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3화
깡패가 학교폭력에 대처하는 방법 (14)
1.
“수고하셨어요. 그럼 약속했던 시간에 뵐게요.”
띡.
씻고 나오니 하혁수 씨에게서 물건을 챙겼다는 전화를 받았다.
이제 물질적인 준비는 전부 마쳤으니 , 하혁수 씨가 복수준비를 위해 할 일은 여기서 끝이었다.
그럼 이제 나만 준비를 끝내면 되는 거구나.
내가 챙겨야하는 마지막 준비물을 위해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의 문고리를 잡았다.
하지만 내가 문고리를 돌리는 것보다 반대쪽에서 문고리를 돌리는 것이 더 빨랐다.
“오빠, 저 잠시 들어가도 돼요?”
그리고 문이 열리며, 들어가도 되냐는 질문과 함께 리라가 문을 열고 내 방에 들어왔다.
“저도 들어갈게요 매니저님.”
어째서인지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리라를 노려보고 있는 하안이는 덤으로 달고 말이다.
허락도 안 했는데 이렇게 막 들어올 거면 들어가도 되냐고 왜 물어보는 걸까.
“오, 오빠 침대는 우리 것보다 딱딱하네요? 앉기 편한 느낌이랄까.”
“이게 매니저님 침대······ 따뜻해. 매니저님의 온기가 느껴진다.”
들어오는 걸로도 모자라 이불을 걷고 침대 위에 앉아 침대를 품평하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그냥 그런 약한 불만이 피어났다.
아니, 아니지. 아가씨는 물어보지도 않고 벌컥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잖아. 아가씨에 비하면 두 사람은 엄청 예의바른 거지.
하지만 아가씨의 경우를 떠올리니 불만은 눈 녹듯이 사르르 사라졌다.
자고 있는데 갑자기 문 열고 들어와서 이 침대에서 잘 테니까 알아서 하라고 했을 때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니까.
그래서 비몽사몽한 상태로 나가서 빈 방에 들어가 자니 10분마다 나를 따라와 침대를 차지했었다.
결국 혼자 누울 수 있는 소파에 가고 나서야 잠에 들 수 있었고, 그 다음날 아가씨는 하루 종일 기분이 나쁜 상태였지. 그 사춘기 시절 아가씨에 비하면 이 두 사람은······.
“······오빠, 혹시 불편하세요?”
“저희가 불편해요 매니저님? 불편하면 말해요.”
“······아, 아니야. 안 불편해 하나도.”
“그럼 됐어요.”
“불편하면 꼭 말해요. 아시겠어요?”
“으응.”
뭔가 말투는 조금 거북하지만, 그래도 아가씨에 비하면 예절천재들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먼저 찾아가려고 하기도 했으니까.”
이야기를 나누기엔 늦은 밤이지만, 타이밍 좋게도 리라가 깨어있는 걸 확인했기에 가서 내일 있을 일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했었다.
리라도 무슨 이야기를 할지 대충 예상을 한 듯 진지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일단 리라의 상처를 건드릴 수 있는 민감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나는 하안이에게 양해를 구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저기·····.”
“이 야밤에? 매니저님이 저를요?”
하지만 하안이가 먼저 착각 섞인 이상한 소리를 해 나가달라는 말을 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아니 하안이 너 말고 리라를.”
“리라는 미성년자예요!”
“·····그거야 당연히 알고 있는데.”
“아니 알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하안이를 보니, 처음 만났을 때의 하안이와 굉장히 달라져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벌써 리라라고 성 떼고 부르는 사이가 된 건가. 하긴 같이 목욕도 했으니 빨리 가까워지기도 쉬웠겠지. 둘이 엄청 친해져서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동료가 됐으면 좋겠다.
하안이와 리라는 둘 다 엄청 예쁘고 잘났지만 안타까운 이유로 인해 친구라고는 한 명도 없는 아싸이기도 했다.
그러니 둘이 친해져 서로가 서로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준다면 매니저인 나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 되겠지.
