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가 깡패임-32화 (33/53)

제 32화

깡패가 학교폭력에 대처하는 방법 (3)

1.

“······하아.”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예전에 깡패생활을 했을 때는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같은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었다.

당황할만한 일이라고는 그나마 아가씨가 행패를 부릴 때 정도?

그런 걸 제외하면 무슨 황당한 일이 일어나든 어차피 때려 부숴야할 상대가 때려 부술 짓을 했다고 여기고 뭐든 때려 부수며 살아왔다.

그래서 생각 없이 살아도 괜찮았는데, 7년 만에 다시 선 세상은 그런 안일한 마인드로는 살아갈 수 없는 곳이었다.

하늘에서 사람이 떨어질 줄 누가 알았겠냐고 진짜.

게다가 기껏 받아내서 살렸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 자기가 떨어진 건물 계단으로 향하다 넘어지는, 그래놓고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기절해버리는 건 정말 호러였다.

“······그나저나 싸우던 게 깡패가 아니라 학생이었다고?”

나는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여학생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학생은 교복을 입고 있었고, 그에 맞게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액면가만 봤을 때는 교복코스프레를 한 여깡패는 아니란 소린데. 그러면 진짜로 연장을 든 깡패새끼들이랑 맞짱을 뜬 거야? 그러다가 머리를 한 대 맞고 창문 밖으로 떨어진 거고?

구급차를 타고 오면서 응급구조대원에게 머리에 열상이 있다는 것과 뇌진탕 때문에 기절한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세게 부딪힌 것 같다나 뭐라나. 정확한 건 검진을 제대로 받아봐야 알겠지만 일단 겉보기로는 그리 큰 이상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고 했었다.

머리에서 피가 퐁퐁퐁 솟아났지만 뭐, 응급구조대원이 그랬다면 그런 거겠지. 머리에 난 열상도 스쳐서 난 것 같다고 하고. 응급실 도착하자마자 온 의사선생님도 똑같이 말했으니까 뭐.

무튼 그렇게 응급실에 도착한 나는 이 학생의 보호자가 올 때까지 임시보호자의 명목으로 대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근데 엄청 예쁘네. 얼굴도 몸매도.”

교복 명찰에 달린 이 학생의 이름은 하리라. 이름도 예뻤다. 굉장히 아이돌틱한 이름이었다.

리라가 본명이라니. 게다가 성이 하씨라니. 하리라.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이름이야.

이름도 예쁘고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비율도 다 좋았다. 게다가 그 예쁜 얼굴에 눈물점까지 있었다.

특히 곱슬기가 살짝 있어서 풍성해 보이는 검은색 긴 머리가 제일 좋아. 학생 특유의 청춘이 담겨져 있는 것 같잖아.

하리라 학생은 내가 오늘 하루 종일, 옥상까지 전전해가며 찾았음에도 찾지 못한 원석에 한없이 가까워 보였다.

일어나서 보인 모습이라곤 거친 언행과 함께 달려가다가 고꾸라진 게 전부고, 깡패들이랑 쌈박질을 벌였다는 점에서부터 아이돌과 한없이 먼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하리라 학생의 겉모습만큼은 내가 인정한 천재 중의 천재인 하안이보다도 더 아이돌 같았다.

물론 겉모습만 그렇다는 거지 사실 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일진양아치 여학생일 수도 있지만.

그건 깨어났을 때 확인해보면 되는 거고. 의사선생님도 별 이상은 없는 것 같다고 했고, 애초에 하리라 학생은 젊고 건강하니 곧 깨어날 것 같았다.

그러니 나는 하리라 학생이 깨어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일어나는 걸 보고 대화를 조금 나눈 다음에 명함을 줄지 말지 결정하면 되는 것이다.

“그나저나 진짜 예쁘긴 엄청 예쁘네. 하안이가 차가운 인상이라면 이 학생은······.”

“왜요, 청순해보여요?”

“그래, 청순하고 발랄한 학생처럼 예쁘······ 흐엑.”

