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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저가 깡패임-47화 (48/53)

제 47화

이제부터는 어른끼리 해결할 문제니까. (1)

1.

이 상황에 한해선 무조건적으로 리라의 편인 내가 보더라도 한 순간 참혹하다 느낄 정도로 철저하고 집요한 파괴가 일단락된 지금, 리라는 넝마가 된 금덕수의 앞에 선 채 가쁜 숨을 내뱉고 있었다.

“씨익, 씩, 흐으. 흐으으.”

숨소리에 따라 어깨가 위아래로 움직이고, 꽉 쥔 주먹은 벌벌 떨리며 여전히 리라의 분노가 풀리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있었으나.

“흐으으······.”

그 분노를 표출할만한 여력이 리라에겐 남아있지 않았다.

털썩.

“하아······ 하아······.”

금덕수를 얼핏 금덕수처럼 보이는 검푸르딩딩한 무언가로 바꾼 리라는 그를 짓밟는 것에 모든 힘을 소진한 뒤 바닥에 주저앉았다.

탈진할 정도로 사람을 패다니. 진짜 엄청 쌓였었나보네.

나는 이젠 정말 젓가락 하나 들 힘도 없어 보이는 리라에게 다가가 그 가녀리지만 탄탄한 어깨를 가볍게 짚었다.

충분히 긴장한 상태고 흥분한 상태였기에 몸에 손이 닿는 순간 무언가 일을 벌이는 건 아닐까 생각했지만 무언가 일을 벌이기엔 리라에게 남은 힘 따윈 없었다.

“다 했어?”

“하아····· 하아····· 네헤에······.”

그저 가쁘게 숨을 내쉬면서 힘들게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뿐, 지금의 리라가 할 수 있는 건 겨우 그 정도뿐이었다.

아니지. 그렇게나 격렬한 움직임으로 피지컬 하나는 탈미성년자였던 금덕수를 쉬지도 않고 줘팼으니까. 고개 까딱일 힘이 남아있다는 게 대단한 거지.

하지만 역시 그 이상은 무리였는지, 리라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는 것으로 완전히 방전되어 그 작은 머리의 무게조차 버티지 못하고 상체를 앞으로 고꾸라뜨렸다.

탁.

물론 이 예쁜 얼굴이 이런 흙바닥에 닿는 건 매니저(진)로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 나는 두 팔로 원래도 가벼운 리라의 상체를 가볍게 받아냈다.

쑤욱.

그리고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 그대로 일으키고, 바지에 묻은 흙을 털어줬다.

흙에서 피어나는 게 꽃이라지만, 아이돌한테 흙이 묻으면 안 되지.

리라는 꽃보다 소중한 우리 아이돌 연습생(진)이니까 말이야.

그나저나 하안이였으면 겨드랑이를 잡은 순간 깜짝 놀라면서 몸을 털었을 텐데 리라는 딱히 간지럼을 안 타는지 그런 반응은 없었다.

아니면 깜짝 놀랄 힘조차 없어서 그냥 무반응인 걸지도 모르겠네.

이렇게까지 탈진할 정도로 움직이는 것도 재능이고, 탈진하기 직전까지 지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던 것도 재능이었다.

아이돌로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에 체력은 반드시 꼽힌다.

체력적인 측면에서 리라는 이미 완성을 넘어서 완벽에 가까워져있었다.

하안이가 그저 첫 인상만으로 최고의 아이돌이 될 인재라는 걸 내게 증명했다면, 리라는 보면 볼수록 최고의 아이돌이 될 인재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하안이와 리라는 재능적인 측면에서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끝은 하나였다.

두 사람 모두 최고의 아이돌이 될 수 있는 재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돌이니 인재니 그런 말들로 칭찬하는 것보다 먼저 해줘야 할 말이 있었기에, 나는 내 가슴팍에 힘없이 얼굴을 묻고 있는 리라의 등을 토닥여주며 그녀의 노고를 치하했다.

“고생했어. 그리고 참 잘했다.”

폭력을 긍정하는 건 분명 어떤 면에서든 위험천만한 일이었고, 매니저가 담당 아이돌에게 할 말은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나는 리라와 매니저와 아이돌의 관계가 아니다.

리라가 나를 부르는 말마따나 오빠와 아는 동생 관계, 딱 그 정도의 관계다.

그러니, 오랜 숙원이었던 복수를 실현한 리라에게 칭찬을 해주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했다.

“······오빠.”

“응?”

“이제 어쩌죠······?”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리라의 목소리는 불안하고 어두웠다.

오랜 숙원이었던 금덕수를 조져버린다는 복수를 자신의 힘으로 당당히, 그리고 멋있게 이뤄냈다고는 볼 수 없는 공포에 질린 목소리.

그 목소리에 시선을 내리자, 내 품에 몸을 기댄 채 고개만 빼꼼 들어 날 바라보는 리라와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저지르긴 했는데······ 이 다음엔 진짜 어째요?”

날 올려다보는 리라의 눈엔 앞으로 벌어질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로 가득 차있었다.

“저 개새끼 패는 건 진짜 속 시원하고 좋았는데······ 패고 나니까 그제서야 생각났어요. 저 새끼 아빠가 깡패 두목이잖아요. 그것도 겁나 무서운 깡패.”

