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화
누가 누굴 찾은 건지 (11)
1.
하안 씨가 왜 거기서 나와?
4층이 내 집이고 3층이 사무실이니 하안 씨와 이렇게 만난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녀가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도중인 무연고자만 아니라면 말이다.
갈 곳도 없고 보호해줄 사람도 없는 하안 씨가 이 시간에 들어왔을 때 입었던 옷 그대로, 그것도 가방까지 메고 나왔다는 건 분명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가방이 조금이지만 묵직해졌어. 이거 설마.
게다가 가방 속에 몰래 숨겨둔 물건 때문에 나는 더더욱 하안 씨를 내버려둘 수 없었다.
하지만 하안 씨를 내버려둘 수 없다고 해도 내겐 그녀를 붙잡을 명분이 딱히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하안 씨가 가방에 숨긴 물건과 누구와 만나려고 하는 지에 대해선 모르는 척 싱긋 미소를 지으며 엘리베이터에 들어갔다.
“하안 씨, 저랑 점심 먹으려고 내려오신 거예요?”
“······네?”
문이 닫힌 엘리베이터 속에서 능청스럽게 점심식사를 입에 담았다.
“제가 먼저 올라가서 부르려고 했는데 마침 잘 됐네요. 어디로 갈까요?”
“아니, 저기 매니저님.”
마침 점심시간이었고, 하안 씨를 붙들기엔 점심식사를 같이하자는 말만큼 좋은 명분이 없었으니까.
“그래, 하안 씨 좋아하시는 거 있으면 그거 먹을까요? 아니면 제가 이 주변에 맛있는 곳 많이 아는데 저한테 한 번 맡겨보실래요? 하안 씨 편하신 대로 갈게요.”
쉽게 거절할 수 없도록 다양한 선택지를 주고, 최대한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하안 씨의 경계를 풀어야한다.
‘그, 그래. 갈 땐 가더라도 밥 한 번 먹는 것쯤이야 괜찮겠지. 먹고 죽은 귀신이 떼깔도 곱다니까······.’하고 방심하게 만드는 것이 내 첫 번째 목표였다.
그렇게 점심식사를 하게 되면 식사하는 내내 저녁엔 뭐 먹고 싶냐고 물어보고, 좋아하는 음식 뭐냐고 물어보고, 혹시 이불은 따뜻한지 침대는 푹신한지 필요한 거 뭐 없는지에 대해 꼬치꼬치 물어볼 거다.
그 모든 질문에 하안 씨가 대답해도 좋고 대답하지 않아도 좋다.
왜냐면 그 질문들은 몰라서, 궁금해서 물어보는 게 아닌 하안 씨에게 미련과 망설임을 심어주기 위한 것들일 테니까.
하안 씨는 분명 편안함을 오랜 기간 못 느꼈던 것 같았어. 마음 졸이면서 편안함을 즐기지 못할 바엔 어제 만난 내게서 경계심을 풀겠다는 말을 할 정도로 말이야.
그러니 당연하게도 하안 씨가 갖고 있는 편안함에 대한 갈망은 상상 이상으로 커다랄 터.
나는 그 부분을 집요하게 노려 조금이라도 오래 하안 씨를 붙들어야 했다.
그래야, 가방 속에 넣은 물건을 쓸 일이 없을 테니까.
“아니, 아니다.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요? 집에도 먹을 건 있으니까 쉬시면서 드시는 게······.”
“······매니저님, 그만해요.”
하지만 하안 씨의 완전히 죽어버린 눈과 마주하고 그만하라는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하지만 그럼에도 의지만큼은 이글거리는 그 눈빛은 스물 두 살짜리가 지을 만한 눈빛이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평범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지을 수 없는 눈빛이었다.
진정으로 뒤가 없는 사람들이나 지을 법한 눈빛······.
지금 하안 씨의 눈빛은 깡패시절 잃을 게 없어진 깡패들 혹은 교도소 무기수에게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것이었다.
대체 내가 출근하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어제 쫓길 때도 저런 눈빛은 안 했었잖아.
눈빛에 당황하여 말을 잃은 내게 하안 씨는 담담히, 조금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내게 인사했다.
“재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잊지 않을게요.”
