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화
누가 누굴 찾은 건지 (3)
1.
“후, 잘 도망친 것 같네요.”
사실 달음박질을 칠 때부터 따라오는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기에 그들의 기척이 사라지고 나서도 5분 정도를 더 달렸다.
그 결과 우리는 성공적으로 사람도 많고 차를 잡기도 쉬운 대로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원했던 대로 뭐하는 놈들인지도 모르는 놈들을 따돌린 나는 내 손을 꼭 잡고 있는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체력도 좋네요. 운동하셨어요?”
“······.”
“아, 대답할 생각 없으시구나. 프라이버시는 존중해야죠. 예.”
5분 정도 달리는 건 평소 달리기를 즐겨하는 사람에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추운 겨울날에 추격을 포기하게 만들 정도의 빠른 속도로, 그것도 아무 준비 없이 갑자기 내달리는 건 평범한 사람에겐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게 손을 잡힌 채 내 페이스에 휘말려 강제로 달린 그녀는 조금도 힘들지 않은 듯 여전히 무표정을 고수하고 있었다.
외모는 말할 것도 없고, 체력도 좋은데 부동심에 반짝임까지 갖추고 있다니.
“진짜 다 갖췄네 다 갖췄어.”
어쩌다 이런 인재가 내 앞에 나타난 건지 진심으로 놀라워서 혼잣말로 감탄을 하고 있었더니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손, 언제까지 잡고 있을 거예요?”
“네? 아, 아 죄송합니다.”
겨울바람보다도 차가운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손을 놓았다.
내 손이 떨어진 그녀의 새하얀 손등엔 발갛게 손자국이 남아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자신의 손에 남은 붉은 손자국을 내려다보았다.
아니 그······ 뭐라고 말이라도 하면 좋을 텐데.
내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그저 손에 남은 손자국을 내려 보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괜히 찔려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그, 죄송해요. 손을 너무 세게 잡아버렸어요.”
“······손잡고 도망치는데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건 당연하죠.”
감정 하나 담기지 않은, 여전히 차가운 목소리였지만 그녀의 이해에는 오류가 있었다.
나는 사람 손을 잡고 끌어당기며 달린다고 손에 들어가는 힘을 조절할 수 없는 초짜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오해를 정정하기로 했다.
“아뇨, 달리느라 힘이 들어간 게 아니고. 제가 세게 잡고 싶어서 세게 잡은 거예요.”
“······네?”
내가 오해를 정정하자 자신이 들은 것을 의심하는 듯한 그녀의 당황 섞인 목소리가 내게 돌아왔다.
“이렇게 반짝이는 사람이랑 손을 잡았으니 손에 힘을 줄 수밖에 없죠. 당연한 거지 그건.”
7년 동안 교도소에 갇혀있느라 상식이 업데이트되지 않은 나라도 지금 내가 한 말이 듣는 이의 기분을 잡치게 만들 소리라는 건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굳이 솔직하게 말해 그녀의 오해를 정정했다.
자신이 가진 힘조차 조절하지 못하는 못 미더운 사람이라 여겨지는 것보단 욕망에 이끌려 손을 꽉 잡는 사람이 되는 게 훨씬 나았으니까.
“그게 대체 무슨······.”
당연하게도 돌아오는 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한 되물음이었고, 덤으로 무표정이었던 그녀의 얼굴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그녀의 의문이 쉽게 해소될 수 있도록 간단하고 명료하게 내가 손을 세게 잡은 이유를 정리했다.
“당신처럼 예쁜 사람이랑 손 잡아서 좋았다고요.”
예쁘다는 말은 여자에겐 들어도 들어도 지겹지 않은 최고의 칭찬이라고 예전에 아가씨께서 내게 알려줬다.
그리고는 자신의 모든 행동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보라 말했고, 나는 그녀가 재채기하는 모습까지 아름답다 칭찬해야했었지.
조금이라도 칭찬이 늦으면 눈에서 빛을 없애고 ‘설마 내가 예쁘지 않은 거야?’라고 압박해대니 정신력을 시험받는 기분이었지만 실제로도 아가씨는 뭘 하든 아름다운 사람이기에 모든 행동에서 예쁘다는 칭찬을 건넬 수 있었다.
아무튼 그 정도로, 진심이 담긴 예쁘다는 칭찬을 받는 건 여자에게 있어 그저 좋을 뿐인 일이었다.
“······.”
그러나 내게 돌아온 건 수줍은 미소도 자부심 넘치는 얼굴도 아닌.
“하.”
짜증이 가득 담긴 짧은 헛웃음 소리였다.
어, 어어? 거기서 화가 나면 안 되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한 찰나, 그녀는 표정에 새겨진 금을 없애고 감정 하나 비추지 않는 무표정으로 돌아갔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감정의 은폐에 순간 더욱 당황스러웠지만, 그 일련의 반응으로 인해 나는 그녀에 대한 것을 한 가지 알 수 있었다.
아까 경찰이 얼굴을 언급했을 때도 그렇고, 내가 예쁘다는 말을 했을 때도 그렇고 누가 외모를 언급하면 싫어하는 건가?
하지만 못생겼다고 흉을 본 것도 아니고 그냥 있는 그대로 예쁘다고 칭찬을 했는데 화를 낸다는 건, 여자에게 잘생겼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나로선 당최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오빠, 오빠는 솔직히 말해서 잘생겼다고 말할 수 있는 얼굴이 아니거든? 거기에 깡패이기까지도 하고. 그렇다고 나쁜 남자 스타일도 아니야. 여자한텐 이상하게 젠틀해. 응?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시냐고? 그야 당연히 오빠가 여자한테 인기 없을 타입이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지.’
