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화
누가 누굴 찾은 건지 (4)
1.
다짜고짜 재워달라니.
고기를 재워달라거나 토마토를 재워달라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왜냐면 그녀의 손엔 고기도 토마토도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결국 내가 재워줄 수 있는 건 단 하나.
“당신을요?”
“네, 잘 곳이 필요해요.”
눈앞에 있는, 차가운 얼굴의 그녀였다.
뭐지 진짜? 분명 나 이 사람이랑 오늘 처음 만난 것 같은데.
몇 번이나 상기하는 거지만 나는 오늘 눈앞의 이 여자와 처음 만났다. 이름도 몰라.
분명 그녀는 최고의 아이돌이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가치들을 갖고 있는 최고의 인재였다.
그러니 호감을 살 수 있다면 이런 부탁 정도는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지.
하지만 재워달라는 부탁만큼은 덜컥 받아줘선 안 됐다.
아무리 그녀가 도와주고 싶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 상황에서 바로 재워주겠다 말하는 것만큼은 무리였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에게 몇 가지를 확인해야만 했다.
“몇 살인데요?”
“스물 둘·····이요.”
일단 나이는 오케이. 겉보기에도 전혀 미성년자 느낌은 나지 않지만 요즘 애들이 워낙 성숙해야지.
“집은요? 원래 자던 곳은 없어요?”
“네, 아마 아까 저 쫓아오던 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이제 못 돌아가요. 거기로는.”
하긴, 그럴 것 같긴 했어. 잘 곳이 있는데 초면인 남자한테 재워달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되니까.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보호자 또한 없다는 게 된다. 있다고 한들 보호자의 역할을 해주진 못하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처음 보는 사람한테 재워달라고 말하지 않았을 테니까.
대충 필요한 것 두 가지는 알았으나 아직 가장 중요한 질문 하나가 남았다.
나는 차갑게 식어있는 그녀의 눈을 곧게 응시하며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
내가 운을 떼자 원래도 어두웠던 그녀의 낯빛이 더욱 어둡게 물들었다.
어떤 질문을 받을지,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예상을 한 걸까.
하지만 그녀는 돌아갈 곳이 없는 상황, 그런 예상 따위를 한다고 내가 할 질문을 막을 순 없을 거고 해야 할 답을 피할 수도 없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가 갑인 상황, 나는 싱긋 웃으며 질문을 건넸다.
“이름이 뭐예요?”
“······네?”
“이름이 뭐냐고요. 이름도 모르는 사람을 재워줄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그래, 이름도 모르는 사람을 집에 들일 수는 없는 법이지.
나중에 형님이 ‘뭐?! 누굴 재워줬다고?’하고 물어봤을 때 ‘어······ 몰라요? 안 물어봤는디?’라고 답하면 한심한 눈으로 쳐다볼 게 뻔하다.
그러니 다른 건 다 몰라도 이름만큼은 알아야했다.
계속 ‘그녀’ 같은 지시대명사로 칭하는 것도 뭐하고 말이야.
무튼, 사람의 이름이라는 건 그렇게나 중요한 것이고 집에 들이기 전에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름을 물으니, 그녀는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가 오늘 처음 보는 얼떨떨한 얼굴로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최하안······이요.”
“최하안. 하안 씨.”
좋은 울림이었다. 하안이라니. 흔한 이름은 아니잖아? 흔한 이름도 아닌데 편안한 느낌이야.
드디어 이름을 알아냈다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한테 아이돌해달라고 찌질대는 것보단 이름을 아는 사람한테 찌질대는 게 더 성공할 확률이 높을 테니까.
물론 이렇게나 기쁜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아가씨와 필적할 정도로 예쁘고 반짝이는 사람의 이름을 알아낸 건 당연히 기뻐해야할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하안 씨는 예쁘다는 말을 싫어하는 듯 했으니 그 사실을 입에 담진 않았다.
“저는 강진혁이에요. 스물일곱 살이고, 집은 여기서 5분만 걸으면 나와요.”
대신 나에 대한 통성명과 하안 씨가 답해준 대답들을 입에 담았다.
“네?”
상대에 대한 것을 혼자만 알고 있는 것보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걸 알고 있는 게 더 가까운 사이다.
사이가 가까워지면 아이돌 해달라고 찌질댔을 때 들어줄 확률이 더더욱 높아지는 거고.
물론 아이돌이라는 건 떠밀려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긴 하지만, 떠밀었을 때 밀린다는 건 조금이라도 할 마음이 생겼다는 거니까.
하안 씨가 조금이라도 밀릴 확률이 높아진다면, 조금이라도 아이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준다면 나는 무엇이든 할 자신이 있었다.
“하안 씨도 대답해줬으니까 저도 말한 것뿐이에요. 앞으로는 하안 씨가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주세요.”
“그러면, 강진혁 씨로······.”
“참고로 매니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 네······. 그렇군요. 강진혁 씨······.”
“크흠!”
“······.”
“크흠! 매니저! 크흐흠!”
“······어, 매니저님이라고 부르면 되나요?”
“하하핫! 그게 편하시다면!”
좋아, 하안 씨의 입에서 매니저라는 말이 나왔다.
이제 시작이나 다름이 없지만 시작이 절반이라는 말이 있듯 거의 다 온 거나 마찬가지였다.
