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화
깡패가 학교폭력에 대처하는 방법 (12)
1.
“저는 하리라라고 하고요. 그, 오빠가 여기로 가면 된다고 해서 왔는데······ 들어가도 될까요?.”
오빠? 누가? 매니저님이? 매니저님 동생이라도 되는 건가? 아니, 성이 다르잖아. 매니저님은 강 씨라고. 이 여자는 하 씨고. 그렇다는 건······.
최하안이 떠오른 의문에 스스로 답을 내리기 직전, 현관에 들어와 서서 멀뚱히 서있던 하리라가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걸어오느라 다리가 좀 아파서요. 저 좀 들어가도 될까요?”
그리 말하는 하리라의 목소리엔 미약한 짜증이 섞여 있었다.
분명 ‘들어가도 될까요?’라고 정중하게 물었는데 가만히 서서 멀뚱히, 그것도 경계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게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 네. 들어오세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최하안은 강진혁의 소개로 왔다는 말을 떠올리며 하리라를 안으로 들였고, 허락을 받은 하리라는 겨우 가방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쿵.
“후우. 이제야 좀 살겠네.”
가출을 결심하고 싼 가방이기에 그 무게는 완전군장에 비견될 정도였다.
“뭐가 많이 들었네요.”
“아, 네 뭐. 집에 있는 제 물건들 싸그리 갖고 나온 거라서요. 정말로 저거 싸는데 얼마나 고생했는지.”
“집에 있는 물건을 다 가져온 건가요······?”
“네, 다행히도 제가 아직 고딩이라서. 가방 하나에 다 넣을 수는 있었지 뭐예요.”
‘집에 있는 물건을 다 갖고 왔다.’ 그 말이 의미하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하리라는 지금 이곳에서 살기 위해 짐을 싸고 온 것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최하안은 목을 빙빙 돌리며 결린 근육을 풀고 있는 하리라를 경계 1순위 대상에 올렸다.
매니저님을 오빠라고 부르고, 집에 있는 물건을 전부 다 싸서 이곳에 오고, 어리고, 예쁘기까지 해. 거기에 몸매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아름다워.
얼굴은 몰라도 신체 비율이나 각선미 등 몸매에선 하리라가 우위에 있었다.
물론 최하안도 베이글이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의 볼륨과 그에 대비되는 날씬한 몸매의, 하늘이 내린 육체를 갖고 있었지만 말보다 운동을 먼저 배운 하리라를 이길 수는 없는 법이었다.
“······.”
빠드득!
지켜줄 이가 없는 삶을 살아온 최하안에게 빛나는 외모는 저주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모로 지는 게 달가운 건 아니었다.
물론 최하안을 하리라와 비교했을 때 그녀가 밀리는 부분은 몸매뿐이었고, 그것도 아주 미미할 뿐인 데다가 분위기에 한해선 최하안이 분명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하리라가 아무리 힘든 인생을 보내왔다고 해도 강진혁조차 경악한 최하안과 비교하면 편안한 삶을 산 건 맞았으니까.
게다가 얼굴은 미미하더라도 최하안이 우위였기에, 사실상 두 사람의 외모는 컨디션에 따라 좌지우지될 정도로 대등한 수준이었다.
매니저님이 이곳으로 보냈다는 건, 이 애도 나처럼 연습생이 될 거라는 이야기겠지? 나보다 몸매도 좋고 어린 이 아이가 나와 같은 그룹의 멤버가 된다는 건가?
인생을 좀먹던 절망을 물리치고, 이제야 강진혁과 편안하게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최하안에게 하리라의 등장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그렇기에 최하안으로서는 무표정을 유지한 채 하리라를 향한 경계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예쁜 언니가 맞이해줄 거라고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건 너무 예쁜 거 아니야? 이 정도는 돼야 아이돌 하는 걸까? 나보다 예쁜 것 같은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데.
물론 하리라도 은연중에 최하안에게 경계를 하고 있었다.
강진혁피셜 최고의 반짝임을 지닌 원석인 최하안의 미모가 절로 그녀의 몸을 긴장시켰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외모만 뛰어난 것도 아니고,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사람을 위압하는 듯한 분위기가 최하안을 절벽 위에서 고고하게 피어난 한 송이의 꽃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살면서 자신이 가장 예쁜 줄 알았던 하리라로서는 눈앞의 최하안을 보며 긴장하고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
“······.”
서로 이유는 다르더라도 두 사람 다 잔뜩 긴장한 채 서로를 경계하고 있으니 숨 막히는 침묵이 이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
“······.”
“······.”
“······.”
