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5화
깡패가 학교폭력에 대처하는 방법 (16)
1.
퍽! 퍽! 퍽! 퍽! 으엑! 흐엑! 흐어억! 털썩!
“슬슬 됐나.”
금덕수의 딱까리들은 한 놈도 빠짐없이 시원찮은 체력을 갖고 있었지만, 워낙 쪽수가 많아서 그런지 의외로 빠르게 구덩이를 파냈다.
물론 살면서 땅 파본 적 한 번 없는 저 놈들이 내가 시킨 대로 200cm 깊이의 커다란 구덩이를 파는 건 불가능했다.
결국 놈들은 내가 시킨 것의 반절, 약 1m 좀 넘는 정도의 깊이까지 밖에 파내지 못했다.
“끄, 흐으으······.”
“파, 팔이 안 움직여 씨이바알······.”
“흐억, 으헉, 끄으으······.”
그걸로도 모자라, 놈들은 나한테 기절당하고 묶인 채 끌려와 깨어나자마자 지금까지 땅을 판 여파로 인해 완전히 탈진하여 바닥에 널브러지고 말았다.
음, 역시 이게 한계인가. 진짜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지보다 약한 애들 괴롭히기밖에 없는 쓰레기들. 그래도 뭐, 이 정도면 대충 그림은 나오겠다.
“거기까지 해.”
나는 삽자루를 잡고 있던 손바닥이 까져 피를 흘리고, 땀과 콧물과 눈물과 침을 질질 흘려대며 탈진한 놈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어차피 놈들은 더 이상 삽질을 하는 건 불가능한 상태였기에 멈추라는 말은 했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하지만 할 수 없는 건 삽질뿐, 움직이지 못하는 건 아니었고 기어갈 수 있는 힘 정도는 남아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멈추라는 말을 듣고 두 눈에 희망의 빛을 띤 놈들을 바라보며, 그저 담담하게 명했다.
“이제 니들이 판 구덩이로 전부 들어가 책상다리로 앉아.”
“으, 으아······ 예, 옙? 어, 어디로 들어가라고요?”
내 명령에 머리에 스크래치를 내고, 두 팔에 선명하고 큼지막한 타투를 새긴 놈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물었다.
그래, 받아들이기 힘들겠지. 지금 이 상황에서 깊이 1m가 넘는 구덩이로 들어가라는 말이 뭘 의미하는 지 정도는 저 머리 텅 빈 새끼들도 알 수 있을 테니까.
그렇기에 지금 내게 돌아온 양아치의 물음은 내 말을 듣지 못해서도 이해하지 못해서도가 아닌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의미는 분명 통했을 것이기에, 나는 이 양아치들이 강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내게 질문한 놈의 곁으로 다가갔다.
“어, 어으······ 히, 히이익······!”
내가 가까워질수록 놈의 안색은 창백해졌고, 나는 무표정을 유지하며 그대로 쭈그려 앉아 바닥에 주저앉은 놈과 눈을 마주쳤다.
“······.”
“······.”
스르릉.
나와 눈을 마주친 놈이 공포에 질려 실신하기 직전, 나는 녀석의 발치에 떨어져 있는 삽자루를 쥐고 다시 일어났다.
그 후, 아무 말 없이 가장 가까운 곳에 자라나있는 나무를 향해 쥐고 있던 삽을 횡으로 힘껏 휘둘렀다.
쐐애애애애액!
육중한 무게의 삽이 휘둘러지는 소리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날카롭고 날선 소리.
쾌속으로 휘둘러진 삽날은 그 무게조차 지워진 채 잘 벼려진 칼날처럼 완벽하게 바람을 갈랐다.
삽이 검과 같은 소리를 내도록 휘두른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굵은 나무라도 이 삽으로 행한 검격을 버텨낼 수는 없는 법.
쩌어어어억!
결국 굵고 단단한 무언가가 쪼개지는 소리와 함께 휘둘러진 삽날은 굵은 나무줄기의 절반 이상을 가른 채, 그대로 나무와 하나가 되었다.
