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화
깡패가 학교폭력에 대처하는 방법 (13)
1.
“꼭 이런 뒷골목에 쭈그려 앉아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냐? 카페도 있고 식당도 있잖아. 밤이라 춥다고.”
“이제부턴 사람들이 들으면 신고당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할 거니까요.”
“······그러냐? 그렇담 어쩔 수 없지.”
사실 카페를 가든 식당을 가든 은밀하게 이야기를 할 장소는 있기 마련이지만, 그냥 하혁수 씨는 이런 곳이 어울렸다.
절대 발차기를 막은 팔이 아파서 하혁수 씨 고생 좀 해보라고 건물에 들어가지 않은 게 아니다 이 말이야.
“으흐으······ 땀 식었더니 더럽게 춥네 진짜. 빨리 끝내!”
꼬시다. 감기나 걸려버려라.
속생각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주의하며, 나는 하혁수 씨의 닦달에 친절히 응했다.
“네,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그래, 그런데 그 전에 하나 짚고 넘어가야할 게 있다.”
추워서 빨리 끝내라고 했으면서 짚고 넘어갈 게 있다고?
“뭔데요?”
대체 얼마나 중요한 걸 짚고 넘어가려고 하는 건지 궁금해 되물으니, 하혁수 씨의 입에서 너무나 진지한 목소리가 나왔다.
“네가 아까 나 화를 돋우려고 했던 말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짜냐?”
아, 그거. 그래, 그건 짚고 넘어갈 만하지.
“네가 말한 것들과 내가 겪은 너는 너무 달라. 그러니까 물어보는 거야. 네가 나한테 했던 말들 다 거짓말이지?”
하혁수 씨는 발차기를 날리면서 나한테 정이 들었는지 내가 아까 했던 말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다.
역시 육체의 대화만큼 상대방과 깊은 교류를 할 수 있는 게 없다니까.
나는 하혁수 씨가 더 이상 내게 적의를 향하지 않는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며 그의 질문에 진실하게 답했다.
“리라가 상품이라고 한 거랑 제대로 굴리겠다는 말 빼면 틀린 말은 없어요.”
“뭐?!”
“저는 깡패에 전과자고, 저희 기획사는 전직 깡패가 세웠고, 사장님은 몰락한 프로듀서에 유일하게 소속되어있는 연예인이라고는 이름 하나 알려지지 않은 무명 연예인이에요.”
내 담담하고 솔직한 대답에 입을 반쯤 벌리고 멍하니 나를 바라보던 하혁수 씨는 잠시 뜸을 들이다, 뱉었던 질문에 작게 살을 붙였다.
“시, 시체유기도? 유기왕이라고 불렸던 것도?”
이번 질문은 오해가 이어질 시 관계의 파탄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기에 중의적인 의미가 담긴 애매모호한 대답이 아닌 확실한 대답을 해야 했다.
“아 그거요? 시체는 시체고 유기왕은 유기왕인데 사람 시체는 처리해본 적 없어요. 산에 살 때 잡은 짐승들 시체를 제가 처리했었거든요.”
“사, 산에?”
“네, 좀 북쪽에 있는 높은 산이요. 어렸을 때 거기서 살았어요.”
“그, 그렇군. 그러면 마지막이다. 너한테 범죄이력이니 깡패니 그런 걸 물어봤자 원하는 대답은 못 들을 것 같고. 간단한 질문을 하나만 하마.”
“네, 하세요.”
하혁수 씨는 조금 긴장한 듯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더니, 원하는 대답이 나오길 간절히 바라는 목소리로 내게 질문을 던졌다.
“떳떳한 인생을 살았나?”
떳떳한 인생. 이 질문엔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분명 전과자고 깡패이며 내 모든 행동은 사회의 악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똑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나는 분명 똑같이 행동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하혁수 씨의 질문에 당당히 답을 할 수 있었다.
“그럼요. 앞으로도 쭉 이렇게 살 겁니다.”
“······하, 그러냐. 그러면 됐다.”
만족스러운 대답을 얻은 하혁수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그나저나 북쪽에 있는 산이라. 백두산을 말하는 건가? 그럼 이 자식 설마 간첩이라는 거야? 확실히 싸움도 괴물처럼 잘하고 임기응변에도 능한 걸 보면 전문적으로 그런 걸 배운 것 같기는 한데······ 에이 아니겠지 설마.’하고 중얼거렸다.
