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화
깡패가 학교폭력에 대처하는 방법 (2)
1.
“없네.”
오전 내내 거리를 돌아다녔지만 아가씨나 하안이에게 비견될 정도로 반짝이는 사람은 찾지 못했다.
“진짜 없어.”
진짜 눈에 힘을 빡 주고 사막 한가운데에 박힌 바늘도 바로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집중해서 사람들의 면면을 살폈음에도 하안이에게 밀리지 않을 정도의 반짝임을 갖춘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눈을 비비고 찾아봐도 없다고.”
길거리를 걸으면서 찾으니까 시야가 낮아 사람을 많이 못 봐서 그런가? 싶어서 온갖 건물 옥상까지 다 올라가 높은 시야에서 내려다봐도 반짝임은커녕 미녀조차도 찾지 못하고야 말았다.
아직 점심시간밖에 안 되긴 했고, 평일이라 오전시간에 사람이 많이 다니진 않지만 아무리 그래도 ‘어라?’싶은 사람조차 찾을 수 없던 건 예상외였다.
나 설마 하안이를 찾는 데에 모든 운을 다 써버린 건가?
하안이와의 만남은 그야말로 운명적이었다.
내가 직접 하안이를 찾은 것도 아니고, 하안이가 제 발로 내게 걸어 들어온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간절하게 바라던 반짝이는 원석이 절로 품에 굴러 들어왔으니 거기에 모든 운을 소진했다고 해도 이상하진 않았다.
하지만 사나이 강진혁, 운보다는 노력과 실력을 믿는 남자.
운이라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을 과거 뼈저리게 느꼈기에 운도 실력이라는 말을 믿긴 한다.
하지만 행운이 찾아왔을 때 잡으려면 그만한 실력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해야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그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더더욱 잘 알고 있다.
하안이가 위기에 처했을 때, 내게 싸움실력이 없었다면 하안이를 구할 수 없었을 테니까 말이야.
결국 운도 실력이라는 말은 실력을 갖춘 사람만이 행운을 붙잡을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여기며 살아왔다.
그러니 하안이를 만나는데 행운을 전부 소모했다면, 그 행운이 소모된 만큼 실력을 발휘하면 되는 법이지.
지금이야말로 일명 ‘인디언 기우제’ 작전을 실행할 때였다.
기약 없이 진행될 개쌩노가다지만 몸 쓰고 체력 필요한 일이야 내 전문이니까. 밤낮없이 찾다보면 언젠가 만날 수 있을 거야. 하안이에게 꿀리지 않을 정도로 반짝이는 원석을.
“그걸 위해선 일단 배부터 든든하게 채워둬야겠지.”
열심히 찾다 보니 어느새 오후고, 슬슬 배도 허전하니까. 지금이야말로 밥을 먹기 딱 좋은 시기였다.
“든든한 국밥 한 그릇 때리고 마저 찾아보자고.”
마침 내가 있는 곳은 교도소에 들어가기 전에도 형님과 즐겨 갔었던, 이번에도 오랜만에 형님이랑 가려고 했지만 하안이 일 때문에 가지 못한 할매국밥집 근처였다.
7년 만에 가는 건데 이모님이 날 알아보시려나? 조금 기대가 될지도.
날 알아본 이모님이 대체 어디 갔다가 몇 년 만에 오는 거냐고 물었을 때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고민하며, 나는 국밥집이 있는 골목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자 보이는, 기억 속에 있는 것보다 훨씬 낡아버린 간판과 조금도 변하지 않은 국밥집 내부의 풍경.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뜨끈한 국밥을 후후 불어 떠먹는 손님들의 모습과 주방 안에서 국밥을 끓이고 있는 이모님의 모습에 나는 가슴이 시큰해오는 것을 느꼈다.
“7년 만인데. 변한 게 없구만 저기는.”
아마 맛도 변하지 않았겠지. 변했으면 형님이 제일 먼저 손절했을 테니까.
진하게 우러나온 국물과 큼지막하게 잘린 고기들, 직접 담근 김치와 깍두기까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입에 침이 잔뜩 고이는 것 같았다.
“후, 안 되겠어. 상상하니까 미칠 것 같네. 국밥 특으로 조져야겠다. 딱 대.”
나는 싱글벙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그렇게 국밥집을 향해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 옮기려고 했다.
쿠당탕탕탕······. 콰당탕······. 쾅······.
“······으잉?”
머리 위, 창문 샷시에 청테이프가 발라져 완전히 밀폐된 폐 사무실에서 대낮에 들리기엔 조금 부적절한 굉음이 들리기 전까지는.
뭐지. 적어도 이런 시간에 쌈박질을 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 그것도 완전히 망해서 빨갛게 스프레이질까지 쳐진 사무실에서?
우당탕탕 큰 소리가 들려오는 사무실은 척 봐도 텅 비어 사람이 들어오지 않은 지 몇 년은 된 듯했다.
물론 내 기준에서야 큰 소리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별 거 아닌 소리였지만, 폭력에 익숙한 내겐 넘겨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깡·······. 쿠당탕탕·······. 콰당탕·······.
맨손으로 싸우는데 저런 소리가 날 것 같진 않고. 그렇다고 연장을 든 깡패새끼들이 패싸움을 한다기엔 연장이 사람을 때릴 때 나는 둔탁한 소리가 나질 않아.
오히려 바닥이나 천장, 혹은 벽 등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만 나는 걸 보니 패싸움은 아닌 듯 했다.
보통 저런 소리는 일 대 다수의 일방적인 다구리에서 당하는 한 명이 요리조리 잘 피할 때 벽이나 바닥을 헛쳐서 나는데, 중간중간 짜증 섞인 괴성이 들려오는 걸 보면 실제로도 잘 피하고 있는 듯했다.
