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가 깡패임-21화 (22/53)

제 21화

누가 누굴 찾은 건지 (14)

1.

싸움이 시작된 순간 1초가 수십 조각으로 나뉘고, 그 조각 하나하나가 다시 1초처럼 흘러갔다.

싸움이 시작되면 펼쳐지는 느려진 세상.

이 세상, 이 자리에서 본래의 속도를 유지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나뿐이다.

“스으읍······.”

나는 숨을 가볍게 들이쉬며 나를 향해 달려드는 네 명의 깡패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목, 옆구리, 머리, 관자놀이.

일 대 다수, 맨손 대 흉기, 지키는 자와 부수는 자.

하나하나가 극단적일 정도로 불리한 조건 속에서 극한까지 벼려진 감각은 상대의 의지마저 감지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느려진 세상 속, 원래 같았으면 순식간에 파고들어 배때기와 목을 쑤셨을 칼끝이 압축프레스 내려오듯 다가왔다.

동시에, 양쪽에서 휘둘러진 쇠파이프가 내 정수리와 관자놀이를 부숴버리기 위해 날아들었다.

쐐애애애액-. 후우우우웅-.

바람을 가르거나 찢는 소리가 극한상태에 놓인 감각기관에 의해 느리게 들려왔고, 나는 그 모든 것을 정면에서 바라보다가 그냥 두 손을 툭툭 휘둘렀다.

수평으로 휘둘러지는 쇠파이프는 위로 살짝 밀어준 것만으로 궤도가 비틀려 내 머리 위로 내리쳐지던 쇠파이프와 충돌했다.

까아아앙!!!

목을 향해 찔러 들어오던 칼잡이의 손목은 그냥 손으로 내려쳐서 옆구리를 향해 달려들던 칼잡이의 손목에 칼을 박게 만들었다.

푸욱!

“악!”

“으악?!”

전력으로 휘두른 쇠파이프가 전력으로 휘둘러진 쇠파이프를 만나니 그 반동은 쥐고 있던 손에 큰 부담을 안겨줄 수밖에 없다.

이를 증명하듯 두 사람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손에서 올라오는 충격적인 저릿함에 그만 쇠파이프를 놓치고 말았다.

땡! 때앵!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칼잡이 둘에 비하면 나은 편이었다.

“어, 어엇! 괘, 괜찮냐?!”

“아그으극······!”

이쪽은 둘 중 한 명의 손목에 깊숙하게 칼날이 박혀있었으니까.

전혀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칼날이 날아들어 손목을 관통했으니 뒤지게 고통스럽고 충격적일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 고통이 오래 가진 않았다는 것이다.

콰광!

손목에 칼이 박혀 이를 악물고 신음하던 놈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직후 놈은 실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널브러졌고, 그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이름을 외치려던 옆의 칼잡이 또한 고개가 반원을 그리듯 핑 돌아가 그 옆에 사이좋게 쓰러졌다.

“어, 어어?”

“무, 무슨.”

거의 동시에 두 명의 동료가 바닥과 하나가 되자 쇠파이프를 들고 달려들던 놈들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콰광!

그리고 당연하게도 얼굴이 창백해진 채로 바닥과 하나가 되었다.

흉기를 든 네 사람을 쓰러뜨리고, 나는 들이마셨던 숨을 천천히 내뱉었다.

“후우······.”

그렇게 한 번의 호흡이 끝났다.

내가 한 번 호흡하는 동안 네 명의 동료를 잃은 깡패들은 방금 전 미쳐가지고 달려들던 놈들이 맞는지 괜히 주춤대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놈들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스읍······.”

다시금 숨을 들이마셨다.

※※※

“뭐, 뭐야 저거.”

콰과과광! 콰광!

강진혁의 어깨 아래가 사라지면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최소 흉기를 든 깡패 두 명이 공중을 날거나 바닥에 쓰러진다.

“나만, 나만 주먹이 안 보이는 거냐?”

바로 앞에서 보는 것도 아니고 멀리서 보고 있음에도 조철만의 눈에는 강진혁의 주먹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볼 수 있는 건 고작해야 내뻗기 전과 내뻗은 후의 멈춰있는 주먹뿐.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강진혁의 주먹을 보지 못한 사람은 조철만 뿐이 아니었다.

