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가 깡패임-39화 (40/53)

제 39화

깡패가 학교폭력에 대처하는 방법 (10)

1.

하안이와 처음 만났을 때 그랬듯 생각에 깊이 빠지면 경계가 흐트러지게 된다.

리라에게 이야기를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지금도 마찬가지로 주변 일에 둔감해져버렸다.

그래서 평소 같았으면 카페에 들어오기도 전에 눈치 챘을 하혁수 씨의 등장을 그가 입을 연 이제야 알아챈 것이다.

하혁수 씨가 기척을 죽이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도 있고 말이지.

예전에 국가대표 최유력후보였다고 했나. 그 정도면 내가 미처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발걸음이 가벼운 것도 이해가 된다.

무튼 이제야 하혁수 씨가 다 들었다는 걸 알았으니 상황이 복잡해질 일만 남았다.

“아, 아빠가 여긴 어떻게······.”

입을 반쯤 벌린 채 경악하고 있는 리라의 얼굴을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할까. 그래도 가족이니까 하혁수 씨에게 맡겨야 할까? 그치만 리라는 하혁수 씨의 집착 때문에 숨이 막힌다고. 제발 꺼내달라고 말했잖아. 그런데 내가 함부로 그런 짓을 해도 되는 건가?

하혁수 씨의 등장에 입을 닫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었더니, 등 뒤에서 심상치 않은 수준의 적의와 분노가 들끓는 게 느껴졌다.

응급실에서 내게 발차기를 날렸을 때보다 훨씬 강한 적의와 분노······ 아니, 이 정도로 무겁고 날카로운 건 적의나 분노 따위의 단어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이건 살의다.

죽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는 발휘되지 않는, 죽여야 한다고 마음을 먹은 자만이 내뿜을 수 있는 거세고 날카로운 살의(殺意).

“하리라, 그게 사실이냐고 아빠가 묻잖아.”

머리가 쭈뼛 설 정도로 지독한 살의를 내뿜고 있음에도 하혁수 씨의 목소리는 지나칠 정도로 차분했다.

분노가 한계를 넘으면 오히려 차분해진다고들 하는데, 지금 하혁수 씨의 상태가 바로 그랬다.

“어, 어어·······.”

리라 또한 하혁수 씨의 이런 모습은 처음 봤는지, 창백하게 질린 채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하긴, 아무리 인생이 고달프다고 하지만 리라는 아직 애야. 미성년자라고. 스물도 안 된 애가 아빠가 살의를 내뿜는 모습을 보면 놀라서 굳을 수밖에 없겠지.

“·······.”

예상대로, 결국 리라는 하혁수 씨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기 때문이 아닌 하혁수 씨가 내뿜는 살의에 호흡조차 힘들어할 정도로 굳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것도 좋진 않은데.

아무리 차분해졌다고 한들 그건 차분해진 게 아니라 차분해진 것처럼 보일 정도로 개빡쳤다는 뜻이기에 지금의 하혁수 씨는 언제 터질 줄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았다.

그리고 하혁수 씨의 본질은 변하지 않기에,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결국 차분이고 나발이고 분노에 눈이 돌아 아무도 말릴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뿐인가. 여기서 하혁수 씨의 폭발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사람은.

터져도 카페 안보단 밖에서 터지는 게 낫다고 생각해, 자리에서 일어나 하혁수 씨를 데리고 나가려는 순간.

“······그래. 그러냐. 알았다.”

예상외로 내가 무슨 짓을 하기도 전에 하혁수 씨가 먼저 자리를 비켰다.

상정하지 못한 상황에 고개를 돌려 하혁수 씨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그는 아까 응급실에 왔었던 복장 그대로 슬리퍼를 찍찍 끌며 터벅터벅 나가고 있었다.

지금 하혁수 씨의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절망에 빠진 듯한 형편없는 어른의 모습 그 자체.

하지만 내가 보기엔 달랐다.

하혁수 씨의 저 뒷모습은 패배하고 절망에 빠진 자의 힘없는 모습이 아닌, 폭발하기 직전 추진력을 얻기 위해 에너지를 최대한 비축하는 모습이었다.

“······큰일인데 이거.”

깡패시절 초반, 궁지에 몰린 쥐새끼가 얼마나 사나워질 수 있는지 몸소 깨달았기에 알 수 있다.

저대로 그냥 가게 뒀다간 진짜 누구 하나······ 혹은 여럿이 죽을 게 분명하다는 것을.

그 뭣도 아닌 쥐새끼들도 나한테 칼침을 놓았는데. 하혁수 씨가 뒤가 없는 사람처럼 움직이면 그때는 정말 대참사가 나버릴 거야.

하혁수 씨를 붙잡아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리라는 아버지를 잃을 거야.

하지만 지금 저 상태의 하혁수 씨를 쉽게 말릴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말리더라도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릴 거고, 날이 새는 건 기본이겠지.

날이 새도 말리지 못할 확률이 훨씬 더 컸다.

자식이 다치고 죽을 뻔했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는 부모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하아아아. 어쩔 수 없다 이건.”

“오, 오빠······?”

일단 리라부터 안전한 곳에 보내야했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내 집주소를 알려줬다.

리라는 빠따로 머리를 후리고 3층에서 밀어버리는 미친새끼들한테 노려지고 있었으니까. 집에 혼자 있으면 위험하지.

