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가 깡패임-3화 (4/53)

제 3화

이것 참 나카나카 낙하산이군요. (1)

1.

“참, 진혁아. 그러고 보니 너한테 할 말이 있었는데.”

아직도 김이 펄펄 나는 국밥을 무슨 냉수 먹듯이 후루룩 삼키던 형님이 국밥을 반쯤 남기고 뚝배기에서 입을 뗐다.

7년 전에는 매일같이 보던 광경이라 익숙했지만, 7년 만에 보니 저 양반이 얼마나 괴물딱지인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런 감상은 하등 쓸데가 없고, 형님이 할 말이 있다고 했기에 나는 잡념을 털어내고 형님의 말에 집중했다.

“네, 뭔데요?”

“아직도 아이돌 매니저 해볼 생각이냐?”

“네, 그럼요. 그거 하려고 그날 순순히 잡힌 건데.”

7년 전,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그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난다.

그 미친 새끼들이 뭣도 모르고 운 좋게 아가씨를 납치하지만 않았어도 그날이 그렇게 끝나진 않았을 텐데.

하지만 그 덕분에 깡패 짓에서 손을 씻고 새로운 나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생각하면 그래도 내 훗날을 위해 필요한 일을 했다고 여길 수 있다.

그리고 그날 도모했던 훗날이 바로 오늘이 되었으니 이젠 아무렴 좋지만.

이젠 진짜 아무렴 좋았다. 아마 이제부턴 그날을 생각해도 화도 잘 나지 않겠지. 왜냐면 지금부터는 내일만 생각해도 바빠서 죽을 테니까.

그리고 이 바쁠 것이라는 예상을 뒷받침해줄 근거는 형님의 입을 통해 나올 터, 나는 다시금 잡념을 걷어내고 형님의 입에서 나올 말을 기대했다.

“그럼 다행이네. 내가 기획사 하나 세웠는데, 거기 꽂아줄게.”

“푸읍!?”

그런데 그 근거가 예상했던 것을 한참이나 벗어날 정도로 무지막지했다.

너무 놀란 탓에 사레가 들려 입에 담고 있던 국밥이 절로 튀어나왔다.

촤아악!

입안에서 탈출한 국밥은 자연스레 마주앉아있던 형님의 안면을 타격했다.

“으에이씨! 더럽게스리!”

생고기도 뜯어먹을 것처럼 생겨서는 은근 깔끔을 떠는 형님이 의자를 뒤로 빼며 비명을 질렀지만, 그런 거에 신경을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콜록! 콜록콜록크헤엑크륵! 크헥!”

왜냐면 사레가 너무 심하게 들려버렸으니까. 당장 죽을 것 같은데 남한테 신경 쓸 새가 어딨어.

“어······ 무, 물 마셔라.”

얼마나 심하게 들렸는지 피해자인 형님이 먼저 컵에 물을 따라 내게 건넬 정도였다.

평소 웬만해선 평정을 흩트리지 않는 나지만, 이번 일은 그 스케일이 너무나 커다랬다.

“하아······ 하아······ 후우.”

그렇게 한 5분 정도를 기침을 하고 물을 마셔 겨우 진정을 하고 나니, 어느새 티슈로 얼굴을 닦은 형님이 진지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농담을 친 사람이 짓기엔 너무나 뻔뻔한 얼굴에 나는 형님에게 다시금 물었다.

“······진짜예요?”

“그럼.”

“진짜 연예기획사를 세웠다고요?”

“그래! 왜 계속 물어! 너는 내가 거짓말하는 거 봤냐?”

“아뇨 못 봤죠.”

아니 근데 왜 진짜지?

물론 5년 전에 형님이 사업을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일에 집중하라고 앞으론 면회도 오지 말라고 말하기까지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기획사를 세웠다는 말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아니 형님이 뭔 돈이 있어서?”

땡전 한 푼도 없·····지는 않더라도 재력은 서민 수준에 불과했던 사람이 5년 만에 기획사를 차렸다니 쉽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게다가 한다는 사업도 연예기획사랑은 전혀 관련이 없는 사업이었다.

무슨 사업을 한다고 했었지? 뭔······ 경호업체였나 그거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경호업체랑 연예기획사랑 대체 무슨 상관인데.

그 의문은 이어지는 형님의 대답에 완벽히 해소되었다.

“돈이야 많지. 내 딸이 누군데.”

“아. 맞네.”

형님의 딸, 내게는 아가씨 이별.

7년 전엔 데뷔를 앞둔, 그래봤자 고1인 솜털 아가씨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대한민국의 자랑, 슈퍼스타 노바가 해외투어 콘서트에서 최단기 전석매진을 달성하여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이에 전문가들은······.]

“마침 나오네요. 우리 아가씨.”

식당 TV에서 나오는, 대한민국을 빛내고 있는 현 최고의 한류스타 노바.

교도소 안까지 그 소식이 들릴 정도로 지금 이 나라에서 아가씨의 위상과 인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런 아가씨에게 기획사 하나 차리는 것 정도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겠지. 걸어 다니는 중견기업이나 다름없을 테니까.