직후,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그렇게 하안 씨는 내게서 떠나갔다.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나는 감히 하안 씨를 잡을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이건 온전히 하안 씨 본인의 일이었고, 거기에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으니까.
2.
“······후우.”
거기서 나타날 줄이야. 직장이라는 게 진짜였다니. 자칫하면 떠나지 못할 뻔했어.
싸늘한 겨울바람을 맞으며 최하안은 방금 헤어진 강진혁에 대한 생각을 했다.
1층까지 한 번에 가야했을 엘리베이터 문이 도중에 열리고 거기서 강진혁이 나타났을 땐 진심으로 놀랐었다.
하지만 이내 최하안은 자신에게 온 문자를 떠올리고, 문자를 보낸 이들이 어떤 이들인지를 떠올린 끝에 강진혁이 뻗어온 손을 거부할 수 있었다.
“그것들이 매니저님한테 손을 대게 해선 안 돼.”
수 년 동안이나 최하안을 압박해온 그들은 수많은 절망과 싸워 버텨낸 최하안조차도 감히 대적할 엄두가 들지 않을 정도로 잔악무도한 이들이었다.
그들과 대적하기 위해 최하안이 할 수 있었던 건 오직 도망뿐.
그것조차도 하루가 지나기 전에 그녀의 소재를 알아버리니 심신이 피폐해져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을 물건으로 보는 놈들이야. 나와 관련되어선 안 돼. 매니저님은······ 이런 세상 따윈 알아선 안 돼.”
어제의 최하안이었다면 이런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았을 것이다.
강진혁을 자신의 문제에 끌어들이진 않더라도 아마 뻔뻔하게 점심까진 얻어먹고 헤어졌을 터.
하지만 하룻밤 사이 강진혁에게서 받았던 다정함과 온기가 최하안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말았다.
“매니저님은 그냥 그대로 있어줘요. 따뜻하게.”
그 누구도 믿지 않았던 그녀가 가슴이 저릴 정도의 미련을 느낄 만큼.
“안녕.”
최하안은 바른길엔터가 있는 곳, 그녀에겐 강진혁의 집을 향해 마지막 인사를 남긴 뒤 망설임 없이 뒤로 돌아 앞으로 나아갔다.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끝없는 절망과 맞서기 위해서.
※※※
“이야, 진짜 왔네? 이번에도 토낄 줄 알았는데.”
사람 하나 다니지 않는 폐공장 안, 패거리의 우두머리 조철만은 최하안을 보며 큭큭 웃었다.
“뭐, 어제 그 너 데리고 도망친 새끼랑 눈이라도 맞았냐? 그래서 회사 사진 찍어 보내니까 허겁지겁 달려온 거냐? 참나, 천하의 최하안이 남자 때문에······. 크흣, 푸흐흐흐······. 푸하하하핫!”
“하, 하핫. 하하하하하하!”
“크하하하하핫!”
그가 웃자 그의 부하 박혁수와 김만식이 따라 웃었고, 밀폐된 폐공장은 세 사람의 역겨운 웃음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
하지만 모두가 웃고 있는 이 공간에서 유일하게 최하안은 메고 있는 가방 끈을 꽉 쥘 뿐 조금의 웃음기도 띠지 않았다.
그 분노에 떠는 듯한 모습에 조철만의 웃음소리가 끊기고 눈매가 좁혀졌다.
몇 년 동안이나 최하안을 봐온 그조차도 처음 보는, 명확하게 드러난 분노.
표정은 무표정이었지만 꽉 쥔 채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과 힘이 들어간 턱이 그녀가 분노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사람을 물건처럼 보기에 사람의 변화에도 민감한 조철만은 최하안의 반응에 헛웃음을 뱉었다.
“하, 세상에. 진짜라고? 처음 만난 놈이랑? 그 최하안이? 대체 뭘 어떻게 구워삶은 건지.”
노련한 조철만조차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최하안이 그 누구도 믿지 않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안위를 첫 번째로 생각한다는 건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놀라는 것도 잠시, 조철만은 혀를 쯧쯧 차며 최하안을 조롱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혼자 온 걸 보면 그 새끼가 돈이 많은 건 아닌 것 같고. 뭐, 좆이 컸냐? 쓰읍······ 그럼 곤란한데. 중고는 제값을 못 받는단 말이지.”
