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0화
깡패가 학교폭력에 대처하는 방법 (11)
1.
“······.”
말없이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는 하혁수 씨의 눈은 많은 것을 포기한 사람의 눈이었다.
꽉 쥔 주먹에선 손바닥에서 배어나온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턱에 힘이 얼마나 들어간 건지 턱뼈 윗 근육이 툭 튀어나와 보일 정도였다.
역시 따라오길 잘했어. 저대로 보냈다간 돌이킬 수 없었을 거야.
“뭘 그렇게 멀뚱히 서서 보기만 하고 있어요? 복수하러 가는 거 아니었어요?”
가만히 서서 죽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하혁수 씨에게 다가가며 말을 걸었다.
그러자 하혁수 씨는 힘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무기력한 목소리로 내 질문에 답했다.
“네가 뭔 상관이냐. 따라오지 마.”
나와 관련되어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팍팍 느껴졌다.
대화로 소비될 기력까지 전부 끌어 모아 살인을 저지를 생각이 분명했다.
대상은 아마 리라를 괴롭히고 죽일 뻔했던 금덕수라는 양아치 새끼, 그리고.
“뭔 상관이냐뇨. 담당 아이돌의 아버님인데. 매니저로서 두 팔 걷고 챙겨드려야 하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습니까?”
하혁수 씨, 자기 자신.
하혁수 씨는 리라의 이야기를 전부 들었고, 그녀의 진솔한 이야기에 충격과 절망을 느끼고 자리에서 나왔다.
그 행동거지로 보았을 때 하혁수 씨가 품은 살의는 리라가 자신의 인생을 절망이라 표현하게 만든 원인에게 향하는 건 당연한 법.
그렇기에 나는 하혁수 씨를 가만히 둘 수 없었다.
“담당 아이돌······? 매니저?”
“네, 리라. 저희 기획사 아이돌 연습생 하기로 했거든요.”
물론 개구라였다. 리라가 연습생을 하겠다 말은 했지만 나는 아직 받아주지 않았다.
미성년자가 어딜 부모님 동의도 없이 아이돌 연습생으로 계약을 한다느니 만다느니 하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지.
하지만 지금은 이런 거짓말을 해서라도 하혁수 씨를 혼자 둬선 안 된다.
하혁수 씨는 리라가 아이돌의, 아니 아이돌 비슷한 불확실하고 안전하지 못한 꿈을 꾸는 걸 무조건 부정해왔어. 처음으로 반항했다는 그때도 반항만 했을 뿐 인정해주진 않았고.
그러니 아이돌 연습생이 됐다는 말은 하혁수 씨에게 통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아이돌 연습생이 됐다는 거짓말을 해봤는데.
“······그래. 그렇게 해서 리라가 행복해진다면. 어쩔 수 없는 거겠지.”
잠시 뜸을 들였을 뿐, 의외로 순순히 리라가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다는 걸 인정해버렸다.
“그럼 가라. 나는 너한테 일 없고 니가 뭘 하든 관심도 없으니까.”
어, 어어. 이대로 보내면 안 되는데. 대체 얼마나 충격을 받았으면 안전한 사무직에서 일해야 한다고 그렇게 닦달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딸의 불확실한 꿈을 인정해주는 대인배가 되어버린 거냐고!
이딴 고민에 빠져있기엔 상황이 너무 급박했다. 당황은 짧게 끊고 행동은 빨라야했다.
“에헤이! 아무리 저는 아버님한테 일 많습니다! 아버님이 지금 사내대장부의 결의를 하고 당당히 힘든 길을 걸으려 하시는데 매니저인 제가 따라가야죠!”
나는 재빨리 하혁수 씨의 옆에 따라붙어 그가 멈춰 설 수밖에 없을 이야기를 입에 담았다.
