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가 깡패임-30화 (31/53)

제 30화

깡패가 학교폭력에 대처하는 방법 (1)

1.

소고기를 기깔나게 구워 맛있게 먹은 후, 나와 하안 씨는 소파에 앉아 식사의 여운을 느끼고 있었다.

“흐흣.”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하안 씨만이 식후의 행복함을 느끼고 있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방실 웃고 있는 하안 씨를 보니 조금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좋아요? 아니, 좋아?”

“그럼요. 매니저님이 더 이상 존대를 안 하는데.”

입가에 피어난 미소를 숨기지 않고 말하는 하안 씨는 굉장히 귀엽고 예뻤지만, 뭐랄까 조금 어색했다.

내가 알던 그 차갑고 시크하던 하안 씨가 맞나. 아무리 나한테 마음을 열었다지만 이건 좀 과하게 활짝 열린 거 아니냐고.

하안 씨와 가까워지는 건 내게도 너무나 좋고 행복한 일이다.

담당아이돌과 매니저의 사이가 가까워지는 건 매니저로서 그저 좋을 뿐인 일이니까 말이야.

하지만 하안 씨와 만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까지 가까워지는 건 아무리 매니저로서 담당아이돌과 가까워져야하는 사명을 갖고 있는 나라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안 씨, 그런데 어제 사장님한테는 가족처럼 지내는 건 싫다고 했으면서 왜 저한테는······.”

그래서 어제의 일을 근거로 들며 하안 씨가 다가오는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추려 했건만, 돌아오는 건 한 순간에 죽어버린 눈빛과 싸늘한 목소리였다.

“하안 씨? 저한테는?”

“아, 그게 그러니까.”

말을 한 번만 더 잘못했다간 사달이 날 것 같은 하안 씨, 아니 하안이의 표정에 나는 곧바로 내뱉은 말을 정정했다.

“하안아. 그런데 어제는 사장님한테 가족처럼 지내는 건 싫다고 했으면서 왜 나한테는······.”

“흐흣.”

반말에 하안이라고 허물없는 호칭을 써주니까 바로 표정이 밝고 부드러워졌네. 뭐지 진짜. 왜 갑자기 이렇게 쉬워진 건데.

아니, 존댓말 조금 했다고 바로 정색하는 걸 보면 쉬워졌다기보다는 단순해졌다고 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아, 그거요?”

단순해진 하안 씨는 스물스물 미소를 지으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귀에 입을 가까이 댄 뒤, 우리 둘 빼고는 아무도 없음에도 누가 듣기라도 하는 듯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직접 생각해보세요.”

“예?”

“왜 매니저님은 되고 사장님은 안 되는지. 직접 생각해보시라구요.”

아니 그게 무슨.

어이가 없어 순간 말문이 막힌 틈을 타, 하안 씨는 치명적인 눈웃음만을 남긴 채 자기 방으로 총총총 도망쳤다.

“허······.”

도망의 스패셜리스트답게 안개처럼 사라지는 하안 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헛웃음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

최하안은 행복했다.

정확히 말하면, 너무나 편안해서 행복했다.

지금까지 그녀의 삶은 그 어떤 순간에도 긴장을 놓을 수 없고, 그 어떤 상대도 믿을 수 없는 가시밭길 그 자체였다.

하지만 강진혁을 만나고 한 순간에 그녀가 앓던 모든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그녀는 지금껏 잊고 있었던 편안함이라는 감각을 되찾을 수 있었다.

더 이상 긴장하지 않아도 되고, 불신하지 않아도 되니 자연스레 여유라는 것이 생겨났고 행복을 느낄 수도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편안함과 행복은 현재 최하안의 곁에 강진혁이 있기 때문.

강진혁이 만들어준 평안과 행복이니 그가 사라지는 순간 다시 끔찍했던 예전으로 돌아갈 거라고 최하안은 은연중에 그렇게 여기고 말았다.

설령 강진혁이 없다 해도 다시 예전처럼 참혹한 인생으로 돌아갈 일은 없다 한들, 최하안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한 기정사실이나 다름이 없는 일.

그 결과, 최하안은 ‘강진혁이 곁에 있기에 자신이 행복할 수 있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절대, 절대 안 놓쳐. 절대로.”

창문조차 꽉 닫힌 밀실에서, 최하안은 진심을 담아 작게 중얼거렸다.

마음이 바뀌지 않는 한 절대 흐트러지지 않을, 아이돌이 매니저에게 품기엔 더없이 부적절한 굳건한 결심이었다.

2.

“······네? 뭐요? 어딜 갔다고요?”

트레이너가 왔다기에 먼저 1층 연습실에 온 최하안은 곧이어 들어온 정바로를 향해 싸늘하게 죽은 눈빛을 보냈다.

조금 힘겨운 인생을 살았다 하지만 그래도 일반인인 정바로로서는 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온 건지 감히 짐작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최하안의 눈빛은 차갑고 무거웠다.

하지만 정바로도 인생의 단맛 쓴맛 똥맛까지 다 본 베테랑 사회인이었기에, 그는 진땀을 흘리면서도 최하안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었다.

“아, 아니. 그······ 길거리 캐스팅하러 갔지.”

“왜요?”

“그게 강진혁 씨 일이니까?”

“제가 있는데 왜요?”

너무나 당당히 말하는 최하안의 목소리엔 진심어린 의문이 담겨져 있었다.

왜? 내가 있는데 왜 다른 여자를? 최고의 아이돌이 될 거라고, 꼭 아이돌이 되어달라고 그렇게 사정사정을 했으면서. 대체 왜?

