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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저가 깡패임-7화 (8/53)

제 7화

나카나카고 낙하산이고 나카마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워. 이제부턴 재밌기만 할 거야.

1.

탕에 들어가기 전 먼저 몸을 씻는 건 사우나를 이용할 때 지켜야할 기본적인 매너 중 하나였다.

“아니 그 새끼가 갑자기 야리잖아. 그래서 바로 소주병 들고 대가리 깼지.”

“으하하하하하! 저도 봤습니다 형님! 바로 뒤집어지는 게 거의 뭐 슬랩스틱 장인이드만?”

“형님도 형님입니다. 점심시간부터 사람 대가리 깨는 사람이 세상에 어딨습니까?”

“내 말 못 들었냐? 그 새끼가 먼저 야렸다니까?”

“크흐흐······ 그럼 정당방위긴 하지.”

작은 소리도 크게 울리는 목욕탕에서 큰 소리로 떠들지 않는 것 또한 기본적으로 지켜야할 매너였다.

“뭐야, 뭐 꼽냐? 내가 그 싸가지 없는 새끼 참교육해준 게 그렇게 꼬와?”

“그래도 형님 요즘 가뜩이나 위에서 조심하라고 하는데 백주대낮에 사람 대가리를 깨면······.”

짜악!

“다시 말해봐. 꼬와?”

“아, 아닙니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공공장소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폭력을 행사하는 건 매너를 넘어 법률에 위반되는 행위였다.

이게 대체 뭔 상황인지.

그들이 말했듯 지금은 백주대낮이었기에 목욕탕에 사람이 그리 많진 않았다.

나와 최철훈을 제외하면 노인 두세 명 정도가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명백히 다른 사람이 있는 공간에서 저런 안하무인한 짓을 해대는 건 옳지 못한 일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바로 탕 속에서 머리박고 애국가 4절까지 부르게 만들었겠지만······ 나는 더 이상 깡패가 아니니까. 그냥 잘 씻고 나가면 되는 거지.

깡패처럼 생기고 깡패처럼 문신을 한 놈들이 양아치 짓을 벌이는 게 불편하긴 해도, 그냥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건 이젠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사실 눈앞의 깡패들이 나나 최철훈에게 시비를 턴 것도 아니고 지금까진 그냥 지들끼리 대화했을 뿐이니까.

뺨따귀를 갈기긴 했어도 우리에게 직접적인 피해는 없었다. 있어봤자 시끄러운 소음 정도?

그 정도라면 그냥 넘어가는 게 좋지.

그래, 나는 아이돌 매니저가 돼야 하잖아. 세계 최고의 아이돌 매니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면 이런 사소한 일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선······.

“······아.”

맞다. 아이돌 매니저.

그냥 아이돌 매니저가 아닌, 세계 최고의 아이돌 매니저!!!

나, 나는 분명 아이돌 매니저가······ 그것도 반짝반짝 빛나는 걸그룹 매니저가 되려고 했을 텐데····· 지금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런데 지금 내 주위엔 아이돌은커녕 아저씨들 밖에 없었다.

“하여튼 사람 때리기 싫은데······ 꼭 시팔 매를 벌어요. 응?”

“죄, 죄송합니다.”

교도소에서 질릴 정도로 봐왔던 문신육수돼지깡패 아저씨나.

“······깡패새끼들이.”

그런 깡패 아저씨들을 향해 금방이라도 달려 나갈 듯 적의를 불태우는 밋밋하게 생긴 나잇값 못하는 아저씨.

“······.”

“······.”

그리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쥐죽은 듯 조용히 씻고 있는 다른 노인들까지.

주변이 온통 아저씨 혹은 아저씨였던 할아버지들뿐이다.

그리고 가장 끔찍한 건 사우나에서 나가 기획사로 돌아간다고 해도 주변에 아저씨밖에 없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는 것.

물론 교도소에서 나온 지 고작 하루밖에 안 지났고, 기획사에도 월급루팡이긴 하지만 여직원들이 몇몇 있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주변에 아저씨들밖에 없다는 상황이 변할 리도 없고, 가만히 있는다고 아이돌을 할 만한 사람이 뚝 떨어질 리도 없지.

그 끔찍하기 짝이 없는 사실이 나를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내가 지금 뭔 개헛짓거리를 하고 있는 거야? 왜 여기서 이런 밋밋하게 생긴 이상한 놈이랑 사우나에 와있냐고!”

“어, 어어? 지, 지금 뭐라고······.”

옆에서 들려오는 당황스러운 목소리 따위에 신경을 쓸 새는 없었다.

“하아 나 뭔 개 같은······ 어이, 거기 안 닥······.”

맞은편에서 들려오는 깡패새끼의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위협도 들리지 않았다.

지금 내 머릿속엔 오직 ‘아이돌 매니저.’라는 직업뿐이었고, 그걸 제외한 모든 건 의미가 없었으니까.

첨벙!

자리에서 일어나 탕 밖으로 몸을 드러내니 순간 좌중이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맞은편에 앉아있는 육수돼지새끼들 같은 문신도, 옆에 앉은 최철훈 같은 완벽하게 커팅된 보디빌더 같은 몸도 아니었건만 목욕탕 안의 모두가 내 몸을 보고 기가 죽어버렸다.

그러나 그런 반응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고 당황을 하거나 부끄러움을 느끼는 건 사치였고.

“최철훈 씨는 나와.”

“어, 어? 하지만 아직 냉탕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나와 뒤지기 싫으면!”

“그, 그래!”

그렇게 나는 최철훈을 끌고 쫓기기라도 하듯 목욕탕에서 뛰쳐나왔다.

※※※

“저기, 그 깡패들이 그렇게 무서웠냐? 걔들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그렇게 꽁무니를 빼면······.”

