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화
누가 누굴 찾은 건지 (7)
1.
와, 와아. 와아아아.
머릿속이 물음표로 가득 차고, 한밤중 특유의 음습한 분위기가 심장을 심상치 않게 만들었다.
하지만 분위기 따위로 내 심장이 이리 빨리 뛸 일은 없었다.
내 부동심······ 속된 말로 깡은 형님이 감탄할 정도로 대단하다고 할 수 있으니까.
분위기 따위는 그저 거들 뿐, 나를 이렇게까지 혼란스럽게 하는 주체는 따로 있었다.
그게 뭐냐면 바로······.
“······.”
내 바로 옆, 몸을 조금만 옆으로 옮겨도 바로 닿을 정도로 가까이 앉아있는 하안 씨 때문이었다.
아니, 아니 왜? 하안 씨 사람한테 선 긋는 사람 아니었나? 자기가 그어놓은 선 안으로는 절대 못 넘어오게 하는 부류의 사람 아니었냐고!
거리를 점차 좁혀나가겠다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갑자기, 이렇게 가까이, 그것도 하안 씨 쪽에서 거리를 좁혀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
거기에 더해 먼저 오라고, 오붓하게 이야기 좀 하자고 했으면서 정작 앉았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하안 씨의 행태는 한창 당황스러운 내게 당황파우더를 포대 채로 들이 부어댔다.
오늘 첫 출근을 해서 경험했던 끔찍하게 지루한 시간들보다도 더 끔찍한 것이 지금 이 공간에 있었다.
내 집인데. 7년 만에 돌아온 내 집인데. 몇 되지 않는 마음의 안식처인데. 안식은커녕 이러다 영원한 안식을 갖게 생겼다고.
진짜 어색해서 죽어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앉은 채로 흘러가는 침묵의 1초가 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이대로 있다간 피가 말려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야기하자고 불려온 것임에도 먼저 입을 열었다.
“저, 저기 하안 씨······. 어떤 이야기를 하시려고 하신 건지는 제가 잘 모르겠지만, 운을 띄우기 힘드시다면 제가 먼저 입을 열어도 될까요?”
어떤 사람이든지, 들었을 때 흥미가 돋을 이야기는 많았다.
내게는 평범한 사람이 겪지 못했을 경험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으니까.
적어도 하안 씨가 교도소를 경험해보진 않았을 테니 교도소에서 겪었던 썰 중 하나만 풀어도 어색함을 날리기엔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교도소 썰을 풀었다가 전과자라서 싫어할 게 뻔하잖아. 세상에 전과자를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어.
그렇다고 깜빵에 들어가기 전 생활에 대해 썰을 풀 수도 없었다.
전과자나 깡패나 비호감 순위로는 거기서 거기였으니까.
아니, 전과자는 누명을 쓰고 들어갔다는 변수라도 있지 깡패는 자기가 원치 않으면 아예 할 수 없는 일이니 어떤 면에서 본다면 깡패가 더 비호감적인 면이 컸다.
그러면 내가 지금 꺼내도 괜찮을 이야기는······ 깡패가 되기 전, 어린 시절의 이야기뿐인데.
뭐, 어린 시절 얘기도 나름대로 스펙타클하니까. 오히려 깡패시절 때보다 더 격렬한 면도 있고. 그래, 어린 시절 이야기라면 나름대로 흥미도 끌 수 있고 재미도 챙길 수 있겠어.
빠른 두뇌회전을 통해 할 이야기를 정리하고, 강진혁 인생사 15년하고도 247일 때 겪었던 이야기를 꺼내려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가 먼저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12년 전 제가 시베리아 우랄산맥에 올랐을 때······.”
“매니저님, 매니저님은 왜 아무 짓도 안 하세요?”
그러나 내가 야심차게 준비한 강진혁 대장정은 창끝처럼 치고 들어온 하안 씨의 말에 가볍게 끊겨버렸다.
“······네?”
재밌는 부분을 이야기해줬을 때 빵 터지지는 않더라도 픽 실소 정도는 뱉어줄 거라 기대하며 입을 연 건데 시작도 못하고 끊겨버리니 텐션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왜 아무 짓도 안 하냐니. 나 오늘 뭔가를 되게 많이 하지 않았나?
“아무것도 안 하지 않았어요. 하안 씨랑 손 잡고 도망도 쳤고, 하안 씨 드시라고 요리도 했고, 하안 씨랑 먹은 거 설거지도 했는데.”
그래, 나는 분명 오늘 아무 짓도 하지 않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봐도 꽤 많은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런 거 말고요.”
하지만 하안 씨가 꺼낸 ‘아무 일’이라는 말과 내가 생각한 ‘진짜 아무 일’은 그 개념부터가 다른 것 같았다.
그래서 진심으로 궁금했다.
하안 씨가 대체 내가 어떤 일을 하길 바라고 있는 건지, 아니면 어떤 일을 하리라 예상했던 건지. 지금 나로서는 감히 예상할 수가 없었다.
“그런 게 아니라면······ 어떤 거요?”
그래서 대놓고 물으니, 하안 씨의 눈에 순간이지만 당황의 빛이 서렸다.
당황은 이내 수치로, 수치는 곧 체념으로 바뀌었고 하안 씨는 볼을 살짝 발갛게 물들인 채 작게 한숨을 쉬며 답했다.