‘뭐 이런 새끼가 있지?’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내게 그런 눈빛 따위에 상할 자존심 따윈 없었다.
자존심이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매니저님이라고 불리는 대신 따가운 눈초리를 받는 것 정도라면 싸게 먹히는 거지.
담당아이돌(아님)에게 매니저님이라고 불리는 건 생각보다 훨씬 기분이 좋았다.
아가씨가 나를 오빠라고 부르는 것 따위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매니저님이라는 호칭을 듣자마자 가슴이 간질거려 흐흐 웃던 도중 하안 씨의 몸이 살짝 움츠러든 게 보였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영하 10도랬지.
겉옷이라고 해봤자 패딩도 아니고 코트 하나 달랑 입은 사람한테는 분명 추운 날씨였다.
추운 내색을 하고 있진 않지만 분명 춥겠지. 벗어줄 겉옷도 없으니 빨리 안으로 들어가는 게 좋겠다.
양복 자켓을 벗어줄 수는 있었지만, 하안 씨한테 춥겠다면서 벗어줘봤자 거절할 게 뻔했다.
하안 씨는 여전히 내게 선을 긋고 있었으니까. 이런 받지 않아도 무방한 호의는 받지 않겠지.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몸이 떨릴 정도로 체온이 떨어져도 말이야.
하안 씨는 그냥 타인에게 다가가지 않고, 가까워지지 않으려는 부류의 사람인 것 같았다.
뭐 그것도 시간문제지. 상대가 다가오지 않는다면 내가 먼저 다가가면 그만인 거니까.
어떤 과거가 있고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7년 전 사회에 있을 때도 7년 동안 교도소에 있을 때도 피와 폭력과 범죄 속에 갇혀있었던 내 눈엔 하안 씨가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아이돌을 할 자격은 충분하다. 내 눈에 나쁘지 않게 보인다는 건 정말로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니까.
그냥 살다 보니 살기 위해 차가워졌을 뿐, 하안 씨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
나쁜 걸로 따지면 내 눈으로 보기에도 애매했던 아가씨도 결국 한국 최고의 슈퍼스타가 되지 않았는가?
아가씨도 그렇게 성공하는데 하안 씨라고 못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러니, 적어도 내 눈에는 하안 씨가 아이돌이 되는 것엔 그 어떤 문제도 없었고 그녀를 아이돌로 만들기 위한 내 노력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을 것이다.
“그럼 이제 집에 들어 가야할 텐데······ 그 전에.”
나는 하안 씨에게 당당히 손을 내밀고, 부탁했다.
“폰 좀 빌려주시겠어요······? 집에 들어가기 전에 전화를 해봐야 해서······.”
※※※
“네 형님, 그러니까 7년 동안 관리를 했다는 거죠? 아니 왜요? 왜 됐어요? 아······ 아가씨가? 직접? 7년 동안 계속? 그렇게 바쁘면서? 아······. 그러면 이번에 해외투어 갔으니까 지금은 청소가 조금 필요하겠네요? 예? 어제까지 형님이 직접 청소를? 아니 진짜 왜요?! 아, 아무튼 알겠습니다. 그······ 고마워요 형님.”
띡.
지금까지 관리를 해왔다고? 7년 동안 쭉?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아가씨가? 한국에서 제일 바쁜 연예인이 직접???
형님 말로는 휴가 때마다 몰래 들어와 아예 살기까지 했다는데, 아가씨와는 친남매보다도 각별한 사이임이 틀림없음에도 아가씨의 이런 면모를 알게 될 때마다 조금 거리감이 느껴졌다.
주인 없는 집에 들어와서 하지도 않던 청소랑 관리를 해왔다는 건 진짜 이상한 사람이라는 거잖아. 그것도 7년 동안이나 쭉.
물론 지금 같이 빨리 잘 곳이 필요한 상황에선 아가씨에게 감사해야 마땅할 상황이었기에 아가씨에 대한 평가를 ‘이상한 짓을 하는 아가씨’로 바꿀 여유는 없었다.
더 있으면 하안 씨가 저체온증이 올 수도 있기에 나는 하안 씨에게 빌렸던 핸드폰을 돌려줬다.
“핸드폰 빌려줘서 고마워요 하안 씨.”
“아, 네.”
“아무튼 이제 문제없이 집에 들어가도 되겠네요. 오랜만에 집에 들어가는 거라.”
“아······ 네.”
오늘 출근할 때까진 어쩔 수 없이 형님네 집에서 잤지만 거기서 계속 지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형님도 형수님이랑 둘이 알콩달콩 살아야지. 아가씨도 없는데. 둘이 금슬도 그렇게 좋은데 내가 끼어있으면 민폐야 민폐.
무튼 그런 이유로 나가서 살 곳을 찾아봐야했는데 마침 좋은 곳이 있었다.
“형님이 팔아넘겼다면 조금 귀찮았겠지만, 계속 갖고 있었으니 다행이지.”
거기가 어디냐면 바로······.
“그런데 매니저님, 여긴 집이 아닌데요.”
그래, 하안 씨의 말대로 우리가 도착한 곳은 빌라나 아파트, 혹은 오피스텔 같은 주택이 아닌 빌딩.
“네, 맞아요.”
전 정도파의 빌딩이자 현 바른길엔터테인먼트의 사옥이었다.
“제 직장이에요.”
예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지각 죄송합니다 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