아쉬움 반 다행 반의 목소리로 최철훈은 내게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그러나 그가 내게 던진 질문은 답해줄 가치도 없는 것이었기에 나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위에 올라가면 사장님 있지?”

“어, 으응. 아까 출근할 때 오늘은 나갈 일 없다고 했으니까 아마 있긴 할 텐데······ 그런데 왜 자연스럽게 말을 놓지?”

“동갑이잖아. 그쪽이 먼저 말 놨고.”

“그, 그건 그래.”

최철훈의 약한 시비를 정론으로 단번에 부숴버린 나는 고개를 들어 구 정도파, 현 바른길엔터의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가장 상층, 예전엔 형님의 집무실이었던 곳에 지금은 바른길엔터의 사장이 자리하고 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대가리가 맨 위에 있는 건 변함이 없네.

“그럼 갔다 온다. 알아서 하고 있어.”

“어? 잠깐, 사장실을 지금 갑자기 그렇게?”

“엉.”

“아니 아무리 낙하산으로 들어왔다고 해도 그렇게 지 꼴리는 대로 살면 안······.”

지이잉- 철컹.

들을 필요 없는 최철훈의 목소리는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는 것과 동시에 차단되었다.

지 꼴리는 대로 살면 안 된다니. 내가 왜 7년을 감옥에서 보냈는데.

사실 굳이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교도소에서 얌전히 있었던 건 내가 너무 꼴리는 대로 살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깡패짓을 꼴리는 대로 하다 보니 자연스레 꼴리는 대로 살기엔 내 영향력이 너무나 커져버렸어.

세상이 나를 잊게 하기 위해서 나는 7년이라는, 절대 짧지 않은 세월을 참고 인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독이 됐지.”

아무리 세상에 이름이 날리는 게 두려워 숨었다고 해도 7년의 인내는 내게 참는 것에, 기다리는 것에, 세상의 흐름에 순응하는 것에 익숙하게 만들었다.

그 증거로 출소하고 지금까지 나는 남이 시키는 대로, 이끄는 대로 살지 않았는가?

예전이었으면 누가 뭐라 하든 내 꼴리는 대로 받아버렸을 텐데.

내일을 살겠다고 말한 건 좋고, 깡패로 살지 않겠다 다짐한 것도 좋다.

하지만 그게 남이 시키는 대로, 남이 휘두르는 대로 사는 게 좋다는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살 바엔 깡패처럼 사는 게 낫지.

내일을 본다는 건 자기 스스로 미래를 개척해나간다는 것.

오늘만 살았던 깡패시절해도 당연하게 여겼던 일인데, 지금 나는 그렇게 당연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었다.

교도소 약빨 뒤지긴 하네.

교도소가 교화시설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코웃음을 쳤지만, 7년이라는 세월은 길었고 그 긴 시간동안 나는 물방울에 바위가 뚫리듯 교도소의 교화를 당해버렸던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다르다. 더 이상 휘둘리지 않는다. 지루한 건 끝이다. 이제부턴 재밌기만 할 거야. 왜냐면 내 꼴리는 대로 살 거니까.

그 증거로.

“사장 나와!”

나는 깡패였던 그 시절처럼 기획사 사장이 있는 곳, 내 목숨 줄을 강제로 쥐게 되었을 사람이 있는 방을 곧바로 들이 받아버렸다.

똑똑똑. 철컥.

물론 그 다음에 노크를 하고 문고리를 내려 예의바르게 들어가긴 했다.

예전 같았으면 문고리고 나발이고 발로 차서 강제로 열어재꼈겠지만, 응. 내가 깡패도 아니고.

그렇게 열고 들어간 문 안에는 얼마나 놀란 건지 의자 등받이와 등이 완전히 딱 붙어있는 남자가 한 명 있었다.

“뭐, 뭐예요? 누, 누구······ 어?”

바른길엔터테인먼트 사장 정바로라는 명패 뒤에 앉아있는 남자는 당연하게도 아저씨였다.

사장아저씨······ 아니 정바로 씨, 아니 사장님은 순간 빚쟁이라도 들이닥친 것처럼 몸을 굳혔다가 이내 내 얼굴을 알아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 강진혁······씨?”

“제 얼굴 아시죠? 그래도 나는 처음 보니까 우리 인사나 좀 합시다.”

나는 갑자기 쳐들어온 내게 화도 못내고 그저 놀라고만 있는 사장님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강진혁입니다. 오늘 들어왔고.”

여기서 잠시 말을 끊고 사장님의 손을 맞잡은 뒤, 다시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담아 말을 맺었다.

“아이돌 매니저. 하러 왔습니다.”

7년 하고도 19시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만에 나는 오롯이 나로서 존재할 수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프롤로그 끝!!!! 드디어!!!!! 빌드업(지루함)이 끝났습니다! 이제부터 몰아칠 테니 다들 꽉 잡아!!!!!!!!!!!!!!!!!!!!!!!!!!!

라고 호기롭게 말하긴 했지만, 사실 고민이 많았습니다. 4드론을 안 쓰고도 내가 성공할 수 있을까? 하고요.

그래도 내가 짭최면으로 한 게 얼마인데 당연히 되지! 하고 호기롭게 시작했는데... 아무리 좀 쌓여야 빛을 보는 엔터물이라고 해도 이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거기에 마침 어떤 킹자님(정말 감사합니다!)께서 댓글로 제가 느끼고 있는 문제 있는 부분을 찔러주셔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2화정도 더 있었던 빌드업 분량 다 잘라버리고, 바로 들이받았습니다.

네, 더 이상 질질 안 끕니다. '매니저가 깡패임'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이제 진짜 정신없을 테니까 떨어지지 않게 꽉 잡아주세요!

+++

새벽에 연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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