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4화
깡패가 학교폭력에 대처하는 방법 (15)
1.
[······주소는 문자로 보내 놨다. 그런데 아침도 아니고 해도 안 뜬 새벽에 갑자기 사람 찾아달라고 전화 거는 건 아무리 그래도 좀 아니지 않냐?]
“급한 일이라서요. 그리고 형님 아니면 제가 누구한테 이런 부탁을 하겠어요? 저를 동생으로 두고 있는 업보라고 생각하십쇼.”
[진짜 싸움만 못했으면 매일같이 개팼을 텐데. 암튼 나 이제 잔다.]
“네, 주무세요. 일 끝나면 전화 드릴게요. 그때 밥이나 먹어요.”
띡.
“알겠다는 말도 없이 끊어버리네.”
하긴 요즘 내가 먼저 먹자고 약속을 잡아놓고 연속으로 파토를 냈으니 삐칠 만도 했다.
형님은 생긴 건 세상에서 가장 마음이 넓을 것 같이 생겨가지고 은근 속이 좁으니까 말이야.
“주소 받았냐? 뭐 그 정보통이라는 사람 믿을만한 거야?”
삐친 형님을 어떻게 풀어주지 고민하고 있던 그때, 옆의 운전석에 앉아 운전을 하고 있던 하혁수 씨가 질문을 해왔다.
“네, 믿을만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그 금덕수라는 양아치새끼도 이 동네 사람이고, 금일파도 이 동네에서 이름을 날리는 조직이니까 형님이 보내준 정보가 틀릴 일은 없을 겁니다.”
이성경호, 겉으로는 평범한 경호업체처럼 보이지만 그 실체는 평범한 경호업체가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하는 일은 평범한 경호업체가 맞지만 구성하고 있는 인원들이 평범한 경호원들이 아니라고 말하는 게 맞겠지.
“형님 부하직원들이 이쪽으로는 정말 빠삭하거든요. 특히 이 동네에서 벌어지는 일엔 더더욱.”
이성경호의 직원들은 전부 부당한 폭력에는 치를 떠는 깡패혐오증 중증에 걸린 사람들이다.
내가 교도소에 들어가고 나서 정도파를 해체한 형님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만난, 형님과 뜻이 맞는 사람들.
즉 깡패들이 자신들의 알량한 힘만 믿고 설치는 것에 극도의 혐오를 느끼는, 그런 깡패들을 조지기 위해서라면 폭력을 쓰는 것도 불사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형님을 필두로 그들이 힘을 합쳐 만들어낸 곳이 바로 이성경호.
전국에서 깡패 피해자들에게 의뢰를 받아 자신들을 괴롭히는 깡패조직을 완전히 박살내버리는 일을 하는 곳이 바로 이성경호였다.
물론 뜻이 맞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고, 형님처럼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이 더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사실상 그 전력의 절반 이상을 형님이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 설립목표였던 전국깡패소탕도 현실의 벽에 막혀 실행하지 못했고, 그나마 이성경호의 이름으로 피해를 받는 가게들을 지켜주는 일들을 하고 있지.
무튼 그런 연유로 이성경호는 깡패조직이 아님에도 깡패들보다 더 뒷세계를 잘 알고 있는 회사였다.
게다가 금일파가 활동하는 동네는 이성경호 본사와 그리 떨어지지 않은, 비유하자면 앞마당과 같은 곳.
그렇기에 금일파와 금일파를 등에 업은 양아치 금덕수 및 딱까리들이 어디서 뭘 하는 지 정도는 너무나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자, 밥도 먹었고. 배도 부르고 해도 떴겠다. 그럼 슬슬 시작해볼까요?”
“한 놈도 빠짐없이 다 잡으려면 바쁘게 움직여야겠지. 그래 가자! 주소는 어디냐!”
“제가 찍을게요. 어디냐면······.”
“······저기 오빠.”
출발 전 각오를 다진 후 하혁수 씨 핸드폰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려던 그때, 뒷자리에 앉아있던 리라가 말을 걸어왔다.
“어? 왜?”
“하나 확인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응. 뭔데?”
대화를 위해 고개를 뒤로 돌려 마주본 리라의 얼굴은 어째서인지 불안하게 굳어있었다.
지금부터 금덕수 패거리들에게 복수를 한다는 것에 대한 불안이 아닌, 다른 이유 때문에 생긴 불안이었다.
아까까진 리라가 허탈한 표정이긴 했어도 은근히 복수에 기대감을 품고 있는 게 보였는데. 갑자기 안색이 바뀌었어. 대체 뭐 때문에 불안한 거지?
머릿속에 떠오른 그 의문은 리라가 트렁크를 가리키며 한 질문으로 해소되었다.
