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화
누가 누굴 찾은 건지 (5)
1.
[애초에 바로 그 녀석과 계약서를 쓸 때부터 건물 4층은 건드리지 말라고 했으니 거기서 자든 말든 상관없을 거다.]
4층을 쭉 비워둔 건 내 집을 방해받지 않고 즐기려는 아가씨의 욕망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나를 위한 형님의 배려이기도 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형님에게 감사인사를 전하고, 하안 씨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향했다.
띵-
“오.”
문이 열리자 보이는 건 새하얀 벽과 그 중앙에 덩그러니 남은 회색 철문.
7년 전 마지막으로 집을 나오며 봤던 그 집 앞의 모습이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남아있었다.
아가씨가 입맛대로 꾸몄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하나도 안 바뀌었네.
형님도 아가씨도 이 건물도. 내가 알고 있던 모든 게 변한 지금,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내 집의 모습에 나는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아가씨와 형님이 관리했다는 이곳이 바뀌지 않았다는 건 나를 향한 그들의 마음 또한 변하지 않았다는 걸 의미하고 있었으니까.
그 사실에 적잖게 감동하며 나는 도어락에 손을 올렸다.
비밀번호는 0707. 아가씨의 생일이었지.
삑삑삑삑.
‘오빠, 오빠 집은 내 집이나 다름없으니까 비밀번호도 내 생일로 해놔. 뭐? 그야 당연히 그래야 내가 들어오기 편할 거 아니야. 잊어먹지도 않을 거고.’
“참······.”
그땐 진짜 인성이든 예의든 전부 말아먹은 말괄량이었는데. 그랬던 아가씨가 지금은 나라를 빛내는 스타가 되었다니. 감개가 무량하구만 이거.
7년 만에 누르는 도어락 비밀번호에조차 감상을 느끼며 나는 그렇게 7년 만에 내 집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펼쳐지는, 정말 조금도 변하지 않은 나의 집안 풍경.
아가씨가 별장처럼 사용한다고 했기에 조금이라도 아가씨의 색으로 물들었겠다 싶었는데 정말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정말, 7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야. 진짜 고마워서 어떡하지 이거.
드디어 내 집에 돌아왔다는 감동을 느끼며 나는 아무도 없을 집안에 대고 인사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녀왔습니다.”
그러자 등 뒤에서 조금 어색한 인사말이 들려왔다.
“······실례합니다.”
고개를 돌리니 내 등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채 집안을 살피는 하안 씨가 보였다.
아무래도 집안에 누군가 있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아, 인사는 괜찮아요. 집에 아무도 없거든요. 혼자 사는 집이라.”
“네? 그러면 인사는 왜······.”
교도소에서 어제 출소해서 7년 만에 집에 돌아오는 거라는 설명은 지금 굳이 하지 않아도 괜찮겠지. 전과자라는 타이틀은 사람에게 반감만 주기 마련이니까.
“집에 정말 오랜만에 왔거든요. 반가워서 저도 모르게 그만.”
“······그렇구나.”
“그랬어요. 무튼, 추우실 텐데 들어오세요. 난방 바로 킬게요.”
“아, 네.”
서로 통성명도 했고 집에까지 들였음에도 하안 씨의 목소리는 여전히 딱딱하고 차가웠다.
그러면서도 하안 씨는 여전히 내게 선을 긋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내 집이 마치 자기 집이라도 되는 양 성큼 들어와 코트를 벗고 거실 옷걸이에 걸었다.
들어오라는 말에 쓸데없이 사양하는 것보다야 이게 좋지. 내 집을 편하게 여겨주면 더더욱 좋고.
4층 전부가 내 집이기에 이 집의 넓이는 평범한 아파트 네 채를 합친 것만큼이나 넓었다.
큰 방도 7개나 되고 말이지.
예전에는 형님이 부부싸움하거나 아가씨가 가출하면 당연하다는 듯이 내 집에 와서 잤었고, 나중에는 집에 혼자 있는 시간보다 여럿이 있는 시간이 더 길었다.
그래서일까 혼자 돌아온 것보다 누군가와 함께 들어온 게 내겐 더 익숙하고 좋았다.
오늘 처음 만난 얄팍한 사이고, 나한테 마음을 전혀 열지 않았다는 게 문제지만.
나는 이제 어떻게 구워삶아야 아이돌에 대해 생각이라도 진지하게 해줄지 고민하며 보일러를 켰다.
