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가 깡패임-22화 (23/53)

제 22화

누가 누굴 찾은 건지 (15)

1.

지금까지는 뭐가 어찌됐든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안 씨의 부모님께서 지셨던 빚이 놈들의 만행에 대한 정당성을 제공했으니까.

그 빚이 생기는 데에 하안 씨가 조금의 관여도 하지 않았다고 해도, 하안 씨는 상속자였고 상속을 포기하지 않은 빚은 오롯이 하안 씨의 몫이었다.

설령 빚에 대한 상속을 포기할 수 있다는 걸 몰랐다고 해도.

이 세상에서 모르면 손해를 보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고, 그 손해가 굉장히 크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세상이란 게 원래 그런 법이니까.

그래서 하안 씨를 지키고자 싸웠음에도 나는 놈들의 행동에 화가 나지는 않았다. 그냥 좀 과하다고 생각했을 뿐이지.

하지만 대가리 셋 중 하나가 저도 모르게 내뱉은 실언은 도저히 그러려니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안 씨 빚이 애초에 없었다는 거지?”

하안 씨의 빚이 없다는 건, 놈들의 행동에 어떠한 정당성도 없었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었으니까.

놈들은 그저 자신들의 욕심 때문에 하안 씨를 팔아넘기려고 한 거다.

하안 씨가 예뻐서, 하안 씨의 외모를 보고 반한 이가 있어서, 그가 하안 씨를 비싸게 주고 산다고 해서.

고작 그런 이유만으로 놈들은 하안 씨의 3년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하안 씨가 가진 모든 것을, 그녀를 반짝이게 만들어주는 모든 것을 하안 씨 본인이 저주라 여기게 만들었다.

그렇게, 그녀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없는 빚을 만들어서······ 고인이 된 부모님을 빚더미를 안겨준 이들이라며 욕보이게 만든 것도 모자라, 없는 빚을 갚겠다고 노력하는 하안 씨를 방해까지 하고.”

뿌드득!

오늘 처음으로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꽉 쥔 주먹에선 관절이 비틀리고 피부와 살점이 뭉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결국 신체가 상할 정도로 꽉 쥔 주먹에서 피가 뚝뚝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통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그 걸로도 모자라 주변 사람을 인질로 협박까지 해?”

고통 같은 것을 느끼기엔 내가 너무 열이 받아버렸으니까.

꽈드드득!

뭉개진 손바닥 살점에서 피가 뚝뚝 떨어질 정도로 강하게 쥔 주먹은 경도를 얻는다.

살과 뼈로 이루어졌을 뿐인 주먹이 바위보다도 단단한 물체로 바뀌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주먹은 그 자체만으로도 흉기나 다름이 없었고, 나는 주먹이라는 흉기를 든 채 바짝 굳어있는 세 깡패의 앞에 섰다.

투둑. 툭. 투둑.

꽉 쥔 주먹을 내린 채 가만히 서있자 피가 바닥을 적시는 소리가 났다.

보통 주먹에서 떨어진 피 때문에 이런 소리가 나면 주먹 혹은 피 묻은 바닥을 바라볼 터인데 놈들의 시선은 내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공포에 질려 내게서 눈을 떼지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다.

“······허.”

그 모습에 진심으로 어이가 털렸다.

고작 나 한명에게 이렇게 쫄아서 도망조차 가지 못하는 놈들이 하안 씨의 인생을 너무나 쉽게 망쳤다는 것이.

이딴 새끼들 때문에 하안 씨가 절망 속에서 살아갔다는 것이.

“니들 때문에 하안 씨가 칼까지 잡았어. 자기 손으로 살인을 하려고 했다고.”

원래 나는 줘패야할 상대에게 이런 말을 하는 타입이 아니다.

내가 줘패야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라면 그 상대는 애초에 말이 통할 상대가 아니라는 거니까.

하지만 지금은 가슴 속 진심을 입 밖으로 내뱉어야만 했다.