하안이와 리라가 손을 잡고 놀러다니는 광경을 상상하고 괜히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나는 하안이의 말을 무시한 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무튼 리라야. 지금부터 내일 나랑 하혁수 씨가 무슨 일을 할 건지 설명해줄 건데. 그러려면 네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거든. 괜찮아?”
부외자인 하안이가 있는데 이런 이야기를 꺼내도 되냐고 돌려서 물었다.
그러자 리라는 하안이를 힐끗 쳐다보더니 흣. 하고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씻으면서 하니 언니한테 제 이야기 다 했어요. 하니 언니 이야기도 다 들었고요. 하니 언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까지 다. 뭐, 어쩌다 오빠를 만나게 된 건지는 말 안 해줘서 못 들었지만 아무튼 우리는 비밀을 공유한 사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괜찮아요.”
리라는 몰라도 하안이가 과거이야기를 털어놨을 줄이야. 굉장히 의외네.
“되게 빨리 친해졌네. 별명까지 붙일 정도면.”
“하안이 언니니까 하니 언니예요. 되게 귀엽죠! 그나저나 저는 친해지고 싶은데 언니는 아직 제가 불편한가 봐요.”
리라는 옆에서 내 침대를 야릇한 손길로 쓰다듬고 있던 하안이에게 폭 기댔다.
그러자 하안이는 자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리라를 그대로 밀어내며 굳은 표정을 지었다.
“······매니저님, 얘 부담스러워요.”
지금은 친구 하나 없는 학교공인왕따지만, 리라는 한때 무리를 이끌었던 인싸 중의 인싸였다.
그에 반해 하안이는 열일곱 살부터 지금까지 온갖 풍파를 다 버텨내며 인간에 대한 신뢰와 기대를 잃은, 본투비아싸였고.
“아 왜요! 언니도 아까 목욕하면서 저랑 가깝게 지내고 싶다고 했잖아요!”
“그건 매니저님의 믿음에 부흥하기 위해서지 너와 친해지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야.”
“헐, 되게 충격인데 이거. 우리 비즈니스 관계예요······?”
“응.”
두 사람의 성향차이가 눈앞에서 확연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래도 나름 궁합은 좋아 보이니, ‘혹시 두 사람이 잘 안 맞으면 어쩌지’하며 쌓인 걱정이 녹아내렸다.
리라가 괜찮다고 대답도 해줬겠다 나는 가벼워진 마음으로 입을 열어 내일 벌어질 일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시작했다.
“일단 리라야, 내가 하혁수 씨랑 이야기를 해보고 결정한 건데 생각 있으면 너도 같이 해도 돼.”
“네? 어······ 뭐를요?”
“복수.”
“······복수? 리벤지?”
“응, 리벤지.”
“무슨 복수를, 누구한테요?”
“네 복수. 금덕수인지 뭔지 하는 양아치새끼랑 그놈 뒷배로 있는 금일파, 그리고 그 놈 따라다니면서 너 괴롭혔던 따까리 새끼들한테 할 거야.”
“······.”
드디어 복수를 할 수 있다는 내 말에 리라는 깊은 감명을 받았는지 입을 반쯤 벌린 채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하, 내 요약은 역시 완벽했던 것 같구만.
어쩌다가 하혁수 씨와 함께 복수를 하게 되었는지까지 그 과정을 설명하려면 이야기가 너무 길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앞뒤 다 자르고 복수를 입에 담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지루하지도 않고 이해하기도 쉬운 완벽한 요약을 실행한 것이다.
물론 이렇게만 말하면 조금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기에 나는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아참. 하안아, 내일 리라 복수하러 갈 건데 너도 올래?”
이게 옳게 된 어른의 배려지. 하안이도 이 자리에 있는데 하안이 빼놓고 나랑 리라 둘이서만 아는 얘기 하면 소외감 느낄 수도 있잖아. 소외감 한 번 느끼기 시작하면 관계적으로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물론 이 말에 ‘그러죠 뭐.’하고 대답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안이는 바른길엔터테인먼트의 공식 연습생이었고, 떨리는 근육을 보면 오늘 꽤 고생을 한 것처럼 보이니까.
