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화
이것 참 나카나카 낙하산이군요. (2)
1.
기획사란 일반적으로 연예인의 활동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회사를 말한다.
거기에 더해 한국에서 기획사란 앞서 짚은 개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원뿐만이 아니라 직접 연예인을 발굴하고 육성해서 키워내기까지 하는······ 연예인이라는 직업의 근본이나 다름없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곳에 연예인이 없다는 건, 소가 없는 외양간이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아니······ 소속 연예인이 없는데 그게 어떻게 기획사예요?”
어이가 없어 묻자 형님은 눈썹 한쪽을 올리며 내 오해를 정정했다.
“아이돌이 없다고 했지 연예인이 없다고는 안 했는데?”
“아하.”
아직 아이돌을 만들지 않은 기획사구나. 그래 뭐 기획사에 소속 연예인이 있고 그러면 별 문제는 되지 않지.
오히려 아이돌을 처음 만들 때부터 참여하는 게 꿈이었던 나한테는 아이돌만 없고 나머진 다 있는 기획사가 좋았다.
연예인이 없는데 매니저를 뽑는 건 어불성설이니 원래 있던 연예인들의 매니저 역할을 하다가 훗날 아이돌을 제작한다고 할 때 거기에 비비는 게 자연스럽고 좋다.
나도 이쪽 업계에 대해선 모르는 것 투성이······ 아니 솔직히 말하면 아예 백치나 다름없으니까. 연예인들 매니저 일 하면서 방송국 일에 대해 배워보는 게 훨씬 낫지.
김 부장이 연예계 관련 서적들을 종종 사다주긴 했지만 아무래도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게 사실이니까.
그래서 고개를 끄덕거리고 조금 식은 국밥에 숟가락을 들이 밀던 찰나, 형님의 면목이 없다는 듯한 목소리가 내 손을 멈췄다.
“근데 그······ 소속 연예인이 한 명이야.”
“예? 어······ 혹시 아가씨?”
소속 연예인이 한 명이라는 말에 문득 아가씨가 생각나 입에 담았지만, 당연하게도 아니었다.
“물론 별이는 아니지. 별이는 아직 원래 기획사랑 계약기간도 남았고, 자금을 대줬을 뿐 대외적으로는 내 기획사랑 아무 연관도 없다고 알려져 있으니까.”
“역시 그렇죠? 그러면 그게 누군데요?”
“음······ 말해도 모를걸. 그렇게 유명한 연예인이 아니라서. 요즘 말로 하자면 좀 많이 하꼬······라고 해야 할까?”
“하꼬?”
“응. 진짜 인기라고는 쥐똥만큼도 없는······ 아예 인지도 자체가 바닥을 치는 그런 놈이지.”
형님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거짓말을 해야만 하는 순간을 제외하면 거짓말을 입에 담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좀처럼 변하지도 않는 사람이니, 못 만난지 5년이 지난 지금도 그 성정이 바뀌었을 것 같진 않았다.
게다가 지금은 거짓말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지금 형님이 하는 말은 진실일 확률이 높다.
그러면 진짜 인지도가 바닥을 치는, TV에 얼굴만 몇 번 비췄을 뿐인 그런 사람이라는 뜻이라는 건데.
하지만 그래도 연예인은 연예인. TV에 나왔던 사람이라면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수도 있기에, 나는 형님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그래도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수도 있으니까. 이름이라도 말씀해주세요.”
“최철훈.”
“모르겠네.”
진짜 구라 안 치고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그치?”
“사진이라도 한 번 보여줄래요? 이름은 몰라도 얼굴은 알 수 있으니까······.”
“사진? 잠깐만, 검색해도 안 나올 거고······ 처음 기획사를 세웠을 때 기념으로 찍었던 단체사진이 있지. 자.”
평범한 엄지보다도 두꺼운 검지로 핸드폰 액정을 툭툭 만진 형님은 어디 한 번 보라며 내게 화면을 내밀었다.
“여기 보이지? 얘가 최철훈이야. 머리 빡빡 깎은 놈.”
형님은 손가락으로 사진 속 양복이나 오피스룩을 입은 직원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사복을 입고 있는, 빡빡머리의 근육질 남자를 가리켰다.
나는 그 사진 속 인물을 유심히 바라본 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진짜 난생 처음 보는 얼굴이네.”
“그치?”
물론 내가 7년간 교도소에 있었고, 혼거실 내에 있던 TV에서도 뉴스나 검열된 방송만 나오니 연예인의 얼굴을 보고 모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걸 감안하더라도 사진 속 이 최철훈이라는 남자 연예인에겐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건······.
“인상이 진짜 밋밋하네요. 머리를 밀고도 밋밋한 사람은 보기 드문데.”
“맞지? 나는 요즘도 얘 얼굴 떠올리라 하면 잘 못 떠올리겠더라.”
내가 깡패였던 시절 깡패는 깡패다워야 한다며 머리를 빡빡 깎고 다녔던 깡패새끼들을 드물지 않게 봤던 기억이 있었다.
아무리 인상이 순한 놈들도 머리를 빡빡 밀면 인상이 더러워져 인상적으로 변하는 게 보통인데 이 사람은······ 인상이 밋밋의 극치였다.
“이런 얼굴로 어떻게 연예인이 됐대요? 그쪽 업계는 인상이 생명 아닌가?”
“맞아. 그래서 몸이 좋잖아.”
“그건 그러네요.”