“대표 연예인이라고는 한 명, 그것도 인기라곤 개뿔도 없는 놈 하나밖에 없고, 설립자금을 대준 대주주는 전직 깡패에 사장은 완전히 몰락한 프로듀서 출신. 그리고 담당 매니저는 전과자 깡패새끼인 저지만. 그래도 리라 정도면 뜨는 건 확실하니까요. 제대로 굴려볼 생각입니다.”
마지막에 제대로 굴려보겠다는 말만 빼면 전부 다 사실이었지만, 하혁수 씨에게 내 말의 진위여부를 파악할 능력이 있을 리는 만무했다.
“그런데 아버님이 리라 혹사시키는 거 아니냐고 태클을 걸게 되시면 저로선 굉장히 곤란해지거든요. 리라 정도의 원석을 저희 회사의 모든 인력을 끌어 모아 최고의 상품으로 만들었는데. 태클을 건다? 이야. 진짜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진짜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 게 이렇게 힘든 건지 몰랐다.
아이돌을 상품이라고 생각한 적은 살면서 단 한 번도 없었다.
애초에 아이돌을 만들어서 벌 수 있는 돈보다 교도소에 들어가기 전 원래 하던 일로 벌 수 있는 돈이 더 많을 테니까.
하지만 하혁수 씨의 주의를 끌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이딴 거짓말을 해야 했다.
“······뭐?”
그리고 정말 다행히도, 나는 남의 집 금지옥엽 소중한 딸을 상품처럼 대하겠다고 말하는 악질 매니저가 된 대신 하혁수 씨의 주의를 돌린다는 목적을 이룰 수 있었다.
좋아. 지금까진 내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지만 이젠 달라. 날 바라보는 눈빛에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하긴 해도 적어도 내 말을 듣기는 할 거야.
그러니 이제부턴 하혁수 씨의 분노를 돋우고 그가 나를 내칠 수 없게 만드는 마법의 말들만 내뱉으면 된다.
난 생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간신배 연기를 하며, 듣기만 해도 짜증이 끓어오르는 말투로 마법의 말들을 전개했다.
“그런데 정말 운이 좋게도 지금 우리 아버님이 거사를 치르러 가시네요? 이거 한 번 도와드리면 오늘의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태클을 거실 수 없게 되실 테니까. 매니저로서 따라갈 수밖에 없죠.”
“······.”
듣기만 하고 넘어오지는 않네. 조금 더 세게 찔러보자.
“사람 죽이는 건 쉬워도 치우는 건 여간 어려운 게 아니거든요.”
“······!”
‘사람을 죽인다.’ 그 말을 직접적으로 내뱉자 하혁수 씨의 눈썹이 크게 움찔거렸다.
걸렸다.
이제 조금만 더 쑤시면 깔아둔 판에 하혁수 씨를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괜히 어설프게 묻어놨다가 몇 년 뒤에 발견되기라도 해봐. 요즘 과학기술이 진짜 엄청 발전해서 범인은 그냥 뚝딱 찾아버린다니까요?”
그 판에 하혁수 씨가 스스로 오르기만 하면 전부 해결돼. 아니, 해결은 안 되더라도 최소한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을 거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최고의 결과를 도출해낼 수도 있겠지.
리라와 하혁수 씨를 둘러싼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큰 그림의 완성을 위해 나는 전력을 다해 야부리를 털었다.
“근데 하혁수 씨는 누가 봐도 아마추어잖아요? 왕년에 태권도만 해봤지 살인이나 시체유기는 해본 적 없을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래놨다가 나중에 하혁수 씨가 범인이라는 게 밝혀지면. 그 역풍은 전부 리라가 맞는다고요.”
“······.”
“그러니까 거기서 제가 필요한 겁니다. 이 분야 전문가! 왕년에는 유기의 스패셜리스트라 불렸던 저. 유기왕(Yu-Gi-Oh) 강진혁이!”
이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산에서 살 때 싸워 이긴 짐승들에게서 고기를 떼어내고, 그 흔적을 없애는 방법을 배웠으니까.
