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가 깡패임-28화 (29/53)

제 28화

가족처럼 지내요 (3)

1.

“제 집에 가신다고요?”

귀가 의심되어 한 번 더 물으니 정말 다행스럽게도 하안 씨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뇨.”

그리고 하안 씨 본인이 직접 부정까지 해주니 귀를 의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그렇지? 버젓이 잘 곳이 있는 양반이 외간남자, 그것도 담당매니저 집에서 자겠다는 건 상식적으로 좀 그런······.

“제 집이 아니라, 우리 집이라니까요 매니저님.”

그런······?!

저희 집이라는 건, 하안 씨가 이제부터 내 집에서 같이 사는 걸 넘어서 내 집을 자기 집처럼 쓰겠다는 건가?

어제 처음 만난 하안 씨가 내 집을 자기 집처럼 여기겠다는 말을 들은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은 커다란 당황과 약간의 기쁨이었다.

친구사이래도 친구 집을 자기 집처럼 여기려면 정말 친해야하는데, 하안 씨는 내 집을 자기 집처럼 여기고 있었다.

그 사실이 하안 씨가 나를 정말 많이 가까운 사이라고 인식해주는 증거처럼 느껴져 나는 조금 기뻤다.

“하, 하안 씨, 아무리 그래도 아이돌이랑 매니저랑 둘이서 사는 건 조금 그렇지 않을까요?”

물론 기쁨보다 당황스러움이 훨씬 더 커서 기뻐할 겨를도 없이 거절향 첨가의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지만.

“하안 씨는 최고의 아이돌이 되실 분인데, 저랑 같은 집에서 살았다가 사진이라도 찍힌다면 나중에 아이돌 활동에 있어서 커다란 장애물이 될 거예요.”

세상에는 상식이라는 것이 있고, 상식이란 세상을 불협화음 없이 원만하게 지내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 상식을 어기게 되면 상식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질책을 받고, 상식을 어기는 수준이 선을 넘으면 상식인들의 사회에서 격리당해 끔찍하게 긴 교화의 시간을 갖게 된다.

지금 하안 씨가 바라는 일이 바로 그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이었고, 방송계에선 강력범죄나 다름없을 정도로 파급력이 커다란 것이었다.

“아이돌과 매니저가 같은 집에서 사는 건, 상식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일이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상식을 어겨 사회와 격리되었을 때 사람이 얼마나 고통을 받는지는 직접 경험해봤기에 알 수 있었다.

물론 매니저의 집에서 단둘이 살았다고 나처럼 교도소에 가진 않겠지만, 깜빵에 가는 것보다 더욱 심각하고 힘든 일을 겪게 될 수도 있었다.

교도소에서 7년을 썩은 나조차도 알 수 있는, 아이돌 업계의 상식이었다.

이렇게까지 말했으면 하안 씨도 알아주겠지. 지금처럼 상식을 벗어나는 일은 그만두고 다시 집으로······.

“그렇지 않은데요.”

갈 리가 없지. 이런 말에 고집을 꺾을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하안 씨가 지금까지 살아있지도 않았겠지.

하안 씨는 자신의 인생을 절망으로 빠뜨린 것들에게 지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수년을 단신으로 버텨온 사람이었다.

꺾이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완고하다는 뜻, 그런 하안 씨를 상식 따위로 설득하는 건 어림도 없었다.

그렇다한들, 하안 씨의 고집에 꺾일 수는 없어. 아무리 하안 씨가 원하는 일이라면 다 들어주고 싶다지만 이번 건 선 넘은 거라고. 하루 이틀 묵게 해주는 거야 괜찮지만 아예 살림까지 차리고 그러는 건 아이돌로서 해선 안 되는 일이야.

설령 먹히지 않는다 해도 상식이란 명분이 되어주는 법, 나는 하안 씨의 억지에 상식으로 맞서기 위해 입을 열었다.

“하안 씨, 저는······.”

“매니저님.”

