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화
깡패가 학교폭력에 대처하는 방법 (4)
1.
오늘따라 고개 돌릴 일이 왜 이렇게 많지. 원래 고개 돌릴 일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애초에 고개가 돌아갈 일 자체를 만들지 않았던 삶을 살아서인지 등 뒤에서 계속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 익숙지 않았다.
그래도 이제부터는 익숙지 않아도 자주 뒤를 돌아봐야겠지. 아예 싹조차 남지 않게 완전히 밟아버렸던 예전처럼 살 수는 없을 테니까.
등 뒤에서 전해지는 명확한 적의와 분노에 나는 하리라 학생이 넘어지지 않게 똑바로 세워준 후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이 새끼가 감히 우리 딸한테 손을 대! 죽음으로 속죄해라!”
“엥.”
딸? 손? 죽음?
세 가지 단어만으로도 눈앞에서 주먹을 치켜든 채 내게 달려들고 있는 이 중년 남성이 하리라 학생의 아버지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노란색 깔깔이를 걸치고 늘어난 추리닝을 입고 슬리퍼를 직직 끌며 내게 달려오는, 수염도 제때 깎지 않아 추레한 모습의 아버님이었지만 내게 향하는 뜨거운 눈빛만큼은 추레하지 않았다.
하긴, 형님도 아가씨가 다른 제비 같은 놈한테 꾀이면 무슨 수를 써서든 그 제비놈의 생식활동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겠다고 나한테 그랬었지.
딸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란 굳건한 이성(理性, 형님 이름 아님)도 단숨에 불사를 정도로 뜨겁고 거친 법이다.
그러니 의도하진 않았고 어쩔 수 없더라도 하리라 학생이 내 품에 얼굴을 기대고 있는 장면은 그녀의 아버지가 보기엔 머리끝까지 화가 날 상황이 맞았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이런 식으로 주먹을 들고 달려드는 건 옳지 못하기에, 나는 일단 주먹을 막기 위해 손을 들었다.
“저기 죄송한데 이야기 좀 듣······.”
크게 휘둘러오는 주먹의 궤도를 예상하고 손바닥을 들어 궤도에 갖다대며 그만 하라고 정중히 요청하려했지만 하리라 학생 아버님의 고성이 내 말을 끊었다.
“닥쳐!”
거친 목소리가 들려온 직후, 예상한 궤도대로 하리라 학생 아버님의 주먹이 휘둘러졌다.
그나저나 주먹을 되게 크게 휘두르네. 이렇게 때리면 위력이야 강해지겠지만 너무 막기가 쉬운 게 아닐······.
훅!
필요 이상으로 크게 휘둘러오는 주먹을 태연하게 여기며 멍하니 보고 있던 와중 갑자기. 하리라 학생 아버님의 상체가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주먹을 허공에 휘두르며 상체를 아래로 옆으로 숙이며 몸을 크게 회전시켰다.
동시에, 심상치 않게 빠른 회전력이 모두 담긴 발이 채찍처럼 내 머리를 향해 후려져왔다.
쒜에에엑!
“어?”
슬리퍼 신고 뒤후리기? 이거 실화냐?
하리라 학생 아버님의 노림수가 주먹이 아닌 발차기라는 걸 인지한 순간 1초가 수십 조각으로 쪼개지고, 체감시간이 수십 배로 느리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일신에 해를 끼칠 법한 상황이 초래했을 때 발현되는 정신과 신체의 각성.
사시미와 쇠파이프를 든 깡패들이 달려들거나 형님의 주먹이 날아들거나 하늘에서 하리라 학생이 떨어지는, 그런 위기상황이 아니고서야 체감되는 시간이 느려지는 법은 없는데. 지금 나는 느려진 시간을 체감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이 슬리퍼를 신고 후려쳐지는 뒤후리기가 위협적이라는 거잖아. 뭐지? 무슨 은둔고수인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느려진 시간 속에서도 정확하고 빠르게 내 머리를 향해 쇄도하는 슬리퍼 바닥을 바라보았다.
유연성도 그렇고 빠르기도 그렇고. 발차기에 일가견이 있는 건 확실해.
