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9화
이제부터는 어른끼리 해결할 문제니까. (3)
1.
네비에 찍힌 주소에 도착하니 보이는 건, 우리 5층따리 바른길엔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커다란 10층짜리 빌딩, 금일상사였다.
금일파는 내가 깜빵에 들어가기 전엔 들어보지 못했던, 나름 신생 조직이니만큼 건물 또한 지어진지 얼마 안 된 신축이었다.
“이야, 건물 한 번 으리으리하다. 서울보다는 못해도 여기 땅값 꽤 높은 편인데, 건물 한 채를 통으로 쓴다고? 금일파 금일파 하는 이유가 있긴 한가 봐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임마. 그나저나······ 진짜로 가능하긴 한 거냐? 네가 말한 계획은 아무래도 좀······ 못 미더운데.”
내가 건물을 보며 대체 깡패 짓으로 얼마나 돈을 벌었으면 이런 건물까지 짓냐고 감탄하고 있을 때, 운전석에 앉아있던 하혁수 씨에게서 불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아직도 의심을 버리지 못하시네. 저를 그렇게 못 믿겠어요 하혁수 씨?”
“믿어 임마! 당연히 믿지! 근데 니 주둥이에서 나온 그 계획이 너무 얼토당토않잖아!”
“제 계획이 어때서요. 심플하고 좋은데. 심플 이즈 베스트라는 말도 모르시나?”
“적당히 심플해야지! ‘나만 믿고 하혁수 씨는 할 일을 하세요.’라고 말하면 그게 계획이야?!”
“진짜 그게 다인데. 하혁수 씨가 할 일은 하혁수 씨가 알 테니까 제가 거기에 뭐라고 할 말은 없고, 저는 제가 생각해도 이런 쪽에선 믿을만하고. 된 거 아니에요? 애초에 하혁수 씨도 동의했으니까 여기까지 온 거잖아요.”
“큭······.”
내 말에 하혁수 씨는 찔렸다는 듯 몸을 살짝 뒤로 뺐다가, 내게서 고개를 돌려 금일상사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건물이 너무 크잖아. 건물이 저렇게 큰데 사람은 또 얼마나 많겠냐. 다굴빨에 장사 없는 건 소싯적에 진짜 오지게 경험해봤거든?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다른 방법을······.”
“하혁수 씨, 그래서 자신 없어요?”
“아니 임마! 자신은 당연히 있지! 근데 내 말은······.”
“자신 있으면 됐네. 그냥 나와요. 이렇게 수다 떨 시간 없으니까.”
“자, 잠깐만!”
철컥.
나는 아직도 의심을 버리지 못하는 하혁수 씨를 두고 태권도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혼자 나가면 하혁수 씨 성격상 따라오리라는 건 물 보듯 뻔한 일.
“후, 이렇게 건물 앞에 딱 서니까 옛날 생각 나네.”
“야 이 미친 새끼야!”
옆에 있는 사람은 믿음직한 형님에서 날 못 믿는 하혁수 씨로 하향됐지만, 그리 문제될 것도 없고 말이야.
“그렇게 확 나가버리면 뭐 어쩌자고 임마! 저기 주차구역도 아니라 딱지 끊긴단 말이야!”
나는 먼저 나온 나를 쫓아 후다닥 뛰어온 하혁수 씨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10층짜리 빌딩을 올려다보았다.
어딜 가든 그렇듯 대가리는 맨 위에 있을 텐데 10층이라.
“엘리베이터는 쓸 수 있겠죠?”
“엘리베이터? 뭐, 저 건물 안에 있는 엘리베이터?”
“네, 저야 괜찮지만 늙고 병든 하혁수 씨는 계단으로 10층에 있을 사장실까지 못 올라가잖아요.”
“늙지도 않았고 병들지도 않았거든?! 그리고 올라갈 수는 있어 임마!”
“대신 힘은 다 빠져서 헥헥대겠죠. 그러면 엘리베이터는 타야한다는 건데······.”
나는 아주 잠깐 고민한 뒤, 이 문제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그러면 되겠네.”
“어. 어? 뭐를? 뭘 그러면 되겠는데?”
“일단 따라와 보세요.”
나를 믿지 못하는 하혁수 씨에게 머릿속에 떠오른 확실한 방법을 설명해봤자 받아들이지 않을 게 뻔했다.
그래서 일단 따라오라 말한 뒤, 나는 그저 노빠꾸로 금일상사 건물의 정문을 열고 들어갔다.
끼이익.
“이 미친·······!”
이렇게 나 혼자 막 나가버리면 하혁수 씨는 이렇게 나를 따라올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하혁수 씨를 대동한 채, 문을 열고 금일상사에 들어가니 자연스럽게 그 안에 있던 모든 이의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했다.
양복도 차려 입었고, 서류가방도 하나씩 들고 있는 게 참 회사원다운 착장이었으나 어째 덩치들이 하나같이 평범한 회사원 같지 않았다.
이 지역 사람 전원이 여기가 금일파 본거지라는 걸 알고 있고, 양복이나 서류가방 같은 걸로 깡패라는 걸 숨기기엔 역부족이라는 건 자기들도 알고 있을 텐데. 하긴, 깡패라고 대놓고 광고하는 것보다야 저게 보기는 좋긴 하겠다.
짧은 감상 이후, 나는 안내데스크로 다가가 이 안에 있던 사람 중 유일하게 여자인 안내원을 바라보았다.
“안녕하십니까 손님, 어떤 이유로 저희 금일상사를 방문해주신 건가요?”
그러자 의외로 그럴듯한 멘트가 물 흐르듯 흘러나왔고, 그 멘트를 듣고 나서야 나는 깡패들이 진짜 깡패짓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 되었음을 인지했다.