‘나는 매니저고 넌 아이돌이야. 그러니까 네가 바라는 일은 이루어질 수 없어. 집이 멀고 높아서 출퇴근이 힘들다면 집을 따로 구해줄 테니 거기서 살아.’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하안 씨의 부름에 말허리가 끊겼다.

갑작스런 부름에 내가 순간 말문이 막힌 그 틈을 타 하안 씨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그깟 상식 따위로 막기엔 매니저님과 저는 너무 멀리 와버렸는걸요?”

“네?”

그깟 상식 따위라니?

하안 씨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어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니, 하안 씨는 뭘 되묻냐는 듯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야, 매니저님부터가 상식에서 한참 벗어나는 분이잖아요. 칼과 쇠파이프로 무장한 깡패 수십 명을 상처 하나 없이 쓰러뜨리는 사람이 뭐가 무섭다고 상식을 입에 담으세요?”

“하안 씨, 그거랑 그거는 조금 다른······.”

“그리고 매니저님은 제가 그깟 사진 몇 장 찍혔다고 아이돌 못할 사람으로 보이시나요? 매니저님 입으로 직접 그렇게 칭찬을 하셨던 제가. 고작 매니저 집에서 단둘이 산다는 것만으로 아이돌하기도 전에 매장당할 정도로 재능이 없어 보이나요?”

“······.”

그리 말하니 순간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하안 씨가 가진 재능, 반짝임의 세기는 내 느낌만으론 아가씨와 동등한 수준.

세계적인 슈퍼스타이며 현 시대 최고의 한류스타인 아가씨가 나랑 단둘이 산다고 해서 그 인기가 떨어질까?

조금 깎일 수는 있더라도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오진 않을 것이다.

그 정도로 현 시대에 아가씨, 슈퍼스타 노바의 이름은 드높았고 지금 내 눈앞에 있는 하안 씨에겐 노바와 동등할 정도의 잠재력이 갖춰져 있었다.

“매니저님, 저희 둘 다 상식에서 벗어나 있어요. 저희는 어차피 상식과 어울리지 않은 사람들인데 굳이 상식을 지킬 필요가 있을까요?”

‘그래도 지키라고 만든 게 상식인데······.’ 하고 반론하고 싶었지만 오늘만 해도 나는 폭력에 폭력으로 맞선 전적이 있었다.

하안 씨의 말마따나 나부터가 상식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데 그녀에게 상식을 강요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하안 씨가 아무리 아가씨와 동등할 정도로 재능을 갖고 있다고 해도 재능이 꽃피기 전에 짓밟으면 밟힐 수밖에 없어.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고.

상식이 통하지 않고, 상식과 어울리지 않는다 해도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을 하면 위험밖엔 없는 법이다.

아직 연습생도 되지 못한 하안 씨에게 이런 비상식적인 일은 정말 치명적이기에 나는 정색하고 하안 씨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매니저님 집은 소속사 건물에 있잖아요. 거기서 살면 그냥 소속사에서 출퇴근하는 걸로 보이지 않을까요?”

“어?”

그리고 하안 씨의 입에서 나는 생각하지 못했던 발상이 튀어나왔다.

생각해보니 진짜 그러네?

애초에 바른길엔터 건물의 4층은 내가 허락한 사람을 제외하면 출입금지고, 한 층 전체가 내 집이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깡패 시절에도 내가 거기 산다는 걸 아는 사람은 형님이랑 아가씨 그리고 몇몇 신뢰했던 동료들뿐이었으니 보안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수준이긴 했다.

소속사 건물에 숙소가 있다는 건 조금 특이하긴 해도 이상하진 않고, 같은 층에 매니저도 숙식한다고 해서 큰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거야. 애초에 건물 한 층 전체가 한 집이라고 생각할 사람도 없을 거고.

애초에 집부터가 상식적이지 않으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하안 씨와 한 지붕 아래서 사는 것에 문제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다른 사람에게 걸려 아이돌 인생에 큰 장애물이 될 거라는 생각이 사라지니 하안 씨와의 동거가 너무나 끌리기 시작했다.

