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가 깡패임-34화 (35/53)

제 34화

깡패가 학교폭력에 대처하는 방법 (5)

1.

난동을 부리던 하리라 학생 아버님은 하리라 학생이 와주는 것으로 간신히 진정되었다.

그 후, 우린 사태도 수습할 겸 근처 카페에 왔고 하리라 학생은 하리라 학생 아버님께 내가 그녀를 구해준 사실과 응급실에 오게 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그래서 이놈이 리라 너를 구해줬다고?”

“그렇다니까 몇 번을 말해! 밀쳐······ 아니 발을 헛디뎠다가 창문 밖으로 떨어지는 걸 오빠가 받아줬다니까?”

“흐음······ 어이, 진짜냐?”

“네? 아, 뭐. 네. 그랬습니다.”

하리라 학생의 말엔 거짓이 섞여있었지만, 굳이 숨긴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3층에서 떨어지는 우리 리라를 받아줬다고. 우리 리라가 몸에 근육이 많아서 보기엔 얇상해 보여도 꽤 무거운데. 그걸 받아?”

“아니 뭔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자빠졌어!”

“쯧.”

하리라 학생 아버님은 하리라 학생이 얼마나 과격하게 반응하든 신경 쓰지 않고, 여전히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로 혀를 찰 뿐이었다.

왜지. 3층에서 떨어지는 하리라 학생을 내가 받아냈다는 걸 못 믿는 걸까. 하긴 떨어지려던 사람을 붙잡은 것도 아니고 떨어지던 사람을 상처 하나 없이 받아내는 건 믿기 힘든 일이니까.

하리라 학생과 내가 입을 맞춰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하리라 학생 아버님이 이렇게 언짢아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

하지만 하리라 학생이 한 말은 발을 헛디뎠다는 부분만 빼면 진실이었고, 나는 그녀와 입을 맞출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아니기에 오해를 풀기 위해 입을 열었다.

“하리라 학생 아버님, 하리라 학생이 방금 한 말은 전부 사실······.”

“아버님이라 부르지 말라고!”

그런데 말을 끊겨버렸다.

아니 그러면 뭐라고 불러. 연습생 후보 아버지를 아저씨라 부르는 건 너무 예의가 없잖아.

다행히도 이 곤란함은 곤란함의 원인인 하리라 학생 아버님이 직접 해소시켜줬다.

“으, 너 같은 놈한테 내 이름을 알려주는 건 싫지만. 아버님이라 불리는 건 더더욱 싫으니까 특별히 알려주마. 내 이름은 하혁수다. 앞으로 나를 부를 일이 있으면 하혁수 씨라고 불러.”

“아, 예. 하혁수 씨. 저는 강진혁이라고 합니다.”

이름을 들었으니 내 이름을 밝히는 게 예의겠지. 그리고 너 같은 놈, 네놈, 이놈 같은 호칭으로 불리는 건 아무래도 기분이 좋진 않으니까.

“그리고 리라가 한 말을 믿지 않는 건 아니야. 네놈의 괴상한 신체능력은 내가 직접 경험해봤으니 말이다. 3층에서 떨어지는 우리 딸 정도는 가볍게······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받아낼 수 있겠지.”

이름을 알려줬는데도 놈이라는 호칭은 변함이 없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하혁수 씨의 끝을 알 수 없는 적의를 반쯤 체념하고 고개를 끄덕이려했다.

“아니 나 완전 가볍게 받아줬거든?! 하나도 무리 안 했거든?! 왜 자꾸 무겁다고 말하는데!”

하지만 옆에서 들려온 하리라 학생의 날 것 같은 날선 반응에 위아래로 움직이려던 고개를 가까스로 멈췄다.

끄덕였으면 조질 뻔했어.

나는 잔뜩 성이 난 하리라 학생의 옆에 서서 그녀의 편을 들었다.

“마, 맞아요. 하리라 학생 안 무거웠어요 하나도.”

“거봐! 오빠도 안 무거웠다고 하잖아! 아빠는 뭘 안다고 계속 나한테 그러는데!”

사실 조금 무겁긴 했다.

하리라 학생의 체중이 어떻든 공중에서 떨어지는 사람을 받아내는데 무거울 수밖에 없지. 내가 아니었으면 받아낸 순간 팔이 부러졌을 걸.

하지만 굳이 그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낼 이유도 없고, 여기선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나는 입을 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여전히 심통이 나있던 하혁수 씨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뭐, 그런 건 별 상관이 없어. 어이 그, 강진혁이라고 했지? 너, 일단 우리 리라를 구해준 건 고맙게 여기마.”

“아, 괜찮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니까요.”

“그런데 우리 리라랑 엮이는 건 거기까지야.”

“······예?”

지금까지 봤던 다혈질적인 모습은 온데간데없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는 하혁수 씨의 진지한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그 단호한 목소리엔 아버지의 본분이 담겨있었고, 자식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아니 아빠! 그래도 나 구해준 사람인데 그러면 안 되지!”

“너는 조용히 해! 다 그럴만해서 그러는 거니까.”

“그게 무슨······.”

너무나 단호한 나머지 반항기를 있는 그대로 내보였던 하리라 학생마저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말을 잇지 못하는 건 하리라 학생 뿐, 나는 하리라 학생이라는 원석을 발견한 매니저였기에 하혁수 씨의 단호한 결의 앞에서도 입을 열어야만했다.

“하혁수 씨, 정말 죄송합니다만 제가 왜 하리라 학생과 엮여선 안 되는지 설명을 들어도 되겠습니까?”