발을 잘 쓰는 싸움꾼들의 발을 어중간하게 막거나 피하면 발과 회전이 멈추지 않는 걸 체험해볼 수 있다.
지금 내게 휘둘러지는 이 뒤후리기만 봐도 어중간하게 막아봤자 회전이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발이 날아들 게 눈에 훤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해야 하는 건 막는 것도 피하는 것도 아니야.
처음 보는 아저씨에게 이런 짓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하리라 학생은 아이돌 연습생 후보로 점찍어둔 후보기도 했고 응급실에서 소동을 일으키는 건 정말 큰 민폐였기에 어쩔 수 없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뱉고 머리통을 잘라버릴 기세로 날아드는 발차기, 정확히는 그 발을 휘두르고 있는 하리라 학생 아버님을 향해 한 발자국 다가가.
텁.
하리라 학생 아버님의 높이 들려진 안쪽 허벅지와 상체에 팔을 둘러 그대로 끌어안았다.
발 잘 쓰는 싸움꾼들은 발을 크게 휘두르는 도중에 다가가서 끌어안으면 그 움직임을 멈출 수 있다.
물론 방법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과 그걸 실현하는 건 그 난이도가 하늘과 땅 차이긴 하지만 아무튼 나는 성공했다.
“뭣?!”
“아, 아빠의 발이······ 멈췄어?”
발을 휘두른 하리라 학생 아버님도 그걸 보고 있던 하리라 학생도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그런 리액션에 신경을 쓸 새는 없었다.
아버님이 지른 소리를 듣고 저쪽에서 간호사님과 의사선생님이 뛰어오고 있었으니까.
응급실에서 난동을 부리는 건 경찰을 부를 일이라는 걸 알기에, 빨리 사태를 수습하고 나가야했다.
다행히도 당황한 탓에 조용해진 하리라 학생 아버님께 나는 다시 정중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하리라 학생 아버님. 하리라 학생 일단 괜찮다고 검사 결과 나왔으니까 퇴원수속 마치시고 나가시죠. 여기서 이러시면 안 돼요.”
“누가 니 아버님이야! 너 같은 놈한테 아버님 소리 들을 생각 없어!”
아니 그게 대체 무슨 개······ 아니 무슨 헛소리야.
어이가 없어 말없이 바라봤지만, 하리라 학생 아버님은 내 아버님 발언에 진심으로 개빡쳤다는 듯 씩씩거리며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몸을 꽉 붙잡고 있어서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당장이라도 방금 전 뒤후리기를 시전할 눈빛이 얼굴을 뚫어버릴 것처럼 전해져왔다.
“아빠 제발 좀 조용히 해! 오빠, 죄송한데 아빠 들고 빨리 나가주세요. 퇴원수속은 그냥 제가 할게요.”
아빠를····· 들고 나가?
“뭐, 뭐라고? 리라야 그게 무슨 소리냐! 오빠라니! 이놈 딱 봐도 그냥 아저씨구만 오빠라니! 나는 인정 못한다!”
아니 거기에 화를 낸다고?
아빠나 딸이나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리라 학생 아버님이 인정을 하든 말든, 하리라 학생이 하는 말은 나도 바라던 말이었기에 나는 그녀의 부탁을 따라 하리라 학생 아버님의 몸을 번쩍 들었다.
“놔! 놔라 임마!”
“아참, 하리라 학생 퇴원수속 하려면 이거 있어야할 거예요.”
그리고 몸부림을 칠 겸 주먹도 휘두르는 아버님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하며, 아버님의 깔깔이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하리라 학생에게 건넸다.
“와, 그러면서 지갑까지 꺼내 주시네. 무튼 감사합니다. 아빠 좀 부탁할게요!”
지갑을 건네받은 하리라 학생은 접수처로 향했고, 나는 여전히 날뛰는 하리라 학생 아버님을 품에 든 채 신속하게 응급실 밖으로 나갔다.
‘피해자도 없고, 망가진 물건도 없으니까 별 일은 없겠지? 경찰이 오진 않겠지?’하고 생각하면서.
