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화
가족처럼 지내요 (1)
1.
“······그러니까. 누, 누구시라고요?”
“아이돌이요. 아, 아니구나. 아직 데뷔는 안 했으니까 연습생이겠구나.”
“어느 기획사의?”
“그야, 바른길엔터죠?”
“바른길엔터라면······ 우리 회산데요?”
몇 번이나 하안 씨에 대해 소개했는데도 사장님은 이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이 문답이 대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몰랐지만, 이번에는 좀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현실을 정확히 짚었다.
“네, 우리 회사 소속 연습생이 될 겁니다.”
“우리 회사·····? 이, 이분이요? 왜요?”
“제가 캐스팅을 했으니까요.”
또 다시 왜냐고 묻기에 왜 이렇게 못 믿나 짜증이 앞섰지만, 그래도 이해는 됐다.
내가 여기 사장이래도 하안 씨가 와서 ‘연습생할게요. 바른길엔터에 받아주세요.’라고 말하면 못 믿지.
하안 씨는 평범하게 대단하다는 말로는 한참이나 부족할 정도로 대단하고, 바른길엔터는 초라하다는 말로는 한참이나 부족할 정도로 초라하다.
망해가던 보석세공 전문업체에 다이아몬드 원석이······ 아니, 다이아몬드 운석이 떨어진 거나 다름이 없다고 해야 하나.
그 정도로 하안 씨의 반짝임은 세계구급이었고, 사장님은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해하지 못해도 현실은 현실, 결국엔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사장님은 입가에 미묘한 미소를 띤 채 중얼거렸다.
“······실화냐.”
“네.”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한 사장님은 나와 하안 씨를 천천히 번갈아 바라보았다.
나나 하안 씨나 둘 다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는데, 나를 볼 때는 ‘이 새낀 뭐지 진짜?’라고 말하는 듯한 눈으로 바라봤고 하안 씨를 볼 때는 ‘진짜? 이런 분이 우리 회사에?’라고 말하는 듯한 눈으로 바라봤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였다.
차별하는 것이 대놓고 드러났지만, 사장님이 아는 나는 전과자에 깡패에 낙하산 비호감 삼위일체 트리플크라운 달성자일 테니 그러려니 했다.
나를 얼마나 나쁘게 보든 하안 씨만 예쁘게 봐주면 상관없지.
그리고 그 점은 당연하게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 죄송한데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최하안이요.”
“······시크해.”
싸가지가 없다고 느낄 법한 차가운 말투와 목소리를 시크하다 받아들이고.
“그, 혹시 춘추는 어떻게 되실까요?”
“22요.”
“딱 좋다······!”
연습생을 시작하기엔 늦은 나이일 텐데도 딱 좋다고 말하며.
“혹시······ 가장 자신 있는 분야는 뭔가요? 보컬이나 댄스 그런 것 중에······.”
“야반도주요.”
“세상에 개성과 생존력까지······!”
방금 처음 만났을 텐데 대체 콩깍지가 얼마나 낀 건지 야반도주라는 대답을 듣고 개성과 생존력이 뛰어나다 좋아하기까지 하니 말이다.
나도 하안 씨 좋아하는 걸로는 어디 가서 꿀리지 않을 자신이 있지만, 저 정도로 무지성하게 빨아줄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하안 씨가 아무리 모든 언행에서 매력이 피슈우우웃! 뿜어져 나온다고 해도, 댄스나 보컬 같은 걸 바랐는데 야반도주라는 대답을 듣고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 비정상이지.
그래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하안 씨가 마음에 든 것 같아 다행이었다.
내가 길거리캐스팅을 하겠다 말했을 때처럼 아무 의욕 없이 무미건조하게 반응했으면 진짜 답이 없었을 테니까.
없던 의욕도 불러일으키는, 마치 잘 익은 김치 같은 매력이 있다고. 우리 하안 씨는!
나는 참을 수 없는 하안 씨 뽕맛에 허리에 손을 올리고 배를 살짝 내밀며 하안잘알 부심을 행동으로 표현했다.
“······흐흣.”
그리고 어째서인지 사장님과 마주보며 대화를 하고 있어야할 하안 씨와 눈이 마주쳤다.
사장님과 대화하는 줄곧 차가운 무표정이었던 하안 씨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고, 나는 괜히 부끄러워 내밀었던 배를 도로 집어넣었다.
“프흐, 흐흣. 흐흐흣.”
······그만 웃어주세요.
그럼에도 하안 씨의 얼굴에선 옅은 미소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자연스레 사장님 또한 하안 씨의 미소를 영접하고야 말았다.
“······허. 허허.”
하안 씨의 미소를 목격한 사장님은 마치 난생 처음 오로라를 마주했던 과거의 나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아름다움이 극에 달하면 사람의 이지를 빼앗고, 그저 황홀경에 젖는 일밖엔 할 수 없게 만든다.
사장님에게 하안 씨의 미소가 바로 그러했다.
“허헛, 허허허헛.”
결국 하안 씨의 아름다움에 홀린 사장님은 완전히 이지를 잃은 채 허허헛 웃는 것밖에 못하는 허허헛웃음맨이 되어버렸다.