왜냐면, 지금 이곳엔 나만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마이크를 잡는 게 더 어울릴 손에 칼을 쥐게 만들고, 수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사람을 죽일 생각을 실천하게 만들었어.”

놈들에게 하는 말처럼 보이지만 이건 하안 씨를 위한 것이었다.

“······마이크요? 매니저님 갑자기 그게 무슨······.”

“크흠!”

물론, 아주 조금 내 개인적인 바람이 들어있긴 했지만. 아무튼!

내가 지금 하는 모든 말들은 분명히 하안 씨가 듣기를 바라며 하는 말들이었다.

“하안 씨가 사람을 믿지 못하게 만들고, 행복하지 않아서 행복을 전할 자격도 없다는 말까지 하게 만든 네놈들이. 사람 인생을 시궁창에 처박아버린 너희들이. 고작 깡패 하나가 주먹 쥐고 다가갔다고 주저앉아?”

“흐, 흐이익!”

하안 씨에게 말했듯 나는 깡패였다.

눈앞에 있는 세 놈들과 별반 다를 것도 없는, 폭력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려드는 짐승이나 다름없는 사람.

하지만 그럼에도 눈앞의 세 놈들과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무지막지하게 강하고 또 하안 씨의 편이라는 것이다.

하안 씨가 믿을 수 있는, 마음 놓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마치, 진짜 매니저처럼.

그렇게 보이기 위해선 놈들을 완전히 박살 내버려야했다.

“남 인생을 낄낄 웃으면서 조져놓은 새끼들이! 지들이 조질 것 같으니까 눈에 절망을 담아! 그딴 각오로 하안 씨 인생을 이 씨발롬들이!”

쾅!

“흐아아아악!”

나는 세 놈 중 주저앉은 놈의 고간을 향해 꽉 쥔 주먹을 내리쳤다.

이 주먹으로 고간을 때리면 진짜로 터져나갈 게 분명하기에, 내 주먹은 육체가 아닌 지면을 때렸다.

하지만 부서지는 건 언제나 그렇듯 내 주먹이 아니라 내 주먹에 맞은 것.

깊은 주먹의 형상이 깊게 새겨지고, 형상을 중심으로 깊고 굵은 금이 퍼져나갔다.

“허, 허그윽······.”

고간을 직격당할 뻔했던 놈은 바닥에 새겨진 깊은 주먹 자국을 보고, 눈을 까뒤집으며 뒤로 넘어갔다.

나머지 둘도 기절하지 않았을 뿐 다리를 후들후들 떨며 이를 따닥따닥 부딪쳤다.

완전히 공포에 질려 창백해진 놈들을 노려보며, 나는 이를 드러내며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고작 처맞을 각오조차도 없는 새끼들이······.”

“히, 히이이······.”

“흐, 흐어억······.”

그러자 남아 있던 두 사람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고, 극심한 공포에 반쯤 정신이 나간 얼굴로 너나할 것 없이 바지를 적셨다.

건장한 걸 넘어서 험악한 성인 둘이 바지를 적시는 꼴을 보니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뭐, 더럽긴 하지만 그래도 바랐던 대로 박살이 났으니 만족해야겠지.

솔직한 심정으로는 정신만 박살내는 게 아니고 사람 구실을 할 수 없도록 전신을 박살내주고 싶었지만, 거기부터는 나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럼 하안 씨, 이제 어떻게 할까요?”

“네, 네? 저요?”

“네. 하안 씨요. 당연히 이놈들은 하안 씨 몫이죠.”

복수는 당사자의 몫이니까.

누가 뭐라 해도 피해자는 내가 아닌 하안 씨였다. 애초에 나는 이 상황에서 외부인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외부인인 나는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놈들을 위협하여 정신을 나가게 만드는 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이고, 그보다 더한 것을 하려면 당사자인 하안 씨에게 의견을 구해야했다.

“······.”

스르릉.