“저, 저도 안 보입니다 형님.”

수십 년 간 주먹으로 살아온 세 깡패들조차도 볼 수 없는 속도로 주먹을 내뻗고 공사현장에서나 들릴 법한 소리와 함께 사람을 날려버리며 그 괴물 같은 짓을 쉬지 않고 행하면서도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강진혁은 세 사람에겐 불가해의 존재였다.

“씨, 씨발. 대체 뭔데. 대체 어디서 저딴 새끼가 튀어나온 거냐고!”

이해를 할 수 없고, 그가 누군지 아는 것조차 없으며 한계조차 보이지 않는 강진혁의 무위는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인간이 가지는 공포의 가장 핵심적인 근원은 바로 미지, 사람이 느끼는 대부분의 공포는 바로 미지에서부터 발생한다.

그런 면에서 강진혁은 미지의 존재였고, 세 사람에게 강진혁은 이미 인간의 탈을 쓴 괴물처럼 보일 뿐이었다.

발이 떨어지지 않고, 지원요청을 보내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저, 저 새끼 씨발 가만히 서서 저러고 있어.”

강진혁은 등 뒤의 최하안을 지키기 위해 같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그 상태에서 날아드는 쇠파이프와 회칼의 세례를 전부 받아치고, 그 걸로도 모자라 주먹을 한 번 뻗으면 무조건 두 명은 눕히는 강진혁을 앞에 두니 세 사람은 그 모든 저항이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도축장에 끌려간 소처럼 자신의 차례만 기다리던 와중, 세 깡패 중 브레인 담당 김만식이 박수를 치며 무언가 깨달았다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 그래 맞아! 저 새끼 그 새끼였어요!”

“뭐, 뭔데. 저 괴물 같은 놈을 안다고?”

“네! 그저께 봤던 그놈이잖아요! 목욕탕에서!”

목욕탕······? 목욕탕······ 목욕탕!

“그, 그래 맞다! 웬 밋밋한 놈 눈빛이 싸가지가 없어서 참교육 좀 시켜주려고 했더니 갑자기 일어나서 옆에 있던 놈을 데리고 나갔던 그놈! 그놈이었어!”

“몸에 흉터가 존나게 많았었죠?”

“그래, 등짝은 잡티 하나 없이 말끔한 대신 앞면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엉망이었지.”

이틀 전, 목욕탕에서 봤던 강진혁의 몸은 칼자국 정도는 당연하게 여기는 세 깡패에게도 너무나 충격적이고 인상적인 것이었다.

강진혁의 신체 전면부엔 감히 원인을 추측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깊고 커다란 흉터들로 가득했으나, 후면부엔 그 어떤 생채기조차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그 앞과 뒤가 다른 몸을 본 그날, 세 깡패는 ‘흉터문신? 이야, 거 존나게 위협적이네!’하며 낄낄대며 웃었었다.

그리고 나중에 강진혁을 다시 만나게 되면 반드시 흉터 문신 어디서 했냐고 물어보며 조롱할 다짐을 했다.

하지만 지금 세 깡패는 강진혁을 다시 만났음에도 그런 다짐 따윈 절대로 떠올릴 수 없었다.

콰광! 콰과과과광!

비명을 내지를 틈도 주지 않고 부하들을 쓰러뜨리는 강진혁을 보니, 그의 몸에 새겨진 흉터가 가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그 흉터들이 진짜라면······.”

“그런 흉터들이 생기고도 살아남았다는 건······.”

“씨, 씨바알······!”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세 깡패는 강진혁에 대한 것을 알게 되었음에도 그에 대한 공포심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 느끼는 공포의 대부분은 미지에서 생겨나는 것처럼 공포 중 일부는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도 있다.

지금 세 깡패가 강진혁에게 느끼는 공포가 바로 후자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혀, 혀혀형님! 어떻게 좀 해봐야하는 거 아닙니까?”

“저, 저 이런 곳에서 이렇게 죽긴 싫다고요!”