아가씨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쥐뿔만큼도 없던 개연성이라는 게 성립되었다.

물론 아가씨 본인부터가 7년 만에 단신으로 현 한국 최고의 가수가 되는, 개연성이고 나발이고 다 말아먹은 미친 사기캐긴 했지만 그래도 이미 현실에서 일어난 일을 갖고 개연성이니 뭐니 따질 수는 없다.

“그나저나 아가씨도 참 효녀네요. 아빠를 위해서 기획사를 통으로 차려주기까지 하고.”

내가 마지막으로 본 아가씨······는 자고 있었을 때니 마지막으로 본 아가씨의 의식이 있었던 모습은 그야말로 말괄량이 그 자체였다.

가진 재능이 미칠 듯이 뛰어나고 미모 또한 배우 급이라고 해도 그때의 아가씨는 그냥 열일곱 아이였다.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사달라고 떼를 쓰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무작정 들이받는,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어린아이 말이다.

'오빠! 아가씨라고 부르지 말고 별이라고 부르라고 내가 했어 안 했어! 별이라고 안 부르면 이제부터 오빠랑 말 안 한다?'

그땐 그랬었지.

그런데 그렇게나 철없던 아가씨가 이젠 나라를 빛내는 슈퍼스타가 돼서 아빠 사업 자금을 대주다니······.

“잘 컸네 정말. 잘 컸어.”

내가 웬만해서는 눈시울이 붉어지지 않는 사람인데, 이번만큼은 눈가가 찡해지고 코끝이 시려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아가씨의 성장에 감동을 느끼고 있던 그때, 형님에게서 ‘얘는 뭔 생뚱맞은 얘기를 하고 있냐?’고 묻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뭔 소리야. 기획사는 나를 위해서 차려준 게 아니고 너를 위해서 차려준 건데.”

“네?”

“이제 너가 나오려면 3년밖에 남았다느니 어쩌니 하면서. 네가 나왔을 때 다른 기획사로 눈 못 돌리게 나 보고 아예 기획사 사장이 돼서 너 잡으라고 하던데?”

형님이 기획사를 차린 게······ 아가씨가 그 자금을 대준 게 전부 나 때문이라고?

“아, 아니 그게 뭔 소리래요? 아가씨가 저 오늘 나온 거 알아요? 아니 제가 특사로 나온 걸 알아요?”

형님께 오늘 특사로 풀려난다는 편지를 보낼 때, 아가씨에겐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말을 덧붙였었다.

왜냐면 아가씨는 세상을 빛내는 연예계의 태양과도 같은 존재였고, 나는 빨간줄이 그어진 흉악전과자였으니까.

아무리 깡패로 살지 않겠다 다짐했다 하더라도 이미 그어진 빨간줄은 없어지지 않고, 교도소에서 7년이나 복역을 했다는 사실도 없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편지에 대고 몇 번이나 강조하고 또 강조했는데. 그걸 홀랑 말해버리고 날 붙잡기 위해 기획사를 차려버리기까지 해?

오늘이야말로 하극상 각인가. 서열정리를 제대로 할 때인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던 그때, 형님이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아니. 별이는 모르지. 애초에 너랑 관련된 일 아니면 나랑 문자도 잘 안 하는 애인데.”

“그럼 기획사는······.”

“미리 세워둔 거지. 차린 건 1년 전에 차렸어. 네가 딴 곳으로 눈을 못 돌리게 만들 정도로 대단한 기획사를 만들라나 뭐라나. 경호업체 사장일하는 것도 바빠 죽겠는데 이것 때문에 등골이 휜다 휘어.”

그렇게 말하는 형님은 진심으로 힘이 드는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세상 떠나가라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믿던 부하에게 배신을 당하고 자금을 다 털렸을 때도 으하하 웃으며 이제 털릴 것도 없어졌으니 뒤 신경 안 쓰고 들이받을 수 있겠다며 좋아했던 형님인데 이렇게 축 처진 모습을 보니 괜시리 마음이 아려왔다.

“아무튼 네가 말한 대로 별이한테는 네가 새해특사로 출소했다는 거 말 안 했으니까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네, 고마워요 형님.”

“고맙긴 뭘. 우리 사이에.”

‘우리 사이’라는 말에 괜시리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나와 형님은 그야말로 친형제보다도 가까운 사이, 평범한 가족간의 정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깊고 끈끈한 우애를 나눈 의형제였다.

게다가 7년 전 내가 다 뒤집어쓰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낄 형님에게 조금이라도 짐을 덜어주고 싶어서 무조건 성공하라 말한 건데. 이걸 진짜로 해내다니.

자금은 아가씨가 대줬다고 해도 결국 형님이 내 꿈을 이루는 걸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지킨 건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애초에 전과자를 매니저로 써줄 기획사나 연예인이 어디 있겠냐고.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이려던 그때, 형님이 조금 멋쩍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근데 참고로 매니저로 꽂아줄 수는 있는데 조금 문제가 있다.”

“무슨 문제요?”

“그 기획사에 아이돌이······ 아니 연습생조차 없어.”

“······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합니다!!! 다음화는 새벽에 올라갑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