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화
누가 누굴 찾은 건지 (1)
1.
“억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장님. 그럼 이만.”
태풍처럼 찾아와 모든 걸 휩쓸어버린 강진혁은 그렇게 상쾌한 인사를 남긴 채 사장실을 나갔다.
“······허.”
그렇게 혼자 남게 된 바른길엔터의 사장 정바로는 강진혁이 예의 바르게 닫고 나간 문을 허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억지라는 걸 아는 사람이 그런 당당한 태도를?”
[가만히 허공만 바라보면서 시간 때우는 거나 문신깡패만 보면 분노조절장애가 되는 밋밋한 사람 매니저 말고. 아이돌 매니저가 되고 싶습니다. 그것도 걸그룹 매니저.]
[네? 애초에 연습생도 없고, 연예인이라고는 밋밋한 최철훈 씨밖에 없어서 연습생을 모집해도 올 사람이 없다고요? 와봤자 그저 그런 사람들이고? 그게 문제예요?]
[그러면 내가 직접 연습생 구하면 되겠네. 길거리 캐스팅하면 되잖아요 그쵸?]
거기서 기세에 휩쓸렸으면 안 됐는데, ‘그, 그런가?’하고 여지를 줘선 안 됐는데.
[그래요. 그러면 허가도 내주셨으니까 앞으로 열심히 길거리 캐스팅하러 다녀보겠습니다. 예? 최철훈 씨 매니저 일이요? 그 양반 혼자서도 잘했던 거 아닌가? 애초에 저 좋아하지도 않는 것 같던데 그냥 지금까지처럼 혼자 다니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 말을 끝으로 강진혁은 발등에 불이라도 붙은 사람마냥 자리에서 일어났다.
얻을 걸 얻었다고 바로 엉덩이를 떼는 것이 지금까지 정바로가 만났던 그 어떤 사람보다도 바빠 보였다.
아니, 어떤 사람보다도 바빴던 건 아니지. 바쁜 걸로 따지면 예전에 키웠던 애들이 더······.
“······음.”
문득 과거를 떠올린 정바로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동시에 그는 예전 일을 떠올린 것과 강진혁의 페이스에 말린 것을 후회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후회해본다 한들 벌어진 일이 없던 것이 되지는 않는다.
정바로는 후회라고는 신물이 날 정도로 많이 해봤고, 여전히 후회하고 있는 사람이었기에 그 진리를 깨닫고 있었고 이 정도 작은 후회는 금방 털어낼 수 있었다.
“후우······. 그래 뭐, 요즘 시대에 길거리 캐스팅을 해봤자 제대로 할 수나 있겠어?”
길거리 캐스팅, 연예인들이 딴따라 취급받던 옛날이면 모를까 연예인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고 지망생들이 어린 나이부터 연습생 생활을 하는 요즘 세대엔 통하지 않는 용어였다.
“하긴, 7년 만에 나왔으니까 당연한 건가. 애초에 이쪽 업계에 대해서도 그렇게 잘 아는 것 같지는 않던데······.”
길거리 캐스팅을 하면 된다는 시대착오적인 발상, 최철훈 매니저를 하면서 방송업계에 대해 알아보라는 기회를 줬음에도 스스로 까버리는 무지, 오늘 처음 들어온 신입사원이면서 사장실에 빚쟁이마냥 쳐들어오는 무례까지.
절대 좋게 볼 수는 없는 일들을 연달아 겪었음에도 정바로는 화도 나지 않았다.
왜냐면 화를 내기엔 정바로가 가진 강진혁에 대한 인상이 이미 최악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송충이가 솔잎을 먹는 게 당연하듯 깡패가 깡패 짓을 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정바로는 강진혁에게 그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한 채, 그저 이 태풍이 빨리 지나가고 지금까지 지내왔던 지루하지만 평화로운 일상이 다시 돌아오기만을 바랐다.
2.
길거리 캐스팅.
아마도 연예인을 발굴하는데 있어서 가장 낭만적인 단어가 아닐까 싶다.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만난 원석을 캐스팅하여 세상을 밝게 비출 거대한 별로 가공하는, 그야말로 내가 지금껏 꿈꿔왔던 소망과도 같은 일.