그렇게 약 5분 정도, 수 싸움을 하는 무림고수처럼 서로를 응시하며 적막 속을 유영하던 두 사람 중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최하안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애. 매니저님이 보내서 왔다고 했었지!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강진혁을 오빠라고 부른 것에 너무 충격을 받아 뇌정지가 왔었지만, 지금의 최하안은 여유가 생겨 있었다.
덕분에 하리라가 자기소개를 했을 때 말했던 ‘강진혁이 보내서 왔다.’라는 말을 떠올릴 수 있었고, 자신이 지금 실수를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매니저님은 나를 믿고 이 아이를 보낸 걸 텐데. 이렇게 경계만 하고 안내도 못 하면 어떡하자는 거야!
강진혁의 믿음을 배신하는 건 최하안으로서는 결코 저지르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다행히 아직 강진혁은 오지 않았고, 푸대접을 한 것도 아니었기에 충분히 돌이킬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완전군장에 버금가는 무거운 가방을 들고 여기까지 걸어온 하리라를 5분 동안이나 세워둔 것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조치는 빠를수록 좋았다.
“·····저기.”
“네, 네?”
지금까지 침묵을 고수하던 최하안이 입을 열자 하리라는 깜짝 놀라 몸을 흠칫 떨었다.
왜 저렇게 놀라지? 내가 무섭나? 무서우면 안 되는데. 무섭게 대했다고 매니저님한테 이르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인데.
그냥 말을 걸었을 뿐인데 놀라 몸을 흠칫 떨며 반 발자국 뒷걸음질까지 치니, 하리라를 편히 대접해줘야 하는 최하안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최하안은 그 굳건한 무표정마저 조금 깨뜨린 채, 굉장히 어색하고 불안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씨, 씻을래?”
지금 하리라는 최하안을 불편하게 여기고 있으니 안심하고 쉴 수 있는 빈 방을 안내해주는 게 가장 좋은 선택지였겠지만, 사회성이라고는 쥐뿔만큼도 없는 최하안에게 그런 발상을 할 수 있는 재치는 없었다.
땀을 많이 흘린 것 같고 지쳐 보여 목욕을 권한 것 자체가 최하안이 생각해낼 수 있는 최선의 배려였다.
“가, 같이요?!”
하지만 워낙 밑도 끝도 없는 목욕 제안이었기에, 자신을 응시하는 최하안에게 커다란 위압감을 느끼고 있던 하리라는 그 배려를 다르게 받아들여버렸다.
“가, 같이? 어······ 네 마음대로 해.”
거기에 멈추지 않고 최하안도 특유의 떨어지는 사회성으로 하리라의 당황 가득한 되물음을 ‘목욕을 같이 하고 싶어 하는 건가?!’라고 해석해버렸다.
강진혁의 믿음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다짐했기에 최하안은 선택권을 하리라에게 넘겼다.
“그, 그러면 그럴까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리라는 최하안의 마음대로 하라는 말을 ‘눈치껏 알아서 잘 해라.’라고 받아들이고 말았다.
“그, 그래. 요, 욕실은 저기 복도 끝이니까. 아니, 아니지. 같이 씻을 거니까 같이 가면 되겠구나.”
“네, 넷. 같이 가면 돼요.”
“그, 그래. 옷은 갖고 온 거지?”
“네네. 지금 꺼낼게요!”
“으응. 나도 방에서 속옷이랑 가져올 테니까 옷 꺼내서 욕실에 들어가 있어.”
“네, 네 언니.”
결국 이렇게 충격과 공포의 혼욕이라는 결말을 맞이한 두 사람은 머릿속이 잔뜩 혼란해진 채 각자의 옷을 꺼내러 이동하게된 것이었다.
※※※
토옹!
수도꼭지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청아한 물소리와 함께 잔잔한 수면에 파문을 일으켰다.
하지만 고작 물방울 하나로는 커다란 파문을 만들어낼 수 없었고, 다시 수면은 원래 그리했던 것처럼 잔잔해졌다.
이곳은 욕실, 하루의 일과를 정리하고 더러움과 피로를 동시에 씻어내는 안식의 공간.
“······.”
“······.”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어떤 곳보다 불편한 공간이었다.
왜, 왜 이렇게 된 거지?
경계하고 주의해야할 대상과 함께 전부 발가벗은 채로 몸에 수건 한 장만 두른 채 같은 욕조에 들어가 있다니.
따뜻한 물로 가득 채워진 욕조에 하리라와 같이 들어오고 나서야 최하안은 이 상황이 이상하다는 걸 알아챘다.
