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가 깡패임-23화 (24/53)

제 23화

누가 누굴 찾은 건지 (16)

1.

사람에게서 나는 반짝임은 그 어떤 것보다도 찬란하고 아름답다.

노래를 부르는 아가씨가 그랬고, 내 손을 잡고 달리는 하안 씨가 그러했다.

찬란하다 느낄 정도로 아름다운 반짝임은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고,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의 동경을 이끌어낸다.

고작 쌈박질 좀 잘하는 나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재능.

그것이 바로 ‘반짝임’이다.

그러니 반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

내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 그렇기에 동경할 수밖에 없고, 그렇기에 더더욱 바랄 수밖에 없다.

하안 씨를 본 그 순간부터 나는 그녀가 내뿜는 반짝임에 매료된 것이다.

“저, 저 같은 걸. 왜 매니저님이······.”

하지만 정작 하안 씨 본인은 나 같은 깡패새끼는 절대 가질 수 없는 반짝임이라는 재능을 갖고 있음에도 여전히 자신을 사랑할 줄 몰랐다.

그 사실이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나는 조금 더 직설적으로 하안 씨를 향한 내 마음을 전했다.

“하안 씨가 뭐라 하든 저는 하안 씨 팬이에요. 하안 씨의 모든 행동이 예뻐 보일 수밖에 없다는 거죠.”

“팬?”

“네, 팬이요. 하안 씨는 저를 첫 눈에 팬으로 만들어버렸어요. 저 깡패새끼들 따위로는 상처조차 낼 수 없는 저를. 다른 누구도 아닌 깡패들의 깡패인 저를요.”

그냥 ‘나를 반하게 만들었다.’라고만 하는 것보단 나라는 사람을 부각시킨 다음 그런 나를 반하게 만든 하안 씨의 대단함을 띄워주기 위해 예전 별명을 입에 담아 말했다.

내가 내 입으로 ‘깡패들의 깡패.’라는 말을 하니 부끄러워서 얼굴에 열이 올랐지만, 하안 씨의 자존감을 올려주기 위해서라면 나는 더한 것도 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러니까 하안 씨, 하안 씨는 절대 못난 사람이 아니고 그 누구보다도 존중받아 마땅할······.”

“매니저님, 한 가지 여쭐 게 있는데요.”

“아, 넵.”

하안 씨 띄워주기의 하이라이트를 피로해 보려고 했는데 하안 씨의 싸늘한 목소리가 내 말허리를 끊었다.

진짜 하안 씨가 들으면 자기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 감동적인 말들 많이 해주려고 했는데.

괜히 아쉬워서 시무룩해졌지만 하안 씨의 목소리에서 더 이상 자기혐오가 느껴지지 않는 건 긍정적인 일이었다.

나는 아쉬움을 지우고 하안 씨에게 싱글생글 미소를 지어보이며 그녀가 편히 말을 꺼낼 수 있도록 유도했다.

“말씀하세요. 어떤 걸 물어보시고 싶으신데요?”

내 질문에 하안 씨는 담담한 말투에 싸늘한 목소리로 조용히 물었다.

“팬이라는 건, 반했다는 건 혹시. 저를 예비 아이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가요?”

“네?”

“저한테 덕통사고를 당한 거냐고요.”

뭔가 분위기가 갑자기 무거워졌길래 긴장했는데, 의외로 굉장히 쉬운 질문이 들어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막 대답할 질문은 아니었다.

수상하게 뜸이라도 들이면 내가 하안 씨를 이성적으로 좋아한다고 오해할 수도 있으니까.

매니저로서 담당 아이돌에게 연애감정을 품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

게다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 하나 뿐이었기에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당당하게 답했다.

“네!”

※※※

사람은 기대를 하기 때문에 실망하는 법.

그렇기에 기대를 하지 않으면 실망 또한 하지 않는다.

험한 세상을 버텨오며 최하안이 깨달은 몇 안 되는 진리 중 하나였다.