“······리라야. 내가 준 명함에 적힌 주소 있지? 바른길엔터테인먼트. 거기 가서 강진혁 매니저님이 보냈다고 말하고 4층에 가. 그러면 현관문이 나올 텐데, 비밀번호 0707 치고 들어가면 예쁜 언니가 있을 거야. 그 언니한테 오늘 하루만 지내고 갈 거라고, 매니저님이 보냈다고 말하면 될 거야. 알았지?”

집에는 빈방도 많고 입을 옷도 있으니 리라가 하루 정도 묵는 데엔 지장이 없을 거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 이름을 대면 바른길엔터에선 별 문제가 생기지 않을 거고.

집도 있고 보호자도 있는 리라를 내 집에 들여서 재우는 건 역시나 꺼려졌지만, 이런 상황이니 어쩔 수 없었다.

자, 이제 리라도 안심이니까 가봐야겠지. 하혁수 씨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지고 있으니 늦으면 놓칠 거야.

의자를 빼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리라가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얼굴로 내게 물었다.

“그, 그럼 오빠는요?”

리라는 날 보고 어쩔 거냐 묻고 있었지만 그 목소리에 담긴 걱정과 우려는 내가 아닌 하혁수 씨를 향하고 있었다.

아버지를 걱정하는 딸의 눈이었다.

집착이 심하고 자신을 옭아매서 너무 힘들다고 말은 했지만 그래도 자기 아빠라는 건가. 그래, 이게 맞지. 이러니까 그래도 가족이란 말이 있는 거지.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다는 걸 다시금 깨달으며, 나는 리라가 안심할 수 있도록 그녀를 향해 씨익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는 하혁수 씨······ 아니. 아버님 데리고 올게.”

2.

어렸을 적 고아원에서 자란 하혁수에게 아내는 그가 가진 유일한 인연이었고 그의 모든 것이었다.

그렇기에 아내가 자신의 목숨과 맞바꾸어 낳은 딸 하리라가 그의 모든 것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내가 죽고 외가와 인연을 끊어 다시 혼자가 된 하혁수가 배운 거라곤 태권도뿐이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그가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 또한 태권도였다.

국가대표 최유력후보였을 뿐 그 이상의 커리어는 없고, 가진 돈도 없었기에 태권도장을 차릴 순 없었지만 후배의 태권도장에 사범으로 들어갈 수는 있었다.

후배의 부하직원이 되어 밤늦게까지 일을 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딸 하리라를 먹여살릴 수 있음에 하혁수는 감사했다.

몸과 정신이 힘들수록 하리라가 소중해졌고, 육아에 들어가는 돈이 많아질수록 하리라가 사랑스러워졌다.

하혁수에게 하리라는 유일한 혈육이자, 유일한 가족이었으니까.

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아내와는 달리 하리라는 안전하길 바랐고, 건강하길 바랐다.

그렇게만 살면, 자신의 품에서 다치지 않고 계속 살아간다면 행복해질 것이라 하혁수는 믿고 있었다.

하지만 하리라의 고등학교 입학식 날 그녀의 첫 반항으로 그 믿음에는 금이 갔다.

그리고 오늘, 자신 몰래 집을 나간 하리라의 뒤를 밟은 끝에 하리라의 입에서 그녀가 겪은 일들과 느꼈던 감정들을 들었을 때 하혁수의 믿음은 산산조각 나버렸다.

그저 품에 안은 채, 세상 모든 풍파에서 지켜주기만 하면 행복하게 자랄 거라고 믿었는데.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그게 잘못됐다 이건가?

게다가 품에 두고 애지중지 키웠다고 해서 안전한 삶을 살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리라는 야구배트에 머리가 찢어지고 창문 밖으로 밀려 떨어질 정도로 위험한 삶을 살고 있었다.

하혁수는 인생의 모든 노력이 부정당하는 기분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지금만큼은 하리라와 더 이상 같은 공간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럴 면목이 없었다.

원래였다면 강진혁과, 아니 그냥 다른 남자와 카페에 앉아있는 꼴만 봤어도 난리를 치며 강제로 하리라를 데리고 나갔을 하혁수가 아무 일도 벌이지 않고 얌전히 나갔던 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

해가 지고 더욱 추워진 겨울의 밤거리에서 하혁수는 혼자가 되었다.

너무나 추운 겨울의 밤이기에 길에는 사람이 몇 없었고, 텅 빈 거리엔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적막은 사람을 사색에 잠기게 만들고, 하혁수는 사색에 잠겨 지금 자신이 해야할 일을 떠올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 뿐이었다.

“······.”

빠드득.

주먹을 꽉 쥔 탓에 관리되지 않은 지저분한 손톱이 손바닥의 살을 파고들었다.

이를 꽉 물었기에 턱에는 힘이 들어갔고, 명확하게 뜬 두 눈에는 지독할 정도의 살의가 넘실대고 있었다.

할 수 있는 건 하나. 해야 하는 것도 하나.

하혁수는 자신의 전부인 딸을 지키고자 살아왔지만 결국 지키지 못했음에 분노했다.

동시에 자신의 딸을 죽일 뻔했던 이들에게 분노했다.

그런 그가 할 수 있는 건 자신을 분노시킨 원인들을 전부 없애버리는 것.

그렇게만 하면 리라는 행복해져.

몰래 엿들었던 하리라의 이야기엔 그녀의 삶을 지옥으로 만든 두 명의 사람이 있었다.

그 둘을 단번에 처리할 수 있으니 아버지로서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가자. 다 끝내러.”

결심한 하혁수가 자신을 향해 혼잣말을 내뱉으며 발걸음을 뗀 그때. 그의 등 뒤에서 능청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갑시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꼽사리 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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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페포포님 왕코인 후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쌩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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