내 말에 순간 멈칫한 하안 씨는 잠시 후 표정을 굳히고는 말없이 사방에 떨어져있는 쇠파이프 하나를 주워들었다.

“어?”

그 쇠파이프로 당장이라도 이놈들의 대가리를 깨버릴 것처럼 보여, 나는 다급하게 하안 씨의 쇠파이프를 붙잡았다.

“왜 잡아요?”

“왜, 왜 잡냐뇨! 그걸로 사람 패면 죽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

“죽어도 괜찮은데요?”

“안 괜찮아요! 하안 씨 손에 피 묻는 건 무조건 절대로 진짜 싫어요!”

나는 진심으로 그리 말하며 하안 씨의 손에서 쇠파이프를 가로채 저 멀리 던져버렸다.

땡그랑 땡땡그랑!

그렇게 내게 쇠파이프를 빼앗긴 하안 씨는 조금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불평을 했다.

“······매니저님이 내 몫이라면서요. 어떻게 할 거냐면서요. 그런데 왜 정작 하려니까 못하게 해요?”

무언가 오해가 있는 것 같았다.

내가 하안 씨에게 해주고자한 건 폭력의 자리를 마련해주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의 오해를 정정해주고자, 나는 내가 하안 씨에게 해주려던 것을 입에 담았다.

“하안 씨가 정하면 제가 실행합니다. 하안 씨 손에 피를 묻힐 필요는 없어요. 묻혀서도 안 되는 법이고.”

“······네?”

“그렇다고 죽여 달라는 부탁은 못 들어줍니다. 청부살인도 살인이니까.”

“그러면 폭행교사도 폭행 아닌가요?”

“그래도 죽이는 것보단 낫죠. 죽여서 나오는 피랑은 달리 때리다가 묻은 피는 지우면 지울 수 있기도 하고.”

패서 죽여 버리는 것보다야 죽기 직전까지 패는 것이 훨씬 나은 법, 어렸을 적 아버지께 배운 진리를 하안 씨에게 가르쳐줬다.

하지만 하안 씨는 이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지 표정을 찡그릴 뿐이었다.

“그게 무슨.”

뭐, 죽음이 어떤 것인지 경험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내 말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게 당연한 법이다.

그렇기에 나는 하안 씨가 이 말을 영원히 이해하지 못하길 바라며, 하안 씨가 알아줬으면 하는 것을 입에 담았다.

“뭐긴요. 매니저일 하는 거지. 저는 하안 씨 인생을 망칠 일 빼고, 하안 씨가 바라는 건 제가 다 합니다. 이래봬도 담당 매니저니까요.”

나는 매니저다. 그리고 하안 씨의 매니저가 될 사람이다. 하안 씨가 받아주지 않더라도 그리 행동할 생각이었다.

“아니 저 아이돌 같은 거 할 생각 없다니까요! 저 같은 사람이 어떻게 아이돌을 해요? 아니 애초에 매니저님은 왜 저한테 아이돌을 시키지 못해서 안달인 건데요!”

처음 만났을 때, 그래봤자 어제긴 하지만 무튼 그때에 비하면 하안 씨의 감정이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드러나는 감정이 긍정적이진 않더라도 마음속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하안 씨는 너무나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래, 하안 씨는 아름답다.

설령 본인이 거절하더라도 막무가내로 매니저가 되겠다 말하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그렇게 말해봤자 변태스토커나 다름이 없다 받아들여질 게 뻔했기에, 나는 다른 진심으로 하안 씨의 물음에 답했다.

“그야, 저는 하안 씨 좋아하니까요.”

“······아? 으, 으아? 아니 그, 그그, 네, 네? 뭐, 뭐라고요?”

“첫 눈에 반했다고요. 하안 씨한테.”

진짜 덕통사고 제대로 당해버렸다.

“매, 매매매매니저님이? 저, 저저저한테요?”

“네.”

그래, 아가씨가 처음으로 나한테 노래를 불러줬던 그날처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충격))) 반했다고 고백하면서 다른 여자 생각하는 새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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