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가 깡패임-20화 (21/53)

제 20화

누가 누굴 찾은 건지 (13)

1.

“형님, 저 이래봬도 사장입니다. 그냥 점심 먹으라고 나오라는 거면 모를까 땜빵이라뇨.”

“그래서 실적이?”

“형님께서 불러주시면 당연히 나와야합죠. 이야 국밥 진짜 오랜만이네! 맛있겠다!”

“그치? 그럼 그냥 입 닫고 먹자. 나도 약속 파토 나서 좀 짜증나니까.”

이성은 뚱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강진혁에게 집에 데리고 들어왔다는 여자에 관한 이야기도 물어보고 오랜만에 형님으로서 결정적인 도움이 될 조언도 아끼지 않으려고 했는데 팽을 당해버리니 여간 짜증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이성의 눈치를 살피던 정바로는 그냥 뒀다간 분위기 때문에라도 체하겠다 싶어 조심스럽게 물꼬를 텄다.

“그······ 그래서 그놈은 뭔 일이 있어서 형님이랑 잡은 약속도 깨버린답니까?”

“응? 아 뭐. 갑자기 일이 생겼다나 뭐라나. 이번에 진혁이가 길거리캐스팅한 거 너는 알지?”

허락을 해준 사람이 정바로 본인이었으니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는 길거리캐스팅에 대해선 그 어떤 기대도 하지 않고 있었다.

왜냐면 요즘 같은 시대에 길거리캐스팅이란 정말 낭만과도 같은, 걸을 걷다가 당첨복권을 줍는 수준의 운이 없다면 성공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냥 제풀에 지쳐 퍼지길 기다렸는데······ 거기서 길거리캐스팅 얘기가 왜 나오지?

“암튼 어제 웬 여자를 만났대. 그런데 얼굴도 엄청 예쁘고 재능도 무진장 뛰어나서 반드시 아이돌을 시키고 싶다나 뭐라나?”

“그러면, 한다고 했대요?”

“아니. 그쪽에서 몇 번이나 거절한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설득하려는 건지 뭔지 그거 때문에 약속이 파토가 났어.”

“저런.”

이성의 대답에 정바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혀를 쯔쯔 찼다.

너무나 현실적인 결말이라 강진혁이 안타까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정바로는 안타까움을 숨기고 이성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기 위한 말을 꺼냈다.

“그래도 형님이랑 약속이 먼저지 그놈도 참 그러네요. 한 번만 까였으면 모를까 몇 번이나 거절당했으면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대체 뭘 어떻게 질척이려고 점심약속도 못 지킨답니까?”

정바로는 강진혁이 이성과의 점심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과 자신을 고작 땜빵으로 만든 것에 화가 나있었다.

그 화는 이성의 기분을 달래주기 위해 과장이라는 불쏘시개를 통하여 더욱 크게 발화했고, 그의 과장스런 분노에 이성은 오늘 처음으로 끌끌대며 웃었다.

“크흐흐······ 새끼. 비위 맞추는 솜씨하고는. 내가 알던 고고한 천재 프로듀서 정바로가 맞냐?”

“저도 이젠 세상물정 모르는 애송이가 아니니까요. 그리고 그 시절의 저였다고 해도 형님 바람 맞춘 놈 이야기를 들으면 바로 화냈을 걸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형님인데.”

“그건 그래. 내가 너한테 웬만치 잘해줬어야지.”

“식사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두 사람의 대화 도중 뚝배기에 담겨 팔팔 끓어오르는 순대국밥이 테이블 위에 놓여졌다.

종업원에게 고맙다며 인사를 한 두 사람은 동시에 숟가락을 들었고, 정바로는 순대국의 간을 맞춘 이성이 한 숟가락을 뜨고 나서야 숟가락을 움직였다.

후루룹.

“크허어. 진짜 맛있다. 내가 가본 국밥집 중에선 여기가 제일 잘해 진짜.”

“크흐으. 그러니까요. 그나저나 그놈은 이 국밥도 마다하고 대체 어디까지 갔답니까?”

아무생각 없이 그리 물으며, 정바로는 다시금 뜨끈한 국밥을 한 숟가락 들어 후후 불고 입에 넣었다.

“응? 아, 그 뭐라고 했지. 와일드보어 캐피탈 사유지랬나? 거기 폐공장터 있잖아. 거기로 들어간다는데? 그 근처 공중전화에서 전화했더라.”

“푸우우우웁!”

그리고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은 순간 입안에 있는 밥풀을 세차게 뿜어버렸다.

다행히 반사적으로 고개를 틀어 이성의 안면에 국밥세례를 퍼붓는 일은 없었지만, 입안의 음식물을 뿜는다는 애초에 행위 자체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너 이 자식······.”

미간을 살짝 찌푸린 이성이 한 소리를 하려던 찰나, 입가를 티슈로 닦은 정바로의 입에서 당황스럽고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와, 와일드보어 캐피탈이라뇨! 거기 폐공장이라뇨! 그러면 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요!”

“으, 응?”

“으, 응이 아니라! 거기 순 깡패놈들 밖에 없는 곳이잖아요! 게다가 그 폐공장은······.”

와일드보어 캐피탈.

근방에서 가장 유명한 대부업체로 최근 혜성처럼 등장해 근방에 있는 모든 대부업체를 흡수한 생태계 교란종.

빌려준 돈은 무슨 수를 써서든 받아내는 집요함과 방법를 가리지 않는 과격함은 전국구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반인인 정바로가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이유는 과거 와일드보어 캐피탈에서 돈을 빌린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그놈들은 진짜 위험하다고요! 돈 되는 일이면 사람도 막 죽여요! 진짜로!”

