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화
이것 참 나카나카 낙하산이군요. (3)
0.
“예? 뭐, 뭐를 어떻게요?”
강진혁의 형님, 이성의 말에 맞은편에 앉아있던 남자가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바로 앞에서 들어놓고도 이렇게 되묻는다는 건 눈앞에서 들은 사실을 부정하고자하는 의도가 드러난 행동이지만, 대부분의 문제를 무작정 직진으로 해결할 수 있다 믿는 이성에겐 통하지 않았다.
“뭘 어떻게긴. 내일 모레에 내 동생이 오는데 걔를 회사에 꽂으라는 말이지.”
“그, 그게 대체 무슨······.”
지나가다 듣는다면 누구든 더럽고 추악한 갑질이라고 생각이 될 법한 일이고, 평생을 당당하게 살아온 이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당당했다.
왜냐면 그에겐 다짜고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있었으니까.
“뭘 그렇게 어리버리해? 너 나랑 처음으로 쓴 계약서에도 적혀 있잖아. 갑은 계약기간 중 단 한 번 을이 지정한 사람의 채용을 받아들여야한다. 여기도 쓰여 있구만 뭘.”
이성은 웬만한 성인 남성의 엄지보다도 두꺼운 검지로 테이블 위에 놓여진 계약서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그곳엔 이성이 방금 말한 대로 채용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조항이 쓰여져 있었다.
1년 전, 이성과 남자가 기획사를 세우며 계약서를 쓸 때 명시되어있던 조항이었다.
“그래도 이건 좀 아니잖습니까······.”
무턱대고 사람 한 명 꽂으라 말하면 그건 갑질이지만 이렇게 계약서에 쓰여진, 그것도 1년 전에 상호간의 동의를 하고 쓴 조항을 보여주며 이대로 하라고 하는 건 갑질이 아니었다.
왜냐면 그냥 계약서에 쓰여 있는 조항을 이행하라 말한 것뿐이니까.
이성의 말을 들은 남자도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꺼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왜냐면.
“다짜고짜 전과자를······ 그것도 살인미수범을 회사에 채용시키라뇨.”
이성이 채용하라는 사람은 과거 살인미수를 저지른 깡패 중의 깡패였으니까.
아무리 계약서에 적혀있고, 기획사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모든 자금을 대주고 있는 이성의 말이라고 해도 흉악범을 채용하는 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확실히······ 살인미수범을 채용하는 건 사장으로서 리스크가 굉장히 크지. 나 같아도 살인미수를 저질렀던 전과자가 채용시켜달라 오면 허리를 반대로 꺾어버릴 거다.”
대뜸 채용하라는 말을 한 이성 또한 이해가 된다는 양 고개를 끄덕였고, 그 끄덕임에 남자는 혹시나 채용거부를 받아들이는 게 아닐까 희망의 편린을 느꼈다.
“그, 그렇죠?! 형님도 지금 형님이 하신 말씀이 얼마나 억지인지 느끼신 거죠?”
그러나 이성의 입에서 이어져 나온 건 그의 희망을 산산이 조각낼 절망의 덩어리였다.
“그런데 그 녀석은 살인미수 같은 거 저지른 적 없어. 그거 다 누명이거든. 물론 무슨 생각인지 그 녀석은 항소 한 번 안 하고 전부 뒤집어썼으니 결국 살인미수범으로 확정이 되었지만.”
“네?”
“쌈박질을 한 건 맞고, 법이 아닌 폭력을 수단으로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고 했던 건 분명히 바르지 않은 일이지만 옳은 일이었어. 그날 네가 그 장소에 있었다면 아마 그 녀석과 똑같은 짓을 했을 거다.”
“아, 아니 그게 무슨······ 대체 뭔 소립니까 그게?”
이성이 한 말은 남자가 듣기엔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의미를 알 수 없는 것뿐이었다.
“마음 같아선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말해서 진혁이 그놈이 진짜 진국이라는 걸 네게 알려주고 싶다만······ 안타깝게도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너도 방송업계에서 오랫동안 일 해봐서 알잖냐. 몇몇 일은 모르는 게 낫다는 걸.”
