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화
누가 누굴 찾은 건지 (9)
1.
“아뇨 안 불편하죠. 불편할 리가 없죠. 저는 그냥 하안 씨가 어제 좀 불편해보이셔서······ 이제 여기 있기 뭐하시지 않을까 싶어서······.”
하안 씨면 몰라도 내가 불편할 리는 없었다.
7년 동안 더럽고 비열하며 폭력적인 덩어리들과 그 좁은 방안에 우루루 몰려 지냈던 것에 비하면 폭력적일뿐인 하안 씨와 지내는 건 내겐 너무 행복한 일이었다.
이 넓은 집에서 혼자 사는 것만큼 적적해지는 일도 없고 말이지.
내가 진심을 담아 필사적으로 부정하자 하안 씨는 찌푸렸던 눈썹을 피고 담담하게 답했다.
“그런 거 따지면서 살았으면 1년 만에 객사했을걸요.”
“앗······.”
그렇게 나오면 내가 미안해지잖아.
민감하게 받는다면 얼마든지 민감해질 수 있는 주제를 너무나 담담하게 말하니, 내가 다 마음이 안 좋아졌다.
게다가 나만 느끼는 건지 몰라도 방금 내 질문과 하안 씨의 대답으로 인해 집안의 분위기가 나락을 가버렸다.
이대로 있으면 우울하게 하루를 시작할 게 분명해. 화제를 바꾸자.
나는 묻고 싶었던 두 번째 질문을 꺼냈다.
“그, 그러면 하안 씨. 그····· 편하신가 봐요?”
“네. 편해요.”
“아······ 다행이네요. 어제는 되게 경계하시고 그러셨는데.”
그릇을 바꾸고 수저를 바꾸고 물컵까지 내가 마시려고 했던 걸로 바꿨을 정도로 하안 씨의 경계는 강박증 수준에 달해있었다.
하지만 지금, 아침의 하안 씨는 세상 편안한 파자마 차림으로 터벅터벅 걸어와 냉장고를 벌컥 열고 물을 병째로 마시는······ 그야말로 이 집의 주인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제 좋게 끝났던 거면 모를까 좋지만은 못하게 끝났던 것 같은데 왜 저렇게 변한 걸까.
하루에도 열두 번씩 기분이 바뀌는 아가씨를 겪어본 나조차도 하안 씨의 변화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표정이 생긴 건 아니고 여전히 무표정이지만······.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경계를 하지 않는 거냐고.
하안 씨의 경계가 사라진 것을 경계하는 내게 하안 씨는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서요.”
너무나 간결한 대답이 돌아왔다.
진짜. 너무 간결해서 제대로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찰떡같이 말해도 콩떡같이 알아들을 수 있는 사이라면 괜찮겠지만 아직 하안 씨라는 사람이 내겐 너무나 어려웠다.
“그······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이 가능하실까요?”
“어젯밤에 침대에 누우니까 편해서요.”
“네?”
“이불은 따뜻하고, 침대는 푹신하고, 욕실도 있고 요리 잘 하는 매니저님도 있는데. 굳이 경계를 하면서 이 모든 걸 못 즐기는 건 너무 아까워요.”
내용이 추가된 하안 씨의 대답에 심장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그래서 경계 같은 거 안 하기로 했어요.”
나는 벅차오르는 설렘을 가까스로 억누르고 하안 씨를 향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그렇다는 건······.”
“그렇다고 매니저님을 믿는 건 아니에요. 언제 변할지······ 아니, 언제 본색을 드러낼지 모르는 게 사람이니까.”
“그, 그렇겠지요.”
내 설렘은 현실에 찌들대로 찌들어버린 하안 씨의 차가운 말에 곧바로 박살이 나버렸다.
하안 씨의 인생사를 들었으니 하안 씨가 이런 식으로 나를 대하는 것도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설렜다가 바로 설렘이 짓밟히는 건 아무리 정신이 단련된 나라고 해도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깨를 축 늘어뜨리니, 하안 씨가 수줍은 듯······? 한 마디를 더했다.