지금껏 굳게 닫혀있던 하리라 학생의 입이 열리고 말투는 거칠지만 고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갑작스런 목소리에 놀라 의자에 엉덩방아를 찧는 것과 동시에 하리라 학생의 눈이 뜨였다.

“그나저나, 자고 있던 사람을 그렇게 빤히 보면 좀 그런데. 청순하게 예쁜 건 맞지만.”

여우를 연상케 하는 새초롬한 눈매는 눈가에 찍혀있던 눈물점과 어마어마한 시너지를 내어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아이돌의 상.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음에도 그 미모는 전혀 퇴색되지 않고 오히려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싸움꾼이 사실 여학생이고, 아이돌 뺨을 좌우로 세 번씩을 후려칠 미모를 갖고 있다니. 뭐지? 만화인가?

첫 만남부터가 비현실적이었지만, 하리라 학생의 얼굴은 우리의 만남보다도 더욱 비현실적이었다.

비현실과 비현실이 합쳐진 존재가 바로 앞에서 날 바라보고 있으니 대략 정신이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멍해졌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기엔 나를 바라보는 하리라 학생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아서, 나는 일단 고개를 숙이고 사과부터 했다.

“죄송합니다. 굉장히 예쁘셔서 저도 모르게 봐버렸네요.”

“뭐, 봐줄게요.”

봐준다니 다행이었다.

“감사합니다.”

나는 곧바로 고개를 숙이며 이번엔 감사의 인사를 전했고, 하리라 학생은 그런 나를 보다가 픽, 실소를 내뱉으며 말을 더했다.

“제가 원래 성질이 더러워서 원래는 자고 있는데 보고 그러는 거 안 봐주는데. 오빠가 저 구해주셨으니까 봐주는 거예요. 다 기억나거든요.”

“오빠······?”

하리라 학생의 ‘오빠’라는 호칭에 순간 뒷목이 서늘해졌다.

무의식적인 공포가 얼굴에 드러났는지 나를 보던 하리라 학생이 고개를 살짝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네, 오빠처럼 생기셔서 오빠라고 했는데. 아닌가요? 30대예요?”

“아, 아뇨, 아직 20대입니다.”

“그럼 오빠 맞잖아요. 내가 열아홉 살이니까. 그런데 오빠는 오빠 소리 못 들어보고 사셨어요? 왜 오빠 소리에 그렇게 놀라요?”

“그건······.”

‘오빠, 다른 여자한테 오빠라고 불리기만 해봐. 가만 안 둘 거니까.’

‘뭐? 그 사람이 그렇게 부르는데 그게 왜 오빠 탓이냐고? 하.’

‘왜 내가 아닌 다른 여자한테 오빠라고 불릴 짓을 해? 그리고 그냥 알겠다고 말하면 되는데. 왜 억울하다는 듯이 말해? 오빠 설마······ 내가 아닌 다른 여자한테 오빠 소리 들어?’

“으악!”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바늘로 뇌를 찌르는 듯한 고통이 엄습해왔다.

아가씨가 아닌 여자에게서 듣는 오빠라는 호칭은 그저 듣는 것만으로도 과거의 공포를 떠올리게 하는 끔찍한 저주의 단어였다.

“오, 오빠? 뭐예요? 어디 아파요? 아까 저 받아줬을 때 머리라도 다쳤어요?”

“아, 괜찮아요. 그냥 안 좋은 기억이 떠올라서.”

“대체 얼마나 안 좋은 기억이면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머리를 잡고 아파하는 거야? 막상 머리 깨진 나도 그렇게 아픈 적은 없······ 아얏!”

말하던 도중 머리를 다친 통증이 찾아왔는지 하리라 학생은 거즈가 붙여진 부위를 잡으며 얼굴을 찌푸렸다.

치료는 끝났고 꿰매야할 정도로 찢어진 것도 아니라 거즈만 붙이고 끝이 났지만, 그래도 피가 날 정도로 찢어진 건 맞았으니 아플 만도 했다.

