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가 깡패임-13화 (14/53)

제 13화

누가 누굴 찾은 건지 (6)

1.

철컥. 끼이익.

문이 열리는 소리에 주방에서 고개를 빼꼼 내미니 욕실 문 앞에 서있는, 여전히 굳은 표정의 하안 씨가 보였다.

묶었던 머리를 푸니 어깨까지 내려오는 중단발에 물기가 조금 남아 찰랑거렸고, 제대로 몸을 담그고 왔는지 건조했던 새하얀 피부 또한 우유처럼 촉촉해보였다.

밖에서 봤을 때도 진짜 예뻤는데. 목욕하고 나오니까 더 예쁘네. 말이 되냐?

현실은 언제나 개인의 상상을 뛰어넘는 법이라더니 지금의 하안 씨가 그러했다.

따끈따끈하고 촉촉해진 하안 씨는 7년 전의 아가씨조차도 조금 빛이 바랄 정도로 예뻤다.

거기에 편해 보이는 아가씨의 땡땡이 파자마까지 입으니 차가운 인상 탓에 부족했던 귀여움까지 추가되어 팔각형 미인 그 자체나 다름이 없어졌다.

어떻게 저렇게 예쁠까. 진짜 아이돌하면 국내 비주얼 원탑 자리는 따 놓은 당상이겠다.

상상을 뛰어넘는 아름다움에 나는 하안 씨를 꼭 아이돌로 영입하겠다고 의지를 불태우며, 최대한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씻으셨으면 식사 좀 하실래요? 따뜻한 오뎅탕 좀 만들어봤는데. 속이 편해질 거예요.”

무려 7년 만에 요리인데 의외로 실력이 죽지 않았다.

그 덕에 예전 내가 해줬던 요리 중에서 아가씨가 가장 좋아했던 칼칼하면서 맑은 오뎅탕이 7년 만에 같은 자리에서 재현되었다.

까다롭기로는 미식가 저리 가라하는 아가씨 입맛도 사로잡은 오뎅탕이야. 맛있지 않을 수가 없지.

물론 하안 씨가 오뎅탕을 싫어할 수도 있다는 위험이 있긴 했지만 다행히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뎅탕이라는 말을 들은 순간, 정말 찰나의 순간이지만 하안 씨의 눈이 커졌었으니까.

물론 눈 깜짝할 새에 하안 씨의 표정은 원래의 무표정으로 돌아갔다.

표정 컨트롤 진짜 짱이다. 볼수록 대단하다니까.

아이돌에게 필요한 재능을 몇 개나 갖고 있는 건지.

가장 중요한 보컬과 댄스는 아직 확인할 수 없었지만 아까 보여줬던 체력이라면 부족하더라도 연습으로 충분히 커버가 될 터이다.

그러니 지금 하안 씨가 보여주는 그녀가 가진 재능의 편린들은 더욱더 내가 하안 씨를 포기할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식탁에 앉으세요. 같이 먹어요 우리.”

“······네.”

거뭇한 속내를 숨기고 건네는 호의에 하안 씨는 잠시 뜸을 들이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내게 선을 긋는 것보다 굶주림을 먼저 해결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한 듯 했다.

그렇게 식탁 의자에 앉은 하안 씨의 앞에 뜨끈한 오뎅탕이 냄비째 올라갔다.

그 순간 나는 또 한 번 더 보게 되었다.

······꿀꺽.

오뎅탕을 앞에 두고 아예 군침까지 꿀떡 삼키는 하안 씨를.

하긴, 그렇게 추워할 정도면 꽤 오랫동안 바깥에 있었던 것 같은데. 뭔지 모를 놈들한테 쫓기기까지 했으니 배가 고플 수밖에 없겠지.

배가 고픈 상태에서 먹는 갓 끓인 오뎅탕이라니. 상상만 해도 군침이 싹 돌았다.

그리 배가 고프지 않은 상태에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 정도로 군침이 도는데 정작 진짜 배고픈 하안 씨는 어떤 기분일지.

나는 하안 씨의 차가운 얼굴이 오뎅탕 국물의 열기로 녹는 것을 기대하며 그녀의 그릇에 먼저 오뎅탕을 한 국자 퍼 담았다.

그 다음, 혼자 먹으면 눈치 보일 테니 내 그릇에도 오뎅탕을 퍼 담고 하안 씨 맞은 편 의자에 앉았다.

“그럼 어디 한 번 먹어볼······.”

먼저 먹으라고 말했다가 괜히 부담스럽다고 거절할까봐 나는 일부러 과장된 대사까지 치며 하안 씨보다 먼저 숟가락을 들었다.

