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8화
이제부터는 어른끼리 해결할 문제니까. (2)
1.
“······네에.”
잘못 들은 건지 뭔지, 어딘가 수줍은 것처럼 들리는 그 말을 끝으로 리라는 완벽히 탈진하여 내 품에서 기절하듯 잠에 들었다.
내게 반쯤 안겨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서 있는 거나 다름없는 자세인데, 이 상태로 잠에 들다니. 진짜 힘이랑 힘은 다 땡겨 썼나보네.
그래도 서서 자는 건 좋지 못했기에, 나는 리라를 공주님 안 듯 들어 안고 인기척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매니저님.”
“어, 어어 하안아.”
그러자 어째서인지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나를, 아니 내게 들려있는 리라를 노려보는 하안이를 만날 수 있었다.
하안이는 한 손에 커다란 짱돌을 쥔 채, 짱돌을 쥔 손에 힘을 얼마나 줬는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아니 얼마나 화났으면 짱돌을 쥔 손이 떨릴 정도로 세게 잡는······ 아니 짱돌? 짱돌을 왜 들고 있어 얘가?
“······그, 근데 하안아 그 짱돌은 뭐야?”
깜짝 놀라 물으니, 하안이는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짱돌을 들어 내려다보았다.
팔꿈치를 굽혀 올라온 짱돌은 아래로 향해있던 면이 위로 올라오게 되었고, 아래로 향해있을 땐 보이지 않았던 모서리 부분엔 검붉은 액체 같은 게 묻어있었다.
피잖아. 저거 피잖아!
“짜, 짱돌에 피는 또 왜 묻어있는 건데?!”
짱돌을 들고 있는 것 정도는 이상하고 위협적이긴 해도 그리 큰일은 아니다.
하지만 들고 있는 짱돌에 피가 묻어있는 건 분명 큰일이고, 그 피 묻은 짱돌을 하안이가 들고 있는 건 더더욱 큰일이었다.
하안이는 그런 사태의 심각성은 신경쓰지 않은 채, 그저 태연하게 내 질문에 답하기 시작했다.
“아, 이거요? 이건······.”
설명하려다 잠시 말을 끊은 하안이가 고개를 돌리자, 하안이의 시선 끝엔 양아치 하나가 흙바닥에 입을 맞춘 채 추욱 쓰러져 있었다.
그 모습에 깜짝 놀라 목격자를 전부 없애고 증거품을 소멸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릴 뻔했지만, 쓰러져 있는 양아치의 손에 잡힌 물건을 보고 안심할 수 있었다.
“저 양아치가 리라가 금덕수인지 뭔지 하는 쓰레기 줘패는 거 보고 못 참았는지 짱돌 들고 달려 들길래요. 그래서 뒤에서 깠어요.”
“그래? 그럼 안심이지. 정당방위였네.”
난 또, 하안이가 갑자기 빡쳐서 짱돌로 양아치 대가리 깨기라도 한 줄 알았지 뭐람.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뒤, 안심하고 입가에 미소를 띄우려던 그 때 하안이의 서슬퍼런 목소리가 뒷덜미를 스쳤다.
“그런데 매니저님, 리라 걔 계속 그렇게 안고 계실 거예요?”
“어, 어엉. 기절했으니까 어쩔 수 없지?”
사실대로 답하자 하안이는 몹시 못마땅하다는 듯 눈썹을 찌푸린 채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면 나중에 저 기절했을 때도 해줘야 해요. 공주님안기.”
그리고는 뭔가 굉장히 무서운 어투로 굉장히 귀여운 통보를 남긴 다음, 흥! 하고 콧바람을 내뿜으며 성큼성큼 먼저 산길을 내려갔다.
뭐지. 되게 귀엽네. 진짜 아이돌 하면 사람 여럿 심쿵사 시키겠다.
산삼보다도 더 귀하다고 알려진 새침한 하안이는 그렇게 시야에서 사라졌다.