“······그래도 매니저님이 처음이에요.”
“네? 뭐가요?”
더한 말이 또 너무 간결해서 되묻자, 하안 씨는 입술을 몇 번 달싹이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입을 열었다.
“차, 차려주는 밥이 맛있을 것 같은 사람이요 .”
그 말을 끝으로 하안 씨는 새하얀 얼굴을 살짝 붉게 물들인 채 방으로 토도도 도망쳤다.
“뭐야 그게.”
하안 씨답지 않은, 그러나 의외로 어울리는 의외의 일면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2.
“······으아.”
바른길엔터에 출근한 나는 어제처럼 그 어떤 일도 없는 사무실에 앉아있었다.
길거리캐스팅을 할 권한을 사장님께 받긴 했지만, 이미 나는 하안 씨라는 어마무시한 대어와 사투를 벌이는 중.
이런 와중에 다른 물고기에 손을 대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었다.
그렇기에 나갈 수 있음에도 굳이 회사 안에서 이러고 있는 것이다.
······사람을 물고기에 비유하는 건 역시 조금 그런가? 그러면 어떻게 비유를 해야······ 아니, 굳이 비유를 할 필요는 없잖아. 그냥 하안 씨 하나만으로도 벅차서 다른 곳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고 하면 되지.
잡생각과 쓸데없는 고민을 깔끔하게 정리한 나는 다시 적막한 사무실에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하지만 어제와 달리 살인적인 지루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정확히는 ‘느낄 수 없었다.’ 라고 해야 하겠지.
왜냐면 지루함을 느끼기엔 하안 씨의 대한 것만으로도 생각할 게 한 가득이었으니까.
수없이 많은 하안 씨에 대한 생각 중 가장 중요하고 내 머리를 아프게 하는 건 단 하나의 의문.
‘어떻게 해야 하안 씨에게 아이돌을 할 마음이 들게 만들 수 있을까.’였다.
어젯밤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이 고민에 대해 정말 많은 답을 내렸었다.
먹는 거 좋아하는 거 같으니까 맛있는 요리를 해준다거나.
자는 걸 좋아하는 거 같으니까 방에 쾌적한 수면을 위해서 수면등을 놔준다거나.
씻는 걸 좋아하는 거 같으니까 향 좋은 고급 입욕제를 선물해준다거나.
대충 그런 걸로 꼬셔서 ‘아이돌하겠다 말하면 이것들 전부 해드릴게요!’하고 미끼를 던진다거나.
아무튼 그런 답들을 굉장히 많이 내려 봤지만, 내가 내린 모든 답은 하안 씨의 말 한 줄에 전부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행복하지 않다고 아이돌을 할 수 없다는데. 거기다 대고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
아마 하안 씨가 행복하지 않은 이상 내가 뭔 짓을 해도 아이돌을 해달라는 말은 귓등 선에서 컷이 날 것이다.
만난 지 이제 이틀 됐지만 하안 씨가 말을 허투루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건 명확히 알 수 있어. 하안 씨는 행복해지기 전까진 아이돌의 I도 받아들이지 않을 사람이야.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
고민에 고민을 더하다가 나도 모르게 마음속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하긴 뭘 어떻게 해?”
그리고 놀랍게도 내 마음속 목소리에 대답을 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고개를 들어 확인하니, 그곳엔 밋밋한 까까머리 최철훈이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 고민이라도 있냐?”
표정, 자세, 태도 뭐하나 불만스러워하지 않는 것이 없었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말만큼은 어째서인지 다정했다.
그 의외의 다정함에 나는 순간 놀랐다가, 이내 눈매를 좁혔다.
핸드폰이 없어서 형님한테 조언도 구하지 못하는 지금 최철훈은 유의미한 도움이 될 수도 있어. 그래, 먼저 물어봤으니까 한 번 도와 달라 말해보자.
“응. 있어. 도와줄 거야?”
“뭐, 못 도와줄 것도 없지. 그래서 뭔데? 그 고민이라는 거.”