“······.”
“······.”
“······.”
삽으로 나무를 갈라내는 이 광경에 양아치들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던 신음소리마저도 멎어버리고, 고요한 새소리만이 옅게 울려 퍼졌다.
조용해지고 시선도 모였으니 이제 말만 하면 되겠네.
나는 완벽하게 나무에 파고들어 웬만한 힘으로는 미동조차 하지 않을 삽자루에서 손을 떼고, 그대로 나자빠진 양아치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무표정을 유지하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다시 한 번 말한다. 구덩이로 들어가. 참고로 마지막으로 들어가는 새끼는 이 나무처럼 대가리를 쪼개버릴 거다.”
직후, 분명 탈진했을 양아치 놈들이 단거리 달리기 선수라도 된 양 엄청난 반사속도로 튀어나가 구덩이로 골인했다.
단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전부.
홀인원도 아닌, 홀인올이었다.
자, 그럼 마지막 준비까지 완벽히 끝냈고. 이제 하이라이트만 남았구만.
※※※
“아오 진짜! 아저씨들 빨리 좀 와요! 급하다고!”
“네, 네 알겠습니다 도련님.”
“젊어서 그런지 체력이 정말 남다르시네요 도련님.”
“최선을 다해 오르고 있습니다 도련님.”
경사가 가파른 등산로를 따라 가장 선두에서 오르던 금덕수는 자신을 뒤 따라 오는 검은 양복의 덩치들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이런 개 씨발 병신 같은 새끼들······!”
뭔 이상한 놈들한테 습격을 당해서 개털리고 산까지 끌려갔다는 자신의 크루원들은 전부 하나같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유범수 그 새끼만 안 잡혀갔어도 그냥 다 쳐내는 건데······!”
태어나길 깡패의 아들로 태어나, 자신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배웠던 금덕수였다.
그렇기에 원래 같았다면 고작해야 고삐리 부하들 따윈 얼마든 버릴 수 있는 장기말과 다름이 없었지만, 잡혀간 이들 중 하나. 크루 부헤드인 유범수만큼은 버릴 수 없었다.
“그 새끼한테 관리를 맡겨놓는 게 아니었다고!”
온갖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며 돈과 권력을 쓸어 담는 금일파의 두목, 그의 아버지를 보며 자란 금덕수는 자신도 저런 삶을 살길 원했다.
그렇기에 아버지의 조직 금일파를 따라 자신의 조직은 골드선 크루를 만들었고, 크루에 가입한 학생들을 이용하여 돈이 될 만한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태어나서 배운 거라곤 오직 쌈박질뿐, 아버지의 힘은 닮았을지언정 머리는 닮지 못했던 금덕수는 그저 귀찮을 뿐인 사업의 관리를 크루의 부헤드 유범수에게 전부 맡겼다.
가진 건 힘과 금일파 두목의 후계자라는 타이틀 뿐인 금덕수와는 달리 부헤드인 유범수에겐 잔머리와 센스가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고등학생이라는 입장을 살려 미성년자 매매 알선이라는 사업을 시작해버린 것이다.
유범수 그 새끼가 갖고 있는 장부, 그거 다 터지면 씨발······ 아버지까지 다 엮여서 뒤질지도 몰라······.
그렇기에 금덕수는 어떤 이들이 습격을 했는지 정보조차 알 수 없음에도 그저 찍혀있는 주소를 향해 갈 수 밖에 없었다.
대체 어떤 새끼들이지? 어떤 새끼들이 감히 내 골드선 크루를······!
본래 확실하지 않은 싸움은 무조건 피하거나 쪽수를 이용하여 조져온, 정말 깡패새끼다운 성향을 가진 금덕수에게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은 기피대상 1순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유범수가 습격범의 명령에 따라 찍어준 주소로 향하는 금덕수의 발걸음은 조금도 무겁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아버지한테 이 사실을 솔직하게 말했더니 이 아저씨들을 보내줬다는 거야.