※※※
“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그 오빠.”
퇴원수속을 마친 하리라는 출구를 향해 걸어 나가며 머릿속에 강진혁의 모습을 그렸다.
“그 양아치새끼들한테 창문 밖으로 밀쳐졌을 때, 진짜 죽겠구나 싶었는데. 그 오빠가 구해줬었어.”
머리부터 떨어졌고, 눈을 질끈 감고 있었기에 어떻게 구해진 건지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떨어지던 도중 탁. 하고 가볍게 받아진 감촉은 기억에 남아있었다.
기억에 남은 장면이라곤 어떤 방법을 쓴 건지 3층에서 떨어지던 자신을 받아낸 뒤 바닥에 가볍게 착지하고 난 강진혁의 여유로운 얼굴뿐.
그 얼굴이 어떻게든 기억에 남았기에 응급실에서 눈을 떴을 때 강진혁을 보고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너무 화가 난 탓에 고맙다는 인사도 안 하고 계단으로 올라가려다 뇌진탕 때문에 자빠졌지만.
“게다가 아빠를 그렇게 쉽게 제압하고. 주먹까지 다 피해버렸지. 그게 말이 돼? 아빠가 진짜 다른 건 다 최악이라도 싸움만큼은 엄청 잘하는데?”
아빠가 그리 쉽게 잡힌다는 건 하리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리라의 기억 속 그녀의 아버지는 한 번 회전을 시작하면 몇 분을 멈추지 않고 돌며 발차기를 이어나가는 태권도의 괴물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그런 괴물을 가볍게 제압한 강진혁이 하리라에겐 더욱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으음, 뭐. 나가서 물어보면 되겠지. 뭐하는 사람인지.”
어느새 출구에 도착한 하리라는 이 밖에 강진혁이 있음을 깨닫고 어째서인지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으, 으으?”
동시에 순간이지만 강진혁의 탄탄한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던 것을 떠올렸고, 얼굴을 달구는 열은 그 열기를 더해나갔다.
“아으으? 왜, 왜 이래 갑자기? 넘어질 뻔한 거 오빠가 받아준 거고 그뿐인데 왜 얼굴이 뜨거워지고 난리래 진짜? 머리 맞은 것 때문인가? 아으 짜증나!”
사실 짜증 같은 건 나지 않았고 그냥 열이 올라 창피했을 뿐이었지만 지금의 하리라는 그 두 가지 감정을 구분하지 못했다.
공주님 안 듯이 자신을 받아냈던 그 감촉과 품에 얼굴을 묻었다가 그대로 고개를 들어 올려다봤던 강진혁의 얼굴을 떠올리며 하리라는 응급실 바깥으로 나갔다.
“아으으. 아으으으! 왜 이러지? 진짜 뭐 잘못 맞은 건가? 그래. 뇌진탕 후유증일 거야. 그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얼굴이 뜨거워지고 난리가 날 리는 없어. 그래, 그게 맞······.”
그렇게 쿵쾅대는 심장을 애써 무시하며 나간 하리라가 마주한 건, 중얼거림을 중간에 끊어내고 얼굴의 열기고 심장의 두근거림이고 전부 다 진정시킬 정도로 어이가 없는 광경.
“너 새끼야 이거 안 내려놔?! 다시 붙어! 방심한 거 한 번 잡았다고 기고만장해져가지고!”
“저기 하리라 학생 아버님. 저는 진짜 아버님이랑 뭐 해볼 생각 없다니까요. 대화라는 아주 좋은 수단이 있는데 왜 그렇게 폭력적이신······.”
“아버님이라 부르지 말라고!!!”
자신의 아버지가 강진혁에게 아기처럼 안긴 채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를 지르고 있는 장면이었다.
“이참에 걍 손절할까.”
진정으로 진심어린 중얼거림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놀라운 사실) 아가씨를 포함한 히로인보다 아저씨 캐릭터가 더 많이 나왔다. 에에에엑?!?!?!?
그나저나 왜 연참만 하면 새벽 5시가 되는 걸까요. 바이바이 내 예쁜 생활패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