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화
가족처럼 지내요 (2)
1.
두 사람이 나가고 혼자 남은 정바로는 이마를 짚으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하아····· 그게 왜 그렇게 되냐.”
자책이 가득 담긴 한숨이었다.
정바로로서는 최하안의 사정을 알 수 없었으니 억울할 만도 했지만, 억울하다고 해서 잘못이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무슨 이유에서라도 상대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건 잘못된 일이니까.
“실수해선 안 됐는데. 하아아아······.”
설령 잘못이라 여기지 않더라도 그 상대와 척을 두게 될 확률이 높아지는 건 맞기에 정바로는 그저 자신을 탓할 뿐이었다.
몇 번이고 한숨을 내뱉으며 자신을 탓하고 또 탓한 정바로는 자책을 넘어서 자기 자신을 비웃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가족이라니. 가족처럼 편하게 지내는 게 좋다니. 아무리 간절해도 그렇지 너는 이제 와서 그딴 소리가 나오냐 정바로. 변한 게 없어 어떻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가족처럼 지냈던 동료들의 배신.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천재 프로듀서 정바로를 한 순간에 무직백수로 전락시킨 것이 바로 그가 최하안에게 말한 가족처럼 지내던 연예인들, 그리고 직장 동료들이었다.
“그 가족처럼 지내던 새끼들 때문에 인생 조지고, 무리해서 다시 해보려다가 장기까지 털릴 뻔한 새끼가······ 가족처럼?”
하핫!
참을 수 없어 튀어나온 비웃음소리가 아무도 없는 사장실에 울려 퍼졌다.
“크흐흐흐······ 흐흣. 후.”
그렇게 한참을 낄낄대며 웃던 정바로는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싸늘하게 굳은 표정을 하고 있던 최하안을 떠올렸다.
원래도 무표정이었지만, 가족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그렇게 정색을 했다는 건 분명 가족에게 무슨 일을 당했기 때문이겠지.
그것도 분명 좋은 일은 아닐 터.
이는 가족처럼은 싫다는 말과 특히나 삼촌은 죽여 버리고 싶다는 말로 유추할 수 있었다.
“아마도 삼촌이라는 사람에게 배신 혹은······· 더 심한 짓을 당했거나 당할 뻔했을 수도 있어. 그것도 인생의 장르가 반전될 정도의 일을.”
그런 점에 있어선 나와 같나. 나도 그 가좆같던 새끼들 때문에 인생의 장르가 바뀌었으니까.
배신 전후의 정바로는 그 인생의 장르가 현대판타지에서 후회피폐(본인이)로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극과 극이었다.
이별의 부탁을 듣고 기획사를 세우려던 이성에게 구해지지 않았다면 정바로는 뱃속이 가벼워진 상태로 바닷가에 버려지는 베드엔딩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 오늘 폐공장에 갔다고 했었나?”
정확히 말하면 최하안을 따라 강진혁이 들어간 거지. 그리고 상처 하나 없이 돌아왔고, 계속 거절했다던 최하안이 갑자기 아이돌을 하겠다 마음을 먹었어. 그렇다는 건······ 최하안도 나처럼 최후의 순간에 구원을 받았다는 거야.
그것도 이성의 의동생인 강진혁에게.
“허, 허허.”
최하안이라는 인물을 적은 정보를 토대로 차근차근 짚어보던 정바로는 어느새 그녀와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가족같이 지내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것부터 와일드보어 캐피탈에게 험한 일을 당할 뻔한 것까지.
세세하게 따져보면 두 사람이 살아온 인생은 그리 닮지 않았지만, 정바로 본인은 자신이 최하안과 비슷한 삶을 살았다 생각했다.
그러자 전신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오늘 최하안과 만난 것이 마치 운명 같았기 때문이었다.
“운명인 건가? 최하안이 우리 회사에 온 건, 날 보고 다시 시작하라는 신의 계시인 거야?”
이성에게 구원을 받고, 기획사 사장 제의를 받아 회사 사장 자리에 앉았다고 해도 정바로의 인생은 지금까지 멈춰있던 것과 다름이 없었다.
가족같이 대했던, 지금까지 자신이 모든 노력을 쏟아 키운 연예인들.
