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가 깡패임-38화 (39/53)

제 38화

깡패가 학교폭력에 대처하는 방법 (9)

1.

왕따.

집단에 속해있는 한 사람을 다수의 사람이 괴롭히고 따돌리며, 방관하는 행위.

학교를 다닌 적도 없고 집단이라고는 형님이 세운 정도파나 교도소를 제외하곤 속해본적 없는 내겐 그리 익숙지 않은 단어였다.

나도 뭐 교도소에 있을 때 같은 방 사람들이 말도 안 걸고 의도적으로 피하고 그러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괴롭힘을 당하진 않았지. 딱히 불편한 것도 없었고.

내가 교도소에서 겪은 따돌림이 왕따라면 왕따라고 할 수 있겠지만, 지금 리라의 입에서 나온 왕따라는 단어와는 그 궤가 다를 것이다.

“집에서는 집대로 지랄. 학교에선 학교대로 지랄. 제 인생은 그냥 지옥이에요.”

리라가 내뱉은 한탄 섞인 목소리가 그녀가 느끼고 있는 괴로움을 내게 여실히 알려주고 있었다.

왕따를 당해본 적이 없기에, 아니 정확히 말하면 왕따에 괴로워해본 적이 없기에 나는 리라가 겪었을 괴로움을 일부분밖에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일부만으로도 내 마음이 절로 무거워질 정도로 짙은 그림자가 리라의 얼굴에 드리워 있었다.

그런데 조금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어. 왜 리라가 왕따를 당하는 거지? 생긴 거나 성질을 보면 왕따는커녕······.

“오빠, 지금 저 보고 ‘예쁘고, 운동 잘하고, 성격도 이만하면 괜찮은데 왜 왕따를 당한다는 거지?’라고 생각했죠.”

“어, 어어?”

“그 걸로도 모자라서 왕따를 당하기는커녕 왕따를 주도할 것 같다고도 생각했어요. 그쵸?”

“아, 아니? 안 했어!”

그런 생각을 할 뻔하긴 했지만 아직 거기까지 생각이 닿진 않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할 뻔한 건 맞았기에 나는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처럼 다급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뭐, 괜찮아요. 선생님들도 그래서 안 믿어주거든요. 제가 워낙 잘났어야죠.”

“어? 어어. 그, 그렇지.”

리라는 자존감마저도 굉장히 높았다.

얼굴도 몸매도 웬만한 아이돌 뺨치는 수준이고, 운동도 잘 하고 성격도 호쾌하며 자존감까지 높으니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는 타입인데 그런 리라가 왕따를 당하다니. 대체 뭐 때문이지?

리라는 내 머릿속 의문을 읽기라도 한 듯 이를 까득 갈며 의문을 해소시켜줬다.

“작년에, 웬 깡패새끼 하나가 학교에 전학을 왔거든요.”

“윽.”

갑자기 훅 들어오는 깡패소리에 괜히 찔려서 몸이 흠칫 떨렸다.

하지만 리라가 이를 갈면서까지 증오하는 그 ‘깡패새끼’는 내가 아니었기에, 나는 놀란 가슴을 추스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깡패?”

“네, 깡패요. 진짜 빌어 처먹어도 모자랄, 비겁하고 치졸하고 더러운 깡패새끼.”

“쿨럭!”

분명 리라의 분노와 증오는 내가 아닌 다른 ‘깡패새끼’를 향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어째서인지 헛기침이 절로 튀어나왔다.

갑자기 눈을 마주치기가 힘들어져 은근슬쩍 시선을 피한 뒤, 나는 그럼에도 궁금한 점을 입에 담았다.

“그······. 전학을 왔다는 거면 학생이라는 소리잖아? 그런데 깡패라고 하는 건 조금 이상하지 않을까? 일단 학교에 다닌다면 깡패짓을 하든 말든 결국 그 본질은 학생이라는 거니까······.”

“오빠, 설마 지금 그 새끼 쉴드 치는 거예요?”

배신감과 충격에 크게 뜨인 리라의 눈이 날 응시했다.

여기서 빨리 수습하지 않으면 그땐 진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벌어질 거라는 직감에, 나는 황급히 손을 저었다.

