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화
누가 누굴 찾은 건지 (2)
1.
뭐여 이건.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상황에 모르는 여자한테 백허그까지 당하니 더더욱 정신이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머리가 굳었기 때문일까. 도주를 위해 잔뜩 긴장되었던 근육 또한 그대로 굳었고,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다시 벤치에 주저앉아버렸다.
턱.
반쯤 떨어졌던 엉덩이가 의자에 붙고, 내게서 움직일 낌새가 사라지자 경찰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날 뒤에서 끌어안은 여자에게로 향했다.
“저기······ 혹시 아시는 분이신가요?”
어째서인지 얼떨떨해 보이는 경찰의 목소리에 내 목을 끌어안은 여자는 잔뜩 굳은 목소리로 답했다.
“네, 네. 나, 남자친구예요.”
어? 뭔 친구? 난 여자친구 없는데? 애초에 가깝게 지냈던 여자사람이라고는 아가씨뿐인데?
나도 모르는 새에 생긴 여자친구의 등장에 더욱 큰 혼란을 느끼고 있을 무렵, 경찰은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입을 반쯤 벌리고 중얼거렸다.
“아······ 그러면 설마 이 추운 날 양복만 입고 몇 시간 동안 벤치에 앉아서 기다렸던 거랑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면면을 하나하나 일일이 확인했던 게······.”
“그래, 그래서였구만.”
뒤에서 뒷짐을 진 채 서있던 중년의 경찰이 굳었던 표정을 사르르 풀고 고개를 연신 주억거리며 앞으로 나왔다.
“그랬던 거였어. 그러면 말이 되지.”
아니 뭐가 말이 되는데.
“허허······ 그래, 젊은이들의 뜨거운 사랑 앞에서 이깟 추위가 뭔 대수라고. 나도 저랬던 시절이 있었지.”
“네?”
“그래도 아무리 여자친구가 약속에 늦는다 해서 지나다니는 사람 얼굴을 일일이 확인하는 건 좋지 않아요 젊은 친구. 나도 젊은 친구 같은 시절이 있어서 더 잔소리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 행동은 하면 안 돼.”
뭔가 상황이 요상하게 흘러가는 것 같긴 했지만 일단 내겐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여자친구도. 이 추운 날에 남자친구를 기다리게 해서야 쓰나. 뭐, 그 얼굴을 보니 남자친구는 기다리는 모든 순간이 행복했겠다만······ 그래도 이런 날씨에 외투 하나 없이 앉아있으면 사람이 상해요!”
중년의 경찰에게서 얼굴이라는 단어가 나온 순간 내 목을 끌어안은 두 팔에 순간 힘이 들어갔다.
분명히 목을 조른다고 느껴질 정도로 강한 압박에 반사적으로 몸이 움찔했지만 여기서 내가 무슨 짓을 하는 건 분명한 하책이었다.
“아····· 네. 죄송합니다.”
국어책을 읽듯 어색했지만 차갑지는 않았던 방금 전과 달리, 지금 여자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자연스러웠고 또····· 무척이나 싸늘했다.
하지만 이 추운 날 말에서 한기를 느끼기는 어려운 법, 중년의 경찰은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몇 번 더 주억거렸다.
“그래, 알겠어요. 대충 사이즈 나오는 것 같고······ 뭐 딱히 조사는 안 해도 되겠네. 얘들아 철수다 철수!”
그 말을 끝으로 한 무리의 경찰은 시야 너머로 사라졌다.
그럼에도 굳어있던 나는 경찰들이 완전히 시야 밖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후우······. 큰일 날 뻔.”
영락없이 경찰서로 끌려가거나 도망자가 될 상황이었는데 정말 생각지도 못한 도움 덕분에 살 수 있었다.
누군진 모르겠지만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겠지.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 위해 고개를 돌린 그 순간, 웬만해선 놀라지 않는 내가 말문이 턱하고 막혀버렸다.
“어······.”
왜냐면, 날 구해준 여자에게서 아가씨와 같은 종류의 반짝임이 보였으니까.
반짝임.
인간은 물리적으로 빛을 낼 수 없다. 왜냐면 발광할 수 있는 기관이 없으니까.
하지만 그 어떤 발광체보다도 강렬하게 빛을 내뿜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슈퍼스타 노바, 바로 우리 아가씨처럼 말이다.
사람들 중 아주 소수의 몇몇에게서만 볼 수 있는, 사람의 이목을 끌고 사람의 가슴을 흔들며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 찬란한 빛.
그런 빛이 내 뒤에 서있는 여자에게서도 찬란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늘 하루뿐만이 아니라 지난 세월 동안 정말 많은 사람을 보았음에도 이 정도의 반짝임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가씨 정도가 아니면 볼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가슴속으로 눈앞의 이 사람이라면 최고의 아이돌이 될 수도 있을 거라 확신했고.
“저기······ 아이돌 해보시지 않으실래요?”
감사의 인사말 대신, 캐스팅 제안을 하고야 말았다.
하지만 내게 돌아온 건 제안에 대한 대답이 아닌, 차갑게 식은 표정으로 말하는 싸늘한 목소리였다.
“그런 건 됐어요. 그냥 내가 한 번 도와줬으니까. 그쪽도 나 좀 도와주세요.”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말투라기엔 지독하게 싸늘하고 딱딱했지만 그녀의 말대로 나는 분명 그녀에게 도움을 받았다.