그렇게 뜨끈한 오뎅탕 국물을 한 숟가락 뜨려던 찰나, 맞은 편의 하안 씨가 딱딱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저기, 매니저님.”

“아, 네?”

“바꿔주세요. 매니저님 식기랑 제 식기.”

“네? 그릇을요?”

“수저까지 전부 다.”

“어······.”

뭐지? 왜? 무슨 의미지 이건?

무슨 의도로 하안 씨가 이런 생뚱맞은 말을 한 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나는 내 그릇에 담긴 오뎅탕과 하안 씨의 그릇에 담긴 오뎅탕을 비교했다.

그렇게 자세히 보니 내 그릇에 담긴 오뎅의 수가 조금 더 많은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하안 씨 그릇에도 많이 담는다고 담았는데. 아가씨가 한 번에 많이 안 먹으니까 나도 모르게 조금 덜은 건가?

확실히, 그렇다면 바꿔달라는 말이 이해가 됐다. 그릇 속 오뎅의 개수는 중요한 문제니까.

그런데 수저까지 다 바꿔달라는 건······ 왜일까.

비교해보니 내 수저는 내 전용 쇠 수저고 하안 씨에게 준 수저는 아가씨 전용 나무 수저였다.

쇠 수저에서 쇠 맛이 난다나 뭐라나. 아무튼 그런 이유 때문에 식기를 나무로 바꿨었는데, 하안 씨는 아가씨와는 반대로 쇠 수저 파인 것 같았다.

그래, 아가씨가 쇠 수저 싫어하는 것처럼 하안 씨도 나무 수저가 싫을 수도 있지. 그나저나 자기주장이 이렇게나 확고할 줄이야. 기가 센 건 알았지만 이 정도였어? 볼수록 매력이네.

이로써 나는 또 한 번 하안 씨에게 호감을 느꼈다.

이러다 진짜 반해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이 들 정도로 하안 씨의 모든 행동과 모습은 나를 빠르게 함락시키고 있었다.

물론 나는 매니저니까. 담당 아이돌한테 반하는 일 같은 건 절대 일어나지 않겠지만.

나는 술렁이는 마음을 다잡고, 하안 씨가 원하는 대로 내 식기와 그녀의 식기를 순순히 맞바꿔줬다.

“여기요.”

“······감사합니다.”

바라는 대로 바꿔주니 뭔가 예상과는 다르다는 듯 하안 씨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동시에 분위기가 조금 무거워진 것 같아서 나는 분위기를 환기시키고자 가벼운 농담을 던졌다.

“그런데 이걸 눈치 채시네요.”

“······네?”

“일부러 하안 씨보다 더 먹으려고 제 그릇에 오뎅 하나 더 담았는데. 그걸 가져가시네.”

“······.”

“오뎅······ 좋아하시나 봐요?”

그러자 아주 조금, 하안 씨의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다.

※※※

하안 씨는 오뎅탕을 먹으면서도 내 모든 행동을 면밀히 관찰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는 순간 내 목을 물어뜯으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하안 씨의 눈빛은 날카롭고 집요했다.

하지만 진짜 살기도 아니고, 살기언저리에 불과한 그런 눈빛 따위로 지금껏 서슬 퍼런 칼밥을 먹고 산 나를 어떻게 하는 건 무리였다.

그런데 처음에 오뎅 퍼 담았을 때도 바꿔 달라하고 식사 마친 다음 물 마실 때도 컵 내가 마시려고 했던 걸로 바꿔달라고 하고······ 하안 씨는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병이라도 걸린 걸까?

하긴. 하안 씨는 보호자도 없다고 했었고 집도 없다고 했었다.

거기에 더해 자신에게 악의를 가진 이들에게 쫓기기까지 했고, 완전 초면인 나한테 도움을 청했을 정도니 벼랑 끝에 몰린 상태나 다름이 없겠지.

그런 상황이라면 누구든 그 상황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이득을 추구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할 테니까.

나 또한 나름 고단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으로서 하안 씨의 그 굶주림과 탐욕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굶주림과 탐욕은 끝도 없는 성장의 좋은 밑거름이 되는 법이지. 배부른 자는 굶주린 자를 이길 수 없는 법이니까.

그 사실을 직접 증명해본 나이기에, 나는 굶주림을 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장점이 될 수 있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하안 씨, 처음 봤을 때도 꼭 필요한 인재라고 생각했는데. 알면 알수록 정말 사람 안달 나게 만드는구만.

나는 최하안이라는 사람이 아이돌이 되었을 때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그렇게 설거지를 시작했다.

쏴아아아! 뽀득뽀득.

“이 추운 날에 온수로 설거지하는 거 진짜 좋네.”

※※※

열일곱이 되는 해, 사고로 부모님을 여의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았던 최하안은 정말 박한 대우를 받으며 자라왔다.