“밥 먹고 차에 타면서 봤는데······. 트렁크에 왜 그런 게 있어요? 그것도 수십 개나?”
“트렁크? 트렁크에 있는 그거라면······. 아 그거?”
“네. 그거요.”
“그거야 뭐 당연히······.”
2.
퍽! 퍽! 퍽! 퍽!
“흐엑, 헥. 끄으으······.”
“어? 혹시 힘드냐?”
“아, 아닙니다!”
“근데 왜 헐떡거려. 너 담배피지.”
“네, 넵.”
“담배를 피니까 그거 좀 움직였다고 숨이 차지. 담배 끊어 임마. 일찍 뒤지기 싫으면.”
“흐흑, 아, 알겠······.”
“아니, 아니지? 어차피 오늘 여기서 끝나겠구나? 그럼 뭐 지금까지 담배 핀 게 억울하진 않겠네. 담배 때문에 병 걸려서 죽는 건 아닐 테니까.”
“아, 아흐으으윽!”
왜, 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건데!
옆머리에 번개 모양으로 스크래치를 내고 두 팔에는 선명한 타투를 새긴, 누가 봐도 양아치처럼 보이는 열아홉 미성년자 유범수는 지금 자신에게 벌어지는 이 순간이 너무나 두려웠다.
그냥 항상 그랬던 것처럼 아지트에서 당구 좀 쳤을 뿐인데.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진 거냐고!
유범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자신이 속해있는 골드선 크루의 정기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러던 도중 길거리에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통통한 애새끼가 있어 꽁돈을 좀 챙길 수 있었고, 골드선 크루의 헤드 금덕수를 기다리며 크루원들과 당구도 쳤다.
운이 좋게도 오늘따라 큐대도 잘 감겼기에 같이 있던 친구들의 게임 비까지 쓸어 담을 수 있었다.
골드선 크루의 헤드인 금덕수가 오면 접대를 해줘야 하기에 그 전에 최대한 벌어놓을 생각이었던 그는 빠르게 다음 게임으로 넘어가자며 친구들에게 재촉을 했고.
그 다음 눈을 뜨니까 여기였어.
눈을 떠보니 주변이 나무로 가득한, 차가 지나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완벽한 첩첩산중에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야, 거 빨리빨리 안 하냐?’
‘아, 아닙니다! 빨리 하겠습니다 형님!’
‘형님? 이 양아치새끼가 뒤질라고. 누가 니 형님이야!’
‘죄, 죄송합니다!’
유범수가 그 다음으로 발견한 것이 바로 지금 자신의 옆에서 존나게 무서운 무표정을 짓고 있는, 검은 정장의 깡패 강진혁이었다.
이기기 위해선 기선을 제압해야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유범수는 강진혁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어이, 거 아저씨. 씨발 여기가 어디요?’하며 되도 않는 가오를 잡았고, 당연하게도 되도 않는 허세엔 철저한 교육이 뒤따랐다.
그렇게 온순해진 뒤 강진혁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니, 그곳엔 자신과 같이 당구를 치며 금덕수를 기다렸던 골드선 크루의 크루원들이 있었다.
그냥 있는 게 아니고, 양 손에는 커다란 삽을 하나씩 든 채로.
‘왜, 왜? 왜 다들 여기에 있는 거야? 그것도 존나게 겁에 질린 채로?’
이해를 할 수 없는 광경에 멍하니 서있는 유범수를 본 강진혁은 그의 뒤통수를 한 대 후리고 크루원들이 들고 있는 것과 같은 삽을 건넸다.
‘새끼야. 니가 제일 안 일어나서 친구들이 기다리잖냐. 이제야 시작할 수 있겠네.’
그리고는 무의식적으로 삽을 받아 든 유범수를 그의 크루원들 곁으로 보낸 뒤,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느껴질 정도로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자, 이제 거기 파.’
그렇게 유범수의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날이 시작된 것이다.
퍽! 퍽! 퍽! 퍽! 퍽!
얼핏 들으면 사람을 때리는 것처럼 들리는 이 소리는 사람이 아닌 땅을 때리는 소리였다.
정확히 말하면 삽으로 굉장히 단단한 땅을 팔 때 나는 소리였다.
퍽! 퍽! 퍽! 퍽! 퍼억!
그들의 조국, 대한민국의 토양은 다른 나라에 비해 어이가 없을 정도로 단단한 편에 속했다.
얼마나 단단하냐면 한국 전용 땅 파는 법이 따로 개발되었을 정도로 단단했다.