뭔가 흘려듣기 힘든 중얼거림이었지만 어쨌든 하혁수 씨의 얼굴에선 더 이상 내 존재에 대한 우려가 보이지 않았고, 오해도 풀었으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 일만 남아 있었다.
“······자, 그럼 제가 하혁수 씨한테 인정도 받았겠다. 이제 리라의 매니저 되는 입장에서 어디 한 번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그걸 인정하진 않았어 임마! 네가 우리 리라 인생 평생 책임질 거 아니면 아이돌은 절대 못 시킨다!”
“오. 그러면 책임지면 시켜주나요? 좋아요. 책임질게요.”
하안이와 리라가 멤버로 있는 걸그룹이 망할 리도 없을뿐더러, 혹시 망하더라도 리라 한 명 쯤 먹여 살리는 건 솔직히 나한텐 일도 아니었다.
돈 버는 방법은 정말 다양하고, 그 중에 나만이 할 수 있기에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도 정말 많으니까 말이지. 그러니 만에 하나, 억에 하나 리라가 망하더라도 뭐 충분히 책임져줄 수 있어.
“그럼 책임질 테니까 리라 아이돌 시켜주는 겁니다?”
“허······.”
내가 근거 있는 자신감을 근거로 즉답을 내놓자 하혁수 씨는 잔뜩 벙쪄서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너, 너 같은 놈한테 우리 리라를 줄 수 있을 것 같냐?!”
그러더니 갑자기 소리를 빽 지르며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아까는 책임질 거 아니면 아이돌 못 시킨다고 그랬으면서 이제는 못 준다고 하네.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걸까.
게다가 하혁수 씨의 말에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할 어폐가 있었다.
나는 진지한 목소리로 그가 내뱉은 말에서 틀린 부분을 찾아 지적했다.
“하혁수 씨, 리라는 하혁수 씨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그러니 하혁수 씨가 줄 수 없다고 말하는 건 애초에 잘못되었다고요.”
이 말을 뱉자, 당연하게도 돌아오는 건 밤거리를 쩌렁쩌렁 울리는 고성이었다.
그래도 욕은 안 섞인 걸 보니 하혁수 씨는 이제 날 싫어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거면 됐지 뭐.
2.
하혁수 씨와 복수준비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새벽에 더 가까운 굉장히 늦은 밤이었다.
이런 시간에 깨어있는 사람은 백수거나 생활패턴을 조진 웹소설 작가 정도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가씨가 있는 해외는 지금쯤 낮일 텐데, 점심 먹고 있으려나?
삑삑삑삑. 띠리리릭.
간만에 아가씨를 떠올리며, 아가씨의 생일인 0707을 키패드에 입력하고 문을 열었다.
“다녀왔습니다. 어우 빡세라.”
나는 이제 더 이상 혼자 살지 않기에 현관에 들어서며 인사를 할 수도 있다.
물론 늦은 밤이고 하안이나 리라나 오늘 하루 종일 힘을 많이 써 피곤했을 테니 깨우지 않게 목소리를 낮춰야했다.
이제 씻고 나도 자야지. 그나저나 지금 자도 하혁수 씨랑 세운 일정에 맞추려면 몇 시간 못 자겠네. 쯧. 좀 일찍 끝내고 올걸. 괜히 실랑이를 벌이다 길어져서 이렇게 됐잖아.
그렇게 생각하니 하혁수 씨에 대한 짜증이 살짝 올라왔다.
아무튼 하혁수 씨가 문제야. 진짜 하혁수 씨 감기 걸려버렸으면 좋겠다. 아닌가? 성공적으로 계획을 완수하려면 하혁수 씨가 만전의 상태여야 하나?
뭐, 오늘처럼 추운 겨울밤에 바깥에서 오랫동안 붙잡아둔 탓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때 가서 해결하면 될 일이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 빨리 씻고 침대에 들어가서 디비 자는 것뿐.
“퇴근하자마자 샤워를 하는 삶······. 굉장히 부지런할지도?”