“아니! 절대 아니지! 그럴 리가 없지! 나는 지금 그 깡패새끼라는 놈 만나면 개패고 싶을 정도로 분노에 들끓고 있는 걸?!”

“근데 왜 그딴 뉘앙스의 소리를 하는 건데요.”

“그래봤자 애잖아.”

아무리 깡패짓을 하고 극악무도해도 애는 애다.

감히 리라를 괴롭힌 그 애새끼를 내가 지금까지 줘패온 깡패새끼들과 같은 선상에 올리는 건 불가능했다.

미성년자를 죽기 직전까지 패거나 밥 먹을 때 턱받이를 차야하는 몸으로 만들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지.

학교생활을 경험해본 적도 없고, 어렸을 적엔 또래는커녕 사람과도 잘 만나지 못했던 내게 또래 학우에게 괴롭힘당했다는 리라의 말은 그래봤자 애들 일 아니냐? 하는 생각만 들게 할 뿐이었다.

“······맞아요. 오빠 말대로 그 새끼는 애죠. 애새끼 맞지. 근데 대가리는 애새끼면서 몸은 어른이에요. 그것도 모자라서 어른보다도 더 큰 영향력을 갖고 있고요.”

하지만 이어지는 리라의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리라가 상대하고 있는 그 ‘깡패새끼’가 그저 평범한 애새끼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제가 말했죠? 깡패새끼라고. 말 그대로 깡패의 새끼예요. 그것도 엄청 커다란 조직 두목의 아들이요.”

※※※

하리라가 처음으로 자신의 아버지에게 반항한 후, 그녀는 살짝 비뚤어져 지금껏 경험해본 적 없던 일탈을 즐겼다.

걸핏하면 야자를 째고 친구들과 노래방을 간다든지, 피시방을 간다든지 하는 그런 소소한 일탈들을.

집안사정상 용돈 자체가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자신보다 약한 아이들의 삥을 뜯기엔 그녀의 양심과 마음속 선이 그런 짓을 용납하지 않았다.

친구들이랑 놀러갈 때도 하리라의 미모에 홀린 남자들이 돈을 내주겠다고 했을 때만 나갔다.

결국 하리라는 속된 말로 노는 애들, 통칭 일진들과 어울리긴 해도 누굴 괴롭히진 않는 회색지대에 걸친 몸이 되었다.

그렇게 하리라의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이 지나고 2학년이 되었을 때, 하리라의 반에 한 남자가 전학을 왔다.

[나는 금덕수다. 내 소문이야 이미 다 퍼져서 알 거니까 별 말 안 한다. 강제전학 맞고, 마음에 안 드는 애새끼 몇 패서 여기 온 거니까 씨발 건들지 마라.]

키가 190cm, 체중은 100kg에 달하는 그의 이름은 금덕수.

질이 그리 좋지 않은 하리라의 학교에서도 감당할 수 없는, 진짜배기 양아치에 깡패유망주였다.

[오, 뭐냐 너? 존나게 예쁘다? 뭔 아이돌이냐? 아니지. 웬만한 아이돌보다 더 빵빵한 거 같은데?]

그리고 전학을 온 금덕수는 자연스럽게 연예인 빰 치는 외모의, 이미 학교에서 가장 예쁜 학생이며 지역 내에서도 나름 유명한 하리라에게 눈독을 들였고.

[좋아, 정했어. 이름은 하리라. 하리라구나. 이름도 씨발 존나게 예쁘네. 야, 너 내꺼 해라.]

쌍팔년도에도 통하지 않을 되도 않는 개소리에 하리라는 당당히 가운데손가락을 날렸다.

[뭐라는 거야 문신육수돼지충새끼가. 꺼져 냄새나니까.]

경멸어린 눈빛과 모멸의 목소리는 덤이었다.

[······하, 이 미친년 앙칼진 것 봐라.]

그 날이었다.

[그래. 그래 씨발 그렇게 나와야 재밌지. 야, 하리라. 이제부터 니 인생 내가 최대한 빡세게 조질 거니까. 마음 바꾸지 말고 열심히 버텨봐. 알았지?]