하지만 아무리 실망하고 싶지 않아 기대를 하지 않으려고 해도 살다 보면 기대를 하고 싶은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바로, 강진혁에게 반했다는 말을 들은 지금처럼.

좋아한다는 말만 들었을 때는 그나마 기대를 조절할 수 있었다.

최하안은 누가 뭐라 해도 기대컨의 스페셜리스트였으니까.

사회에서 경험한 너무 많은 실망과 배신은 그녀가 기대한다는 행위 자체를 금기시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강진혁이 자신의 인생을 절망으로 만든 깡패새끼들을 단박에 쓸어버리고, 그녀의 불행을 마치 자신의 불행인 양 분노해주며, 결정적인 순간 복수할 권리를 존중해주는 배려까지 보인다고 해도.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었던 최하안에게 신뢰라는 감정이 싹트게 만들었다고 해도, 섣불리 기대할 수는 없었다.

지금 기대해버리면 그 기대가 무너졌을 때 실망 또한 커질 테니까.

최하안이 품은 강진혁에 대한 마음이 커질수록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강진혁에게 기대를 품을 수 없었다.

안 돼. 기대하지 말자. 매니저님은 좋은 사람이지만, 그래도 기대는 하지 말자.

그렇기에 최하안은 기대하지 않기로 굳게 다짐했다.

하지만 좋아한다는 말에 이어서 첫 눈에 반했다는 말까지 들은 순간 최하안의 다짐은 순식간에 개박살이 나버렸고, 수줍은 소녀 같은 반응까지 보이고 말았다.

물론 그것도 잠시, 그녀의 우려대로 기대는 산산이 박살이 나버렸지만.

“······팬심인 거네요?”

“네! 제가 하안 씨의 첫 번째 팬인 거죠!”

그래도 다행인 점은 기대가 박살나긴 했어도 최하안이 걱정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박살이 났다는 것이다.

최하안이 상정했던 최악의 상황은 강진혁이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크흐흐. 설마 그 말을 믿었나? 푼돈 하나 없는 거렁뱅이 주제에.’라며 그녀의 기대와 믿음 전부를 배신하고 조롱하는 것이었다.

물론 당연하게도 강진혁이 그럴 일은 없었고, 그는 최하안의 우려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그녀의 기대를 배신했다.

“팬심······.”

그래서일까. 최하안은 분명 기대가 무너져 실망을 했음에도 어째서인지 절망하지 않았다.

분명 강진혁에게 기대가 배신을 당하면 절망하리라 확신했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배신당한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고, 배신에는 당연히 부정적인 감정이 뒤따르는 법.

“팬심······이라고요.”

기대를 배신당한 최하안에게 찾아온 건 발밑이 꺼지고 끝없이 아래로 추락하는 듯한 느낌의 끔찍한 절망이 아닌,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뜨거운 감정.

“팬심······. 팬심으로 좋아한다. 반했다. 그것도 그냥 반했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첫 눈에 반해버렸다. 라고 말씀하신 거네요? 매니저님은?”

양 볼이 저절로 부풀어 오를 정도의 커다란 분노였다.

“······하안 씨?”

최하안의 목소리가 부글부글 끓기 시작함에 강진혁은 그제서야 무언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인지했다.

그러나 알아차려봤자 때는 이미 늦었고, 강진혁은 두 볼을 살짝 부풀린 최하안을 맞이해야만했다.

“하안 씨, 가, 갑자기 왜 그런 표정을?”

“팬이라면서요.”

“네, 하안 씨의 팬입니다.”

“으그!”

간단하고 명료한 대답에 최하안은 귀여운 목소리를 내며 가슴을 콩콩 두드렸다.

그녀 자신도 어째서 화가 났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건 강진혁이 당당하게 대답할 때마다 짜증이 조금씩 쌓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강진혁은 두말할 것도 없는 인생의 은인이자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아군.

이 끓어오르는 분노와 짜증을 그를 향해 토해내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안 씨, 혹시 제가 실수라도 했을까요······? 제 행동 때문에 화가 나셨다면 말씀을······.”