진짜 상사 일도 한다는 건가? 저 서류가방엔 회칼이 아니라 진짜 서류가 들어있는 거고? 여기 진짜 회사라도 되는 거야? 하긴, 벌써 7년이나 지났으니 이쪽 생태계도 많이들 변했겠지.
하안이에게 빚 독촉을 해왔던 와일드보어 캐피탈도 겉으로만 보면, 그리고 하는 일을 대충 뭉그러뜨려 보면 그저 평범한 대부업체에 불과했다.
아마 이 금일상사도 하는 일은 상사 일일 것이고, 실제로도 진짜 상사들처럼 국내외로 유통 중개업을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래봤자 이 새끼들은 깡패새끼들이야. 그건 변하지 않아.
일을 하는 주체가 깡패고, 일을 깡패처럼 해대니 결국 놈들의 본질은 깡패였다.
“손님? 어떤 목적으로 저희 금일상사를 방문해주셨는지 말씀해주셔야 제가 도와드릴 수······.”
“아, 제가 금일상사 물건을 하나 주워서요. 반납하려고 왔어요.”
그러니 나도 전혀 거리낌 없이 행동할 수 있는 거고.
“저희······ 물건이요?”
분실물을 주웠다는 내 말에 안내원은 의아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나는 입으로 답하는 대신 다리에 묶어둔, 아까 산에서 주웠던 금일상사의 물건을 꺼냈다.
스르릉.
빛을 반사하며 반짝이는 칼날에 안내원의 안색이 시퍼렇게 죽었고, 나는 이 자리의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힘껏 데스크에 분실물을 박아 넣었다.
쾅!!!
“히, 히이이이익!?!”
이윽고 안내원의 비명이 터져 나오는 것과 동시에 칼날이 완전히 박혀 손잡이만 보이게 된 회칼을 중심으로 나무가 갈라지는 소리가 1층 로비에 조용히 퍼져나갔다.
쩍, 쩌적. 쩌어억!
“뭐, 뭐야. 무슨 일이야!”
“저 새끼 방금····· 칼 꺼낸 거야?”
“뭐야 씨발 습격이야?!”
갈수록 커지는 웅성대는 소리, 그리고 회칼 손잡이에 힘을 줄 수록 점점 커져가는 데스크의 균열.
콰직! 콰당탕탕!
결국 겉에 페인트만 칠했지 속은 나무로 만들어진 데스크는 회칼에서 가해지는 힘을 버티지 못하고 여러 파편을 휘날리며 반으로 쪼개졌다.
그리고 동시에 힘으로 쑤셔댄 탓에 이가 나가버린 처참한 회칼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씨, 씨발 칼 든 거 맞잖아! 습격! 습격이다!”
“위에 있는 애들 불러! 습격이다!”
“잠시만, 두 명? 두 명밖에 없는데? 두 명이서 우리 회사를 습격했다고? 씨발 그게 말이 돼?”
깡패놈들에겐 너무나도 익숙할 회칼이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자, 그대로 비상이 걸려 로비가 굉장히 소란스러워졌다.
로비에 있던 덩치들은 각자 무전기, 이어마이크, 핸드폰 등으로 어디론가 분주하게 연락을 걸어댔다.
오, ‘이 새끼가 뒤지고 싶어서 환장했나. 너 뭐야 이 새끼야!’하면서 덤벼드는 일은 안 하는 건가? 확실히 이렇게 큰 건물을 대로변에 세우고 잘 나가는 조직 답네. 보고체계라는 게 잡혀있는 걸 보면······.
“이 새끼가 뒤지고 싶어서 환장했나. 너 뭐야 이 새끼야.”
“하, 역시 깡패새끼들 하는 짓이 뻔하지.”
“뭐?”
나는 내 앞에 성큼 다가와, 얼굴에 ‘나 위험한 놈이니 건들지 마소.’라고 적혀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덩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단정한 양복과 각진 서류가방으로는 감출 수 없는, 깡패의 디폴트 값 같은 그 모습에 어째서인지 안심감마저 느껴졌다.
“그래도 너 같은 놈 안 나오면 섭섭하긴 해. 기대하고 왔는데 실망하면 어쩌지 걱정했거든.”
“뭔 씨발 알아듣지도 못할 개소리를 아까부터 자꾸 하는 거야? 야, 쳐돌았냐? 좆도 아닌 깡패 나부랭이 새끼가 뒤지고 싶어서 꼴랑 칼 하나 들고 우리 대 금일파에 쳐들어온······.”
쾅! 쿠당탕탕탕!
이런 깡패스러운 놈이 등장해준 건 분명 반가웠지만, 역시 저런 뻔한 대사는 10초 이상 들으면 질리는 법이었다.
어차피 뭐라고 할지 다 아는데, 전부 들어주는 건 시간 낭비지 그래.
방금까지 떠들던 덩치를 덩치가 있어서 무거운 골절환자로 바꾼 나는, 자신들의 동료가 한 방에 공중을 날아 나가떨어진 것에 말을 잃은 나머지 깡패들을 향해 한쪽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뭐 해? 좆도 아닌 깡패 나부랭이 새끼가 꼴랑 아저씨 한 명 대동하고 너희 금일파에 쳐들어왔는데. 안 덤벼?”
그 말을 내뱉자, 말을 잃었던 놈들의 아가리에 다시 힘과 분노가 실리기 시작했고 놈들은 각자 들고 있던 서류가방에서 각자의 회칼을 꺼내들기 시작했다.
역시 깡패새끼들이 결국 다 똑같지 뭐.
나는 다시금 과거의 향수를 느끼며, 손에 들고 있던 거추장스러운 회칼을 대충 바닥에 내던졌다.
"자, 한꺼번에 다 덤벼. 시간 아까우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회칼(주먹보다 약함)