“방금 보일러 켰으니까 한 20분 정도면 따뜻해질 거예요. 그 동안 목욕이라도 하시는 게 어떠세요?”
몸이 차가워졌을 테니까. 회사 앞에 도착했을 때는 몸까지 덜덜 덜었었고. 그럴 때는 따뜻한 물이 가득 찬 욕조에 몸을 넣는 게 짜세다.
물론 그저 걱정만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
이런 당연한 듯이 행해지는 배려는 사람의 호감을 사기 마련이고, 호감이라는 건 조금이라도 쌓이는 순간 일정 수준 까지는 빠르게 커지는 법.
나는 순전히 하안 씨의 호감을 사기 위해, 그녀와 친해지기 위해 배려의 말을 건넨 것이다.
저래 냅뒀다가 감기라도 걸리면 마음이 안 좋기도 할 거고 말이야.
“······.”
하지만 얼굴이 조금이라도 풀어졌으면 좋겠다는 내 기대와는 달리 목욕 권유를 들은 순간 하안 씨는 순간 표정을 굳혔다.
뭐, 뭐지? 목욕 싫어하나?
원래도 굳어있는 표정이라고 생각했는데 거기서 더 딱딱하게 굳어버리니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 완전히 굳은 표정도 잠시, 다시 표정을 원래대로,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조금만 굳힌 하안 씨는 고개르 끄덕이며 내 권유에 응했다.
“······네. 그럴게요.”
그 딱딱한 목소리에서 어째서인지 ‘너도 결국 그럴 줄 알았다.’라고 말하는 듯한 경멸이 느껴졌지만 왜 그런 느낌이 들은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어······. 욕실은 복도에서 꺾어 들어가면 끝에 바로 보일 거예요. 옷은 따로 준비해드릴 테니까 그거 입으시면 되고요.”
“옷까지······ 있다고.”
방도 여러 개고 오는 사람도 어차피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이 집엔 당연하게도 내 집을 자기 집처럼 여기는 아가씨의 방도 있다.
아가씨는 사놓고 안 입는 옷도 많으니까. 그거 빌려주면 되겠지. 쉬는 날마다 여기 와서 쉰다는 걸 보면 짐 같은 건 그대로 있을 거고.
혹시 몰라 ‘Star’라는 문패가 붙어있는 아가씨의 방에 가서 확인해보니 예상대로 입을 옷이 종류별로 흐드러지게 있었다.
이 정도면 옷가게해도 되겠다.
무튼 입을 옷은 충분히 있다는 걸 확인했으니, 나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은 채 하안 씨에게 희소식을 전했다.
“네, 마음대로 입어도 문제 안 되는 옷 많아요. 편한 옷 가져다드릴 테니까 마음 놓고 목욕하시면서 몸 데우시면 돼요.”
“······네.”
으드득.
알겠다는 대답과는 달리 상황에 걸맞지 않은 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듣는 이로 하여금 의아할 수밖에 없는 소리에 머리 위로 물음표가 생겨나는 동안 하안 씨는 말없이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뭐지.”
방금 그 이 가는 소리는 사람이 진심으로 화가 났거나 환멸이 났을 때나 낼법한 소리인데 왜 그런 소리가 난 거지?
“잘못 들었겠지.”
굳이 이를 갈 이유가 없다는 걸 안 나는 아가씨의 방에 들어가 편하게 입을 수 있는 펑퍼짐한 잠옷과 속옷을 대충 골라 욕실 문 아래에 나있는 옷 구멍에 옷을 넣었다.
하도 아가씨가 갈아입을 옷을 안 챙기고 들어간 다음 나한테 옷 좀 가져다달라고 말해대서 그럴 바엔 그냥 옷 가져다주기 쉽게 뚫은 구멍. 그것이 바로 이 옷 구멍이다.
정말 편하다니까. 이 옷 구멍.
나는 오래 전에 뚫었음에도 여전히 그 쓸모가 대단한 옷 구멍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주방으로 향했다.
“그럼, 속 따뜻해질 음식이나 좀 만들어볼까.”
※※※
“······역시나 다 똑같아.”
욕실로 들어간 최하안은 이를 꽉 문 채 경멸의 감정을 삼켰다.
당연하게도 그녀가 품은 경멸의 대상은 이 집의 주인 강진혁.