아버지께 반항하고 나서 1년 간 느꼈던 짧은 자유가 끔찍한 폭력으로 뒤바뀐 기점이.

※※※

“그리고 나서 그 깡패새끼 아빠가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금일파 두목이라는 게 알려졌고, 친구라고 지내던 년놈들은 그 깡패새끼한테 붙어서 누구보다 열심히 저를 괴롭히기 시작했어요.”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 짧은 시간 만에 학교 최고의 인기인이자 빛나는 아이돌 지망생 하리라는 전교생에게 왕따를 당하는 학교폭력 피해자로 바뀌어 있었다.

리라가 아무리 예쁘고 운동도 잘하고 성격이 좋다고 하더라도 상대는 어른조차 두려워하는 폭력조직 보스의 아들.

무력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고등학생들에겐 갑작스레 나타난 금덕수는 법칙 그 자체였을 것이다.

“화장실에 있으면 위로 물이나 쓰레기나 우유를 던지고, 체육시간이라 나갔다 돌아오면 교복이 찢어져 있고, 언제나 뒤에선 다 들리게 뒷담화가 계속됐죠.”

“허.”

거기에 리라를 괴롭힌 수법조차도 너무나 치졸하고 더러워서 온갖 더러운 꼴을 다 본 나조차도 헛웃음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뭔가 다른 의미로 더럽다고 해야 하나. 그 덩치를 가진 놈이 한다는 게 고작 그런 짓이라는 게 굉장히 음습하다고 해야 하나.

“물론 제가 싸움을 잘해서 그런 짓밖에 못한 것도 있을 거예요. 처음에는 뭐 금덕수한테 붙은 미친년들이 가위 들고 찾아오고 그랬는데. 그냥 몇 번 밟아주니까 대놓고 덤비진 못하더라고요.”

아, 음습한 짓이 아니면 통하지 않아서 음습한 짓밖에 할 수 없었던 거구나.

“아무튼 그 덕에 금덕수 그 새끼 패거리들이 앞에서는 그딴 짓을 못했지만, 뒤에서 하는 개짓거리가 더 심해졌어요. 그것 때문에 전 미친년이 될 수밖에 없었고······.”

“아까 말했던 것처럼 개처럼 물어뜯었구나.”

“······푸흐. 네, 개처럼 물어뜯었어요. 뭔 짓을 할 기미만 보여도 바로 가서 그냥!”

리라는 의자에 앉은 채 발을 뻗으며 발차기를 날리는 시늉을 했다.

속에 있던 이야기를 풀어놓으면서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는지 장난식으로 말하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동시에, 그런 일들을 겪고도 장난식으로 이야기하는 걸 보면 마음이 무거워졌다.

방에 틀어박혀도 이상하지 않을 일들을 겪었는데도 이렇게 밝은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건가?

리라의 이야기에서 리라는 언제나 혼자였다.

그냥 혼자인 것도 아닌, 믿고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에게 배신당하기까지 하며 혼자가 된 것이다.

그런 일을 겪었는데, 채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장난식으로 말할 수 있는 거지?

“근데 아무리 그 깡패새끼 따까리들을 조져놔도 저보다 금덕수가 더 무서웠는지 안 멈추더라고요. 그래서 결판을 내자! 하고 갔는데. 음. 비겁하게 새끼들이 다구리를 치더래요? 연장까지 들고. 그래서 죽을 뻔했는데. 짜잔! 오빠가 구해줬어요!”

“······.”

목소리는 밝고 명랑했지만, 리라의 눈은 여전히 죽어있었다.

내겐 그런 리라의 모습이 마치 연기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두 번째예요. 살면서 누가 절 도와준 건. 첫 번째는 절 낳아준 엄만데, 엄마는 지금 이 세상에 없으니까. 절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오빠가 유일해요.”

“······.”

“그러니까 오빠. 저 좀 여기서 꺼내주면 안 돼요?”

“리라야. 나는······.”

이거 이대로 두면 정말 큰일이 날지도 모르겠다 싶어 입을 열었다.

“······하리라, 그게 정말이냐? 지금 한 말이 다······ 다 사실이야?”

하지만 등 뒤에서 들려온 참담한 목소리에 나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아, 아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하혁수 씨가 왜 거기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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