그러니 도움을 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도와주는 게 인지상정인 법.
나는 씨익 미소 지으며, 어둑해진 하늘 아래 저 멀리 더욱 어두운 골목길로 고개를 돌렸다.
“저기 있는 저 사람들한테 쫓기고 있는 거죠?”
“네, 네? 그걸 어떻게······?”
내 말에 여자의 굳어있던 표정에 금이 갔다.
뭘 도와달라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먼저 답을 말해버리니 깜짝 놀란 것 같았다.
놀라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지. 웬만해선 으하하 웃는 형님도 내가 처음에 이랬을 때는 눈을 동그랗게 떴었으니까.
그런 면에서, 내 뒤에 있는 여자는 굉장히 침착하고 감정의 동요가 적은 사람이었다.
더욱 마음에 들었다.
부동심(不動心), 스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요소 중 하나인데. 그녀는 이미 일정 수준 이상의 부동심을 갖추고 있었다.
어두운 하늘 아래서 봐도 얼굴은 말문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고, 분위기 또한 침착하고 퇴폐적이며 쉽게 감정이 흔들리지도 않는다.
거기에 마지막으로 아가씨와 필적하는 정도의 반짝거림까지 갖고 있으니. 더할 나위가 없는 인재였다.
반드시 아이돌로 영입을 해야겠어.
어떻게 이런 인재가 내 앞에 나타난 건지는 중요치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내 앞에 이런 완벽한 인재가 있다는 것.
영입하기 위해선 호감을 살 필요가 있겠지. 초면인 사람에게 호감을 사려면 필요한 일을 완벽하게 처리해주는 것만큼 효율 좋은 일도 없고 말이야.
“몸만 숨겼지 기척이나 시선이 그대로인데 당연히 알지. 무튼 알겠어요. 나도 그쪽한테 도움 받았으니까.”
나는 벤치에서 일어나 놈들이 숨어있는 뒷골목에서 등을 돌렸다.
그리고 겨울의 한기에 차갑게 식은, 이름 모를 그녀의 작은 손을 부드럽게 잡은 채 누구도 들을 수 없을 정도의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그럼 빨리 쨉시다.”
“······네?”
처음으로 그녀의 얼굴에 당황하는 기색이 어렸다.
※※※
“뭐, 뭐야 시발!”
뒷골목에 몸을 숨긴 채 경찰이 사라질 기회만을 엿보고 있던 깡패 조철만은 숨어있다는 것도 잊은 채 크게 소리쳤다.
하지만 함께 숨어있던 그 누구도 그를 질책할 수 없었다.
왜냐면.
“저, 저 새끼들 토낍니다 형님!”
“어, 어떡하죠 형님?!”
이곳에 있는 깡패들 중 조철만이 가장 형님이었고, 또 다른 깡패들도 똑같이 소리를 치며 놀라고 있었으니까.
미행하고 있던 여자가 갑자기 처음 보는 남자에게 백허그를 한 뒤 경찰을 보내고 짧은 대화를 마치자마자 튀어버린다는 건 그들의 예상에 없었다.
“그년도 구린 게 있으니 경찰에 도와달라고 말하지는 못할 것 같았지만······ 저렇게 튀어버릴 줄은.”
세 깡패가 당황하며 놀라고 있는 동안 강진혁과 여자는 이미 점처럼 보일 정도로 멀리 달아난 상황이었다.
따라가기엔 이미 늦은 상황, 조철만은 침을 퉤 뱉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그의 부하 김만식이 불을 붙였고, 조철만은 담배연기를 뱉으며 그에게 물었다.
“야, 만식아. 저년한테 아는 놈이 있었냐? 그것도 저렇게 젊은 놈이?”
“아뇨. 없습니다. 애초에 저년이 알고 지내는 사람이라고 해봤자 저희뿐이잖습니까.”
“그래, 맞지. 그건 나도 알고 있지. 근데 저건 뭐냐?”
“그······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확실한 건 저희가 아는 놈은 아닌 것 같습니다 형님.”
“씁······ 후우. 뭐, 저년 얼굴이면 처음 보는 남자를 동반도주하게 만들 수 있긴 하지. 충분히 개연성이라는 걸 갖춘 얼굴이니까 말이야.”
조철만의 그 말에 두 사람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의 말이라서 동의하는 척을 하는 게 아닌, 진심으로 그 말에 공감한다는 뜻의 끄덕거림이었다.
“확실히, 그런 얼굴이니까 사진만 보고도 중국갑부가 침을 질질 흘리죠.”
“맞아 맞아. 빨리 신체포기각서 쓰게 만들고 배에 태워버려야 하는데.”
두 부하깡패가 애가 타는 목소리로 대화를 하는 동안 담배 한 대를 필터까지 태운 조철만은 담배꽁초를 구둣발로 비벼 끄며 두 사람에게 말했다.
“조만간이다 조만간. 곧 최종납부기한이고, 지금까지 그년이 일하는 족족 찾아가서 훼방을 놓았으니 이제 곧이야.”
“맞습니다 형님!”
“그년만 넘기면 저희 인생도 피는 거예요 형님!”
“그래, 그러면······ 조금 더 빨리 인생이 필 수 있도록. 그년 집 앞에 가서 죽이나 칠까?”
당연하게도 돌아오는 대답은 빠르고 간결했다.
“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새벽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