성실한 직장인의 표본이라고도 할 수 있는 ‘퇴근하자마자 씻으러 들어가기.’를 하는 나 자신에 뿌듯해하며, 나는 그렇게 욕실 문을 열었다.
“어······ 어어?!”
그리고 몸에 수건만 두른 채, 욕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있는 하안이와 리라를 발견할 수 있었다.
“뭔데 이거!”
※※※
“······흐으으.”
“······아으, 어지러워. 세상이 핑핑 돌아요······.”
두 사람은 욕실 바닥에 쓰러져있긴 했지만, 다행히 의식은 있었다.
말을 들어보니 목욕을 하다가 나갈 타이밍을 놓쳐서 서로 눈치만 봤다나 뭐라나.
그러다 내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에 동시에 욕조에서 몸을 일으켰고, 그렇게 나오다가 서로 발이 걸려서 바닥에 넘어진 것이다.
나는 마침 두 사람이 바닥에 대차게 엎어진 그 순간에 욕실 문을 열고 들어온 거였고.
“흐으······ 흐으으······.”
“아윽······ 돌겠다 진짜루······.”
대체 왜 두 사람이 같이 목욕을 한 건지, 그냥 나오면 되는 걸 왜 현기증이 올 때까지 눈치까지 보고 있었던 건지 궁금한 건 정말 많았지만 지금 상태의 두 사람에게 물어봐봤자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지금은 그냥 쉬게 두는 게 맞는 것 같네.
위이이잉-
겨울에 열을 식히기 위해 선풍기를 꺼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나저나 한겨울 밤에 선풍기를 꺼내 쓰다니. 이게 진짜 사치가 아닐까?
그런 쓸데없는 잡생각을 하며, 씻기 위해 욕실로 돌아가려던 찰나 리라가 힘이 다 빠진 숙주나물무침 같은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오빠······ 아빠는요······?”
리라가 힘겹게 내뱉은 질문에 나는 안심할 수 있도록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아빠 노릇하러 가셨어.”
3.
같은 시각, 하혁수는 모든 불이 꺼져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태권도장 건물에 몰래 잠입했다.
물론 잠입이라고 말하기엔 어폐가 있는 것이 이곳은 하혁수가 일하는 직장이고, 그는 이곳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고 예비열쇠까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늦은 밤에 들어오는 건 처음이었고, 관장 몰래 어떤 물건을 가지러 온 것이기에 하혁수는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잠입이라 여겼다.
삑. 삐빅. 삑.
계단을 올라 닫힌 태권도장의 문을 열자 새까만 어둠이 하혁수를 맞이했다.
원생으로 가득 찬 밝은 태권도장과 완벽히 대비되는 싸늘하고 조용하며 어두운 태권도장의 모습에 하혁수는 자기도 모르게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강진혁을 욕했다.
“······미친 새끼. 어른한테 이딴 짓이나 시키고. 진짜 깡패가 따로 없다니까.”
하지만 하혁수는 불만 가득한 중얼거림엔 겉보기에만 퉁명스러울 뿐 전과 같은 적의는 남아있지 않았다.
자신이 선을 넘는 행동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방적으로 발차기를 받아내는 강진혁의 모습에 그를 새로 봤기 때문이었다.
전부 다 그놈 생각대로 된 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놈이 날 막아 세우지 않았으면 나는 살인자가 됐을 테지. 리라는 살인자를 아버지로 둔 딸이 됐을 거고.
다시 생각해보면 전신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위험한 순간이었다.
이제 고3이 되는 딸을 혼자 남겨두고 떠날 뻔했으니까.
그 참사를 자신의 모든 적의와 분노를 묵묵히 받아내는 것으로 막아준 강진혁이 하혁수는 너무나 고마웠다.
성격이 워낙 모난 터라 표현은 절대로 할 수 없었지만.
“······흥.”
퉁명스럽게 콧바람을 내뱉으면서도 하혁수는 강진혁이 시킨 일들을 착실히 수행해나갔고, 관장실 책상 서랍에 놓여있는 그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좋아, 이제 나가자.
목표로 했던 물건을 손에 넣은 하혁수는 어둠으로 뒤덮인 왔던 길을 더듬으며 조심스럽게 태권도장을 빠져나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니 태권도장에서 대체 무슨 물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