그런 단단한 땅을 살면서 삽질이라고는 예쁜 여자에게 추근덕댈 때밖에 해본 적이 없는 골드선 크루의 양아치새끼들이 수월하게 팔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흐억, 헉, 흐으으. 끄으으으.”
“흐에엑! 겍! 헤엑! 흐어억!”
“으억! 우욱! 흐으······ 흐어억!”
평소에 자기보다 약하거나 혼자 있는 애들을 무리지어 몰려가 때리고 괴롭히며 술담배나 즐기던 양아치들은 당연하게도 자그마한 구덩이 하나 만들기도 전에 체력의 한계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체력이 한계에 달했다고 한들 쉴 수도 없었다.
“어? 미친 새끼들이 놀아? 내가 땅을 파라고 말했는데. 놀아?”
“흐이이이이익!!! 죄, 죄송합니다!!!!”
“애들 팰 힘은 차고 넘치는데 땅 하나 팔 힘은 없냐? 그럼 뒤지게 패도 저항할 힘이 없겠네? 그래 이참에 뒤지게 맞자 그냥!”
“흐아아아악!!!! 파, 파겠습니다!”
인간의 탈을 쓴 마귀가 그들의 바로 옆에서 밀착감시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대체 어째서 저런 괴물이 우리한테 이런 짓을 하는 거냐고!
강진혁에게 깝쳤다가 개처발렸던 유범수도 크루원들과 만났을 때는 다시 한 번 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수십 명이나 되는 크루원 전원이 모였고, 손에는 흉기로 사용할 수도 있는 묵직한 삽이 한 자루씩 들려 있었다.
그들 혼자서는 강진혁에게 초 단위의 시간도 소요되지 않고 털려버린 양아치잡몹에 불과했지만, 그 순간엔 삽이라는 연장으로 무장한 골드선 크루였다.
그렇기에 골드선 크루는 연장과 쪽수라는, 싸움에서 당연히 통용되는 두 가지 진리를 믿은 채 강진혁이라는 거대한 적을 상대로 일시에 돌격했고.
‘그래, 왜 안 덤비나 했다.’
1분도 되지 않는 시간에 전신에 성한 곳이 없는 상태가 되어 머릿속에서 반항이라는 단어를 지우게 되었다.
“히, 히이익·····.”
털썩!
그 참담하고 참혹했던 광경을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유범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버렸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하리라를 괴롭힌 금덕수의 딱까리 양아치새끼가 바닥에 앉아서 쉬는 꼴을 볼 수 있을 리 없었던 강진혁은 두 눈에 살의를 번들거리며 그의 앞에 섰다.
“앉아? 앉아서 쉬어? 야, 너는 지금 이 상황이 장난 같냐?”
“아, 아닙니다! 아니에요!”
강진혁의 질문에 유범수는 퍼뜩 일어나 고개와 양손을 같은 방향으로 최선을 다해 휘휘 저었다.
유범수는 그렇게 전력을 다한 부정, 살기 위한 부정을 하며 어떤 말을 해야 목숨을 연장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 그래. 그거야! 그게 궁금했다고 하자!
사람은 극한의 상황에 몰리면 살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사용해 최선의 답을 내놓는 경우가 있다.
지금 유범수의 경우가 바로 그러했고, 그는 살기 위해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한 가지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어, 어디까지 파야할지 고민이 돼서 한 번 보려고 잠깐 자세를 낮춘 겁니다! 절대 쉴 의도는 없었습니다!”
당연히 변명이었지만 이것이 유범수가 떠올린 최선의 수였다.
“······.”
“······.”
그 말을 뱉은 후, 유범수에겐 영원처럼 느껴지는 침묵이 스쳐지나갔고, 그는 마른 침조차 삼키지 못하며 죽음의 공포에 벌벌 떨었다.
하지만 이내 강진혁의 얼굴에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이해의 감정이 깃들었다.
“아, 그래. 맞네. 내가 어디까지 파야할지 말을 안 해줬구나.”
그리고 이어지는 강진혁의 말에 유범수는 살았다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래, 그 정도는 내가 알려줄게.”
하지만 강진혁의 말이 끝나지 않았고, 유범수가 던진 의문에 대한 답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너네 중에 제일 키 큰 놈이 누구냐?”
“저, 접니다!”
강진혁이 던진 질문에 골드선 크루에서 가장 덩치가 큰 김지태가 재빨리 손을 들며 대답했다.
그러자 강진혁은 김지태를 보고 고개를 몇 번 주억거리더니, 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담담히 말했다.
“쟤 키보다 한 10cm 정도만 깊게 파.”
그 대답에 유범수를 비롯한 모든 골드선 크루의 크루원들은 깊은 절망에 잠겼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아- 이것은 순장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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