바닥부터 시작하여 자신이 키운 연예인들로 회사를 키워나가, 종국엔 그 크기가 대한민국 3대 기획사 중 하나에 등극될 정도로 커진 기획사.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일구어내는 데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위대한 자신.
이들이 바로 과거 천재 프로듀서라 불렸던 정바로를 구성하는 것들이었고, 한 순간에 모든 걸 잃은 여파로 그는 폐인이나 다름없는 삶을 살게 되었다.
은인인 이성에게 부탁을 받아 사장실에 꼬박꼬박 출근은 했기에 그렇게 보이지 않았을 뿐이지 그의 시간은 자신을 구성하던 모든 것에게 배신당한 그날 멈춰있었다.
“진짜 그렇다면······ 시작해야겠지. 하늘이 최하안 같은 원석을 내려줬는데, 프로듀서로서 가만히 있는 건 죄악이니까.”
그러나 지금, 최하안을 마주한 순간. 정바로의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게 운명이라면······.”
물론 운명 같은 건 전혀 아니고, 최하안을 데려온 건 강진혁이었으며 동질감이니 나발이니 하는 것도 정바로 혼자서만 느끼고 있는 것이었지만.
사실상 정바로가 최하안을 만날 수 있었던 건 오롯이 강진혁이 그녀가 갖고 있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고 행복을 되찾아줬기 때문이지만!
“나는 운명을 받아들이겠어. 천재 프로듀서 정바로로 돌아갈 시간이다!”
어찌됐든 좋은 게 좋은 것이었다.
2.
“화났어요 하안 씨?”
“화요? 아니요.”
“그치만 사장님이 말한 게 하안 씨한테는 조금 민감할 수 있는 부분이니까······.”
짧은 해가 지고 찾아온 새까만 겨울의 밤하늘 아래, 나는 곁에서 걷고 있는 하안 씨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하안 씨에게 가족이란 절망의 근원, 하안 씨로서는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주제였으니 말이다.
혹시 사장님 발언에 화가 나서 아이돌을 하겠다는 마음을 접으면 어쩌지? 내 매니저 인생에 하안 씨가 없어선 안 되는데.
그러나 내 우려와는 달리 하안 씨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내게 비췄다.
“아니에요. 진짜 아무렇지도 않아요. 처음 보는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 무슨 상관이겠어요? 그냥 아주 잠깐 기분 나빴을 뿐이고, 지금은 정말 아무렇지 않아요.”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아무렇지 않다고 답했다.
와, 진짜 아무렇지 않나봐.
혹시나 하안 씨가 사장님이 마음에 안 들어서 아이돌 못 하겠다고 하면 사장님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무렇지 않다니 참 다행이다.
하안 씨가 아무렇지 않은 것에 안심하며 나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러면······ 아이돌은 해주시는 건가요?”
“네. 그럼요. 그래야 매니저님 곁에 있을 수 있잖아요. 저는 매니저님 곁에 있어야 행복할 수 있고요.”
아이돌을 하겠다는 마음이 변하지 않은 건 정말 좋지만, 역시 조금 위험한 것 같은데.
아무리 내가 하안 씨의 절망을 박살냈다고 해도 그게 하안 씨의 인생이 내게 저당 잡힐 이유가 되진 않았다.
그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나는 하안 씨를 향해 입을 열었다.
“하안 씨, 제 곁에 있어야만 행복해지진 않을 거예요. 세상은 넓고 행복을 느낄 수단은 정말 많으니까요. 그러니까······.”
“그런 거 없어요.”
“네?”
“그런 거 없다고요. 매니저님뿐이에요. 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건.”
그러나 싸늘하게 굳은 하안 씨가 차갑게 내려앉은 목소리로 말하자, 나는 그 기세에 눌려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네.”
하긴, 절망에서 꺼내진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았으니 지금 하안 씨에게 행복을 논하는 건 시기상조였다.
어차피 아이돌로 데뷔하기 전 연습생 기간도 거쳐야할 거고, 그동안 시간도 꽤 있을 테니까 시간이 지나면 내가 아닌 다른 것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겠지.
사람에게 생긴 대부분의 문제는 악화될 이유가 생기지 않는 한 시간이 해결해주는 법이다.