게다가 연습은 매일 해야 느는 법이고, 하안이는 완전 초심자라 지금이 제일 중요한 시기야. 그러니 따라올 수 있을 리가 없지.
하안이가 소외감을 느끼지 말라고 예의상 물어본 것일 뿐 데려갈 생각도 없다.
그리고 하안이도 눈치가 있으면 내가 배려해준 거라는 걸 알고 안 가겠다 말해주겠지. 트레이닝이라는 더 중요한 일이 있기도 하고 말이야.
“그러면 매니저님 내일 그 깡패들이랑 싸우겠네요?”
“응? 그야······ 말만 해서 들을 머리는 없을 것 같으니까. 아무래도 그렇게 되겠지?”
“그럼 갈래요.”
“어?”
하지만 내가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었다.
“매니저님 싸움구경을 어떻게 참아요. 트레이너 선생님한테는 사실대로 복수하는 거 구경가서 오늘 연습은 못 한다고 말하면 되니까. 괜찮아요.”
하안이는 사회성이 바닥을 치기에, 이런 쪽으론 눈치가 전혀 없다는 것을 말이다.
······음, 조금 곤란한데. 그렇다고 내가 먼저 올 거냐고 물어봤는데 이제 와서 그냥 안 오면 안 돼? 하고 말할 수도 없잖아. 그랬다간 자길 갖고 논 거냐고 화를 낼 수도 있고, 화를 내지 않더라도 마음의 상처는 입겠지.
그러니 어쩔 수 없었다. 데려가는 수밖엔.
나는 앞으로 말조심을 하자 다짐하며 여전히 입을 반쯤 벌린 채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리라에게 멋쩍게 말했다.
“하안이도 간대. 그럼 내일 셋이 같이 가면 되겠다.”
그러자 리라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는지 지금껏 참고 있던 목청을 힘껏 터뜨렸다.
“뭘 드라이브 간다는 듯이 그런 말을 하는 건데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태클솜씨였다.
나중에 데뷔해서 예능 나가면 활약 좀 하겠는데.
역시 리라는 내가 인정한 최고의 아이돌이 될 재목이었다.
2.
“진짜, 진짜 말도 안 돼. 도와달라고 말은 했지만 이런 식으로 도와줄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고······.”
아직 해도 제대로 뜨지 않은 이른 새벽, 쪽잠만 겨우 자고 일어난 하리라는 자신이 탈 차를 보고 무언가 생각과는 다르게 일이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뭐하고 있어 리라야! 빨리 안 타면 늦는다! 아침 먹고 시작할 거라 빨리 가야해!”
“그래 리라야, 아빠가 잘하는 기사식당 아는데 거기 진짜 맛집이라 새벽부터 사람 엄청 많아. 줄 안 서고 먹으려면 빨리 가야해. 그러니까 빨리 타.”
운전석에 앉은 하혁수와 조수석에 앉은 강진혁이 태권도장 원생용 봉고차를 탄 채 자신을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야, 이거 진짜 괜찮은 거 맞지? 야밤에 차키 훔쳐서 나온 걸로도 모자라서 이렇게 멋대로 써버리는 거 관장한테 걸리면 나 잘린다고.”
“괜찮아요. 제가 커버 쳐드릴 수 있어요. 혹시나 잘리더라도 저랑 진짜 친한 형님네 회사에 일자리 주선해드릴 수도 있고요.”
“그래? 그래, 너는 앞으로도 나랑 계속 얼굴 볼 테니 거짓말은 안 하겠지.”
“그럼요. 설마 제가 하혁수 씨 통수를 치겠어요? 우리 리라 아버님이신데.”
“우리 리라? 리라가 왜 너희 리라야! 말은 똑바로 해 아직 너희 리라 아니야! 계약서도 안 썼구만!”
“그럼 ‘우리 리라(진)’이네요.”
“그래. 그게 맞지.”
······그냥 복수하지 말까.
하리라는 진심으로 그런 고민을 했다.
물론 고민만 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리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