음, 그래. 그랬지.
어째서인지 열이 오르는 눈가를 재빨리 비벼 진압한 뒤 다시 두 눈에 그녀를 담았다.
“······고마워요.”
그런데 대뜸, 그녀가 내게 고맙다는 말을 해왔다.
“어······ 네?”
방금 전 예쁘다는 말을 듣고 분명히 화를 냈던 사람이 이제는 거두절미하고 고맙다는 말을 박아버리니 멍청하게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도망치게 해준 거요.”
“아······.”
그러자 아주 친절하게도 그녀는 고맙다는 말을 한 이유에 대해 간결한 설명을 해줬다.
하지만 시야에 담긴 그녀는 감사를 입에 담았음에도 조금도 감사하는 것 같지 않았다.
얼굴에 감정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감사하는 이라면 응당 갖춰야할 고마움, 그 편린조차 보이지 않는 건 그녀가 나를 전혀 믿지 못하고 있다는 뜻.
하지만 그건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다.
아무리 어둡다고 해도 그 사람 많은 광장에서 미행을 당할 정도라면 상당히 스팩타클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거고, 그러는 동안 자연스레 인간에 대한 신뢰 또한 사라졌을 테니까.
그렇기에 나는 드러나지 않는 고마움에서 신경을 끄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먼저 도와주셨잖아요. 쌤쌤쳐요 우리. 뭐······ 혹시나 그래도 마음에 짐이 조금 생기셨다면 아이돌 해보시는 거 다시 생각해주실 수······?”
“아뇨. 없어요.”
“아, 넵.”
하지만 제안이 채 끝나기도 전에 거절의 의사가 칼같이 쑤셔 들어왔다.
하기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보채봤자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진 않는 법.
그것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아이돌을 강제로 시키는 건 더더욱 못할 일이기에 나는 바로 수긍했다.
“하기 싫으시면 어쩔 수 없죠 뭐······.”
하지만 들어줄 때까지 찌질거리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진짜 뭐가 쫓아오는 건지도 모르고 열심히 달렸는데······ 생각 정도는 해줄 줄 알았는데······.”
나는 대충 찌질거리지 않고, 아랫입술을 대빨 내밀고 입꼬리를 축 늘어뜨린 채 대놓고 삐침과 실망을 드러내며 아예 제대로 찌질거렸다.
왜냐면 대충이라는 단어는 내가 하기 싫고 내가 할 일도 아닌 일을 억지로 떠맡겨졌을 때가 아니고서야 사용해선 안 되는 것이었으니까.
“바로 앞에 경찰이 있었는데도 도와 달라 말 못할 정도면 뭔가 사정이 있다는 건데, 경찰도 못 도와줄 일을 이유 하나 안 듣고 도와줬는데도 생각조차 안 해주신다고 칼같이 대답하셔도 뭐······ 어쩔 수 없는 거죠······.”
그렇게나 콧대 높고 자기밖에 모르는 아가씨에게도 통했던 찌질거리기가 거의 초면인 그녀에게 작렬했다.
“······?”
그러자 놀랍게도 무표정했던 그녀의 얼굴에 당황의 빛이 서리는 게 보였다.
좋아, 좋은 징조야.
아직 이름도 모르는 상대에게 사용하기엔 더럽고 치졸한 방법임이 틀림없었지만, 자존심 같은 건 교도소에 들어가기 전 다 버렸다.
내게 남은 건 오직 최고의 아이돌을 만들겠다는 염원뿐.
그리고 눈앞의 그녀는 최고의 아이돌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그런 사람임이 틀림없었다.
크흐흐, 아무리 얼굴에 감정 하나 안 드러날 정도로 두꺼운 철면피를 깔았다고 해도, 경찰도 못 도와주는 일을 대번에 도와준 사람이 이렇게 찌질대는 건 무시하기 힘들겠지.
그 세상 고마운 줄 모르는 아가씨조차도 내가 찌질거리면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것 같은 해야 할 말들을 술술 털어댔었다.
언뜻 보면 협박과 다름없는 것 같지만, 이 찌질거리기가 협박보다 좋은 점은 상대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저기.”
봐! 그렇게 차갑던 사람도 결국 죄책감에 못 이겨서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잖아!
이제 어쩔 수 없이 생각 정도는 해보겠다는 말이 나올 것이고, 그렇게 조금이나마 벌어진 틈을 공략한다면 그녀를 아이돌의 길로 이끌 수 있을 지도 몰랐다.
그렇게 역시 찌질거리기는 내 최고의 필살기라는 걸 다시금 가슴에 새기고 있던 찰나.
“그런데 저, 같이 도망쳐달라는 말은 한 적 없어요.”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검은머리짐승의 끔찍한 특성이 그녀에게서 발휘되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생색낼 거면 제대로 도와주고 말하세요.”
와.
진짜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치고 들어오길래, 나도 모르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어, 어떻게 도와주면 되는데요?"
그러자 돌아온 답은 또 다시 예상을 한참이나 뛰어넘는 것이었다.
"재워줘요."
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벌써 새벽 12시가 되었네요... 세상에나...
어라라? 밤낮의 상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