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가 깡패임-35화 (36/53)

제 35화

깡패가 학교폭력에 대처하는 방법 (6)

1.

하리라 학생을 구하고 하혁수 씨에게 매니저라 자기소개를 한 오후, 나는 형님과 아까 가려고 했던 할매국밥집에 와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어떻게 되긴요. 바로 까였죠. 까였으니까 형님이랑 이러고 있겠지.”

다급하게 매니저라고 명함을 건네준 것까진 괜찮다 생각했는데, 이미 나를 깡패라 확신해버린 하혁수 씨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하긴, 깡패가 매니저라면 의심할만하지. 누가 봐도 깡패가 운영하는 기획사라고 생각할 테니까.”

형님의 말대로 ‘이 미친 깡패새끼! 기획사 테크트리까지 탔어? 이거 그냥 깡패가 아니라 아주 제대로 된 깡패였잖아! 어딜 우리 딸을 기획사의 노예로 부려먹으려고! 안 돼 이 새끼야!’라는 말까지 들으며 더 반감을 사버렸지.

하지만 하혁수 씨의 입장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라 화도 나지 않았다.

깡패들이 기획사를 차리는 건 내가 교도소에 들어가기 전에도 흔한 일이 맞았으니까.

“아니라고 진짜 멀쩡한 기획사라고 말하려고 해도 연예인이라고는 최철훈 씨밖에 없는 기획사니까. 뭐, 할 말이 없죠.”

“음, 맞지 맞지. 최철훈이 그놈은 검색해도 안 나오는 연예인 언저리니까. 야, 뭐 그런 기획사가 다 있냐?”

“형님이 만든 기획사잖아요!”

“응~ 사장은 정바로야~ 돈은 별이가 대줬고~ 난 그 사이에서 중개밖에 안 했어~”

형님은 대체 어디서 배운 건지 모를, 애들이나 쓸법한 엄청 열이 받는 말투로 나를 양껏 약 올렸다.

하지만 약이 오르는 건 말투 때문이고 내용만 들어보면 틀린 말은 없기에 거기다 대고 뭐라 할 말은 없었다.

그래도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어서 형님의 흑역사 제 158번 ‘형님이 형수님한테 프로포즈한 썰’을 입에 담으려던 그때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이 진동했다.

우우웅-

“응? 문자가 왔네.”

나한테 연락할 사람이라고 해봐야 교도소 김 부장이나 하안이, 그리고 형님뿐인데 김 부장과 하안이는 둘 다 바쁠 테고 형님은 눈앞에 있었다.

그럼 남은 건 광고성 문자 같은 것밖에 없는데.

“순대국밥 특 둘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빠른 번호 차단을 위해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드는 타이밍에 맞춰 시켜둔 국밥이 나왔다.

“캬. 보기만 해도 속이 든든해지는 게 역시 점심엔 국밥이 짜세라니까!”

아니 형님은 국밥 안 질리나? 나 출소한 날부터 세도 벌써 며칠째 점심으로 국밥을 먹는 거지?

7년 전과 비교해 봐도 더하면 더했지 덜해지지는 않은 형님의 국밥사랑에 혀를 내두르며, 나는 핸드폰을 마저 확인했다.

“엇.”

“조금 늦은 점심밥이긴 하지만, 사실 점심은 세 시간 전에 먹긴 했지만 뭐! 먹는 게 남는 거니까. 진혁아 먹자!”

형님은 싱글벙글 웃으며 숟가락을 들었고, 나는 의자를 뒤로 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르륵.

“뭐야. 왜 일어나. 화장실?”

국밥을 한술 뜨고 입에 넣기 직전의 자세로 굳은 형님이 불안한 눈빛을 하며 질문했다.

이제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은 눈이었으나, 아마 믿고 싶지 않아 이렇게 물어서 다시 한 번 확인해보는 거겠지.