리라면 몰라도 하안이라면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기에, 그대로 시선을 돌려 마무리해야할 일을 마주했다.
“······흠.”
시야에 보이는 건 자기들이 판 구덩이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은 채, 그저 공포에 질려 떨고 있는 양아치들.
아까 금덕수가 깡패들을 끌고 올라왔을 땐 나를 보고 욕지거리를 내뱉는 놈들도 있었는데, 지금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조용했다.
리라가 금덕수 그 양아치새끼를 처바르는 걸 봤으니 합죽이가 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지.
힘의 논리를 따라 살아가는 양아치들에겐 강한 놈이 곧 법이고, 이 자리의 강자는 내 품에 들려있는 리라였다.
하지만 리라는 잠에 들어 자신의 뜻을 겉으로 전하지 못하는 상황.
그러니 리라 대신 멀쩡한 내가 그녀의 뜻을 전해야했다.
“어이, 양아치새끼들.”
“네, 넵!”
짧게 부르자 마치 한 사람의 목소리로 들릴 정도의 즉답이 양아치 전원의 입을 통해 내게 전달되었다.
아, 따지고 보면 전원은 아니지. 저 놈들 중 하나는 하안이가 뚝배기를 깨놨으니까.
한 명을 뺀 전원의 즉답에 일이 쉽게 풀리겠다는 걸 예상할 수 있어 한 시름 놓았다.
하긴, 자기들 대장인 금덕수가 떡이 되도록 개뚜드려 맞았으니까. 저렇게 반응하는 게 당연하겠지. 혹시나 눈에 이상한 꿍꿍이가 보이면 공포를 뼈에 주입시켜야하나 고민했었는데. 그럴 일은 없어서 다행이야.
이 일을 마무리하고 바로 다음 일로 넘어가야했기에 이딴 양아치새끼들한테 소모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기에 이놈들이 이렇게까지 공포에 질려있다는 건 내겐 호재였고, 나는 그냥 리라가 차려둔 밥상에 숟가락만 얹으면 되는 상황이었다.
나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내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는 양아치새끼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니들 아지트에 느그들 인적사항이니 뭐니 다 있더라. 무슨 양아치들 계모임 가입하는데 그딴 것까지 필요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있길래 챙겨놨거든. 근데 지금 보니까 왜 그런 걸 쓰게 했는지 알 것 같네.”
인적사항이라는 단어가 나오고, 내가 왜 그런 걸 쓰게 했는지 알 것 같다는 말을 하자 날 바라보던 양아치들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금덕수가 금일파 두목에게서 배웠거나, 머리 좀 쓸 것 같이 생긴 2인자 놈 머리에서 나왔거나. 아무튼 크루원들의 인적사항은 크루원들이 금덕수에게 반항하지 못하게 하려는 족쇄였다.
금덕수의 뒤에 금일파라는 조직이 있다는 건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일 거고, 자신들의 인적사항을 전부 가지고 있다는 건 금일파가 얼마든 자신들의 안방으로 쳐들어올 수 있다는 거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저놈들의 인적사항은 말 그대로 족쇄이자 목줄, 금덕수가 크루원들을 잘 다루기 위한 도구였다.
“오늘 있었던 일들 절대 말하지 말라고 해도 니들이 들을 놈들이 아닌 걸 알아.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나도 이런 방법을 쓸 수밖에 없는 거고.”
“그, 그 말은······.”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 양아치 놈들의 인적사항은 금덕수가 아닌 내 도구, 내 손에 쥐어진 목줄이었다.
“응, 만약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조금이라도 말이 나온다. 그러면 난 내 모든 걸 걸고 내가 가진 니들 인적사항에 있는 모든 것들을 조질 거다. 정말, 너희의 인생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전력을 다해 박살낼 거야. 모든 관계, 모든 재산, 모든 희망을. 전부 다.”