눈치를 받는 건 기본, 하루가 멀다 하고 무시와 모멸의 욕설, 폭언, 폭력이 그녀를 난도질해왔다.

하지만 그런 고단한 성장과정조차도 그녀의 미색이 온전히 피어나는 건 막지 못했다.

최하안이 열아홉이 되는 해에 그녀는 학교에서, 아니 도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주변에 보호해줄 사람 하나 없는 그녀에게 빛나는 외모란 오히려 저주와도 같았다.

빛나는 외모 때문에 자는 도중 술에 취한 삼촌에게 나쁜 짓을 당할 뻔했고, 다행히 성인이었기에 도망을 나올 수 있었지만 그녀를 기다리는 건 보호해줄 사람 하나 없는 이를 대하는 끔찍한 사회의 뒷면이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은 최하안에게 너무나 잘 들어맞았다.

3년 전 최하안의 부모가 졌던 빚이 어느새 수십 배로 불어나 있었고, 재산상속을 거부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기에 그녀는 온전히 그 빚을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빛나는 외모로 알바에 붙는 건 쉬웠지만 딱 거기까지.

최하안의 미모에 홀린 직원, 사장, 혹은 빚쟁이들의 개수작으로 인해 자의로나 타의로나 그녀는 한 알바에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굉장히 많은 위기를 겪었고, 그 모든 위기를 운 또는 자신의 실력으로 해쳐나갔다.

그리고 오늘도 그녀가 지금껏 해쳐왔던 수많은 위기 중 그저 그런 하루가 될 것이라고 최하안은 그렇게 생각했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왜 아무 일도 없지?”

강진혁이 행복설거지를 하고 있는 동안 최하안은 거실 소파 위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있었다.

소파가 침대로 써도 될 정도로 굉장히 넓었음에도 좁은 골방에 갇힌 사람처럼 면적을 최소화하는 건 어린 시절부터 좁은 곳에서 지내며 생긴 그녀의 버릇 때문이었다.

허리에도 별로 좋지 않고 다리를 펴고 앉거나 아예 눕는 게 훨씬 편할 터이지만 지금 최하안에게 그런 발상을 할 여유 따윈 없었다.

왜냐면.

뭐지. 왜, 왜 아무 수작도 안 부리는 거냐고.

최하안이 예상했던, 강진혁이 벌일 모든 개수작은 아무 일 없이 식사가 끝난 지금 그녀 혼자만의 망상이 되어버렸으니까.

음식도 멀쩡하고, 물도 멀쩡하고, 그릇도 멀쩡하고 식기도 멀쩡했어. 아무 약도 안 발라졌고, 안 타졌다.

그렇기에 최하안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최하안의 경험 속에서 사무용 빌딩 한 층을 전부 집으로 개조해서 쓰는 사람이, 그것도 이렇게나 방이 많은 곳을 마음대로 들락날락하는 사람이 쉬운 방법을 사용하지 않을 리가 없으니까.

아무리 경계를 풀기 위한다고 한들 이건 너무 과했다.

사람이 가장 무방비해지는 목욕 중에도, 목욕과 마찬가지인 식사 중에도 강진혁은 정말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친절하기만 했어. 진심으로 나를 배려한다는 것처럼 행동했다고.

강진혁이 편하게 입으라고 건네준 파자마 또한 너무나 부드럽게 편했다.

그 어떤 노출도 없었고, 그냥 말 그대로 편하게 입는 잠옷이었다.

“······왜?”

최하안은 그녀를 위하는 그의 모든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최하안의 인생에서 그 누구도 그녀를 이렇게까지 잘 대해주지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최하안은 인정할 수 없었다.

그의 호의가 진짜 그 무엇도 바라지 않는······ 아니, 그가 말했던 대로 고작 아이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줄 수 있냐는 아주 작은 보답만을 바라고 한 호의라는 것을.

그래, 이해할 수 없으면 직접 확인해보면 돼. 그러면 되는 거야.

최하안은 무릎에서 얼굴을 떼고 설거지를 마치고 수건에 손을 닦고 있는 강진혁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그녀의 인생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그리 하고 싶진 않은 문장을 읊었다.

“매니저님, 저랑 얘기 좀 해요.”

답지 않게 긴장한 최하안은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 강진혁에게 백허그를 했을 때와 같이 굉장히 어색한 투로 말을 끝맺었다.

“단 둘이서. 오붓하게. 이 소파 위에서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이어이 최하안! 그렇게 나오는 거냐아아앗?!?!?!?!?!?!?

아침부터 일정이 있어서 오늘 연참은 무리일 듯 싶습니다 ㅠㅠ 늦으면 연참이 국룰인데... 죄송합니다 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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