발소리나 연장이 벽이나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어보면 치는 쪽도 그리 실력이 있는 것 같진 않은데. 그걸 감안해도 다구리에서 저렇게까지 잘 피하는 건 진짜 몸 좀 쓴다는 건데.
발소리를 들어보니 피하는 쪽의 발놀림도 굉장히 가벼웠다. 마치 춤을 추는 듯한 풋워크가 미세한 발소리를 통해 내게 전해졌다.
“그나저나 진짜 가볍네. 소리만 들어보면 무슨 여자가 싸우는 줄 알겠다.”
고개를 들어 일이 벌어지고 있는 3층을 바라보며 소리를 통해 감상을 하고 있다 보니, 저 멀리서 또 다른 발소리가 들려왔다.
국밥을 든든하게 때리고 나오는 손님무리의 발소리였다.
혀로 잇새를 점검하거나 볼록 나온 배를 통통 두드리며 나오는 모습을 보니 든든하고 맛있게 잘 먹었다는 기분이 나한테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어우씨, 나도 빨리 가서 국밥 때려야지.”
갑자기 들려오는 싸움 소리에 팔려있던 정신이 한 순간에 돌아오고, 나는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굉음에서 신경을 끈 채 할매국밥집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아니, 돌리려고 했다.
쨍그랑!!!
머리 위에서 절대 흘려 넘길 수 없는, 끔찍하게 폭력적인 소음이 들려오기 전까진.
유리가 깨지는 걸 넘어서 터져나오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드니, 햇빛이 반사되어 별빛처럼 내리는 유리조각들과 사람만한 덩어리가 내 머리 바로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것을 인지한 순간, 일 초가 수십 조각으로 쪼개졌고 그 조각 하나하나가 다시 일 초의 시간으로 변모했다.
완전히 느려진 시간 속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나는 내게 떨어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식할 수 있었다.
쨍쨍한 햇빛과 그로 인한 역광 탓에 처음 본 순간엔 사람만한 덩어리라 판단했던 그것은 사람만한 덩어리가 아니었다.
“·······이런 미친!”
내 머리 위를 향해 떨어지는 건 사람만한 덩어리가 아닌, 사람만한 덩어리만한 사람.
즉, 진짜 사람이 3층에서 창문을 깨고 머리부터 떨어지는 중이었다.
그것도 여자가!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떨어지는 게 사람이라는 것과 그냥 사람이 아니라 여학생이라는 걸 인지한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고 전신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당황한 탓에 그런 기분을 느끼는 건 찰나였고,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도 찰나였다.
수십 조각으로 나뉘어진 일 초의 파편 중 단 두 조각만을 소비한 끝에 나는 해야 하는 일을 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저대로 떨어지면 그대로 머리가 깨져서 죽을 거야. 그러니 받아낸다.
아래서 받을수록 육체에 전해지는 충격이 클 것이기에 최대한 위에서 받아낸 뒤 충격이 없도록 착지해야만했다.
보통이라면 머리에 담는 순간 불가능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방법이었다.
그러나 내겐 그게 가능한 육체와 신체능력이 있었고, 그 모든 과정을 세밀하고 신속하게 해낼 수 있는 반사신경 또한 갖춰져 있었다.
탓. 타닷.
왼발로 땅을 힘껏 박차고 뛰어올라 그대로 건물 외벽을 딛고 한 번 더 위로 오른다.
두 번의 도약을 하는 동안 여학생은 2층 높이에서 여전히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좋아, 늦지 않겠어.
빠른 판단 덕분에 늦지 않은 것을 진심으로 안도하며, 나는 마지막 도약의 타이밍을 쟀다.
하나. 둘. 지금!
타앗!
머리부터 떨어지는 여학생과 눈높이가 맞은 순간 나는 벽을 박차며 여학생의 몸을 품에 안았다.
동시에 원활한 착지를 위해 공중에서 한 바퀴 돌며 자세를 정돈했고, 착지하는 순간 다리를 굽혀 두 팔에 들려있는 여학생에게 충격이 가지 않도록 모든 충격을 하체로만 받아냈다.
탁.
품에 안긴 이에게 그 어떠한 충격도 전해지지 않는 완벽한 착지.
오랜만에 진심으로 움직이느라 꽤 불안했는데 역시 머리는 잊어도 몸이 기억한다는 말이 있듯 내 육체는 내가 바라던 바를 완벽히 이뤄냈다.
그래, 그런 쌩고생을 겪으면서 단련한 몸인데. 이 정도는 해주는 게 맞지.
육체에 대한 인정과 칭찬은 여기까지만 하고, 나는 품에 안은 여학생에게 안부를 물었다.
“후우. 간만에 빨리 움직였더니 빡세네. 저기 괜찮······.”
“아오! 저 새끼들이 빠따질로도 모자라서 3층에서 사람을 밀쳐?! 뒤졌어 진짜!”
그러나 품에 안겨있던 여학생은 방금 창문을 깨뜨리며 떨어진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조금도 주눅 들지 않은 채 내 품에서 일어나 다시 건물 입구를 향해 달려 나갔다.
타다다다닥!
방금 전, 내가 여자 같다며 칭찬했던 발소리와 완전히 흡사한 가벼운 발소리를 내며 땅을 박차고 나간 여학생은 그렇게 여섯 번째 걸음을 내딛다가.
콰당탕!
줄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픽 쓰러졌다.
그 직후, 머리에서 피가 퐁퐁퐁 솟아나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119! 구급차!!!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기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