남자는 이성의 과거를 대략적으로나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남자는 이성의 입에서 나온 ‘모르는 게 낫다.’라는 말은 정보를 숨기기 위함이 아닌 정말로 모르는 게 낫다고 알려주기 위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판결을 받고 징역을 살고 나온 전과자를 대뜸 채용할 수는 없는 법, 남자는 이성을 어떻게든 설득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바로야. 정바로. 그 녀석도 내 동생이지만, 나는 너도 내 동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보다 먼저 나온 이성의 말에, 남자 정바로는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입을 다물었다.
이성은 그런 그를 씁쓸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흔들리는 마음에 쐐기를 꽂아 넣었다.
“그리고 너는 내가 어떤 놈인지 알고 있잖아. 내가 어디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극악무도한 흉악범죄자를 동생이라고 싸고 돌 사람이냐?”
이성의 질문에 정바로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결국 항복을 입에 담았다.
“······아뇨. 아니죠. 형님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죠.”
자기가 졌다는 말을 한 건 아니지만, 이성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는 건 결국 자신의 의지를 굽혔다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렇게 설득인 척하는, 갑질처럼 보이는 권리행사를 마친 이성은 솥뚜껑 같은 손바닥으로 정바로의 어깨를 팡팡 두드리며 부드럽게 부탁했다.
“역시 그렇지? 그럼 부탁한다. 출소한 다음날 바로 보낼 테니까 잘 좀 받아줘.”
하지만 정바로도 나름 기획사의 장(長)이라 불리는 사람이었기에, 이성의 말이라면 껌뻑 죽는 예스맨이 될 수는 없었고.
“일 못하면······ 마음에 안 들면 바로 잘라버릴 겁니다.”
소심하게나마 자신의 의지가 완전히 꺾이지 않았음을 말로써 표현했다.
“그래, 얼마든지.”
그리고 돌아온 건 절대 마음에 들지 않을 리가 없다는 듯한 자신감 넘치는 이성의 대답이었다.
1.
“뭔 주소가 전부 도로명인지 뭔지로 바뀌어서 몰랐는데······ 여기라고?”
형님이 알려준 주소에 도착하니, 그곳엔 5층짜리 건물이 당당히 자리 잡고 있었다.
외벽에 세로로 나열된 ‘바른길엔터테인먼트’라는 글자를 보니 제대로 찾아온 건 맞았다.
그런데 왜 맞게 찾아와놓고 이렇게 벙쪄있냐고 묻는다면, 눈앞의 건물이 내겐 너무나 익숙한 건물이기 때문이었다.
“참나······ 진짜 작정을 했구만. 형님도 아가씨도.”
눈앞의 바른길엔터테인먼트 사옥은 7년 전 형님이 두목이고 내가 조직원이었던 정도파(正道派)의 본거지, 사실상 내 집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이 건물, 형님이 사업자금으로 썼을 줄 알았는데. 그대로구만.”
리모델링이라고 해봤자 바른길엔터테인먼트라는 간판과 외벽 외장재를 조금 손 보고 밖에서 몰래 보지 못하게 창문을 싹 다 특수유리로 바꿨을 뿐 나머지는 내가 알던 정도파 건물 그대로였다.
“게다가 이름도 정도파(正道派)에서 바른길엔터테인먼트로 바뀐 거면 사실상 별로 달라진 것도 없네.”
깡패시절 나와 형님은 허락되지 않은 폭력으로 목적을 달성하는 깡패였지만, 언제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만을 행해왔다.
그래서 지어진 것이 바로 정도파, 말 그대로 올바른 길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이름이었고 ‘바른길엔터테인먼트’라는 이름으로 바뀐 지금도 그 의지는 끊기지 않고 내려오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깡패생활은 이제 다 청산했는데 말이지······.”
아가씨가 기획사를 차릴 수 있게 자금을 대줬다고는 하지만, 이 건물을 기획사로 만들 생각과 바른길이라는 이름을 택한 건 형님일 게 분명했다.
형님은 자기 회사에 출근하느라 곁에 없었지만, 건물을 보고 있자니 어째서인지 형님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진혁아. 네가 과거를 청산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바른 길을 추구하던 예전의 너를 잊어선 안 된다.’