하지만 하리라에게 만족스러운 대접을 해줘야 한다는 목적을 갖고 있는 그녀로선 이상하다 느끼고 있음에도 이 상황을 깨뜨릴 수 없었다.
대체 뭐야? 나 왜 처음 보는 언니, 그것도 엄청 예쁜 언니랑 같은 욕조에 들어가서 목욕을 하고 있는 거야?
이 상황이 이상하다 느끼고 있는 건 하리라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녀는 연예계 기수문화가 빡세다는 걸 알고 있었고, 최하안처럼 가만히 서있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압도하는 아우라를 뿜어대는 사람에게 밉보였다간 앞으로의 인생에 커다란 재앙이 닥칠 거라 생각하여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야말로 오해 속에서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
이 끔찍할 정도로 어색한 상황에서 먼저 입을 연 건 이번에도 역시 최하안이었다.
“·····그래서 매니저님은 지금 뭘 하고 계시길래 그, 하리라 양을 혼자 보내신 건가요?”
하지만 말주변은커녕 맞장구도 칠 줄 모르는 최하안이 할 수 있는 말은 강진혁에 대한 이야기 뿐이었다.
그래도 강진혁은 일면식도 없는 두 사람을 이어줄 수 있는 유일한 연결고리였기에, 이야기의 주제선택은 정답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리라 또한 그 질문을 듣고, 이제야 좀 숨이 트이겠다는 듯 반갑게 대답할 수 있었다.
“아, 오빠는 아마······.”
2.
“하아······ 하아······ 미친 새끼.”
하혁수 씨가 길바닥에 주저앉은 채 내게 욕지거리를 내뱉었지만, 내겐 그저 칭찬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칭찬 감사합니다.”
그래서 고맙다 인사하니, 하혁수 씨는 아직도 소리 지를 힘은 있었는지 목소리를 높여댔다.
“칭찬 아니야 이 새끼야! 막을 거면 좀 확실히 막든지! 굳이 타점이 터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막는 게 제정신으로 할 짓이냐?! 왜 그런 거야!”
“아, 그거요?”
나는 하혁수 씨가 지쳐서 나가 떨어질 때까지 그의 모든 발차기를 전부 막아냈다.
정확히 말하면 받아냈다고 하는 게 맞겠지.
하혁수 씨의 말대로 발차기가 가장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위치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린 다음, 그곳에 팔등을 끼워 넣어 막아냈다.
막더라도 힘이 다 전해지기 전에 먼저 발을 막거나 타점이 지나 힘이 흩어졌을 때 막아내는 게 훨씬 좋은 방어였겠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고 모든 충격을 전부 받아낸 이유는 하나.
“그래야 하혁수 씨 속이 좀 풀릴 테니까요.”
하혁수 씨의 분노를 효율적으로 해소시키기 위함이었다.
말 그대로 인간 펀칭머신이 되어줬다는 거지.
사람이 전력으로 휘두르는 주먹을 피하거나 흘리는 펀칭머신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펀칭머신을 이용하는 사람은 자신의 전력을 발휘하며 스트레스를 풀고, 쌓인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이다.
하혁수 씨의 전력을 전부 받아낸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허.”
내 대답을 들은 하혁수 씨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었지만, 그의 얼굴에선 아까와 같은 분노와 살의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건 약간의 후련함과 분노와 살의의 반동으로 생겨난 허망함 뿐.
나는 성공적으로 목적을 이룬 것이다.
“물론 팔은 더럽게 아프지만요. 아니 하혁수 씨 발차기 왜 이렇게 셉니까? 아저씨 맞아요?”
피멍이 든 게 확실했다. 아마 며칠간은 팔이 아파서 고생 좀 하겠지.
“미친놈이?! 내 발차기를 그렇게 막고도 안 부러졌으면서 뭐? 왜 이렇게 셉니까? 너 지금 나 기만하는 거냐?”
“그럴 리가요. 전부 제대로 받았지만, 제대로 막기도 했는데 이 정도면 하혁수 씨 발차기 진짜 쎈 거라고요.”
“아 됐어! 너 같은 괴물딱지랑은 이딴 걸로 말 섞기 싫다!”
그래도 고생한 보람은 있었다.
그 덕에 하혁수 씨를, 리라의 아버지가 살인자가 되는 걸 막을 수 있었으니까.
“그래요? 그럼 이 쓸데없는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슬슬 중요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뭔 중요한 이야기.”
자, 이제 가장 큰 목표도 달성했겠다. 본론으로 들어갈 시간. 큰 그림의 밑그림은 전부 그려진 상황이니 밑그림을 따라 디테일만 채우면 된다.
“뭐긴요. 복수 준비해야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스위티 리벤지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