얼마나 아픈지 허리까지 숙인 채 머리를 부여잡고 있길래 괜찮냐 물어보려던 그때, 하리라 학생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으······. 으으······!”

“괘, 괜찮아요? 의사선생님 부를까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목이 빨개질 정도로 전신을 긴장시키며 부들부들 떨고 있는 하리라 학생은 누가 보더라도 심상치 않아보였다.

그래, 역시 의사도 응급구조대원도 괜찮다고는 했지만 머리에서 피가 퐁퐁퐁 솟아났는데 괜찮을 리가 없었다.

“어어?! 피, 피 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거즈를 붙여 놓은 부분이 발갛게 물들기 시작하니, 누가 보더라도 위험한 상황임이 틀림없었다.

갑작스런 긴급 상황 발생에 간호사를 부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등 뒤 하리라 학생에게서 거칠고 뜨겁게 끓어오르는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씨이······! 그 새끼들 가만 안 둬!”

“네?”

“감히 뒤통수를 때려서 머리를 아프게 만들어? 진짜 비겁하고 더러운 새끼들!”

다시 몸을 돌려 하리라 학생을 바라보니 굉장히 화가 난 듯이 부들부들 떨며 이를 빠득빠득 갈고 있었다.

설마 얼굴이 빨개진 것도, 상처의 깊이에 비해 피가 그렇게 퐁퐁퐁 분수처럼 났던 것도, 지금 저렇게 거즈를 빨간 피로 적시고 있는 것도 그냥 다혈질이라 그런 건가?

대체 얼마나 다혈질이어야 그 작은 상처에서 피가 그렇게 날 수 있는 건지. 정말 보면 볼수록 비현실적인 하리라 학생이었다.

그런 하리라 학생의 모습에 순간 머리가 멍해져 그냥 보고 있었더니,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한 하리라 학생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내가 다 박살내버릴 거야!”

그리고는 굳건한 의지가 담긴 목소리와 함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하리라 학생은 아까 전 계단으로 달려 나갈 때처럼 신발을 구겨 신고 어디 있는지도 모를 양아치 새끼들에게 향했다.

“거기 딱 기다리고 있어 내가 진짜 다······ 으흐으.”

그러다가 현기증이라도 왔는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다리에 힘이 풀려 아까 쓰러졌을 때와 똑같이 줄 끊어진 인형처럼 기울어졌다.

이대로 가다간 아까처럼 앞으로 고꾸라져 다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 강진혁에게 똑같은 수는 통하지 않는 법.

이렇게 되리란 건 이미 전부 예상해두고 있었기에 나는 재빨리 다가가 하리라 학생이 넘어지지 않도록 그녀를 잡았다.

풀썩.

“······으아?”

쓰러지는 사람의 팔을 잡아 일으키면 어깨가 빠질 수도 있기에 쓰러지는 경로로 빠르게 다가가 몸으로 받아내는, 가장 안전한 방식을 택했다.

그 탓에 하리라 학생의 얼굴이 내 가슴팍에 박혔지만 바닥에 박히는 것보다야 낫지.

현기증이 좀 가셨는지 내 가슴팍에 손을 짚고 고개를 드는 하리라 학생을 마주보며,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아요?”

그러자 어째서인지 그렇게 당당하고 여유롭던 하리라 학생의 얼굴이 붉어지고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뭔가 이상해진 하리라 학생은 첫인상과 지금까지 보아온 하리라 학생과는 어울리지 않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아, 어······ 그, 네에. 괘, 괜찮아······.”

“너 이 새끼 뭐하는 새끼야!”

하지만 하리라 학생의 작고 떨리는 목소리는 등 뒤에서 들려온 하리라 학생과 비슷한 말투의 우렁찬 목소리에 묻혀 끝을 맺지 못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다음화는 약 2시간 내외 안에 올라옵니다! 아마도...! 잘 써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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