이 남의 딸 갖고 다구리에 장사 없다니 어쩌니 그게 할 말이냐!”

꽝!

1.

그래, 그랬었지.

교도소에 수감되기 한 달 전, 형님과 나눴던 대화가 바로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꿈에서조차 나오지 않던 사회에서의 일이 바로 오늘, 갑자기 떠오르는 이유는.

“수고했어요. 진혁 씨.”

“수고라고 할 것까지야.”

바로 오늘이 내가 이 교도소에서 나가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철컹.

두터운 철문의 잠금이 풀리고 문이 열리는 동안 지금껏 함께해온 교도관, 김 부장이 내게 응원을 건넸다.

“나는 진혁 씨라면 잘 해낼 거라 믿어.”

“네, 저도 제가 잘 해낼 거라 믿습니다.”

“흐하하. 진혁 씨는 말을 참 당당하게 해서 재밌다니까.”

“저는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요.”

“그렇지 그렇지. 특사도 아무나 받는 게 아니잖아? 물론 특사가 됐다고 해도 7년이나 살긴 했지만.”

“저지른 죄가 있으니, 달게 받았습니다.”

“캬, 마지막까지 진짜 멋있다 멋있어. 진혁 씨는 전과자지만 진짜 뭐라도 될 것 같아서 기대가 된다니까.”

내가 이 교도소에 들어온 해에 이곳에 부임한 김 부장이기에 7년간의 세월동안 나와 김 부장은 동병상련을 느끼며 나름 친해졌다.

물론 나는 죄수고 김 부장은 교도관이지만, 그래도 7년 동안 한 지붕 아래서 산 건 맞으니까.

있는 곳이 철창 안이냐 밖이냐의 차이일 뿐 나와 그는 친구나 다름이 없었다.

“곧 나가니까 하는 말인데. 김 부장님이 처음 날 봤을 때 생각이 나네요.”

날 보고 뉴스에도 나온 살인미수범이라며 뒤지고 싶으면 어디 한 번 꼬라지 한 번 부려보라고 난리를 쳤었·····.

“그, 그때는 내가 진짜 미안하다니까!”

김 부장의 다급한 목소리에 회상이 끊겼다.

나는 고개를 돌려 미안함 반, 어쩔 줄 모르겠음 반······ 그야말로 난색이라는 단어가 딱 들어맞는 얼굴을 하고 있는 김부장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오해 풀고 나서는 내가 몰래 부식도 넣어주고 그랬잖아. 응? 그것도 벌써 7년 전 일인데 심심할 때마다 사람 실수를 꺼내면 내가 미안해서 안절부절을 못해!”

그 날의 실수를 꺼내 김 부장을 놀리는 건 언제 해도 질리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괜히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해졌다.

그래서일까.

“다 이해해요.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신삥이 부장이 죄수들한테 얕보이지 않으려면 그렇게라도 했어야겠죠.”

“그래 알았어 나중에 전화하면 내가 소주랑······ 어, 응? 뭐, 뭐라고? 지금 뭐라고 했어?”

나는 김 부장과 친해진 후 7년 동안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았던 내 본심을 꺼냈다.

“이해한다고요. 김 부장님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거.”

인정과 이해를 입에 담는 것으로써 그날의 은원은 전부 잊는 것이다.

이제 이 일로 김 부장을 놀릴 수 없게 된 건 조금 아쉽긴 하지만, 놀림거리는 아직도 충분했고 오늘이 교도소에서 김 부장을 보는 마지막 날이 될 테니 하나 정도 용서해준다고 해도 상관은 없었다.

사실 은원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게, 오해는 금방 풀기도 했고 오해가 풀리고 나서 진심으로 사과를 들었으니 내게 원한 따위는 티끌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애초에 김 부장의 리액션이 재밌어서 지금까지 놀린 거지 리액션 없었으면 오해를 푼 날 용서도 입에 담았겠지.

리액션이 찰진걸 어떡해. 즐길 거리라고는 뭣도 없는 교도소에서 김 부장만큼은 놀릴 때마다 매번 즐겁고 새로운데 솔직히 못 참지.

그런 사실을 알 턱이 없는 김 부장은 두 눈에 감동을 숨기지 않고 나를 바라보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요, 용서해주는 거야?”

아니 여기서도 리액션이 좋아버리면 나만 나쁜 새끼 되는 거잖아요. 7년 전 일을 아직도 후회중인 사람을 7년 동안 놀린 나는 대체 얼마나 쓰레기가 되는 건데.

춥거나 무서워서 떠는 게 아닌, 진정으로 감동을 받은 사람만이 내보일 수 있는 몸의 떨림에 죄책감이 가슴을 푹 찔러왔다.

“진혁 씨······ 나, 나는 지금까지 진혁 씨 덕분에······.”

덜컹!

분명 들었다간 출소하고 나서도 은은한 죄책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을 김 부장의 말은 다행스럽게도 철문이 완전히 열리는 것으로 끊겼다.

하지만 갑작스런 소리에 잠깐 끊겼다고 해서 그대로 영영 말을 끊을 사람도 아니었기에, 나는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김 부장이 뭐라 할 새도 없이 빠르게 인사했다.

