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7화
깡패가 학교폭력에 대처하는 방법 (8)
1.
꺼내주면 안 되냐니. 오늘 처음 만난 사람한테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닐 텐데.
리라의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리라가 왜 그렇게 붙임성 있게 다가온 건지 알 수 있었다.
처음부터 리라는 내게 바라는 것이 있었던 것이다.
나라면 자신이 바라는 걸 이루어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초면인 내게 오빠라는 호칭까지 써가며 친밀감을 표현한 거겠지.
물론 리라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자신의 목숨을 구한 날 보고 본능적으로 도움을 받기 쉽도록 친밀감을 느낀 걸 수도 있다.
사실 리라가 내게 바라는 바가 있든 없든, 그 바라는 걸 이루기 위해 의도적으로 친밀감을 표했든 말든 그런 건 별로 중요치 않지.
중요한 건 리라가 지금까지 쌓아온 인연들, 아버지와 선생님 혹은 친구나 지인을 다 제쳐두고 초면인 내게 도움을 구할 정도로 몰려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은 절대 들어줄 수 없고, 초면인 나만이 들어줄 수 있는 리라의 바람은 다른 어려운 일도 아닌 ‘여기서 꺼내 달라.’라는 말.
굳이 초면인 내게 그런 말을 했다는 건 리라의 인간관계에서 그 부탁을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과 같았다.
한 문장의 짧은 부탁과 어둡게 가라앉은 리라의 두 눈동자만 봐도 인생이 얼마나 고달팠는지 대충 알 것만 같았지만, 그래도 무턱대고 도움을 주는 건 힘들었다.
주변에 적뿐이었던 하안이와는 달리 리라에겐 아버지가 있었으니까.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그래서 일단 정확히 어떤 힘겨운 인생을 살고 있길래 내게 이토록 간절한 부탁을 하는 건지 알아야했다.
그걸 위한 질문이었고, 이 질문에 리라는 추위에 거칠어진 입술을 몇 번 달싹이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제 인생은 새장 속에 있어요.”
※※※
하리라는 자신이 태어난 날, 어머니를 잃었다.
몸이 원체 약했던 그녀의 어머니가 출산을 강행했을 때 산모가 죽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에도 출산을 강행했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잘못돼선 안 된다는 이유로 무리하게 태어난 하리라는 그렇게 어머니의 품에 잠시 안긴 후, 더 이상 어머니께 안길 수 없게 되었다.
제 어미를 잡아먹고 태어난 패륜아.
그것이 하리라의 외할머니가 그녀를 처음 보고 내뱉은, 울분에 찬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하혁수는 외가와 절연하고, 장모께 다시는 볼 일이 없을 거다 단언했지만 ‘제 어미를 잡아먹고 태어난 패륜아.’라는 말은 하혁수의 심장 깊숙한 곳에 박혀버린 뒤였다.
그렇게 어머니의 죽음은 족쇄가 되어 하리라의 발목에 채워졌고, 족쇄에 달린 줄은 하혁수의 것이 되었다.
[우리 딸, 운동 열심히 해야 한다. 몸이 튼튼해야 건강한 거야.]
몸이 약했기에, 건강하지 못했기에 아내는 죽은 거라고 생각한 하혁수는 하리라가 걸음마를 뗐을 때부터 그녀에게 운동을 시켰다.
태권도 국가대표 유력후보였던 하혁수의 코칭은 체계적인 트레이닝 메뉴를 따라 하리라를 보다 건강하게 만들었고, 어머니를 닮아 몸이 약했던 그녀에게 최상의 건강을 만들어주었다.
여기까진 좋았다.
여전히 어머니와 아내의 빈자리는 컸지만 하리라와 하혁수 모두 행복했다.
하지만 하리라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그녀를 둘러싼 세상이 넓어지면서 두 사람의 행복엔 금이 가기 시작했다.
[리라야! 오늘 학교 끝나고 우리랑 같이 방방 타러 가면 안 돼?]
초등학교 3학년, 젖살이 다 빠지지 않았음에도 가려지지 않은 하리라의 미색은 그저 가만히 있었음에도 또래 아이들의 호감을 샀고,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따라 운동을 하며 단련된 신체능력은 또래 아이들의 선망을 샀다.
그래서일까 어린 하리라의 주변엔 아이들이 몰렸고, 아이들은 매일 학교가 끝나면 다른 길로 새지 않고 곧장 집으로 가는 그녀를 붙잡았다.
[아, 안 돼. 아빠가 학교 끝나면 바로 집으로 오라고 했단 말이야.]
처음엔 아버지와의 약속을 떠올리고 고개를 저은 하리라였지만, 유혹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그래도 리라야. 얘 생일인데 리라 너랑 방방 한 번 타보는 게 소원이래! 우리도 리라랑 같이 놀고 싶고! 응? 안 될까? 응?]
[새, 생일? 그렇게까지 나랑 놀고 싶어?]
어린이집도 가지 않고, 아버지의 품속에서 자라다 학교에 입학한 하리라는 단 한 번도 방과후에 친구와 놀아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겉으로 드러낸 적은 없어도 은연중에 친구라는 관계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그녀에게 친구들의 초대는 너무나 달콤한 유혹이었다.
[응! 그럼 당연하지!]
[그, 그러면 진짜 조금만 놀까? 나 그래도 아빠 퇴근하기 전에 갈 거야.]
[좋아! 가자!]
친구와 노는 것에 몸이 달아있던 하리라는 그 부탁을 수락하고 말았고, 3학년짜리 초등학생답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아버렸다.
[아빠가 학교 끝나면 바로 집에 와서 숙제하라고 했지! 위험하게 어딜 싸돌아다녀 싸돌아다니긴!]