“후우······ 그러니까. 여자랑 남자랑 단 둘이 있는 이 상황에서 할 만한 일이요.”
“여자랑 남자랑 단 둘이 있는 이 상황에서 할 만한 일이요?”
“굳이 되물어보지 않아도 괜찮았는데.”
불만스러운 듯 눈매를 날카롭게 세운 하안 씨에게서 시선을 피한 후 곰곰이 생각했다.
음, 여자랑 남자랑 단 둘이 있는 이 상황에서 할 만한 일이라. 그렇게 말하면 답은 그것밖에 없긴 해.
하안 씨의 말을 들은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건 ‘섹스’였다.
하지만 하안 씨가 이런 말을 한 의도는 내게 왜 섹스를 하려 하지 않냐고 묻기 위함이 아니었다.
다른 의도로 한 거야. 아마도······ ‘왜 둘 밖에 없는 이 상황에 자신을 덮치지 않냐.’겠지.
사회에 나온 후 거의도 아니고 진짜 모든 시간을 어둠 속에서 보내왔다.
그렇기에 나는, 돌려 말해서 더러운 일들을 발에 채일 정도로 많이 볼 수 있었고 사람이 얼마나 끔찍해질 수 있는지 적지 않게 확인했었다.
아마 하안 씨도 그런 의미로 말한 거고, 아마 이 집에 들어온 순간부터 내가 무슨 짓을 할 거라는 예상을 했겠지. 하안 씨 인생도 꽤나 스펙타클한 것 같으니까.
그러나 하안 씨의 예상은 지금 이 순간 그저 망상에 불과했다.
나는 하안 씨에게 적지 않은 호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건 전부 예비 아이돌 연습생에게 향하는 것.
매니저란 본디 자신이 담당한, 그리고 담당할 연예인에게 사사로운 감정을 품어서는 안 되는 법이니까.
그래서 나는 하안 씨의 질문에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답했다.
“제가 담당할 아이돌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매니저가 그런 생각을 품어선 안 되는 거니까요.”
“네?”
“그리고 만약에, 정말 만에 하나 하안 씨께서 아이돌을 할 생각이 없으시더라도 하안 씨한테 무슨 짓을 할 생각 같은 건 안 했을 거예요.”
내가 그럴 일도 없겠지만 정말 내가 갑자기 정신이 훼까닥 돌아서 ‘한 번 해볼까?’하고 생각만 하더라도 나는 아가씨한테 죽을 게 분명하다.
아니, 죽음보다도 끔찍한······ 영원히 아가씨에게 속박된 채 생사여탈의 권리조차 빼앗기고 참담한 인생을 살게 되겠지.
그러니 나는 자의적으로든 타의적으로든 그런 쓰레기 같은 짓을 하지 않을 것이고, 할 수도 없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당당하게 ‘안 그럴 것이다.’라고 말했더니, 하안 씨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입술을 달싹였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그걸 제가 어떻게 믿나요?’같은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런 말을 해봤자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아서 인지, 아니면 그런 말을 할 가치가 없다는 걸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대신 하안 씨는 내게서 고개를 돌리고 감정의 고저가 느껴지지 않는 담담한 목소리로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제 인생은 절망이에요. 정확히 말하면 5년 전부터 절망이었죠.”
도입부부터가 예사롭지 않은 하안 씨의 이야기는 장장 1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열일곱의 나이에 부모님을 여읜 것부터 알지도 못했던 빚이 3년 동안 무지막지하게 불어나 빚쟁이들에게 쫓기게 되었다는 것까지.
인생사 굴곡이라면 어디 가서 밀리지 않는 내가 들어도 막막하다 싶을 정도로 하안 씨의 인생사는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이 정도면 확실히 절망이라고 할 수 있겠네. 응.
하안 씨가 심할 정도로 사람을 경계했던 이유가 명확하게 밝혀졌다.
같은 상황에 놓였다면 나도 마찬가지로 사람을 경계했을 거야. 오히려 더하면 더했지 덜했진 않겠지.
말만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해한다는 건 오만하기 짝이 없는 짓이었지만 그래도 하안 씨의 일부분은 알 수 있었다는 건 확실했다.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는 건 내게 조금이라도 마음을 열었기 때문이겠지. 워낙 표정이 굳어 있어서 눈치 채지 못했지만 하안 씨와의 거리는 확실히 가까워지고 있는 거야.
상처라고도 할 수 있을 법한 것들을 이야기해줘서 고맙다고 입을 열려던 찰나, 하안 씨의 목소리가 내 말문을 막았다.
“제가 매니저님한테 이런 이야기를 한 건. 매니저님을 믿어서가 아니에요.”
아니구나. 김칫국을 마신 거였구나.
괜히 혼자 신났다가 혼자 슬퍼졌다.
그 탓에 내 어깨는 축 쳐졌지만 하안 씨는 내 어깨가 내려가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굳이 이런 말을 한 건, 제 인생엔 저밖에 없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였어요. 보호해줄 사람도 없고, 뒷배도 없는 무연고자. 그게 바로 저예요.”
하안 씨는 잠시 말을 끊고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엔 그녀 본인이 말한 대로 조금의 믿음도, 기대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저한테 무슨 짓을 하고 싶으면 뭐든 해도 좋아요. 뒤탈은 없을 테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컨디션이슈... 연참불능 ㅠ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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