눈앞의 저 놈들은 금덕수의 말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결국 남의 인생을 조지며 살아온 씹새끼들이었다.
타인의 인생을 망치며 살아왔다면, 자신의 인생이 망쳐질 각오 또한 되어있어야 하는 법.
물론 그딴 각오가 없어도 상관없었다.
“니들이 오늘 판 구덩이는 딱 예고편일 뿐이야. 본편을 보고 싶다면, 산 채로 흙더미에 파묻히고 싶다면 어디 한 번 해봐.”
오늘 일로 저 놈들은 자신들이 남의 인생을 조졌던 것처럼 자신들의 인생도 남에 의해 조져질 수 있다는 걸 알았을 테니까.
“최선을 다해서, 토목공사라도 하지 않는 한 찾을 수 없을 깊이에. 너희의 모든 걸 묻어버릴 테니까.”
내 말에 사형선고를 받은 사형수처럼 얼굴에서 빛을 잃은 양아치들을 바라보며, 나는 싱긋 웃으며 말을 맺었다.
“그러니 오늘로 이 일은 단도리 하자 알겠지?”
※※※
산에서 내려와 하안이와 만나 리라를 인수인계한 뒤 바른길엔터로 택시를 태워 보낸 후, 나는 하혁수 씨가 기다리고 있을 약속장소로 향했다.
“어, 왜 나와 있어요? 들어가 앉아 계시지.”
약속장소에 도착하자, 노란 태권도차 옆에서 굳이 서있는 하혁수 씨를 만날 수 있었다.
내 목소리에 시선을 돌린 하혁수 씨는 내 말에 대답은 안 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질문을 대뜸 던졌다.
“······잘 끝냈냐?”
굉장히 많은 의미와 감정이 담긴 질문, 하혁수 씨로서는 날 보고 결과를 알 수 있음에도 물어볼 수밖에 없는 질문이었다.
하긴, 자기 딸이 깡패계의 신성이랑 맞짱을 뜨러 간다는데 불안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어.
나는 하혁수 씨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그저 씨익 미소를 지으며 장난스레 답했다.
“그럼요. 리라가 한 대도 안 맞고 개팼어요. 사실상 한 방에 싸움은 끝냈고, 그 다음 쓰러진 그 깡패새끼를 구타하느라 힘을 뺀 거지.”
“진짜? 리라가 그 깡패새끼를 일방적으로 줘팼다고?”
“그럼요. 엄청 잘 배웠던데요? 자세는 아빠보다 나은 것 같아.”
“······그러냐.”
내가 아는 다혈질 하혁수 씨라면 자기보다 낫다는 말에 어떻게든 화를 냈어야 했는데, 지금의 하혁수 씨는 그저 흐뭇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자기 딸이 깡패 아들이랑 싸워서 개패고 이겼다는 거에 저리 흐뭇한 미소를 짓는 게 맞나 싶긴 하지만, 리라 엄청 멋있었으니까 뭐. 괜찮지.
무튼 애들 일은 여기서 끝이 났고, 이제부턴 어른들의 일이었다.
나는 발로 땅바닥을 툭툭 차며 씨익 웃고 있는 하혁수 씨의 어깨에 손을 짚은 후, 가볍게 탁탁 두드려줬다.
“그럼 이제 산에도 안 오르고 모아뒀던 힘 전부 쏟아 부으러 가실까요? 리라 아버님.”
“후우······ 그래. 우리 딸이 해냈으니 아부지도 뭔가를 보여줘야겠지. 가자, 리라 매니저(진).”
“······아니 이 상황에선 진은 좀 빼줘야 하는 거 아녜요?”
“뭐래, 계약서도 안 쓴 놈이. 너랑 리라는 지금도 쌩판 남이야 남! 계약서 쓰기 전까지 넌 절대로 (진) 못 떼!”
하혁수 씨다운 호통을 끝으로 대화를 마친 우리는 그렇게 태권도차에 올라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뛰뛰!!!빵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