불안과 공포의 원인은 금덕수의 뒷배, 이 지역에 사는 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금일파.

“저딴 양아치 새끼는 얼마든지 패버릴 수 있는데······ 진짜 깡패들은 어떡해요? 칼 들고 집에 찾아오면, 아니 길 가다가 갑자기 배때기 쑤셔버리면 저 진짜 어떡해요? 콥스파티를 해버리면 어떡해요?”

뭔가 예시가 굉장히 리얼하네. 그만큼 무섭다는 거겠지?

그 당차고 기가 센 리라가 지금까지 금덕수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겨우 저항하기만 했을 뿐 역으로 반격할 수 없었던 건 놈의 뒷배가 알아주는 깡패조직인 금일파였기 때문이었다.

“저 새끼 아까 여기 올라올 때도 덩치가 산만한 정장깡패들 우르르 몰고 올라왔는데, 이런 곳에 올라올 때까지 자기 부하 깡패들을 붙여주는 아빠라면 분명히 보복이 있을 거······ 잠깐.”

벌벌 몸을 떨며 너무나 불안한 탓에 저도 모르게 나를 꼭 끌어안았던 리라는 순간 잊고 있던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눈을 번쩍 뜨고 지금까지보다 더 심하게 떨기 시작했다.

“그, 그그그깡패들! 그 깡패들은요?! 하나같이 엄청 무시무시해 보이던데, 자기 도련님이 이렇게 처맞는 걸 봤으니까 분명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지금이라도 빨리 도망을······!”

“어? 이제 와서 그 부분을 짚는 거야?”

“네?”

“이미 정리 끝났어. 그것들은.”

나는 움직이지 못하는 리라를 위해 두 팔로 그녀의 등을 감고, 번쩍 들어 몸의 방향을 90도 돌렸다.

그러자 내 몸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내 등 뒤의 상황이 리라의 시야에 들어올 수 있었고.

“······어?”

그렇게 리라는 산속에 산삼처럼 처박혀있는 열 명 남짓의 깡패들을 볼 수 있었다.

“아, 아? 아니 언제······ 아니 어떻게······?”

자신이 본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양 다양한 자세로 처박혀있는 깡패들과 나를 번갈아보는 리라는 참 귀여웠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고,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그녀의 의문이 해소될 수 있는 답을 입에 담았다.

“네 복수에 방해되지 않게 네가 금덕수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바로. 내가 앞을 막으니까 저리 꺼지라면서 저 놈들이 다리에 감아둔 회칼을 꺼내길래 그대로 바닥에 박아줬지.”

한 명당 한 방, 새어 보지는 않았지만 전부 처리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눈이나 손, 발걸음을 보면 칼을 좀 쓰는 놈들 같긴 했지만······ 처음 그 놈 빼면 칼을 빼기도 전에 땅에 처박아줬으니까 결국 실력도 제대로 못 봤고 말이야.

그 모든 상황을 줄줄이 풀어서 말하면 약 3000자 이상 분량의 길기만 하고 재미없는 양학원툴노잼소설처럼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에 나는 깔끔하게 그 싸움을 두 줄로 요약하여 설명했다.

“세상에······.”

그 설명에 리라는 결과를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반쯤 벌린 채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그런 리라와 눈을 마주쳐주며 리라가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도록, 그리고 자신의 복수에 후회하지 않도록 안심할 수 있는 말을 꺼냈다.

“이제 네 복수는 끝났어. 그렇게 괴롭히던 너한테 말 그대로 개떡발렸으니까 저놈 인생은 리라 네가 말했듯이 빡세게 조져졌다고 할 수 있지.”

“그, 그치만 저 새끼한테는 금일파가······.”

“그건 네가 생각할 문제가 아니야.”

“네?”

말만으로 불안을 해소하는 건 아무래도 힘든 일 같았다.

이렇게까지 보여주고 말해줘도 불안해한다면, 이젠 어쩔 수 없이 조금 낯 뜨겁고 쑥스럽긴 하지만 효과는 확실한 그 방법을 사용하는 수밖에는 없겠군.

나는 어쩔 수 없이 내 집에 자러 온 아가씨가 악몽을 꿨다면서 내 방에 들어와 내 침대에 누운 다음 시켰던 그 행위를 리라의 불안을 달래기 위해 지금 이 자리에서 재현했다.

스으윽.

“아, 아읏.”

리라의 기다랗고 매끄러운 머리카락을 손바닥으로 덮은 채 위에서 아래로 솔솔솔 쓸어내리며, 나는 잠시 끊어졌던 말을 다시 이었다.

“괜찮아 리라야, 걱정 안 해도 돼.”

“오, 오빠······.”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안심이 되었는지 리라에게선 불안이 사라졌고, 불안과 함께 긴장까지 풀린 리라는 몽롱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내게 온몸을 맡긴 채 그대로 늘어지는 리라를 한 손으로 지탱한 채, 나는 낮은 목소리로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이제부터는 어른끼리 해결할 문제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공모전 본선이 끝났습니다! 와! 하지만 매깡임(매니저가 깡패임)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 보여드리고 싶은 장면은 아직 두 개 정도밖에 보여드리지 못했다는 것!!!!!!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발발타는 웃고있다...! 더 재밌어질 매깡임을 보여드릴 날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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