문제를 말하기 전에 미리 알아채고 곧바로 그녀를 도망치게 해줬으며, 그 대가로 아이돌을 해보는 것을 생각해줄 수 있을지 물어봤을 땐 그래도 이상한 사람 정도로만 여겼었다.
예쁘다는 말에 얼굴을 살짝 일그러뜨린 이후로는 예쁘다는 말을 하지 않으니 그런 점은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재워달라는 말에 대뜸 이름을 묻고 어딘가 전화를 걸더니 ‘바른길엔터테인먼트’라는 간판이 걸린 건물로 그녀를 데려갔을 땐 더 이상 괜찮다 여길 수 없었다.
물론 재워달라는 말은 한 건 최하안 본인이었고, 강진혁은 그 말을 들어줬을 뿐이다.
그 사실은 최하안도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조금 의심은 하더라도 일단 강진혁을 따라 건물에 들어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탄 뒤 4층에 도착한 최하안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녀가 강진혁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을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뜨리기에 너무나 충분했다.
“누가 봐도 그런 곳이잖아. 여기.”
겉에서 보면 평범한 영세기획사 건물처럼 보이지만 4층에서 내렸을 때 최하안은 보았다.
누가 봐도 정상적이지 않은 새하얀 벽과 마치 벽 안이 가정집이라도 된다는 양 덩그러니 남겨진 회색 철문을.
강진혁이 문을 열고 그를 따라 들어갔을 때 최하안의 의심은 거의 확신이나 다를 바가 없어졌다.
“멀쩡한 기획사 건물 4층에 이런 가정집이 있다는 게 말이 돼? 그것도 이렇게나 넓은?”
방도 무려 7개나 됐다. 욕실을 제외하고도 7개.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유추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거기에······ 내가 겉옷을 벗자마자 목욕을 하라고 말하기까지 했어. 집안에 들였으니 이젠 다 잡은 물고기라는 건가?”
으드득.
최하안은 이에서 까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이를 갈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빛 한 점 남아있지 않은 두 눈동자는 아직 포기의 감정을 띠고 있지 않았다.
최하안이 지금까지 겪어왔던 위기에 비하면 이딴 허술한 곳에서 탈출하는 것 따윈 식은 죽 먹기였으니까.
“그래, 어차피 들어온 거 빨아먹을 대로 빨아먹고 나가자. 대놓고 들이댈 때 처리하면 되니까.”
스물 둘이라는 어린 나이임에도 최하안의 인생은 너무나 하드코어했고, 그렇기에 그녀는 그 어떤 위기에서도 빠져나갈 구명을 찾는 능력을 얻을 수 있었다.
날카로운 칼날처럼 벼려진 감각은 인기척 따위 눈 감고도 느낄 수 있게 만들어줬고, 강진혁이 말한 대로 이 집안엔 강진혁 뿐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최하안은 지금 이 장소도 상황도 전부 위험하다는 걸 확신하면서도 이렇게 목욕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한 명 정도는····· 쉬우니까.”
고난의 세월을 견디고 완성된 지금의 최하안에게 성인 남성 하나 정도 조지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었으니까.
“후우······.”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며, 최하안은 강진혁이 무슨 짓을 시도했을 때 그를 쓰러뜨릴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여태까지 그래왔듯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매니저가 깡패인 것도 모자라서... 아이돌(진)의 상태도 요지경??? 이 걸그룹... 대체 어떻게 되려는 거냐아아아앗------------------?!!!!!!
아참, 제가 독자님들께 말씀드릴 게 있어요.
1. 최하안은 처녀입니다.
2. 최하안은 몸을 판 적 없습니다. 생각도 안 해봤습니다.
3. 그렇다고 몸을 파는 척 남자를 조지고 함정에 빠트려 돈을 갈취한 적도 없습니다.
4. 애초에 최하안은 자신의 심신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부정한 행위에는 손도 댄 적 없습니다.
5. 최하안이 겪은 모든 위기는 전부 타인에 의한 것이고 그런 상황마다 그녀는 때로는 천운으로, 때로는 자신의 실력을 사용하여 빠져나왔습니다.
6. 그냥 인생이 슈퍼하드코어일 뿐이에요. 앵간한 피폐물 주인공 다 씹어먹는 수준입니다.
스포는 아니고 훗날 지나가듯 다뤄질 설정이지만 혹시 독자님들께서 불편하시다 느끼실지도 모른다는 노파심에 미리 말씀드립니다.
하안이는 안전해요!!! 어떤 관점에서 봐도 안전합니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