그 눈에 순간 죄책감이 들었지만, 방금 전 형님의 엄청 열 받는 말투가 떠올라 가벼운 마음으로 자리를 뜰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숟가락을 입 앞에 가져다둔 채로 굳어있는 형님에게 문자내역을 보여주며 싱글벙글 미소를 지었다.

“아뇨. 너무나 소중한 아이돌 연습생 후보한테 문자가 와버렸네요.”

“뭐?! 야, 그러면 니 국밥은!”

“네? 그거야 뭐······ 형님 드세요?”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뒤에서 들려오는 인간의 탈을 쓴 곰의 울음소리를 무시한 채 국밥집을 나섰다.

밥을 먹지 않았음에도 어쩐지 가슴이 든든해지는 게, 하리라 학생을 만나러 가기 때문인지 형님에게 한 방 먹여줄 수 있어서인지 아무튼 둘 중 하나 덕분인 것 같았다.

아마도 전자겠지.

※※※

하혁수 씨 몰래 하리라 학생한테 명함을 전해주길 잘했어. 아이돌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눈빛이 변하길래 혹시? 했는데 역시나.

하리라 학생에게 아이돌이 되어주지 않겠냐고 물었을 때, 옆에 하혁수 씨가 있어 대답을 듣진 못했지만 하리라 학생의 빛나는 눈동자는 확인할 수 있었다.

그건 분명 꿈을 품고 나아가는 사람만이 드러낼 수 있는 눈동자였다.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때의 아가씨가 그런 눈동자를 했었지. 나는 그런 아가씨의 곁에 항상 있었으니까 알 수 있어.

지금 티비에서 나오는 아가씨에게선 티비라는 매체를 통해 봐서 그런지 그런 눈동자가 보이지 않지만, 데뷔 전 기타 하나 메고 버스킹을 할 때의 아가씨는 분명 하리라 학생과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하리라 학생에게서 그 눈빛을 보고 반쯤 확신한 채 찔러준 명함이 이렇게 인연을 이어주는 끈이 되어준 것이다.

“아, 왔다! 여기예요 빨리 오세요!”

저 멀리 공원 벤치에서 하리라 학생이 나를 향해 손을 크게 흔들어댔다.

나와 꽤 멀리 떨어져 있고 나에게 이르기까지 사람도 적지 않음에도 하리라 학생은 용케도 나를 발견한 것이다.

하리라 학생, 뭔가 피지컬이 되게 좋네. 밀려서 떨어지긴 했지만 혼자서 열댓명은 되는 양아치랑 맞짱도 뜨고. 눈도 좋고. 무대에 서면 관객석 맨 뒤까지 다 볼 수 있겠어.

맨 뒤에 있는 사람도 전부 보인다고 외치고 실제로 그것을 증명하는 아이돌은 팬들에겐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이나 다름이 없다.

하리라 학생이 내 담당 아이돌이 되어준다면 정말 든든한 멤버로 활약해주겠지.

나는 하리라 학생이 무대에 서서 팬들을 감동시키는 장면을 상상하며, 가볍게 뛰어 하리라 학생이 있는 벤치에 도달했다.

“추운데 어디 들어가 계시지. 왜 여기 나와 계세요 하리라 학생.”

그리고 공원 입구에 들어서서 하리라 학생의 얼굴을 확인했을 때부터 신경 쓰였던 빨개진 볼과 코를 보았다.

길게 잡아 문자가 왔을 때부터 여기에 있었다고 치면, 약 30분 정도.

오늘은 날이 좋아서 그리 춥진 않지만, 그럼에도 1월이고 한겨울이니만큼 30분이나 움직이지 않고 같은 장소에 있는 건 신체에 무리를 준다.

그 증거로 하리라 학생의 손끝, 코끝, 볼은 빨갛게 얼어있었다.

“그······ 어디든 들어가 있으려면 뭔가를 사야할 텐데. 제가 지금 지갑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어서요. 문자도 지나가던 사람한테 핸드폰 좀 빌려달라 부탁해서 보낸 거예요.”