결국 노을이 세상을 뒤덮은 저녁이 돼서야 쭈뼛쭈뼛 집에 돌아온 하리라는 태어나 처음으로 아버지께 혼이 났고.
짜악!
태어나 처음으로 아버지께 뺨을 맞았다.
그날부터였다. 하리라가 자신의 인생이 새장 속에 갇혀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아내를 잃은 자신에게 남은 건 딸뿐이라 생각하는 아버지의 집착은 몇 년이 지나도 옅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공부는 제대로 하고 있냐? 운동은. 너 요즘 아빠가 늦게까지 일한다고 어디 싸돌아다니고 그런 건 아니지? 공부 열심히 하고 좋은 대학 가서 꼭. 반드시! 건물 안에서 앉아서 일해야 한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그런 곳에서. 알았냐?]
오히려 하리라를 향한 그의 집착은 더더욱 강해졌고, 하리라의 의견은 묵살한 채 안전만을 고집하며 앞으로 살아갈 그녀의 삶을 규정했다.
아버지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너무나 평범한 조언이었지만 그 속에 담긴 집착은 너무나 크고 무겁다는 것을 하리라는 느낄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고등학생이네. 돈이 없어서 학원은 못 보내니 집에서만 공부시키느라 불안했는데. 이제는 걱정 없지. 담임선생님한테는 내가 너 야자 한다고 말해놨으니까 뺄 생각 말고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나 해. 알았냐?]
고등학교 입학식 날, 자신보다 먼저 담임선생님을 만나 야자를 할 거라고 정해버린 아버지의 말을 들은 순간 하리라는 가슴 속에서 뚝. 하고 무언가가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인내의 끈.
자신을 착한 아이라며, 아빠가 자신을 잘 키우기 위해 지금껏 희생했으니 꼭 그 기대에 부응해야한다는 다짐을 하게 만든 굵디굵은 인연의 밧줄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굵고 단단한 밧줄이라도 보수 한 번 없이 비바람에 오랫동안 노출되면 낡고 헤지는 법.
낡을 대로 낡아버린 인내의 끈이 그날 아버지의 말에 뚝하고 끊어진 것이다.
[······싫어.]
[뭐?]
그렇게 하리라는 태어나 처음으로 아버지의 말에 반항했고.
[공부하기 싫다고! 나는, 나는 아이돌할 거야!]
태어나 처음으로 고등학생다운, 너무나 청소년다운 자신의 꿈을 입밖으로 꺼냈다.
열일곱이 되던 해였다.
※※※
“······거기서 반항기가 시작된 거구나. 아빠 말 잘 듣던 모범생이 그날 비뚤어져서 학교 양아치들이랑 맞짱도 뜨고 그런 거였어.”
리라의 일대기를 듣고 나니 건물 3층에서 양아치 열댓 명과 맞짱을 뜬 이유도 알 수 있었다.
근데 그러면 내 눈에 꺼림칙한 게 잡혔어야 했는데. 리라는 그런 건 딱히 없었고, 그냥 당차고 굳세다는 느낌밖에는 못 느꼈단 말이지.
하지만 리라의 일대기를 듣고도 의아한 점은 있었다.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왔음에도 버젓한 사회인이 아닌으로 깡패로 살며 온갖 나쁜 새끼들을 다 본 나다.
애들 괴롭히고 삥이나 뜯고 학교폭력이나 자행하는 싹퉁바가지 없는 놈들은 냄새만 맡아도 느낌이 온단 말이다.
하지만 리라에게선 그런 느낌이, 나쁜 놈 혹은 나쁜 짓을 할 놈에게서 나는 굉장히 복잡미묘하고 꺼림칙한 느낌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반항기가 왔을 뿐이고 나쁜 짓은 안 한 걸까? 근데 나쁜 짓을 안 하는데 혼자서 열댓 명이나 되는 양아치를 상대로 싸움을 하는 게 말이 돼? 그때 계단으로 달려가면서 욕했던 거 생각하면 딱히 뭐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주먹을 쓴 건 아닌 것 같은데.
“저 맞짱 같은 거 안 떴는데요. 싸움 건 적도 없어요. 그냥 일방적으로 다구리당한 거지.”
그 의문은 이어진 리라의 말에서 해소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것 치고는 호승심이 남다르던데.”
3층에서 떨어진 걸 겨우 받아 살려놨더니 다시 계단으로 달려가는 리라의 뒷모습은 몇 시간이나 지났음에도 눈앞에 생생히 펼쳐지는 것 같았다.
분명 뒤에서 빠따질을 했다느니 사람을 밀치느니 하면서 날뛰었던 것 같은데.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다구리를 당했다고 착잡한 목소리로 말하기엔 조금 상황이 안 맞지 않나?
하지만 리라의 대답을 듣고 나니 내 의문이 얼마나 가당치도 않은 의문이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야 함부로 못 건드니까요. 도망치거나 주춤대면 그때부터는 진짜 지옥이에요. 툭 치고 지나가도 지랄하고, 뒤에서 소근대기만 해도 개같이 짖어야. 그래야 미친년인줄 알고 못 건들죠.”
“······.”
리라의 말대로 정말 개처럼 짖으며 당당히 달려갔던 아까와는 달리 지금의 리라는 상처입고 비에도 젖은 처량한 강아지 같았다.
그 모습에 내 알량한 잣대가 얼마나 수준이 낮은지 알 수 있었고, 나는 부끄러워 낯을 둘 곳이 없었다.
“······맞아요. 학교에서 왕따예요. 저.”
그리고 이어진 리라의 말은 내 부끄러움을 죄책감으로 바꾸는 쐐기가 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리라 얘 이야기를 어떻게 다뤄야할지 도저히 감이 안 잡혀서 쓰고지우고를 몇 번이나 반복한 것 같습니다ㅠㅠ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해피 어린이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