“······.”
“그나저나 아무리 최하안 정도 되는 얼굴이라고는 해도 말 몇 마디 섞어보면 어떤 년인지 충분히 알 수 있을 텐데. 그 새끼도 엔간히 밝히나보다. 응? 너 같은 미친년이랑 한 지붕 아래서 자고 말이야.”
이 정도 조롱은 최하안에겐 너무나 익숙한 것이었고 여느 때처럼 그냥 넘길 법도 했지만 이번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새끼한테 얼마나 뜯었냐?”
“닥쳐.”
왜냐면, 조롱의 대상에 강진혁이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너, 너.”
“닥치라고 했어.”
가까스로 숨기고 있던 적의조차 확연히 드러내며 최하안은 자신의 시야에 세 깡패를 담고 놓치지 않았다.
“당신들의 더러운 입에 그 사람을 담지 마. 당신들 따위가 왈가왈부할 사람이 아니니까.”
한 마디만 더하면 전부 죽여 버리겠다고 말하는 듯한 그녀의 눈빛은 뒷 세계에서도 먹어주는 조철만조차 움찔거리게 만들 정도로 살기가 등등했다.
“와. 얘들아, 실화냐 이거? 최하안이 닥치란다. 지 남자 얘기했다고 진짜 화났나봐.”
그러나 최하안의 진심어린 살의도 조철만을 움찔거리게 만드는 것이 고작이었다.
살의를 품는 것만 가지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깡패생활을 하며 몸으로 머리로 배웠기 때문이었다.
조철만은 최하안을 향해 이를 드러내고 비릿하게 웃었다.
“그나저나······ 쥐새끼 같은 최하안을 어떻게 잡아 넣냐 고민이 많았는데. 이렇게 소중한 사람이 있다면 되게 쉬워지지.”
“뭐, 뭐?”
사냥감이 새끼를 품고 있는 장면을 발견한 사냥꾼처럼 조철만은 두 눈을 비열하게 빛냈다.
그 눈빛이 닿은 순간 최하안은 이를 까득 물고 자신의 실수를 직감했다.
젠장······. 매니저님 이야기가 나오니까 나도 모르게.
그러나 실수를 직감했을 때는 보통 되돌리기엔 늦은 경우가 많았고, 안타깝게도 지금 이 상황도 늦은 경우에 속했다.
조철만은 최하안이 후회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지금 조철만이 입에 담고 있는 말들은 수 년 간이나 쫓았던 최하안을 잡았을 때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으니까.
“계집 하나 잡는 건 일도 아니지만, 최하안 너는 달랐어. 자존심 상하지만 솔직히 잡기 존나 힘들었다 이 말이야.”
“······.”
“왜냐? 네가 좆도 없는 무연고자니까. 잃을 것도 없고 정해진 집도 없어. 살기 위해선 뭐든지 할 수 있고, 쉴 수 있는 장소에 들어가도 경계는 늦추지 않지. 세상을 자기 혼자 사는 년만큼 잡기 힘든 게 없단 말이지.”
말 하나하나에 지금까지 조철만과 그의 패거리들이 겪었던 고생과 한이 담겨있었다.
최하안을 절망으로 빠뜨린 사람들 중 가장 지분이 큰 것이 바로 조철만을 비롯한 그의 패거리였지만 정작 조철만 본인도 몇 년 동안이나 최하안을 사로잡지 못해 좆뺑이를 깠었다.
“그러면서도 가장 빡치는 건. 네가 그 와중에 빚을 갚아보겠다고 일을 했다는 거야. 그것도 몇 년 동안이나. 씨발 네가 일하러 들어간 곳마다 씹창을 내놨는데. 왜 멈추질 않지? 조져도 조져도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꾸역꾸역 도망치고 일을 하는 니가 얼마나 무서워 보였는줄 아냐?”
“으으······!”
조철만의 읍소와도 같은 격정적인 물음에 그의 옆에 있던 부하 김만식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람을 물건처럼 다루는, 잔악무도하기 그지없는 그들조차도 최하안의 집념은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너 때문에 좆뺑이 치는 것도 이젠 끝이다. 하룻밤 만에 떡정이라도 깊게 든 건지 약점이 생겨버렸으니까.”