“아.”

생각해보니 하리라 학생은 아까 열댓 명의 양아치를 상대로 싸우다가 핸드폰과 지갑을 잃어버렸었다.

그, 그래도 가난한 건 아니니까 탈룰라는 아니지. 그냥 지갑이랑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못 들어간 것뿐이고! 내가 하리라 학생한테 미안해할 이유는 없어!

“사실 지갑이 있다고 해도 어디 들어가진 못했을 테지만요······.”

“네, 네? 왜요?”

“아, 집이 가난해서요. 아빠가 벌이가 안 좋거든요. 엄마는 저 태어난 날에 돌아가셨고. 그래서 생활비만 겨우 들고 다니는데 어디 들어가서 시간 떼울 돈이 어딨어요.”

“······.”

하리라 학생의 농담기 섞인 넋두리에 죄책감이라는 이름의 무겁고 뾰족한 못이 심장을 사정없이 쑤셔왔다.

자신의 사정을 짧게 입에 담았지만 그 속에 담긴 하리라 학생이 가진 인생의 무게는 그녀의 여리진 않지만 작은 어깨에 짊어지기엔 너무나 무거운 것 같았다.

그리고 하리라 학생의 인생의 무게가 무거운 만큼 내 가슴에 박힌 죄책감이라는 이름의 못 또한 무거워져 허리가 절로 숙여졌다.

“하, 하리라 학생 제가 진짜 죄송합니다. 배려심이 부족했습니다.”

“네? 아니에······ 아니다. 죄송해야하는 건 맞죠. 오빠가 가난뱅이에 대한 배려심이 부족해서 가난뱅이인 제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졌으니까.”

으아아악. 세상에 맙소사. 그렇게까지 상처를 받았다고? 가난이 콤플렉스인 건가? 설마 혼자서 열댓 명이나 되는 양아치에게 맞선 것도 하리라 학생의 가난을 두고 조롱했기 때문인 거야? 가난은 죄가 아니고, 놀려도 되는 이유는 더더욱 아닌데. 그 나쁜 새끼들 길가다 마주치면 꼭 응징을······!

“그러니까 저는 오빠한테 배상을 받을 권리도 있는 거죠. 저는 피해자니까. 그렇죠?”

“네? 아, 네. 제가 뭘 해드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하리라 학생의 마음이 괜찮아지신다면 제가 할 수 있는 건 뭐든 하겠습니다.”

“그러면 부탁 두 개만 들어줘요.”

하리라 학생의 말을 듣다보니 어째서인지 아가씨가 억지로 꼬투리를 잡아서 자신을 피해자로, 그리고 나를 죄인으로 만든 다음 용서해주는 대가로 이런저런 부탁들을 시켰을 때가 떠올랐다.

아니, 아니야 강진혁! 하리라 학생이 하는 건 그런 억지가 아니야! 그냥 상황이 비슷해서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거라고.

하리라 학생한테 설마 그런 아가씨 같은 면모가 있을 리가 없기에, 나는 고개를 휘휘 젓고 하리라 학생의 부탁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하리라 학생은 싱긋 웃으며 들어줄 부탁을 입에 담았다.

“부탁 하나는 오빠가 나한테 말 놓기.”

말을 놔? 그게 부탁이야? 역시 하리라 학생은 아가씨랑은 달라! 아가씨였으면 형님 몰래 단둘이 호텔에 가자는 부탁을 했었을 테니까! 미성년자였던 주제에!

역시 하리라 학생은 아가씨와 같은 부류의 인간이 아니고 오히려 내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 쉬운 부탁을 입에 담는 선한 사람이라는 것에 감동했다.

그러는 동안 하리라 학생은 벤치 뒤에 있는 나무기둥 뒤에서 커다란 가방을 들쳐 메고 내게 돌아오며 말했다.

“그리고 나머지 부탁은······ 저 좀 재워주세요.”

?

“저 가출했어요.”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공모전 본선 진출!!!! 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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