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화
이것 참 나카나카 나카마(동료)군요. (1)
1.
근데 이제 어쩌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지루함의 지옥에서 꺼내진 것까지는 좋았지만, 날 부른 최철훈의 태도는 누가 봐도 싸움을 걸기 위해 안달이 난 것처럼 보였다.
아니, 안달이 난 것처럼 보인 게 아니라 안달이 난 게 확실하지. 초면에 전과자 새끼라고 들이받아 버린다는 건 맞짱뜨자는 말이나 다름이 없으니까.
정말 곤란하단 말이지.
사실 내가 깡패였을 시절이라면 다른 걸 신경 쓸 것도 없이 받아치면 그만이었지만, 7년 전 교도소에 들어간 순간부터 나는 깡패 짓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과거를 씻어내기 위해 군말 없이 10년형을 받았는데, 7년 만에 나와 놓고 또 깡패 짓을 벌인다는 건 내 지난 7년간의 고난이 무의미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니까.
그간의 세월은 새로운 나로 거듭나기 위한, 어제도 오늘도 아닌 내일을 바라보면 살기 위한 인고의 세월이었다.
그러니 이렇게 대놓고 싸움을 걸어온다고 그대로 받아주는 건 내게 있어서 절대 해선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래, 대화로 해결해보자. 살면서 싸움이 걸렸을 때 대화를 시도해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그래도 나도 사람이긴 하니까. 대화로 해결할 수 있을 거야.
전과자라는 이력만큼 사람의 눈의 두꺼운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는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죄수였을 때도 내게 그렇게나 적대적이었던 김 부장을 친구로 삼은 적이 있는 경력이 있는 사람.
그러니 이번에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속을 터놓고 알려준다면 내가 ‘피와 싸움에 미친 깡패새끼’라는 오해를 풀고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좋아, 대화를 시도해보자. 먼저 말로 하자고 하는데 선빵을 갈길 현대인은 거의 드물다고! 설령 선빵을 갈기더라도 참아낸다면 그때는 어이가 없어서라도 주먹을 멈추고 대화를 해보겠지.
한 대 얻어맞을 각오까지 하며 최철훈에게 입을 열려는 그때.
“뭐해? 안 들어오고.”
“어, 어?”
최철훈의 불만 가득한 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사우나 입구 앞이었다.
“나는 너 인정 못하니까 한 번 인정시켜봐. 네가 과연 쓰레기나 다름없는 더러운 전과자인지, 아니면 이성형님의 말대로 억울하게 누명을 쓴 피해자인지.”
최철훈은 밋밋하게 생긴 얼굴을 최대한 험상궂게 만든 채, 자신의 뒤 사우나 입구를 엄지로 가리키며 말을 맺었다.
“바로 이 진실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우나에서 말이야.”
뭔가 상황이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2.
바른길엔터테인먼트 사장 정바로에게 매니저가 생긴다는 말을 들었을 때, 최철훈은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매니저라니. 내게 매니저라니!
연예인에게 매니저가 배정되는 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고, 오히려 당연하기까지 한 일이었지만 최철훈과 같은 무명연예인에겐 매니저가 붙는다는 건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매니저가 붙는다는 건 매니저가 붙었을 때 생기는 지출보다 훨씬 많은 수익을 벌어들여야 한다는 것.
신생 아이돌이나 비슷한 류의 신인들을 제외하면 매니저란 수요가 있는 연예인에게 붙는, 이른바 ‘내가 연예계에서 밥 벌어먹고 산다.’라는 징표와도 같았다.
그러니 하는 방송일이라곤 새벽시간대에 패널로, 그것도 정해진 대사라곤 ‘오오······.’ 나 ‘와아!’같이 감탄사뿐인 무명연예인인 최철훈에게 매니저란 자신과 인연이 없는 단어라고밖엔 여겨지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매니저가 붙는다고? 세상에나!
매니저가 붙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최철훈에겐 ‘근데 어째서 나한테 매니저가 붙는 거지?’같은 의문은 생길 수 없었다.
왜냐면 그에게 매니저란 꿈에서나 볼 수 있었던, 정말 꿈같은 성공의 증표였으니까.
최철훈은 지금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면 새처럼 날아갈 수 있을 거란 자신이 있었다.
그 정도로 기뻤고, 심장이 두근두근을 넘어서 쿵쾅쿵쾅 뛰며 전신에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었다.
그래, 그 붙는다는 매니저가 전직 깡패에 살인미수를 저지른 전과자라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
이성형님이 억울하게 누명을 쓴 피해자고, 자기랑 호형호제를 하는 동생이라고 말했다고는 들었지만······ 그런 말만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어.
그도 그럴게 강진혁은 전직 깡패였고, 전과자에 살인미수범이었다.
말만으로 ‘그래, 그렇구나. 반가워요.’라고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흠이 커다랬다.
그렇기에 최철훈은 그를 시험하기로 정했고, 예전부터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선 사우나에 데려가는 게 직빵이라는 지론을 갖고 있었던 그는 강진혁를 사우나에 데려갔고.
“음······ 이거 참, 뭐라고 해야 할지.”
사우나 라커 앞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강진혁의 옆에 서게 된 지금 이 순간에 이르렀다.
속옷 한 장 없이 완전히 탈의해 빛나는 근육질 몸을 드러낸 최철훈과는 달리 강진혁은 아직 겉옷 하나 벗지 못한 채 쩔쩔매고 있었다.