“닥쳐 병신새끼들아! 저런 걸 상대로 내가 뭘 어떻게 할 수가 있는데!”

어느새 세 깡패는 강진혁을 담그고 최하안을 거액에 팔아넘기려는 목적도 잊은 채 서로를 헐뜯기 시작했다.

강진혁의 끝을 알 수 없는 무력에서 오는 미지의 공포와 그의 강함과 경험이 진짜라는 걸 알기 때문에 생기는 공포가 합쳐져 이성을 유지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결국, 세 깡패 중 브레인 담당의 김만식이 울분을 담아 조철만을 향해 외쳤다.

“이런 씨발! 그러니까 내가 최하안 건들지 말자고 했잖아요! 빚이고 나발이고 애초에 있지도 않은 거 조작해서 진짜 있는 것처럼 속이고 염병하니까 이 지랄 난 거 아니야!”

공포에 뇌가 절여진 탓에 평소의 그였다면 절대로 입 밖에 내뱉지 않았을 울분어린 본심.

그의 본심이 폐공장에 쩌렁쩌렁 울려 퍼진 순간, 폐공장의 모든 것이 그 소리를 잃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 모든 소리의 원인이 적막을 강요했다.

“······뭐라고?”

자리에 있던 그 누구도 들어본 적 없던, 심장이 아려올 정도로 싸늘한 목소리.

이 목소리의 주인은 김만식의 실토에 지금 이 자리에서 그 누구보다도 분노해야할 최하안이 아닌, 강진혁이었다.

“너 지금 뭐라고 했냐.”

칼을 잡고 덤비던 깡패 한 놈의 멱살을 잡고 안면을 붕괴시키려던 그 자세 그대로 멈춘 강진혁은 고개만 돌려 김만식을 바라보았다.

“히, 히이이······.”

털썩!

일말의 감정조차 남아있지 않은, 분노가 극에 달했을 때 오히려 침착해진 인간의 눈을 마주한 김만식은 자기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마, 만식형님이······.”

“눈빛, 눈빛만으로 저렇게······.”

눈빛만으로 깡패를, 그것도 와일드보어 캐피탈의 간부 하나를 주저앉힘에 그와 맞서던 깡패들은 별로 남아있지도 않던 전의를 완전히 상실해버렸다.

폐공장에 들어온 이들 중 멀쩡히 서서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이미 반의반도 남지 않은 상황.

강진혁의 몸에 칼 한 자루라도 꽂았으면 이 악 물고 싸웠겠지만, 그는 싸움을 시작하기 전과 비교해도 변함없이 아주 멀쩡했다.

아니, 애초에 숨조차 흐트러지지 않았으니 사기가 꺾이는 걸 넘어서 소멸해버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나, 난 못해. 죽기 싫다고 씨발·······!”

땡그랑!

그렇게 한 명을 시작으로.

“으, 으아아아악! 씨발 다 비켜!”

“저딴 괴물새끼랑 싸우라는 말은 못 들었다고!”

“미친새끼들 대체 뭘 건드린 건데!”

“도망쳐 씨발!”

세 깡패를 제외하고, 싸워보지도 않아서 몸은 멀쩡한 모든 깡패들이 하나같이 무기를 버리고 전력으로 도주했다.

그렇게 일 대 삼십, 맨손의 남자 한 명과 흉기로 무장한 삼십 명의 깡패의 전투는 한 명의 완전한 압승으로 끝을 맺었다.

“사, 살려······.”

도망치는 놈들에겐 시선조차 주지 않은 강진혁은 자신에게 멱살을 잡힌 채 그저 벌벌 떨던 깡패의 아구창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콰앙!

이젠 놀랍지도 않은 타격음이 폐공장에 울려 퍼지고, 축 늘어진 깡패를 대충 바닥에 던진 강진혁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김만식과 두 깡패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자세히 좀 들어보자. 그 얘기. 하안 씨 빚이 뭐라고?”

그리 묻는 강진혁의 목소리가 세 깡패에겐 죽음의 진언처럼 느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날 후타바 폐공장은 해골 3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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