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가 깡패임-24화 (25/53)

제 24화

누가 누굴 찾은 건지 (17)

1.

“자, 이제 어쩔 거지?”

“다, 다히는 하안 니믈 거들디 안게읍니다!(다시는 하안 님을 건들지 않겠습니다!)”

거친 시멘트 바닥에 대가리를 박고 있는 세 깡패에게 묻자 가장 늙은 대가리가 뭉개진 발음으로 대답했다.

죽고 싶지 않아 외치는, 입만 열면 구라를 일삼는 깡패새끼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처절한 진심이었다.

“그래?”

“예, 옙! 그러흡미다! 제, 제성합니다! 하, 하 번만 할려주시쇼!(예, 옙! 그렇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하, 한 번만 살려주십쇼!)”

“흠, 근데 사과할 대상이 잘못된 거 아니냐?”

놈들이 사과할 대상은 내가 아니었다.

하안 씨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말을 하는 건 정답이지만, 그 말을 나한테 하는 건 오답이었다.

원래 같았으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만!’하면서 제대로 사과할 때까지 줘팼을 텐데. 하안 씨의 이상한 기세에 눌려 나도 모르게 여유를 남기지 않고 한계까지 패버렸다.

여기서 한 대만 더 패면 기절해서 영영 못 일어날 수도 있으니. 더 패는 건 무리야.

하지만 이 더러운 깡패새끼들은 내가 한 대 더 팰 일도 없이 빠르게 정답을 맞췄다.

“제, 제성합니다!(죄, 죄송합니다!)”

“할려주시쇼! 다히는 안 그러게흡니다!(살려주십쇼!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주글 죄를 지허흡니다!(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하안 씨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머리 앞에 손을 싹싹 비비며 그들은 눈코입에서 액체를 줄줄 흘리며 사과했다.

죽고 싶지 않아 하는, 그렇기에 그 무엇보다도 진심어린 사과.

용서를 구하지 않는 것도 자신들의 주제를 알고 있는 것 같아 합격점이었다.

사실 합격점이고 나발이고 하안 씨가 받아주지 않으면 소용없지만.

“······.”

하안 씨는 자신을 향해 전력으로 사죄하는 깡패새끼들을 그 여느 때보다도 싸늘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그들을 향해 입을 열어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싫은 듯한 하안 씨의 싸늘한 무표정에 나는 그녀의 곁에 다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안 씨. 그냥 하고 싶으신 말 있으시면 다 하셔도 괜찮아요. 지금 여기서 하안 씨는 무슨 말을 해도 되니까.”

“그러면, 무슨 말이든 들어준다는 거예요?”

“네. 살고 싶으면 뭔들 못하겠어요?”

그 말을 끝으로 나는 깡패 셋 중 대가리를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대가리는 대가리를 힘차게 위아래로 끄덕이며 내 말에 호응했다.

“뭐, 뭐든지 하게흡니다! 할려만 주힌다면 뭐든지!(뭐, 뭐든지 하겠습니다! 살려만 주신다면 뭐든지!)”

대가리의 절박한 목소리에 하안 씨는 후. 하고 숨을 내뱉은 후,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그럼 두당 1억씩. 6억 가져와. 목숨 값이야. 그거 내면 살려줄게.”

“와.”

연관되기도 싫을 저주받을 깡패새끼들에게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목숨 값이라며 6억을 요구하다니.

나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고, 내 상상을 너무나 간단히 뛰어넘은 하안 씨가 굉장히 멋있었다.

이게 걸크러시인가? 나 사실 이런 거 좋아했나?

하안 씨가 너무 멋있어서 가슴이 떨리는 감각을 느끼던 그때, 세 깡패 중 대가리가 아주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 질문했다.

“두, 두당 1억이면 3억이 아닌가요······?”

“6억 맞는데?”

“네?”

“내가 살려주고 매니저님이 살려주는 거니까. 3억씩 두 번해서 6억 맞잖아.”

“······.”

이젠 감탄사조차 나오지 않을 만큼 놀라운 어마어마한 창조경제였다.