지금 금덕수의 뒤를 따라 열심히 산을 오르고 있는 이 검은 정장의 깡패들이 금일파 두목 직속 칼잡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지역에서 와일드보어 캐피탈에 맞먹을 정도로 그 세력이 대단한 금일파, 그곳에 속한 조직원 중에서도 칼을 가장 잘 쓰는 이들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두목 직속.
오직 칼을 쓰는 실력만을 보고 금일파의 두목이 직접 뽑은 서른 명의 칼잡이 중 열 명이 지금 금덕수의 뒤를 따라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렇기에 금덕수는 자신의 크루를 친 정체 모를 습격자가 누구라고 한들 전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이 일을 마무리한 뒤 자신에게 떨어질 아버지의 불호령이 훨씬 더 두렵게 다가왔다.
아버지한테 들킨 이상 사업이고 크루고 전부 접어야겠지. 아버지는 자신의 안전이 흔들리면 자식이고 가족이고 전부 쳐낼 사람이니까.
하지만 오히려 이번 위기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번에 저지른 실책을 금일파의 차기 보스답게 조금의 잡음도 남지 않도록 정리한다면 아버지한테 좋은 인상을 남겨드릴 수 있을 수도 있으니까.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야. 마무리를 잘 짓기만 한다면 그 과정이 어찌 되든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상을 주시는 분. 그러니 나는 이번 기회에 진짜 깡패의 길로 들어서는 거지.
금덕수의 아버지, 금일파의 두목 금일수 또한 그걸 의도했기에 그의 칼인 직속 칼잡이 열 명을 붙여준 것이었다.
이 아저씨들은 아버지의 말을 제외하면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아버지의 칼들. 이들을 통해 나는 오늘 나의 가치를 아버지께 증명한다. 오늘이 바로 양아치에 불과했던 내가 깡패로 다시 태어나는 날이야!
오늘은 금덕수의 깡패 데뷔전, 그렇기에 금덕수는 자신을 따라온 열 명의 칼잡이를 통해 아버지께 깊은 인상을 남겨드려야겠다 굳게 결심했다.
“어, 도련님. 저기 저거 아닙니까? 저기 우르르 몰려있는 게 도련님 친구 분들 같은데요”
결심한 직후, 언제 다가온 건지 기척도 없이 금덕수의 등 뒤에 선 칼잡이 하나가 시야 끝에 자리엔 언덕 부근을 가리켰다.
그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리니 금덕수 또한 익숙한 얼굴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머저리 같은 병신새끼들아!”
말 그대로 개같이 털린 채, 뭔 구덩이에 옹기종기 들어가 주저앉아있는 자신의 크루원들을 본 금덕수는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 우렁찬 목소리는 메아리처럼 산속에 울려 퍼졌고, 그 소리에 놀란 새들의 날개 짓 소리가 이어졌다.
푸드드드드득!
자신의 목소리로 인해 산새들이 날아가든 말든 금덕수는 신경 쓰지 않은 채 구덩이에 몰려 앉아있는 이들의 면면을 확인했다.
“······.”
크루 헤드로서 다쳤는지 걱정하기 위함이 아닌, 자신의 인생을 조져버릴 수 있는 유일한 인물, 유범수를 찾기 위해서였다.
“뭐야, 유범수 이 쓸모없는 머저리새끼는 어딨어!”
하지만 구덩이 속, 그가 찾던 유범수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하나같이 개성 있는 페이스를 갖고 있는 골드선 크루에서도 두 팔에 타투를 조지고 머리는 노랗게 물들인 채, 스크래치까지 낸 유범수의 얼굴은 독보적으로 인상적이었다.
그렇기에 금덕수는 구덩이 속에 유범수가 없다는 걸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씨발, 씨발 이딴 새끼들은 뒤지든 좆되든 상관없다고! 유범수 이 개새끼야!!! 나와!!!!”
유범수에게 주소가 적힌 문자를 받은 후, 바로 금일파로 달려가 아버지에게 직속 칼잡이 열 명을 받아 조금도 쉬지 않고 산길을 내달린 금덕수에겐 조금의 여유도 남아있지 않았다.