사진 속 최철훈은 긴팔 옷을 입고 있었지만 천 한 장으로는 그 울퉁불퉁한 근육을 전부 가릴 수 없었다.
예술가가 조각한 근육질 몸에 아이가 만든 눈사람 얼굴을 갖다 붙인 듯한 모습이었는데, 묘한 언밸런스함이 아주 조금이지만 눈길을 끌었다.
“이 정도면 보디빌딩 대회 나가도 우승하겠는데요?”
“맞아. 작은 대회지만 입상도 했대.”
그건 대단하네. 근데 대회에서 입상까지 했는데 인터넷에 검색을 해도 안 나온다고? 대체 얼마나 인기가 없는 거야.
“아무튼 얘가 우리 기획사에 소속된 유일한 연예인이다. 방송 하나에 패널로 나가고 있긴 한데······ 말주변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상도 밋밋해서 그냥 나가고만 있어. 인상이 밋밋한 게 오히려 다른 출연자들을 받쳐준다나 뭐라나?”
“그래도 방송에 나가고는 있네요. 그거 하나는 다행이네.”
하지만 기획사가 방송 하나 나가는, 그것도 인지도 하나 없이 화면 구석에 잠깐잠깐 얼굴을 비출 뿐인 패널로만 나가는 연예인 한 명으로 유지될 리가 없었다.
아마 그 외의 모든 유지비용은 아가씨가 대주고 있겠지.
형님의 말대로라면 나를 다른 곳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뭐, 이놈 얘기는 이쯤하고 일 얘기로 넘어가자면. 아마 이번에 내가 매니저로 꽂아준다면, 이 녀석의 로드매니저로 일을 해야 할 거다. 뭐, 그래봤자 일주일에 한 번 나가는 것 말고는 하는 일도 없겠지만.”
“그렇구나.”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일단 방송 일을 경험해볼 수 있을 테니.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거다. 물론 네가 하기 나름이겠지······.”
형님은 잠시 말을 멈추고 내 얼굴을 슥 훑은 뒤, 픽 실소를 뱉으며 말을 이었다.
“근데 너는 알아서 잘 할 놈이니까. 꼰대같이 훈수는 그만 둘게.”
“네. 그럼 내일 기획사 사장이 된 형님을 볼 수 있는 건가요?”
“응? 아니? 나는 기획사 사장 아닌데? 사장은 따로 있어. 애초에 직원조차도 아니지. 이성경호 일로도 바빠 죽겠는데 기획사까지 맡을 여유 없어.”
“네? 형님이 기획사 세웠다면서요.”
“응. 기획사는 내가 세웠지. 그런데 내가 뭘 아냐? 할 줄 아는 거라고는 몸 쓰는 일밖에 없는데. 그래서 잘 할 수 있고 뜻이 맞는 놈한테 다 넘겼다. 나는 뭐······ 투자자라는 입장이지.
하는 일은 달라졌다고 해도 예전처럼 다시 형님이랑 같이 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아무 생각 안 하고 있었는데, 기획사 사장이 다른 사람이라니.
형님에 대해선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게 많지만, 그 사장이라는 사람은 방금 처음 들었기에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형님이랑 뜻이 맞았다면 나쁜 사람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마음이 걸렸다.
“저는 전과자인데, 그 사장이라는 사람이 곱게 받아줄까요?”
왜냐면 나는 인생에 빨간 줄이 그어져있는 전과자, 그것도 살인미수라는 흉악범죄를 저지른 흉악범이었으니까.
살인미수가 사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미 나는 살인미수범이었다. 그런데 그런 나를 낙하산으로 꽂기까지 한다는 건 미운 털이 안 박힐래야 안 박힐 수가 없게 만들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형님은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호탕하게 말했다.
“곱게 안 받아주면 지가 어쩔 건데? 그 건물주도 나고 지분도 내가 더 많은데 말이야.”
“여기서 갑질을?”
“으하하하 권력은 쓰라고 있는 거 아니겠냐? 애초에 너 안 뺏기려고 만든 기획사다. 그러려고 그 놈에게 전권을 위임한 거고. 물론 나한테 지분은 다 있지만. 아무튼 그러니 진혁이 너는 마음 놓고 들어가도 돼.”
형님이 기획사 사장이라면 낙하산으로 꽂아준다고 하더라도 별 신경을 안 써도 될 텐데. 형님은 기획사에 관여도 하지 않는다니.
“실화냐.”
아무리 형님이 건물주와 투자자의 권력을 사용한다고 한들 낙하산이라는 단어와 전과자라는 단어가 가져다주는 부정적인 인식을 뒤엎을 수는 없는 법.
본인이 말한 대로 나를 꽂아준 다음엔 기획사엔 관여조차 하지 않을 형님이고, 형님과 1년 정도 시간을 보냈다면 그 기획사 직원들이 형님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지 못할 리도 없었다.
그러니 내가 그 기획사에 들어가면 온갖 눈초리를 받을 게 자명할 터.
그 상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거 진짜······ 빡세겠네요.”
“흐하하하하! 뭐, 그래봤자 깡패 짓보다 빡세겠냐? 적어도 눈초리는 맞아도 칼침 맞을 걱정은 없잖아!”
“하아······.”
그냥 칼침 맞는 게 속은 더 편하겠는데.
진짜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느새 새벽 10시네요? 휴! 아직 새벽이야! 지각 안 했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연참이니까 봐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