의문이라는 숫돌로 차갑게 벼려진 날카로운 눈빛에 정바로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면서 최하안의 억지 의문을 정론으로 받아쳤다.

“그, 그치만 우리가 만들려는 건 걸그룹이니까······. 멤버가 한 명인 걸그룹은 없잖아.”

걸그룹에 멤버가 한 명 뿐이라면, 그건 그냥 걸이다.

“그, 그치?”

“·······.”

정바로의 대답에 최하안은 할 말이 없어져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정바로가 어렵게 모신, 과거 인연이 있던 보컬트레이너가 올 때까지 두 사람은 끔찍한 침묵 속에서 대치했다.

정확히는, 정바로에게만 끔찍한 침묵 속에서.

※※※

“날씨 진짜 좋다. 1월이고 겨울인데도 따뜻하기까지 한 것 같아.”

오늘 날씨는 맑음, 기온은 1월초답게 영하였지만 그럼에도 0도에서 영하 1도 사이에 머무른 따뜻한 겨울날씨였다.

칼바람이 몰아치고 날까지 흐려 햇빛조차 없던 하안이를 만난 날에 비하면 오늘은 거의 봄 날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렇게 좋은 날이니까. 사람들도 밖으로 많이 나오겠지? 춥긴 하지만 겨울치고는 훈훈한 날씨고, 햇볕도 이렇게 좋으니까 말이야.

사람들이 많이 나와 길거리를 나돌면 자연스럽게 나도 길거리 캐스팅을 성공할 확률이 늘어난다.

물론 하안이처럼 아가씨와 비견될 정도로 대단한 반짝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쉽게 찾을 수는 없겠지만.

하안 씨를 만난 건 정말 천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애초에 내가 하안이를 찾은 게 아니고, 하안이가 나를 찾은 거였으니까. 정말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져 내 품안에 안긴 거나 다름이 없었지.

그런 행운을 한 번 더 바라는 건 양심도 없는 일인 걸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나는 이번엔 내 노력만으로 원석을 찾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그 원석을 대체 어디서 찾느냐는 건데.”

이미 하안이라는 엄청난 재능의 소유자를 만났기에, 길거리 캐스팅의 커트라인도 개같이 높아진 상황이었다.

아가씨와 비견되는 하안이의 반짝임에도 묻히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을 찾아야한다는 거다.

근데 그런 대단한 사람을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찾는다는 건 불가능에 지극히 가깝다는 것을 나는 일전의 길거리캐스팅을 통해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 조금 더 효율적으로 원석을 찾을 수 있는······ 반짝이는 사람들이 모일 법한 그런 장소에 가야 하는데.

“그런 곳이 어딘지 내가 어떻게 알아.”

나는 7년 동안 사회와 격리되어있던 전과자였다.

방송계에 닿아있는 연줄이라고는 저 멀리 해외에 나가있는 아가씨뿐인, 경력도 담당하고 있는 연예인도 없는 매니저. 그게 바로 나였다.

그런 내가 아가씨와 하안이에게 비견될 정도로 반짝이는 사람이 모이는 곳을 알 리도, 안다고 해도 갈 수 있을 리도 없지.

그렇다면 결국 개 노가다로 길거리를 전전하며 원석을 찾아야한다는 건데.

사막에서 바늘 찾기나 다름없는 일이지.

하지만 이렇게 몸을 쓰는 노가다엔 나름 자신이 있었다. 비슷한 일을 해본 적도 있고 말이다.

장소가 사막이 아닌 설산이었지만, 아무튼.

“좋아. 한 번 힘내보자. 아자아자 파이팅.”

나는 두 주먹을 꽉 쥐고 위로 뻗으며 밖이니만큼 인파에 묻힐 정도의 적당한 소리로 나 자신을 독려한 다음,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노다니는 길거리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3.

“야, 너는 어떻게 아직도 그 목이 그렇게 뻣뻣할 수가 있냐? 안 처맞아봐서 그런가? 여자라서?”

“그래 오빠. 저 씹련한테 오늘 예절이라는 게 뭔지 제대로 알려주자.”

“야이 개년아, 그따구로 깝치고 다니면 너 언제 한 번 좆된다고 했지? 진짜 좆될 것 같으니까 기분이 어때?”

“처맞기 시작하고 질질 짜봐야 안 멈출 텐데. 진짜 마지막이야. 지금이라도 고개 숙이고 여기로 들어오는 게 어때?”

버려진 채 새로운 임대인이 들어오지 않아 제 목적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사무실 안.

사무를 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제 목적을 다하지 못해 양아치들의 소굴이 되어버린 이 사무실에서, 교복을 입은 열댓 명의 양아치의 시선이 한 여학생에게 모여 있었다.

알루미늄 야구배트, 쇠파이프를 들고 있는 남학생도 몇몇 있고, 학생이라고는 상상도 가지 않을 정도로 거구를 갖고 있는 이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의 가운데에서 양옆에 여학생 둘을 끼고 있는, 이 모든 양아치들의 우두머리는 그 체구부터가 학생보다는 선수에 가까울 정도로 울퉁불퉁해있었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뒤지게 처맞고 내꺼 할래. 아니면 순순히 내꺼 할래.”

성인 남성조차도 눈을 깔고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시비가 털리지 않기를 빌 정도로 험악한 인상의 양아치들의 앞에서 그들 모두와 마주하고 있던 여학생은 가운데손가락을 쳐들며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내꺼 이지랄. 엿이나 처먹어 이 씹새끼들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호기 등장! 다음화는 새벽에 뵙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