오직 유범수를 찾아 신변을 구속한 뒤, 이 모든 일을 저지른 습격자 놈들을 정리하는 것만 머리에 남아있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유범수가 보이질 않으니 금덕수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입장이었다.
“이 씨발 병신새끼들아!!! 유범수는 어디로 갔냐고!!!!!”
쿵쿵쿵쿵!
물론 실제로도 미치고 팔짝 뛰었다.
그런 금덕수의 광기어린 분노에 구덩이에 들어가 있는 크루원들은 물론 그를 따라온 칼잡이들조차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산속을 울리는 건 금덕수가 난동을 부리는 소리 뿐.
하지만 금덕수의 소음독재도 잠시, 그 누구의 시야도 닿지 않는 사각에서 너무나 태연한 목소리가 선명히 들려왔다.
“어우 시끄러. 야, 니가 찾는 부하 여기 있다. 근데 둘이 그렇게 각별한 사이였어? 사별한 연인 이름도 그렇게는 안 부르겠다.”
“더, 덕수야······.”
그 목소리에 모든 이의 시선이 돌아갔고 그들의 시선의 끝에서 강진혁과 얼굴이 붉은 색, 푸른 색, 그 사이 삼초 그 짧은 시간 노란색 빛을 내는 것처럼 보이는 유범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씨발새끼야! 니가 병신같이 잡히지만 않았어도 이 지랄할 필요 없었잖아!”
괜히 깝치다가 제대로 처맞아서 얼굴이 신호등이 된 유범수를 보고도 금덕수는 그저 자신에게 이런 고생을 시킨 것에 대한 분노를 표출할 뿐이었다.
“음, 각별하긴 한데 그런 사이는 아닌가보네. 하긴, 둘이 그런 사이였으면 내가 이러고 있을 일도 없었겠지.”
부하생각이라고는 조금도 하지 않는 금덕수의 모습에 강진혁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작게 주억거렸다.
장내의 모든 이가 금덕수에게 눌린 이 상황에서 유일하게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강진혁의 모습은 눈길을 끌기 충분했다.
“야, 씨발 너냐? 내 골드선 크루 습격한 게?”
그리고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 어그로가 끌린 건,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발언권이 있다고 스스로 여기고 있는 금덕수였다.
고작 한 명 밖에 없는데 뭐지? 저 새끼 하나한테 골드선 크루 전원이 털리진 않았을 거잖아. 그러면 뭐 저 새끼 하나만 감시로 남겨두고 빠졌다는 건가? 아니 왜? 이딴 짓을 했으면 나중에 찾아올 나를 기다렸다가 다구리 까는 게 맞지 않나?
금덕수는 고작 한 명뿐인 강진혁에게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깡패인 아버지께 깡패로서 사는 법을 배운 금덕수였기에 고작 한 명이서 자신을 기다렸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분명 뭔가가 있을 텐데. 고작 혼자서 나를 맞이할 리는 없을 건데.
“음, 대충 걸어오는 꼴 보니까 견적이 나오네. 그래 뭐 괜찮겠다.”
괜찮다고? 역시 뭔가 노림수가 있는 건가? 일단 멈춰서 생각하자. 여긴 산이고, 나무 뒤에 사람이 숨으면 찾기 힘들어. 뒤에 숨어있던 새끼들이 우르르 몰려나와서 덮치기라도 하면 난처해진다고.
강진혁의 괜찮다는 말 한 마디에 금덕수는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그의 고개가 뒤로 돌아가며, 누군가를 부르려는 듯 입을 벌리는 모습에 금덕수는 역시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리라 드가자!”
하지만 이어지는 강진혁의 목소리와 나무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인영, 그리고.
“야, 이렇게 보니까 되게 반갑다. 이 씨발 양아치새끼야.”
새롭게 들려오는, 자신을 향한 날선 목소리에 금덕수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하리라가 왜 여기서 나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쓰는데 끝을 맺을 부분이 안 보여서 쓰다쓰다보니 원래 분량의 50퍼센트가 추가되었습니다. 오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