일전 기획사를 차리기 위해 돈을 빌렸다가 사기를 당해 빌린 돈 전액을 잃어버린 정바로는 돈을 빌려줄 때만 해도 생글생글 웃던 사람들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 직접 경험해본 적이 있었다.

분명 모텔에서 잠에 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수술대 위에 올라가 있었던 기억은 정바로가 가지고 있는 가장 끔찍한 기억이었다.

“그때 형님이 구해주지 않았다면 전 진짜 죽었을 거라고요. 속이 텅 빈 채로!”

“크흐흐····· 그때 니 얼굴 생각하면 아직도 웃긴다.”

“아니 형님, 웃을 때가 아니라니까요! 그 폐공장, 말이 폐공장이지 진짜 중범죄라면 가리지 않고 다 저지르는 곳이에요!”

“그건 나도 알지. 나도 그때 니 구하러 직접 가봤으니까.”

뒷세계에서 많은 경험을 해본 이성조차도 그날 폐공장에서 봤던 것들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놈들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들 중 최악만 골라서 하는 씹새끼들이었다.

다행히도 그날 이성과 이성경호의 경호원들이 거기 있던 이들을 전부 쓸어버린 후 경찰에 신고까지 때려서 더 이상 그런 짓을 대놓고 할 수는 없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와일드보어 캐피탈은 망하지 않았고, 능숙하게 꼬리를 잘라 폐공장 부지는 여전히 그들의 범죄은닉처였다.

오히려 그날 제대로 뿌리를 뽑지 못해 그들의 범죄는 더욱 은밀하고 치밀해졌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성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진짜 깡패새끼들이지. 그 새끼들은. 위험하기도 존나게 위험하고.”

그날 맞았던 칼침만 몇 방인지, 이성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고자 국밥을 한 숟가락 떠올렸다.

말하는 것과는 다른 태연한 국밥섭취에 정바로는 어이가 없어 소리를 빽 내질렀다.

“그러니까요! 지금 그렇게 태연하게 국밥 뜨고 있을 때가 아니라니까요? 빨리 나오라고 전화를 하든 구하러 가든 해야······!”

“괜찮아. 그래봤자 깡패새끼들인데 뭘.”

“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여전히 태연하기 그지없는 이성의 대답.

앞에선 ‘위험하기도 존나게 위험하다.’라고 하고 뒤에선 ‘그래봤자 깡패새끼.’라고 하니 정바로는 이성이 한 말의 맥락을 파악할 수 없었다.

그래서 멍청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더니, 이성은 다시 국밥을 한 숟가락 떠올리며 설명에 살을 붙였다.

“아참, 너는 진혁이 그 녀석이 어떤 놈인지 모르는구나?”

“네? 그······ 깡패 전과자잖아요? 살인미수로 들어간.”

“새끼······ 그건 누명이라니까?”

“아무튼 깡패는 맞잖아요!”

“맞지. 그런데 네가 생각하는 그······ 힘없는 사람들 갈취하고 때리고 그러는 일반적인 깡패는 아니야.”

“그러면 뭔 깡팬데요.”

어이가 없다는 듯한 정바로의 그 질문에 이성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그를 똑바로 바라본 뒤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깡패들이 힘없는 사람들을 갈취하고 때린다면, 진혁이는 깡패들을 갈취하고 때려.”

“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전국에 주먹으로 이름을 날린 깡패들을 힘없는 사람으로 취급하지.”

강진혁에 대해 설명하는 이성의 얼굴엔 숨길 수 없는 기대감이 드러나 있었다.

홀로 폐공장에 들어간 강진혁이 이번엔 어떤 일을 벌이고 돌아올까 기대하는 듯한, 걱정 따위는 전혀 하지 않는 얼굴에 정바로는 말문이 턱하고 막혀버렸다.

아니, 다른 곳도 아니고 그 폐공장인데? 와일드보어 캐피탈의 사유지인 폐공장인데?

와일드보어 캐피탈이 얼마나 막나가고 위험한 놈들인지 몸소 경험해본 정바로로서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바로가 이해할 수 없어 입만 벙끗대든 말든 이성은 마치 자기자랑을 하듯 강진혁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그 당시 깡패들이 진혁이를 보고 일컫기를.”

“이, 일컫기를?”

“깡패들의 깡패. 만인의 깡패. 라고 했었다.”

2.

“어, 으아? 아니, 으에?”

등 뒤에서 처음 들어보는, 굉장히 귀여운 인지부조화 효과음이 들려왔다.

당장이라도 고개를 돌리고 하안 씨의 인지부조화를 겪고 있는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러기엔 조금 여유가 없었다.

“이, 이 미친새끼가!”

쿠당탕탕탕탕!

바로 눈앞에서 회칼과 쇠파이프를 든 깡패새끼들이 달려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이젠 안 볼 줄 알았던 폭력적인 광경에 나는 깊은 한숨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하아······.이 꼴 안 보려고 7년을 박았는데 결국 이렇게 되는구만.”

분명 아이돌 매니저를 하려고 7년을 썩다 나왔는데 눈앞에 보이는 건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돌이 아니라 반짝반짝 빛나는 회칼과 쇠파이프, 그리고 거무튀튀한 깡패들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위안이 되는 건, 내 등 뒤에 이곳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반짝이는 별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나는 나를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그 별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는 그 사실이었다.

그래도 뭐, 이렇게 해서 하안 씨를 지킬 수 있다면야. 쌈박질 정도는 얼마든지 해도 괜찮지.

하안 씨가 나를 위해서 칼을 든 것처럼 말이다.

나는 아까 하안 씨가 내게 보여준 작지만 굳건한 등을 떠올리고 씨익 미소지으며 외쳤다.

“들어와! 후딱 끝내고 하안 씨랑 점심 조질 거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일어나서 바로 써올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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