하안 씨랑 같이 살면 매일 아침마다 하안 씨와 아침인사를 할 수 있고, 매일 밤마다 잘 자라고 말해줄 수 있고, 손수 요리를 차려줄 수 있는 건가? 일 끝나고 밤에 티비 켜놓고 영화를 볼 수 있는 거야?

세상에. 너무나 행복한 인생 아닌가. 첫 눈에 반한 사람과 같이 산다니.

담당아이돌을 관리하는 것 또한 매니저의 가장 큰 업무 중 하나인데, 아이돌과 동거를 하게 된다면 관리 또한 굉장히 편해질 터.

리스크가 없다면 하안 씨와 동거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네요. 그럼 같이 살죠 뭐!”

“와!”

2.

“그래서 같이 산다고?”

“네.”

“미친 새끼야!”

후웅!

성인 남성의 얼굴만 한 주먹이 바람을 가르며 머리 위로 떨어졌다.

보통 이럴 때엔 맞아주는 것이 눈치 있는 짓이긴 하지만 형님의 주먹은 맞으면 아프다.

사람의 탈을 쓴 불곰이라고 저 양반은.

그래서 몸을 틀어 가볍게 피한 뒤, 얼굴을 찌푸리며 불만을 토로했다.

“폭력반대! 형님은 형님이 얼마나 괴물딱지인지 알아야 해요. 그런 식으로 휘두른 주먹에 사람이 죽는다고요!”

“어차피 안 맞잖아 너는! 네가 아니면 내가 이럴 수나 있겠냐?”

“그건 그렇지.”

폭탄제거반을 방불케 하는 보호 장구를 차지 않으면 자기 회사 부하들과 대련조차 하지 않는 게 형님이다.

그런 형님이 이런 식으로 주먹을 휘두를 수 있는 건 내가 그 주먹을 맞지 않으리란 믿음이 있어서겠지.

나와 형님 사이의 신뢰가 돈독하다는 건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기에 별 다른 감흥 없이 의아한 점을 형님에게 물었다.

“그런데 제가 왜 미친 새끼예요? 담당아이돌이랑 같이 살면 매니저로서 일하기 되게 편한 거 아닌가?”

차를 몰고 자택까지 픽업하러 가지 않아도 되고, 업무를 보지 않을 때 어딘가로 쏘다닐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봐봐. 얼마나 편해.

하지만 형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이돌이기 이전에 외간 여자잖냐! 그것도 만난지 일주일도 안 된!”

“그게 왜요?”

“왜긴 새끼야! 요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 너는 미투가 뭔지도 모르지?”

“미투? 나도?”

“으어억!”

세상 무서운 거야 어렸을 적부터 알고 있지만, 하안 씨가 집에 왔다고 이런 반응을 보일 정도는 아닌데. 왜 갑자기 이렇게 호들갑이지?

형님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리니, 형님은 주먹을 가슴을 쿵쾅 두드리며 답답함을 표했다.

“아오 진짜. 어디서부터 가르쳐줘야 하지 이 새끼를? 교도소가 내 동생 인생을 아주 조져놨어 진짜!”

“호들갑은.”

형님은 아가씨 편이고 아가씨는 내 집에 다른 여자가 들어와 사는 꼴을 죽어도 못 볼 테니 이러는 게 이해는 됐지만 그 정도가 너무 과했다.

원래 같았으면 우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 걱정 말라고 달래줬겠지만, 지금 나는 굉장히 바빴다.

우우웅-

“어, 계약서 다 썼나보다.”

오늘은 하안 씨가 정식으로 우리 회사에 소속되는 날이었으니까.

나는 하안 씨에게서 온 문자를 확인한 뒤, 형님에게 인사를 건넸다.

“무튼 형님, 저 이제 가봐야 하니까 얘기는 다음에 마저 해요. 참, 아가씨한테는 절대 말하면 안 돼요?”

“안 해 임마. 나도 오래 살고 싶으니까.”

“저도요. 그럼 갑니다!”

그렇게 여전히 답답해하는 형님을 뒤로한 채, 나는 하안 씨가 있을 사장실로 향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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