게다가 최하안이 화가 났다는 표현을 하는 것만으로 강진혁의 얼굴이 창백해지기까지 했다.

회칼과 쇠파이프로 무장한 수십 명의 깡패를 상처 하나 없이 쓰러뜨리고, 이 일대에 이름을 떨치는 극악무도한 세 명의 깡패들을 주먹 한 번 맞추지 않고 박살낸 그가 최하안 한 명 때문에 어쩔 줄 몰라 한다.

그 사실이 최하안에겐 너무나 기쁘게만 느껴졌다.

매니저님한테 화를 어떻게 내. 절대로 못 내.

결국 최하안은 강진혁 때문에 생겨난 이 분노를 강진혁 본인에게 풀 수 없었고.

그러니까. 저놈들한테 풀자.

그 극심한 분노를 대신 받아낼 대상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꾸, 꿀꺽.”

“······히, 히익.”

최하안의 눈빛이 닿은 곳에서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와 꼴사나운 목소리가 났다.

바지를 적신 채 두 사람의 눈치만 보고 있던,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이 잊혀진 것 같아서 조용히 기뻐하던 조철만과 박혁수였다.

최하안은 창백하게 질린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떼고, 강진혁을 바라보았다.

“······매니저님이 분명 죽이는 것 빼고 뭐든지 해주신다고 했죠.”

“아? 아, 네. 하안 씨 인생에 해가 되는 일 빼면요.”

“그럼 괜찮겠네요. 저놈들은 제 인생에 해밖에 되지 않는 놈들이니까.”

“네, 맞아요. 하안 씨 인생에 도움은커녕 해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이미 스스로 열심히 증명한 놈들이죠.”

최하안이 폭력과는 거리를 뒀으면 생각하는 강진혁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두 쓰레기 같은, 아니 쓰레기보다도 더 더러운 깡패새끼들은 최하안의 인생에 있어서 절망의 근원이나 다름이 없는 새끼들이었으니까.

“그러면, 죽이는 건 안 된다고 했으니까. 저 셋을 죽기 직전까지 고통스럽게 패주실 수 있나요?”

그러니 저 둘을 치워달라 부탁하는 건, 폭행을 교사한다기 보단 3년 째 치워지지 않고 가면 갈수록 고약한 악취를 발산하던 쓰레기를 치운다는 쪽으로 해석하는 게 옳았다.

최하안의 부탁을 들은 강진혁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얼마든지요!”

그리고 두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끔찍한 폭력이 세 깡패를 향해 쏟아졌다.

이빨이 날아가고, 피가 터져 나오는 참혹한 광경을 바라보니 최하안은 속에 얹혀 있던 분노가 풀려 가슴이 편안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하안 씨가 없는 빚을 갚게 만든 몫!”

쾅!

“이건 하안 씨가 이 추운 날 얇은 코트를 걸치고 도망치게 만든 몫!”

쾅!

“이건 하안 씨가 어렵게 구한 일자리를 방해받아 안 그래도 고단한 삶을 더욱 고단하게 만든 몫!”

쾅!

“이건 하안 씨가 처음 보는 남자한테 백허그를 하게 만들 정도로 몰아붙인 몫······. 음, 이건 오히려 내가 고마워해야하는 거지? 아니었으면 하안 씨 못 만났을 테니까. 그러면 다른 거.”

······.

“그래, 감히 이 씨발롬들이 나를 가지고 하안 씨를 협박한 몫!”

쾅!

“그리고 이건······!”

쾅! 쾅! 쾅! 쾅! 쾅! 쾅!

물론 강진혁은 지금 최하안에게 교사 받아 행하는 이 폭행이 그녀 본인의 복수가 이유가 아닌, 그 때문에 생긴 화를 어디든 풀어야 살겠다는 생뚱맞은 이유 때문이란 건 꿈에서도 알 수 없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번 주는 이사 때문에 굉장히 바쁘고 고단할 예정입니다. 미리 죄송합니다ㅠㅠㅠ 그래도 최대한 펑크는 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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