“참나······ 그런 말하기 부끄럽지도 않나. 형님은.”
괜히 쪽팔려서 잠시 얼굴에 열이 올랐지만, 형님이 내게 전하고자 하는 바는 충분히 알 수 있었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대놓고 표현하지 않아도 알아서 어련히 잘 합니다. 앞으로 잘 할 거고.”
지금까지 그래왔듯 나는 결국 잘 해낼 것이다. 예전처럼 깡패짓을 하진 않아도 예전의 마음가짐을 잊지 않는다.
다시 한 번 그렇게 다짐하며 나는 7년 만에 내 집인 정도파 건물, 지금은 바른길엔터테인먼트 사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후우······ 자, 드가자!”
※※※
“······.”
“······.”
“······.”
“······저, 저기요.”
“네, 뭔가요?”
“그······ 제가 뭐 도와드릴 거라고 없을까요?”
“없는데요.”
“네, 넵.”
상대 조직을 박살내기 위해 선봉에 섰을 때보다도 당당하게 들어왔지만, 그 당당함은 들어온 지 30분 만에 완전히 박살이 나버렸다.
지금 내게 남아있는 건 어색함과 멋쩍음뿐.
신입사원이라면 응당 가져야할 젊은이의 패기라든지 용기라든지, 아무튼 그런 인상적인 것들은 더 이상 내게 남아있지 않았다.
그야 그럴 만도 한 게.
“······.”
“······.”
“······.”
“······.”
“······.”
“······.”
자신의 자리에 앉아있는 직원들 중 그 누구도 대화를 하지 않고, 업무도 보지 않고, 그저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며 가만히 있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신입인 나를 케어할 수 없을 정도로 바빴다면 분위기라도 읽으며 가늠을 잡았을 것이고, 차라리 푸대접을 했다면 부정적인 감정을 연료삼아 승부욕을 불태웠을 텐데.
······최철훈 씨 올 때까지 여기 앉아있으라는 말하고 나서 30분 동안 아무 것도 안 시키고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는 거 실화냐.
진짜 아무것도 안 해버리니. 그 흔한 잡일조차도 안 해버리니 열의를 불태울래야 불태울 수가 없었다.
목표가 있어야 열의를 불태울 텐데 목표가 없잖아. 언제 올지 모르는 그 최철훈이라는 사람 기다리는 것 말고는.
그렇다고 최철훈이라는 사람을 기다리는 데에 열의를 불태울 수도 없고.
아니 애초에 기다리는 것에 열의를 불태운다는 게 대체 뭔데. 이게 연습생도 없고 소속 연예인이라고는 한 명 밖에 없는······ 그런데 자금은 외부에서 대주니까 가만히 있어도 별 상관 없는 기획사의 실태인가?
정말 여러 의미로 끔찍했다.
일하지 않고 시간만 때워도 월급을 주는 직장이라니. 말만 들으면 누구나 바랄 것 같지만, 그게 바로 이런 곳을 의미한다는 걸 안다면 그 생각을 철회할 것이다.
그렇다고 멍하니 있자니, 안 그래도 낙하산에 전과자인데 밉보일 게 분명해서 멍을 때리고 있을 수도 없어.
결국 나는 집중할 게 없는 상황에서 억지로 허공을 보며 집중하는 것을 택했고, 30분이 지난 지금 사람이 집중할 게 없는 상황에서 의식을 또렷하게 유지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어떻게 된 게 회사가 교도소보다 더 빡세. 이거 이러다 진짜 미쳐버린다. 화장실이라도 가서 정신을 환기시켜야······.
그런 생각을 하며 의자에서 엉덩이를 일으키려던 그때.
위이잉-.
사무실로 들어오는 자동문이 열리고, 민머리의 몸 좋은 남자가 들어왔다.
그리고는 눈을 부리부리하게 뜬 채, 내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책상을 쾅 치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난 너 같은 게 우리 회사 다니는 거 인정 못해. 밖으로 나와 이 전과자 새끼야.”
갑작스런 욕설에 위협적인 태도.
누가 봐도 싸움을 걸어오는 걸로 보이는 그 모습에 나는 세상 반갑게 빵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그래! 고맙다 진짜로!”
이제야 살겠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