“최철훈 씨가 알 건 없고. 그냥 핸드폰이나 좀 줘봐. 전화할 사람이 있거든.”
“······어?”
그렇게 나는 최철훈에게서 핸드폰을 얻어 형님께 조언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이야호! 역시 핸드폰이야!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의 필수품!
※※※
강진혁이 최철훈에게서 빌린 핸드폰으로 이성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 그 시각, 최하안은 거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좌우를 번갈아 보며 이 집안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슬쩍 소파에 몸을 뉘였다.
“······.”
그렇게 데친 숙주나물처럼 소파의 굴곡에 맞춰 널브러진 최하안은 허공을 바라보다 툭. 하고 지금 느끼고 있는 감각을 입밖으로 던졌다.
“······편안해.”
편하다는 감각을 느낀 게 대체 얼마만인지.
최하안은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했지만 마지막으로 느낀 편안함을 떠올릴 수 없었다.
하안(廈安:처마 밑의 편안함)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음에도 그녀는 조금도 편안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
“왜지.”
부모님을 여읜 후부터, 최하안의 인생은 그녀 본인의 말마따나 절망 그 자체였다.
최하안이 겪은 매일 매일은 내일은 보이지 않고, 오늘을 살기 위해 싸우며, 어제의 일에 악몽을 꾸는 날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뜨며 그 모든 절망을 견뎌냈다.
무언가를 이루고 싶기 때문도 아니고, 살고 싶다는 일념이 강해서도 아니었다.
그저 지고 싶지 않아서.
자신을 잡아 어디론가 팔아넘기려는 빚쟁이들에게, 불순한 의도를 가득 품고 자신의 몸을 탐하려는 친척에게, 자신의 미모에 시기질투를 느끼며 보호자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괴롭힘을 일삼았던 동급생에게.
그리고.
자신의 부모님을 앗아간 이 세상에게.
그 모든 것들에게 그저 지고 싶지 않았기에 최하안은 그 모든 절망의 날을 견뎌내었다.
이 끔찍한 삶을 살아왔음에도 자살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 이유 때문이었다.
스스로 선택한 죽음은 자신의 인생을 절망으로 빠뜨린 모든 것을 이겨낼 자신이 없어 도피하는 것이었으니까.
적어도 최하안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는 그런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왔고, 바로 어제도 지금까지처럼 오늘을 이겨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낯선 남자의 등을 껴안았다.
“왜 그랬지.”
원래의 최하안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저주와도 같은 자신의 외모를 이용한 행위.
어제를 생각할 여유가 생긴 최하안은 절대 하지 않을 짓을 어째서 한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매니저님의 뭘 안다고 그랬지.”
모르는 사람, 지나가다 스친 적조차 없는 정말 처음 만나는 사람.
게다가 경찰에게 취조까지 받고 있었으니, 위험한 사람을 피해야하던 최하안에게 어제의 강진혁은 분명 기피해야할 인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최하안은 강진혁을 피하지 않았고, 원하는 바가 있다 하더라도 되려 스스로 다가가 뒤에서 끌어안는 짓을 해버리기까지 했다.
삼촌의 일 때문에 생긴 트라우마로 그 누구와의 접촉도 꺼려하던 최하안은 자기가 저지르고도 스스로 놀란 나머지 말을 더듬었었다.
“당황할 거면 왜 그랬냐고.”
최하안은 그렇게 몇 번이고 어제 있었던 일들과 그 일들을 대처했던 방법에 대하여 ‘어째서?’라는 의문을 가졌다.
“······짜증나.”
하지만 그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강진혁이 최하안을 보고 그러했듯 최하안도 강진혁 같은 사람은 처음이었으니까.
풀리지 않는 의문에 심력을 쏟는 것은 효율주의의 극에 달한 최하안에겐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그렇게 의문은 접어두고, 신체를 말랑하게 녹이는 편안함에 몸을 맡기려는 그때.
우우웅-.
머리맡 최하안의 핸드폰이 위협적으로 진동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부릉부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