“지금까지 고마웠어요 김 부장님! 안 바쁘면 봅시다!”

“어, 어어? 자, 잠깐······.”

“그럼 저는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이만 갈게요! 안녕!”

그 말을 끝으로 나는 김 부장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재빨리 문밖으로 힘껏 땅을 박차 달렸다.

팡!

그렇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며 달린 내게 펼쳐진 건 사방이 콘크리트로 막혀있던 작은 감옥이 아닌, 새하얀 눈으로 덮여있는 드넓은 세상.

7년, 7년 만이야. 무려 7년 만이라고.

전력으로 내달려도 길이 끝나지 않는다.

그저 노란 운동장을 빙빙 도는 것뿐이었던 교도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넓고 길게 펼쳐진 아스팔트길.

7년 전에는 그냥 포장도로에 불과했던 그 길이 지금 내겐 그 어떤 길보다도 달리기 좋았다.

완벽히 통제되는, 교도소라는 아주 작은 세계를 처음 경험해본 나로선 지난 7년이라는 세월이 무지막지하게 답답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교도소에 들어가기 전, 10년 형을 받고 세상에서 잊혀질 수 있다며 좋아했던 나 자신을 줘패고 싶을 정도로 지난 7년은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젠 과거의 일, 나는 아직 20대였고 몸도 상하지 않았으니 뭐든지 할 수 있다.

이제부터는 앞만 보고 달려도 부족할 때야. 그러니 옛 생각은 여기서 끝. 지금부터는 내일만 보며 산다.

오늘만 보고 살던 깡패였던 나도, 어제만 보고 살던 죄수였던 나도 이젠 없다.

지금부터는 내일만 보고 사는, 주먹도 함부로 안 쓰고 말도 함부로 안 하는 그런 건설적인 내가 될 것이다.

“그러니, 그러기 위해선 내 찬란할 내일에 도움을 줄 사람이 필요하겠지.”

교도소에서부터 쉼 없이 달려 대로변에 도착한 나는 약 5년간 연락을 끊었던 내 유일한 아군에게 전화하고자 김 부장에게 받은 낡은 핸드폰을 들었다.

진짜 착한 사람이라니까.

김 부장에겐 언젠가 꼭 성공해서 크게 한 턱····· 아니 여러 턱 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기억에 남아있는 번호를 누르려던 순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번호는 안 바뀌었으려나? 바뀌었으면 망하는 건데.”

5년이라는 시간은 교도소에선 당연히 더럽게 길고, 사회에서도 강산이 반쯤 바뀔 정도로 긴 시간이다.

그러니 휴대폰 번호 또한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머릿속에 나라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핸드폰 번호를 바꾸는 무지몽매한 짓을 저지르진 않겠지만······.

“그 사람이라면 충분히 생각 없이 바꿔버렸을 수도······. 아니, 아니야. 설마 그랬겠어? 아무리 몸이 좋아서 머리가 고생을 안 하는 사람이라도 그런 멍청한 짓을 하진 않았겠지.”

일말의 가능성을 애써 부정하며, 나는 핸드폰에 입력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리링-! 띠리리리링-!

그러자 그리 멀지 않은, 시야 바깥쪽에서 누가 들어도 촌스럽고 시끄럽다 느낄 법한 벨소리가 들려왔고.

“생각이 없긴 누가 없어 임마!”

“······형님이 없죠. 이렇게 만나러 올 거면 편지라도 하든지. 길이라도 엇갈렸으면 어쩌려고 그랬어요? 어째 대책이 없는 건 7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네요.”

연결되지 않은 전화를 끊고, 나는 고개를 돌려 형님을 바라보았다.

“5년 만에 만나는 형님한테 그게 할 소리냐?! 7년이나 감방에서 살았으면 좀 교화가 돼서 나와야하는 거 아니야? 어째 들어가기 전이랑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 너는?”

5년 전, 내게 이런데 오지 말고 나를 위해서 일이나 열심히 하라는 말을 듣고 형님만 믿으라는 말만 남기고 더 이상 만나지 못했던 형님은 여전히 강건하게 그 자리에 서있었다.

정말 조금도 변하지 않은 형님의 모습에 나는 픽 웃으며, 형님이 한 말을 그대로 돌려줬다.

“그야 형님도 마찬가지구만 뭘.”

“흐핫. 그러냐? 5년 만에 보는데 늙거나 그러지 않았어?”

“이걸 칭찬으로 받네요. 역시 형님은 형님입니다.”

“그래 사나이 이성이 사나이 이성이지. 당연한 말이야 당연한 말.”

“배고프니까 밥이나 사줘요. 국밥 땡긴다 진짜.”

“그럴 줄 알고 이 주변에 국밥 맛집을 내가 또 알아놨지. 따라와라 진혁아.”

따라오라는 그 말을 남기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여전히 국밥처럼 든든한 형님을 보니 내가 진짜 나왔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교도소 안에선 좀처럼 지어지지 않던 미소를 입가에 만개한 채, 나는 형님의 옆에 나란히 서 그의 뒤를 좇았다.

오늘은 1월 1일. 새해 첫날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빌드업 부분은 파바박 넘어가자구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