사냥왕이니 도축왕이니 별에 별 멋들어진 별명을 갖고 있는 게 부러워서 나도 왕 붙는 별명 하나 달라고 떼쓰니까 유기왕이라는 별명을 받았었지. 그때는 그저 왕이 돼서 좋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무튼 나는 시체(짐승)유기의 스패셜리스트. 그렇기에 이 말을 하는 것에 어색함은 없었다.
“······시체유기? 그딴 짓을 밥 먹듯이 저지른 전과자 새끼가 우리 딸 매니저를 하겠다고?”
그리고 진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무게를 갖는 법이어서, 지금까지 깡패가 세운 기획사니 전과자니 무슨 말을 해도 겉으로는 흔들림이 없었던 하혁수 씨가 눈에 보이게 동요하고 있었다.
터지기 직전 지진을 동반하는 화산처럼 눈에 띠게 동요하고 있는 하혁수 씨의 모습은 참으로 바람직했다.
나는 박수만 쳐도 터질 것 같은 하혁수 씨에게 마지막 부채질을 가했다.
“뭐 어때요? 아버님은 곧 살인범이 될 텐데. 그래도 살인범인 것보다는 시체유기범이 낫지 않나요?”
“이 씨발새끼가!”
마지막 부채질에 세상 모든 것을 태워버릴 업화처럼 하혁수 씨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꽉 쥔 주먹이 무색하게 공기를 찢어발기는 소리를 내며 하혁수 씨의 발이 내 머리를 향해 쇄도했다.
쐐애애애액!
동시에,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느려지고 내 입꼬리는 만족스럽게 휘어졌다.
“아버님?! 제가 아니라 그 깡패새끼를 죽여야죠! 이거 오인사격입니다!”
“아버님이라고 처 부르지 말라고 개새끼야!”
계속 아버님이라고 부른 것도 하혁수 씨에게 짜잘하게 정신적 타격을 많이 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좋아. 됐다. 이제 지쳐 쓰러질 때까지 어울려주면 돼.
피해서도 안 되고 잡아서도 안 되고 반격해서도 안 된다.
내가 노리는 건 하혁수 씨를 집어삼킨 살의가 힘을 잃고 떨어져 나가는 것.
그렇기에 하혁수 씨의 모든 몸짓에 담긴 감정을 조금도 피하지 않고 전부 받아내야 한다.
그래야만 대화를 할 수 있어.
빠악!
팔을 올려 머리를 향해 날아드는 발을 막아냈지만,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강한 충격이 팔뼈를 울렸다.
올라갔던 입꼬리가 한 순간에 내려오고, 나도 모르게 반쯤 벌어져있던 입이 꽉 깨물렸다.
······길겠구만 이거.
2.
삑삑삑삑. 띠리릭! 철컥.
도어락이 풀리는 소리와 함께 문고리가 돌아갔다.
동시에 최하안은 마른 침을 삼켰다.
꿀꺽.
최하안. 얼굴 굳혀. 긴장 풀지 마. 기분이 상했다는 걸 온 몸으로 표현하는 거야.
소파에 앉아 티비도 보지 않고 있던 최하안은 엘리베이터가 4층에 멈춰서는 소리가 들렸을 때부터 현관 앞에 나와 팔짱을 낀 채 서있었다.
강진혁이 자신을 내버려두고 다른 여자를 찾으러 싸돌아다닌 것에 대한 시위를 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시위라고는 해도 싸늘한 태도로 맞이할 뿐 외투를 받아주거나 목욕물을 받아뒀다는 말은 할 생각이었지만, 아무튼 시위는 시위였다.
들어오기만 해봐요. 최하안이 왜 독종이라고 불렸는지 직접 알려줄 테니까.
최하안이 강진혁을 향한 전의(그냥 삐친 거)를 불태우는 동안, 그녀가 기다리던 현관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조심스럽게 열렸다.
“······아, 안녕하세요?”
그리고 여행이라도 온 듯 커다란 백팩을 멘 하리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유기오 강진혁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