“······.”
조철만 패거리가 최하안을 잡을 수 없었던 건 그녀가 돌아갈 곳도 없고 연을 맺은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연고자가 무연고자가 아니게 되어버렸네? 돌아갈 곳이 생겼고, 의지할 사람이 생겼어. 그러면 뭐 게임 끝이지.”
부정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비정했다.
전부 조철만이 말하는 대로였다. 그가 바른길엔터의 사진을 찍어 보낸 순간부터 최하안은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 조철만은 책상 위에 올려둔 서류를 집어 들고 최하안이 볼 수 있도록 팔랑이며 말했다.
“너라면 잘 알고 있겠지? 우리가 그 새끼 뭐하는 새끼인지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니라는 거.”
“······젠장.”
“빚 납부기간은 지난 지 오래고, 네게 그 많은 빚을 갚을 여력이 없다는 건 누구보다도 잘 알지. 하지만 우리는 이래봬도 비즈니스를 하는 입장이고, 어떻게든 돈만 받아내면 돼. 그러니······ 3년 전에 했던 질문을 똑같이 하마.”
조철만이 손에 들고 있는 건 한 장의 계약서였다.
3년 전 삼촌에게 덮쳐질 뻔했던 최하안이 그를 조지고 집에서 나온 그 당일,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조철만에게서 받았던 것과 동일한 계약서.
“외모는 타고났으니, 수요도 있는 법이지. 중국 갑부가 널 사겠다고 한다. 3년이 지났는데도 식기는커녕 갖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는 상태야. 아마 3년 전과는 달리 많이 거칠어졌을 테지.”
자신을 팔아 빚을 갚겠다는 내용이 적혀있는, 신체포기각서와 동일한 악의의 계약서였다.
3년 전, 최하안이 이 계약서를 처음 받아들었을 땐 바로 말도 안 된다며 조철만의 안면에 계약서를 집어던지고 도망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불가능했다.
“거기 도장만 찍으면 네가 좋아하는 그 새끼도 안전할 거고, 네게도 빚을 갚고도 남을 돈이 떨어질 거다.”
왜냐면 강진혁이 인질로 잡혀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최하안은 이를 까득 깨물고, 조철만에게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최하안은 처음으로 조철만에게서 도망치지 않고 그를 향해 당당히 나아갔다.
“이야······ 살다살다 최하안이 나한테 걸어오는 꼴을 다 보네. 지금까진 그 꽁무니만 봤는데 말이지.”
“······그 사람은 절대로 건들지 마.”
“그럼그럼. 네가 이렇게 협조해주면 나야 건들 이유가 없지. 우리도 나름 민간인 건드리는 데엔 리스크가 있거든.”
최하안은 조철만과 책상 하나만큼의 거리만 두고 책상 위에 놓여진 계약서 앞에 섰다.
“도장 꺼내서 찍어. 그러면 그 새끼는 안전해진다.”
길고 긴 술래잡기의 끝에서 조철만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최하안을 향해 턱짓했다.
“······.”
조철만의 명령에 최하안은 말없이 가방 속에 손을 넣었고, 그 모습을 보며 ‘씨발 드디어 끝이다. 진짜 개좆같은 년.’하며 조철만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려는 순간.
“근데 내가 당신들을 어떻게 믿어?”
“뭐?”
분노에 살짝 일그러졌던 최하안의 얼굴이 본래의 무표정으로 돌아왔고.
“나는 역시 나밖에 못 믿겠어.”
동시에, 가방 속에서 도장 대신 강진혁의 집에서 꽁쳐온 회칼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이게 확실한 방법이지.”
“미, 미친년이!”
“당신 같은 사람들은 매니저님 절대 못 건드려.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
쐐애액!
그렇게 최하안은 죽은 눈으로 곧 죽을 이를 바라보며 꽉 잡은 회칼로 조철만의 배때기를 쑤셨다.
"이런 개미친!"
아니, 쑤시려고 했다.
“하안 씨 스탑! 개지랄 멈춰요!”
등 뒤에서 너무나 듣고 싶었지만 지금만큼은 듣고 싶지 않았던 강진혁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지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