최철훈은 그런 강진혁을 보고 일부러 들리게끔 그를 향해 코웃음을 쳤다.
“하, 왜 그러냐? 뭐 부끄럽기라도 한가보지?”
최철훈이 가장 혐오하는 부류 중 하나가 신체를 도화지처럼 사용하는 것이었다.
문신은 손바닥에 가려질 정도로만, 혹은 가족의 이름을 새기는 것만 겨우 인정했고 그 외에는 전부 부모님께서 내려주신 소중한 몸을 소중히 하지 않는 불효자들이라 여겼다.
그리고 이게 바로 최철훈이 깡패들을 혐오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너도 뭐 전신에 풍경 같은 거 그려놓고 그러냐? 부모님이 내려주신 소중한 육체를 도화지처럼 막 써놓고 이제 와서 남한테 보여주기는 좀 그래?”
왜냐면 깡패들은, 그것도 살인미수라는 중범죄를 저지를 만큼 흉악한 깡패오브깡패는 보통 전신에 짐승 혹은 풍경이 그려져있기 망정이니까.
그래도 당당한 것보다 부끄러워하는 게 낫긴 하지. 만약 부끄러운 줄 모르고 옷을 벗어 문신을 드러냈다면 바로 까버렸을 테니까.
까버릴 수 있는 이유는 사장인 정바로가 최철훈에게 ‘연예인으로서의 실력은 몰라도 네 사람 보는 눈은 확실하니까. 네게 그 매니저를 해고할 수 있는 권리를 줄게.’라며 그에게 권한을 양도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신문신이 있는 깡패새끼를 용납할 수 있는 건 아니야. 고작 작은 위기 한 번을 넘겼을 뿐이니까 그렇게 안심하고 있긴 이르다고.
최철훈이 그렇게 생각하며 이젠 어떤 꼬투리를 잡아야 합당하게 놈을 조질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 닫혀있던 강진혁의 입이 열렸다.
“딱히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몸에 풍경이 그려진 것도 아니긴 한데. 그······ 몸이 좀 흉해서. 사람들이 보면 놀라더라고.”
“뭐?”
그 말을 들었을 때, 최철훈은 ‘뭐 풍경 말고 짐승을 그려넣었나? 잠깐만. 결국 부끄럽지 않은 거네? 이 새끼 잘 걸렸다!’하며 사냥감을 찾은 사냥꾼처럼 눈을 빛냈다.
“그래도 여기서 죽때리고 있는 것도 뭐하고. 사우나에 와서 씻지 않는 건 말이 안 되니까······.”
그러나 강진혁이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리고는, 옷을 벗으며 몸을 드러내자.
“어, 어어······?”
최철훈은 그 전까지 머릿속에서 굴리던 모든 수작질을 멈추고, 그저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
풍덩!
“어흐으······. 와, 목욕탕 진짜 얼마만이냐. 7년만이네.”
샤워를 마치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 순간, 7년 묵은 피로가 눈 녹듯이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피로를 풀 거 제대로 풀자는 생각에 탕 안에서 기지개를 피며 끄으으으 작게 신음을 흘리고 있었더니, 갑자기 기세가 꺾인 최철훈이 소심하게 들어와 옆자리에 앉았다.
풍덩.
“······그 흉터들. 진짜냐?”
그리고는 생뚱맞게 내 전신에 새겨진 흉터들을 보며 질문을 해왔다.
흉터가 진짜냐니. 세상에 진짜가 아닌 흉터도 있나?
음, 생각해보니 있긴 했던 것 같다. 깡패시절 눈에 칼로 그은 듯한 흉터가 있는 게 멋있다며 흉터 같이 보이는 문신을 받은 놈을 직접 줘팼던 기억이 있으니까.
“그럼. 진짜지. 딱히 자랑할 건 아니지만.”
하지만 내 몸에 새겨진 흉터는 문신 같은 게 아닌 진짜였다.
하나하나 어쩌다가 새겨졌는지 친절하게 설명을 해줄 수 있을 정도로 내 몸에 난 흉터들은 내게도 꽤나 인상적인 것들뿐이었다.
“그, 그러면 그 가슴팍에 사선으로 그어진 커다란 흉터는······.”
내 흉터가 여간 궁금했는지 최철훈이 조심스럽게 물어오던 그때.
“형님, 우리 사우나 마치면 또 거기 갑니까?”
“그럼 가야지. 거기 가려고 이렇게 사우나 온 거 아니냐. 목욕재개 싹 하면서 정성을 들여야 대어를 낚을 수 있는 법이니까.”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는데. 갈 때마다 아랫도리에 힘이 들어가서 힘들어 죽겠습니다 형님.”
“으하하하하하! 맞지 맞아. 그 년 생긴 게 오죽 예뻐야 그러겠냐? 솔직히 몰래 한 판 뜨고 싶긴 한데······ 그랬다간 피바람이 불 테니까 어쩔 수 없지. 일단 씻기나 하자 얘들아!”
“예 형님!”
첨벙!
샤워도 하지 않고, 듣기만 해도 구린내가 나는 말들을 큰 소리로 떠들며 세 명의 덩치가 탕에 몸을 던져왔다.
“······문신. 그것도 전신문신······!”
최철훈이 중얼거리는 것처럼 세 명 전원이 전신에 빽빽하게 그림이 그려져 있는 건 덤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진도...! 빠르게 빼고 싶지만 그것보다 빌드업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진짜 늘어지진 않게 머리를 싸매며 고민하고 있으니 부디 양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