당하는 입장에선 억울하고 어이가 없어서 죽을 것 같은 계산법이었지만, 그래서 어쩌겠나. 죽기 싫으면 해야지.

내가 하안 씨에게 죽이는 일은 없을 거라고 말하긴 했지만, 그건 말이기에 자비롭다 느낄 수 있는 법이었다.

직접 죽기 직전까지 처맞아보면 ‘그래도 죽이진 않을 테니까 다행이다!’라는 생각은 할 수 없으니까.

“네, 네·····! 아, 알게흡니다······! 유, 육억 준비하게흡니다!”

그렇기에 놈들은 살기 위해서 몸을 떨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제발 하, 할려주힙효·····!(그러니 제발 사, 살려주십쇼······!)”

뭐, 애초에 나는 놈들을 죽일 생각도 없었고, 내가 놈들을 절대 죽일 일도 없었겠지만 그건 죽기 직전까지 팼던 나만 아는 사실.

처맞는 입장에선 이러다 진짜 뒤지겠다는 생각을 수십 번이나 했을 터이니, 그런 진심이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이 상황을 모면하려고 거짓말하는 게 눈에 보이면 오늘 아예 날을 잡아서 조직 자체를 박살내버리려고 했는데. 지금 이러는 걸 보면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어 보이네.

아마 몸의 상처가 낫는다 하더라도 놈들은 나라는 존재를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날 경험한 이상 알량한 복수심 따위를 품고 나나 내 주변 사람에게 해를 끼칠 일도 없을 거고.

눈앞의 이놈들은 젊은 깡패도 아니고 나이 먹은 깡패새끼들이기에 그것만큼은 확실했다.

애초에 복수심 갖고 손해 볼 짓을 하는 성격이었다면 깜빵에 있거나 공구리를 당했거나 둘 중 하나겠지. 이렇게 몇 년 동안이나 깡패 짓을 할 수는 없었을 거야.

하지만 혹시나 이놈들이 미쳐가지고 개짓거리를 벌일 가능성도 없는 건 아니었기에, 보험 하나를 들기로 했다.

“그래 뭐, 하안 씨가 6억 받는 대신 살려준다시니. 살려줄게.”

“가, 감사합니다!”

나는 쭈그려 앉아 하안 씨에게 절을 하고 있는 놈의 귀에 내 입을 가까이 가져갔다.

그리고 하안 씨가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놈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런데 혹시나 마음이 바뀌어서. ‘6억은 너무 많지 않나. 이 깡패새끼가 우릴 좆으로 보는 건가. 안 되겠다 담가버리자.’하는 생각이 든다면, 그때는 언제든 연락해. 죽는 게 낫다는 게 뭔지 직접 알려줄 테니까.”

“히, 히이이······!”

“자, 여기 명함.”

끝으로 놈의 와이셔츠 앞주머니에 명함을 찔러 넣었다.

내 명함은 아니었고 이성경호 사장, 우리 형님의 명함이었지만 사실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개지랄을 할 생각조차 품기 전에 내가 먼저 연락하라고 말했다는 게 중요한 거지.

바랐던 대로 창백을 넘어서 하얗게 질려버린 깡패대가리를 뒤로하고 나는 쭈그렸던 다리를 펴 일어섰다.

“6억 마련하면 그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해. 기한은 딱 일주일 준다. 기한 넘기면 뭐······ 어떻게 할까요 하안 씨?”

“지들이 하던 그대로 다른 나라에 팔아넘기고 싶은데. 저는 팔 곳도 팔 사람도 모르니까. 그냥 매니저님이 알아서 해주세요.”

“그럴까요? 그러면 그렇게 할게요. 들었지? 어떻게 알아서 할지 궁금하면 한 번 기한 넘겨봐.”

“저,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대가리의 필사적인 대답은 무시하고, 나는 하안 씨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무언가 후련하다는 듯, 조금은 편해진 얼굴로 깡패새끼들이 아닌 자신의 두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6억. 6억이라니.”

정확히는 여섯 개의 손가락을 핀 자신의 두 손을 말이다.