변태아저씨 같은 음흉한 웃음소리를 내는 사장님은 나조차도 그러려니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 웃음이 끊이지 않아 내게 지속도트데미지를 주던 하안 씨가 다시 정색할 정도로 섬뜩했다.
“······.”
인생의 온갖 단맛 쓴맛 다 본 나조차도 섬뜩하다 느끼는데 웃음의 당사자인 하안 씨는 오죽할까.
이런 사람이 사장이여도 괜찮은 걸까? 하는 진지한 의문을 가지려던 그때, 하안 씨의 엄동설한 같은 정색에 정신을 차린 사장님이 다시금 본론으로 들어갔다.
“어, 어우 제가 그만 추태를. 그, 그러면 그······ 제가 어떻게 부르면 될까요?”
“편하게요.”
“그럼 제가 사장이니까 말을 놓겠습니다. 하안이라고 부르면······.”
“최하안.”
정말 말허리를 동강 잘라버리는 칼 같은 대답에 사장님의 표정이 순간 멍해졌다.
“네?”
“반말은 괜찮으니까. 최하안이라고 부르세요.”
그러든 말든 하안 씨는 쐐기를 박았지만 사장님은 어째 포기하지 않을 생각인 것 같았다.
“그, 그건 좀 거리감이 있지 않을까요?”
“있으면 안 되나요?”
“제가 제 입으로 이런 말하긴 좀 그렇지만, 꽤 유능한 프로듀서였거든요. 이름도 꽤 알려져 있고, 이름 들으면 ‘아 진짜요? 그 분을 사장님이?’ 소리가 절로 나올 법한 연예인도 여럿 키워봤어요.”
확실히, 형님께 들은 적이 있다.
사장님은 예전에 어마어마하게 유능했던 프로듀서였다고.
그는 7년 동안 깜빵에서 사회와 차단되어있던 나조차도 이름은 들어봤을 정도의 연예인들을 키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금 사장님은 그 어마어마한 커리어를 하안 씨를 하안이라고 부르기 위해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만들어진 제 철칙 같은 게 있는데, ‘프로듀서와 담당연예인은 서로 가족처럼 편하게 지내는 게 좋다.’라는 겁니다. 진정으로 신뢰할 수 있는 관계가 되는 거죠. 진짜 가족처럼!”
그래, 맞는 말이긴 해. 프로듀서와 아이돌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신뢰인데, 가족이라는 게 또 신뢰의 대명사이기도 하니까.
나도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형님과 호형호제하며, 진짜 가족보다도 더 가족같이 지내면서 수많은 위기를 넘겨봤기에 사장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하안 씨의 경우엔 가족이라는 단어를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와는 조금 달랐다.
“가족처럼 이라고요?”
“네! 예를 들면······. 그래, 제가 삼촌이 되는 거겠죠!”
“앗.”
특히나, 삼촌이라는 단어는 더더욱.
“······.”
삼촌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하안 씨의 얼굴은 그 무엇보다도 차갑게 굳었다.
하안 씨를 하안이라고 부르기 위해 가족처럼 지내자는 말을 꺼낸 사장님조차도 무언가 잘못됐음을 인지하고 내 눈치를 살필 정도로 하안 씨가 뿜어내는 한기는 심상치 않았다.
몰랐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게 쳐다본다고 해서 내가 뭘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저도 모르게 탈룰라를 시전한 사장님에게 애도를 표하며, 나는 하안 씨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나름 가까워진 나조차도 감정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굳은 무표정이 하안 씨의 얼굴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감정을 읽을 수 없더라도 하안 씨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지는 그간의 경험을 통해 유추할 수 있었다.
지금 하안 씨는 많이 화가 나있었다.
“······가족은 싫어요.”
담담하지만 딱딱하고 싸늘한 목소리가 숨 막히던(사장님 한정) 침묵을 깨뜨렸다.
그 말과 목소리에 사장님은 좆됐음을 감지하고 덜덜 떨면서도 되묻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저, 저기.”
“특히나 삼촌은요. 당장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로 싫어요.”
그 어떤 의문조차도 얼려버릴 목소리와 여섯 글자밖에 되지 않음에도 무언가 일이 있었구나 짐작할 수 있는 말투에 그 어떤 말도 내뱉지 못하고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
“······.”
그 결과, 갑자기 트라우마를 자극당해 개빡친 하안 씨와 지가 뭔 잘못을 한 건지도 모르고 있는 사장님 사이의 상황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사태가 벌어지고야 말았다.
정확히 말하면, 한쪽이 일방적으로 파국을 맞는 거겠지만.
그러나 파국이 일어날 일은 없었다.
“사장님, 그. 계약은 나중에 다시 시간 내서 하기로 해요. 오늘 하안 씨한테 굉장히 많은 일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조금 쉬어야할 것 같아요.”
왜냐면, 담당 아이돌이 그 어떤 파국도 맞이하지 않게 만드는 이 슈퍼매니저 강진혁이 있었으니까.
“그럼 하안 씨, 이제 집에 갑시다.”
나는 그렇게 정리를 한 뒤, 하안 씨의 겨드랑이 밑을 잡고 그대로 번쩍 들어 사장실을 나갔다.
“히얏?!”
핸드폰에 저장해놓고 톡 알림으로 쓰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목소리는 덤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발발타 부활! 새집에서 인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잘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