말하고 나니 뭔가 내가 하리라 학생에게 딴 마음을 품고 있어서 하혁수 씨의 말에 반발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다행히 아무도 이 점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대신 내 질문을 듣고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은 듯한 하혁수 씨를 볼 수는 있었다.

“설명을 들어도 되겠냐고? 그래, 설명을 들으면 알아서 떨어지겠지. 해주마 그 설명.”

대체 무슨 이유가 있어서 초면인 나를 이렇게까지 싫어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설명이란 걸 들어도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그래서 설명을 듣고 그게 되도 않는 이유라면 엮이지 말라는 말에 불응하겠다 생각하며, 나는 하혁수 씨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건 네가 싸움꾼이라서다. 그것도 무지막지하게 싸움을 잘 하는 싸움꾼이라서.”

하지만 하혁수 씨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외로 납득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내 발을 그렇게 쉽게 멈출 수 있는 실력을 가진 놈. 그렇다고 격투기를 배운 것 같지는 않은 놈. 이 대낮에, 검은 정장 하나 걸치고 돌아다니다가 초면인 딸을 구하고 직장에도 돌아가지 않고 몇 시간이나 그 곁을 지킨 놈. 그게 바로 내가 본 너라는 놈이야.”

“······.”

하혁수 씨가 나열한 내 정보는 듣는 것만으로도 수상하고 불길하기 짝이 없는 것들뿐이었다.

장본인인 나조차도 너무 수상해서 말문이 턱하고 막혀버릴 정도로.

싸움 잘하고, 그런데 격투기를 배운 움직임은 아니고, 검은 정장을 입고 있고, 정장 차림으로 대낮에 거리를 돌아다니다 구한 여자에게서 떠나지 않고 몇 시간이나 그 곁을 지킬 수 있는 사람.

“억측일수도 있겠지만, 내 감은 꽤나 정확한 편이라서 그냥 말하마. 너 깡패지?”

그래, 하혁수 씨의 말대로 그 모든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직업 중 가장 그럴듯한 것이 바로 깡패였다.

싸움을 잘하는 건 어렸을 적부터 단련을 해왔기 때문이고, 정장을 입고 거리를 돌아다닌 건 매니저로서 길거리캐스팅을 하기 위해서였지만 그럼에도 나는 하혁수 씨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왜냐면 나는 무슨 이유에서든 결국 깡패가 맞았으니까.

하혁수 씨의 말에 무슨 반박도 할 수 없으니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듣는 것뿐.

“그것도 그냥 깡패가 아니고. 싸움을 무진장 잘하는 깡패야. 게다가 젊어. 젊은데 싸움을 더럽게 잘 하는 깡패······ 절대로 연관되어선 안 되는 족속이지.”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싸움을 엄청 잘하는 젊은 깡패란 엄청나게 잘 드는 회칼과도 같은 법.

사람을 쑤시기 위해 사용되는 깡패들의 회칼과 같은 취급을 받는다는 것만 봐도 하혁수 씨의 연관되지 말라는 말에 타당성을 부여했다.

“그러니 나는 내 딸 리라가 너 같은 깡패와 연관되는 걸 볼 수 없다는 거다. 딸 목숨을 구해준 건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전하겠지만. 여기까지. 더 이상 내 딸과 엮이지 마.”

그 말을 끝으로 하혁수 씨는 옆에 앉아있던 하리라 학생의 손목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문한 음료를 반도 마시지 않고 나가는 그 모습에서 더 이상 나와 엮이기 싫다는 의지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말문이 막히고 하혁수 씨의 입장이 이해가 된다고 하더라도 저 두 사람을 그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저런 아빠 밑에서 자란 딸이 양아치일 리는 없어. 슥 봐도 약한 애들 괴롭힐 것 같지도 않고.

나름 뒷 세계와 교도소에서 온갖 나쁜 놈들을 봐왔던 나에겐 사람을 보기만 해도 그 사람이 구제할 길 없는 양아치새끼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눈이 있었다.

형님은 뭔 사이비 같은 소리를 하냐 했지만 지금까지 이 눈으로 나쁜 놈들을 놓친 적은 없기에 내 눈에는 자부심도 갖고 있고.

그런 내 눈에 비친 하리라 학생은 하혁수 씨를 닮은 건지 조금 난폭하긴 해보이지만 적어도 나쁜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다.

정확한 건 제대로 확인해봐야 알겠지만, 지금 놓치면 영원히 놓쳐. 그러니 일단 잡고 봐야해.

나는 깡패지만 동시에 매니저다. 본질은 사람 패고 다니는 깡패더라도 하는 일은 매니저일이란 말이지.

그렇기에 내겐 떠나가는 두 사람을 붙잡을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잠시만요! 하혁수 씨께서 조금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제가 마냥 깡패새끼는 아니거든요!”

나는 빠르게 달려가 하혁수 씨의 어깨를 붙든 뒤, 정장 앞주머니에서 만들어둔 내 명함을 꺼냈다.

“저 사실 매니저입니다! 바른길엔터테인먼트 소속 매니저 강진혁이에요! 길거리캐스팅 중이었고요! 하리라 학생이 딱 제가 찾던 원석이라서 깨어날 때까지 옆에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앞뒤 재지 않고 그냥 노빠꾸로 들이받았다.

“하리라 학생, 제 아이돌이 되어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글 쓰다가 너무 힘들어서 잠깐 쉬어야지~ 하고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깜빡 졸았습니다. 그러고 깨니까 4시... 허겁지겁 써서 올립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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