하안 씨에게 생긴 행복에 대한 집착 또한 연습생을 하며 차차 나아질 것이다.
아마도.
나는 그렇게 믿으며 고개를 돌려 깎아지른 듯한 경사의 계단을 올려다보았다.
“그래서 하안 씨 집이 저 끝이라고요?”
“네. 꼭대기가 제일 싸서요. 빚쟁이들도 힘들어서 잘 못 찾아오고.”
“······.”
하안 씨는 굉장한 탈룰라제조기였다. 사는 집에조차 그런 슬픈 사연이 있다니.
본인의 입으로 과거사를 듣긴 했지만 그게 하안 씨가 겪은 것들의 전부는 당연히 아닐 터.
나도 아까 전 사장님 꼴이 나지 않기 위해선 조심해야겠다.
“그럼 매니저님, 가요 우리.”
말조심하자고 다짐하던 내게 하안 씨는 계단을 오르자 말했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산을 깎아 만든, 계단의 높이가 일정하지도 않은 어마무시한 경사의 계단.
우리가 목표로 하는 곳은 그 계단의 끝에 위치한 하안 씨의 집.
평범한 사람은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힐 상황이었지만, 나는 괜찮았다.
에베레스트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니까.
“네, 갑시다.”
나는 그렇게 하안 씨를 따라 성큼 계단을 올랐다.
※※※
“도착했어요.”
“진짜 꼭대기네요.”
“네.”
나는 이 높은 계단을 쉬지 않고 올랐음에도 숨이 조금 차고 만 하안 씨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모든 집을 발아래에 둘 정도의 고도, 그 높은 곳에 하안 씨의 집이 있었다.
이런 곳에서 살았으니 어제 그렇게 달리고도 숨 하나 안 찼지.
하안 씨의 탄탄한 몸매와 이상할 정도로 좋은 체력이 이런 환경에서 나왔다는 것에 나는 적잖은 감동을 느꼈다.
산만한(like mountain) 계단을 오르내리며 단련된 체력은 분명 이후 아이돌이 돼서도 아주 큰 도움을 주리라.
그렇게 하안 씨의 체력의 근원을 알게 된 것에 만족하며 이제 작별인사를 건네려는 그때, 하안 씨에게서 예상치 못한 말이 나왔다.
“여기예요. 제 집. 그럼 잠시만 기다리세요.”
기다리라니? 뭐지? 손님으로 접대라도 해주시려는 건가?
이제 깡패들도 처리했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형님한테 말해 이성경호 사람도 붙여 달라 했으니 안심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매니저랑 아이돌이랑 같은 집에서 사는 것도 굉장히 이상한 일이었기에 집에 바래다주고 가려고 했는데 이렇게 대접해주려고 하다니.
“기대되는데.”
나는 집안을 정리하러 들어간 하안 씨를 기다리며 하안 씨가 내게 베풀어줄 대접을 기대했다.
물질적인 걸 기대하는 건 아니고, 미래 최고의 아이돌이 될 하안 씨에게 손님대접을 받는다는 것 자체에 기대를 했다.
그렇게 두근두근 떨리는 가슴으로 기대를 하고 있는데, 1분도 채 되지 않아 벌컥 문이 열리며 하안 씨가 나왔다.
“······하안 씨? 손에 그거······ 베개예요?”
“네, 베개요.”
한 손에 굉장히 푹신해 보이는 베개를 들고 말이다.
손님대접을 기대하고 있던 내게 베개를 든 하안 씨의 등장은 귀여움과 당황을 동시에 선사했다.
뭐지? 베개를 들고 있는 하안 씨 되게 귀여운데······ 왜 베개를?
당황스러우면서도 귀여움을 느끼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 멍하니 서있었더니, 하안 씨가 베개를 품에 안으며 변명하듯 입을 열었다.
“매, 매니저님 집은 다른 건 다 좋은데. 베개만큼은 쓰던 게 좋아서요. 그래서 가져온 거예요.”
······응?
“그리고 집주인한테 방 뺀다고 말해놨으니까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무보증 월세여서 이런 점은 좋거든요.”
으응?
“무튼, 이제 베개도 챙겼으니까. 가요. 우리 집에.”
으으으으응????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