“매니저님, 그 6억은 매니저님이 저 깡패새끼들한테서 받아주시는 거죠?”

“네, 그럼요.”

“믿고 있었어요.”

“헉.”

믿, 믿고 있다고?

짬처리를 당했음이 분명함에도 믿는다는 그 말 하나만으로 감개가 무량해서 눈가가 찡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찡해진 눈가를 손등으로 한 번 훔친 뒤, 싱긋 미소를 지으며 하안 씨에게 춤을 권하듯 손을 내밀었다.

“그럼 하안 씨, 이제 이런 곳에 더 있지 말고.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요?”

하안 씨는 아까와는 달리 내 권유를 거절하지 않고 내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네, 우리 맛있는 거 먹어요. 매니저님.”

2.

하안 씨는 고기를 좋아했다. 그것도 지글지글 기름에 굽는 통삼겹살을.

쌈을 싸서 야무지게 먹는 모습조차도 너무나 예뻐서 나는 그저 고기를 구워 그녀에게 대령하는 고기대령맨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면 어젯밤에 오뎅탕을 먹었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하안 씨 먹는 거 되게 좋아한단 말이야. 귀엽게.

방금 전 그런 일을 겪은 사람이라고는 전혀 상상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잘 먹어서 내가 다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내가 고기를 구워주면 하안 씨는 맛있게 먹는 30분가량의 행복점심식사를 마친 나는 하안 씨가 정리를 위해 화장실에 가있는 동안 계산을 마치고 바깥에 나와 서있었다.

“진짜 귀엽다. 예쁘고 귀엽고 몸매도 좋고 그냥 예쁜 건 혼자 다 하네 진짜.”

진짜 아이돌을 할 수밖에 없는 재능을·····.

“아! 맞다 아이돌!”

잊고 있었던, 잊어선 안 됐던 그 단어가 순간 뇌리에 박혀 그 존재감을 발산했다.

그렇다. 나는 하안 씨를 아이돌로 만들려고 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시작부터 내가 키우는 내 담당 아이돌로 말이다.

그런데 깡패새끼들 패주는 도중 그 사실을 잊고 말았고, 그냥 하안 씨랑 같이 있는 게 좋아서 지금까지 잊고 있었다.

“하안 씨를 볼 때마다 아이돌의 재능을 찾는 버릇이 들지 않았다면······ 정말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 하마터면 하안 씨를 아이돌의 길로 이끌지 못할 뻔했어.”

그러나 아이돌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고, 하안 씨를 아이돌로 만들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도 하안 씨를 아이돌로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안 씨는 아이돌에,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외모를 무언가의 수단으로 삼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고 있었으니까.

보호자가 없는 그녀에게 빛나는 외모는 저주였고, 삶을 위협하는 위험요소였다.

그래서 하안 씨는 예쁘다는 말을 듣는 걸 싫어하게 되어버렸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가씨랑 비견될 정도로 예쁜데도. 자기가 예쁘다는 걸 싫어한다고.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아이돌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

뭐가 어찌됐든 외모란 사람의 호감을 사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고, 사람의 호감을 사고 사랑을 얻고 행복을 전하는 아이돌에게 외모란 평가대상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

“으음····· 이제 어쩌지.”

깡패새끼들 수십 명 박살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어려운 문제가 눈앞에 당도했다.

그래서 팔짱을 끼고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을 하고 있던 찰나, 옆에서 익숙하지만 항상 새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가 어쩌는데요?”

“아, 하안 씨.”

내게 말을 건 사람은 당연하게도 화장실에서 고기를 먹은 흔적을 말끔하게 지우고 온 하안 씨였다.

인생의 원수를 박살내고 6억이라는 거금을 손에 넣을 예정이라 그런지 하안 씨의 얼굴은 그 여느 때보다도 편안해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돌을 해달라는 말에 알겠다는 대답을 해주진 않겠지.

‘그래도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 혹은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마인드로 하안 씨를 향해 툭, 말을 던졌다.

“그, 아이돌 해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아이돌이요? 좋아요.”

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게 왜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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