그것이 바로 내가 지금 하려는 길거리 캐스팅이었다.
“생각해 보면 아가씨도 길거리 캐스팅을 당했었지.”
사장님께 들은 연습생이 없다는 말에 길거리 캐스팅을 하면 된다는 답이 나온 건 그날의 기억 덕분이었다.
둘이서 저녁 먹으려고 나와서 30분쯤 걸어 먹자골목에 도착하니 그제서야 둘 다 지갑을 두고 나왔다는 걸 알아챘다.
나는 아가씨께 빨리 가져오겠다고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했지만, 아가씨는 그냥 따라오라는 말과 함께 먹자골목에 위치한 광장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모자를 벗어서 뒤집어놓은 다음 그냥 무반주로 노래를 불렀었지.”
각자의 목적지로 향하던 수많은 인파가 아가씨가 노래를 시작한 순간 멈췄던 건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는다.
짜장면 두 그릇 먹을 돈만 있으면 그만이었지만 아가씨가 한 곡을 부를 동안 모자는 지폐로 가득 차버렸고 동시에 명함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캐스팅을 당하고, 정규오디션에 단번에 합격하고, 지금은 세계를 빛내는 슈퍼스타가 되어버렸고.”
거리엔 온통 아가씨가 부른 노래가 울려 퍼지고, 사람들의 이야기에선 심심치 않게 아가씨의 활동명 ‘노바’라는 이름이 들려온다.
현재 한국을 빛내고 있는 최고의 슈퍼스타, 그 시작이 길거리 캐스팅이었기에 내게 길거리 캐스팅이 주는 울림이 더 큰 것도 있었다.
“뭐, 사실 길거리 캐스팅을 받지 않았어도 아가씨는 지금처럼 됐겠지만.”
어차피 지금은 해외에 있어서 만나지도 못하는 아가씨 생각은 이쯤하고, 이젠 진짜 본격적으로 길거리 캐스팅을 해볼 시간이었다.
“자, 그럼 어디부터 돌아야 할까······.”
아가씨가 그랬듯이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광장 같은 곳에 가면, 아가씨 정도는 아니더라도 비스무리한 사람 정도는 노래를 부르고 있지 않을까?
노래를 부르지 않더라도 일단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에서 죽치고 앉아있으면 예쁜 사람 정도는 볼 수 있을 터였다.
“좋아, 일단 사람이 제일 많이 다니는 곳으로 가자. 대충 아무데나 앉아서 눈에 불을 켜고 있으면 한 두 명 정도는 걸리겠지!”
나름의 판단을 내린 나는 즉시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광장에 놓여있는 일자형 벤치에 앉아서, 반짝이는 원석을 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1월의 추운 날씨를 이 악물고 견딘 결과.
“그 신고가 들어와서요. 이상한 남자가 몇 시간 동안 죽치고 앉아서 불안감을 조성한다고······. 죄송한데 신분증 확인 좀 할 수 있을까요?”
경찰이 찾아왔다.
아니 왜?
물론 내 행동을 객관적으로 본다면 수상해할만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신고를 당할 정도였나?
나는 그저 영하 10도인 추운 날에 외투 하나 없이 양복 하나 달랑 입고 쇠로 된 벤치에 앉아서 5시간 동안 지나가는 사람들 하나하나를 뚫어져라 쳐다봤을 뿐인데······.
음, 수상하네. 지금 경찰이 온 게 오히려 이상하다. 더 빨리 왔어도 안 억울했을 듯.
나는 내가 충분히 수상했고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할만했다고 인정하면서 주머니를 뒤졌다.
“네, 신분증이요. 잠시만요······.”
깡패시절이었다면 경찰이 시야에 잡히는 순간 바로 튀었겠지만 지금 나는 민간인, 그것도 형기를 다 살고 온 깨끗한 전과자였다.
그렇기에 이렇게 경찰이 다가와 신분증 요구를 해도 아무렇지 않게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서 줄 수······.
“······응?”
지, 지갑에서 신분증을······.
“어? 이, 이게 어디 갔지?”
바지 주머니 속에 분명 신분증이 들어있는 지갑이 있어야하는데 내 옷에 달려있는 온 주머니를 다 뒤져봐도 지갑은 나오지 않았다.
나오는 거라곤 그냥 먼지뿐이고 아예 뭐가 잡히지도 않았다. 김 부장에게 받았던 핸드폰도 없었다.
뭐지? 소매치기라도 당한 건가? 아닌데. 소매치기에 당할 내가 아닌데. 그럼 대체······.
예상치 못한 사태에 당황하던 찰나, 아까 최철훈과 함께 갔던 사우나가 떠올랐다.
“아.”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위기감에 급하게 나오느라······ 놓고 와버렸다.
그냥 옷만 헐레벌떡 걸쳐 입고, 옷을 수월하게 벗기 위해 미리 빼놨던 주머니 속 물건들은 라커룸에 둔 채로 나온 것이다.
깜빵에 있을 때는 뭘 갖고 다닐 필요가 없으니까 주머니에 뭘 안 넣고 다녔는데. 그게 버릇이 된 건가?
이러면 큰일이었다.
내가 아무리 살인미수로 형을 산 전과자라고 해도 신분증엔 전과가 남지 않으니 신분증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경찰이 내가 전과자인줄 알 수 없다.
하지만 신분증이 없고, 그로 인해 서로 가서 이야기하자는 말이 나와 서로 가게된다면 인적조회를 통해 내가 전과자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어제 출소한 전과자, 그것도 살인미수범이 영하 10도에 칼바람이 쌩쌩 부는 이 추운 날에 양복 하나 덜렁 입고 몇 시간 동안 벤치에 죽치고 앉아서 지나다니는 시민들의 면면을 뚫어져라 관찰한다?
이건 누가 봐도 곧 일을 저지를 사람이었다. 그렇게 판단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니 잡혀가거나 그러지는 않겠지만······ 굉장히 귀찮은 일이 생길 건 확실해.
이거 어쩌지? 어떻게 해야 하지?
“저기······ 신분증 달라니까요? 혹시 없습니까? 없으시다면 저희 같이 서로 이동을······.”
이런 제기랄. 이렇게 빨리 경찰서로 가자는 말이 나온다고? 너무 빠른 거 아니야? 적어도 고민이라는 걸 해볼 시간은 줘야지!
정말 곤란했다.
내가 아무리 길거리 캐스팅을 하기 위해서 의자에 앉아 죽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도 경찰서로 가는 건 정해진 일이다.
애초에 날 보는 얼굴들을 보면 믿어줄 것 같지도 않지만.
게다가 핸드폰도 없는 지금 같은 상황엔 나를 도와줄 사람을 부를 수도 없었다.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상황.
그냥 꽁지 빠지게 튀어야하나? 아니 잘못한 것도 없는데 도망가면 오히려 쫓아오지. 그럼 쫓아오지 못하게 다 패버리면 되는 게 아닐까? 아니 패긴 뭘 패 내가 깡패도 아니고!
위기상황에 자극을 받은 뇌가 아주 빠르게 쓸데없는 생각들을 뿜어대던 그때.
치- 지직.
기다리던 도중 내가 수상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는지, 경찰이 무전기들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저 무전기에 대고 할 말이 내게 좋을 일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래, 그냥 째버리자. 요즘 아무리 cctv가 많다고 해도 내 한 몸 간수 못하겠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난데?
한계에 달한 제한시간 앞에서 결국 나는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한 채 째는 것을 선택했다.
선택이 끝났다면 행동에 거리낌은 없어지는 법.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경찰에게서 달아나려는 순간.
“자, 자기야 기, 기다렸지. 미안해 마, 많이 늦어서.”
마치 국어책을 읽는 듯한 굉장히 어색한 목소리와 함께, 등 뒤에서 부드러운 무언가가 내 목을 끌어안았다.
"어?"
7년 만에 받아보는 백허그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드디어!!! 1호기 등장! 그리고 새벽 10시가 훌쩍 넘었네요! 하하 해가 뜨기 전에 잠에 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